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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8:19-20

Dawn Word

마태복음 8:19-20

각오하고 따라오라

산 위의 동네와 등경 위의 등불 · 마태복음 5장

2021. 8. 5.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8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8:19-20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며 고난을 각오하고 따라 오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갑자기 풍랑이 이는 갈릴리 바다를 건너 더러운 이방인 지역으로 가자고 하셨다. 제자의 길이란 바로 그러한 길도 따라가는 것이다. 이제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려는 순간 율법학자 한사람이 등장했다. 이 사람도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머리둘 곳도 없으니 각오하고 따라오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19절에서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말한다.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겠다고 말한다. 이 사람은 예수께서 산 위에서 가르치실 때 그곳에 함께 있었을 것이다. 율법학자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전문가였다. 예루살렘에서 율법학자라면 이스라엘 최고의 엘리트들이지만 갈릴리에서 율법학자라면 그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학자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지역에서는 최고의 존경을 받던 사람들이다. 이처럼 존경받는 율법학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제자가 되어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디로 가든지"라는 말은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라는 뜻이다. 이처럼 존경받는 성경 학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땅끝까지라도 따라가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꽤 유명한 신학박사가 아무런 신학교육도 받지 못한 기독교인의 설교를 듣는 것과도 같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자신의 가르침과 비교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판하고 공격하기 위해 듣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르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놀라운 가르침이라는 것을 깨닫고 감동을 받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고 무리들의 뒤편에서 예수님을 따라 내려갔을 것이다.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치료하실 때에도 둘러선 무리들 뒤에서 까치발을 세우며 지켜보았을 것이다. 말씀의 권위에 놀란 이 율법학자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더 놀랐을 것이다. 이방인의 종까지도 말씀으로 치료하시는 것을 보고는 경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수많은 병자들을 밤을 새워가며 치료하시는 모습에서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특별히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깜짝 놀랄정도로 분명하게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직접 행함으로 보여주시는 모습을 보고 압도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체면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다가 건너편으로 가신다고 하니 결심을 하고 예수님 앞에 나선 것이다. 건너편이 어디인지 이 율법학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은 유대교 율법학자가 가서는 안되는 곳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큰 감동을 받았기에 진짜로 제자가 되려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존경받는 율법학자로서 이것은 정말 대단한 결심이다. 존경받는 율법선생이 예수님의 학생이 되겠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놀라운 것이다. 그런데 저 멀리 어디로 가시더라도 따라가겠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결심이다. 자신이 누리던 모든 명예와 권세를 다 내려놓고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장한 결심으로 제자가 되겠다는 율법학자에게 예수님은 엉뚱하게 대답하신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곳도 없다”라고 하셨다. 여기서 인자 라는 말은 다니엘에 나오는 메시야적 호칭이다. 그 뜻은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인자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러 오신 겸손한 종 이란 뜻이다. 둘째 인자란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 받는 종이라는 뜻이다. 셋째 인자란 다시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영광의 왕과 재판관 이란 뜻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부르신 것이다. 그런 예수님이 여우도 새도 다 집이 있는데 자신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가버나움의 베드로네 집을 본부로 삼아서 왔다갔다 하셨지만 그곳은 집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에게 줄 세상의 영광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는 노숙자와도 같은 신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떠돌이 노숙자와 같은 정처없는 삶을 살려고 각오를 했다면 따라 오라는 것이다. 바울은 최고의 율법학자였는데도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노숙자와 같은 삶으로 지중해 연안을 떠돌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었다. 그럴 각오가 되어 있다면 따라오라는 것이다.

지금 이 율법학자는 놀라운 말씀과 기적만을 체험하고 흥분된 상태에서 따라오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박수갈채만 보지 말고 그 뒷면을 보고 각오하고 따라오라는 것이다. 율법학자는 당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리며 훈련을 받았습니다. 회당과 성전에서도 존경받는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회당과 성전에서 아무런 존경을 받지 못하고 배척만 당했다. 율법학자는 자신이 자신의 스승에게서 배울 때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명문대 학생이나 사관학교 학생과도 같이 바라보았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배우는 것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따라 나섰을 것이다. 예수님의 그 놀라운 가르침과 그 행하시는 능력을 배울 수 있다면 세상에서 최고로 존경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머리둘 곳도 없다라고 하신 것은 따라오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따라 오려거든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각오하고 따라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쌓은 경계를 넘어서 건너편으로 가자는 것이다. 이 율법학자가 쌓은 경계는 존경받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존경대신 비난을 받을 각오가 되었으면 따라오라는 것이다. 이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따라갔는지 아니면 포기했는지 나와있지는 않다. 아마도 포기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자신이 쌓은 경계 너머로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고난을 각오하고 따라 나서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의 또 다른 자격조건을 이어서 말씀하고 계신다. 또 다른 조건은 다음에 이어진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오늘날도 역시 자신이 그동안 쌓아 놓은 편안한 경계를 넘어가야 하는 길이다. 사람들에게 박수만 받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비난을 견뎌내야 하는 길이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돌을 맞을지도 모르는 길이다. 우리 역시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6:24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은 그 길이 영원한 영광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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