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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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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요한복음 21:20-23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 맡은 일을 감당하라고 하신 예수님

2024. 8. 23. · 안정섭 목사 · 요한복음 21장 강해 설교

요한복음 21:20-23 베드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 걷다가 자신의 뒤에 따라오는 다른 제자를 보고 경쟁심을 느껴 이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지 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사람 상관하지 말고 네 맡은 길이나 가라고 대답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젊어서는 스스로 옷을 입고 말아올려 묶은 뒤 원하는 일을 했지만 늙어서는 스스로 팔을 벌리고 사람들이 옷을 입히고 말아올려 묶어준 뒤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하셨는데 요한은 이러한 말씀이 베드로의 죽음을 암시하신 것으로 해석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 걷다가 뒤 따라 오는 다른 제자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고 네가 맡은 길이나 성실하게 가라고 하시는 내용이다.

이 말씀의 배경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밤새 피곤하고 지친 제자들에게 사랑의 아침을 먹이신 다음 장면이다. 식사를 마치신 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신 뒤 따라오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장면을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따라오라고 하신 것은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오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또한 실제로 베드로에게 따라오라는 말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함께 디베랴 바닷가를 걸으며 가르침을 주시려는 것이다. 오늘 말씀 20절은 “베드로가 돌아다보니” 라는 말로 시작한다. 19절에서 예수께서 따라오라는 말씀에 따라 베드로는 실제로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베드로는 갑자기 뒤를 돌아다보았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만 따라오라고 한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다보니 또 다른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제자의 이름은 없다. 단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라고만 했다. 이 제자는 요한복음이 기록되던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베드로 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인물이다. 그래서 한마디 설명을 덧붙인다. 그 제자는 마지막 만찬 때 예수의 가슴에 기대었고 또한 “주여 당신을 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던 사람이라 했다. 이 사람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이라고 보는 것이 대부분 보수적인 해석자들의 의견이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라는 호칭 자체가 예수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시던 제자라는 뜻이다. 다른 제자들도 대부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이런 호칭을 쓴 것이다. 식탁에서 예수님의 가슴에 기대어 누웠다는 말은 예수님 다음 상석에 누웠다는 뜻이고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제자였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19:26절에 보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맡기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통해서 볼 때도 예수께서 가장 신뢰하던 제자는 사랑받는 제자였다. 또 요한복음 13:24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사랑받는 제자에게 머리짓으로 배신자가 누구인지 물어 보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통해서 보면 베드로도 사랑받는 제자가 예수님과 가장 가깝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요한복음이 기록되어 전달되던 당시 사랑받는 제자는 베드로 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이 제자가 누구인지 이렇게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만 따라오라고 했는데 사랑받는 제자가 자기 마음대로 따라가고 있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는 두 사람을 따로 불러서 함께 해변을 산책하며 두 사람과 대화를 통해 가르치시려는 것이다. 요한에게는 미리 따라오라고 했을 것이고 베드로에게는 세 번이나 그 사랑을 확인한 후에야 따라오라고 한 것일 것이다. 성경은 모든 것을 다 기록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내용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제자들은 뒤에 남겨 두고 두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당부를 하시려는 것이다.

21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베드로가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사랑받는 제자를 보면서 예수님께 “주여, 그러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평소 베드로는 사랑받는 제자와 늘 경쟁의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20:4절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두 사람이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는 모습도 두 사람이 경쟁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그 때는 베드로가 먼저 집을 나섰지만 요한이 앞서 달렸다.

실제로도 베드로는 사랑받는 제자가 자신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해서 바닥까지 떨어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께서 “내 양을 먹이라” 라고 하시며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겨 주시자 이제 자신이 사랑받는 제자보다 앞서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신 뿐 아니라 사랑받는 제자에게도 따라오라고 하셨다면 사랑받는 제자에게도 자신과 같은 일을 맡기시지 않았겠는가 하는 추측에서 물은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또다시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경쟁심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22절에서 “만약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남아있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고 대답하셨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 제자를 살아있게 두신다는 말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 재림 때까지 살게 둘지라도 라는 말은 실제로 살게 둔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베드로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신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의 주권 즉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너는 나를 따라라” 라고 덧붙이셨다. 특별히 ‘너’ 라는 말을 넣어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쓸데없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네게 주어진 일이나 잘 하라는 뜻이다.

23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로 이어간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살게 하실지라도 라고 말씀하셨으므로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그 제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 형제에게로 들어갔다” 라는 말이다. 새번역의 “믿는 사람들” 이란 형제들이란 뜻이다. 새번역 아래에도 형제들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이는 모든 믿는 자들이 아니라 요한이 사역하던 교회 성도들을 뜻한다.

요한 복음이 기록되어 전해지던 당시에는 베드로는 이미 죽었다는 뜻을 담고 있었고 요한은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도자인 사랑받는 제자는 주님의 재림 때까지 살아있을 것이라고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믿음의 형제들은 요한이 영원히 산다고 믿은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곧 오신다고 기대하며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이어서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만일 내가 올 때까지 남겨두길 원한다고 한들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라고 하셨다고 잘못 전해진 말씀을 바로잡았다.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요한이 예수님의 재림시까지 살아있게 된다는 것에 초점이 있지 않고 베드로 너는 남의 일에 상관 말고 네 길이나 가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AD 64-65년 사이에 순교했을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예수님의 양들의 목자로 임명을 받고 양떼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돌보는 역할을 30년이 넘도록 열심히 사역하다가 순교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요한이 복음을 전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요한 1, 2, 3서를 남겼고 요한계시록도 기록했다. 요한복음이 기록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AD 70-80경에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는 능력있는 말씀을 전해서 많은 양 떼를 먹이고 돌보도록 하셨고 요한에게는 오래 살면서 기록으로 남기게 하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도 서로 다른 일을 맡기셨다. 어떤 이들에게는 빌리 그래함처럼 능력있는 말씀을 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하는 역할을 맡기셨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존 스토트처럼 많은 글을 남겨 믿음의 글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일을 맡기셨다. 우리 주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일을 맡기셨는지 깨닫고 우리는 남의 일에 신경쓰지 말고 우리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열 달란트 맡은 자나 다섯 달란트 맡은 자나 한 달란트 맡은 자나 맡은 일에 충실했다면 받는 보상은 모두 똑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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