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24-25 요한은 요한복음 전체를 증거하고 기록한 제자가 요한 자신이라며 그 증거가 진실되다는 것을 안다며 예수께서 하신 사역을 다 기록한다면 온 세상이라도 다 담아둘 수 없다고 했다.
이전 말씀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 걷다가 자신의 뒤에 따라오는 다른 제자를 보고 경쟁심을 느껴 이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지 물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사람 상관하지 말고 네 맡은 길이나 가라고 대답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요한이 맡은 일은 예수의 증인의 역할이라며 예수께서 하신 일은 다 기록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제 24-25절은 사랑 받던 제자의 길이 나온다. 요한복음은 보통 70-80년 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미 베드로는 죽은 뒤이다. 사랑 받는 제자의 길은 “이 모든 일을 증언하고 또 이 사실을 기록한 사람이 바로 이 제자이다” 라는 말에 담겨있다. 이 제자가 한 일은 먼저 이 모든 일을 증언한 일이다. 증언했다는 말은 원어에서 현재형이다. 복음서가 기록되던 때에도 요한은 계속해서 증언을 했다는 뜻이다. 반면에 기록했다는 말은 부정과거로 되어있기에 이미 한번 끝난 일이라는 뜻이다.
이 제자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내용을 기록하기 전에 먼저 말로 증언했었다. 이 제자는 40-50여년간 말로 증언하다가 자신이 나이가 들자 글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증언하고 또 기록했다고 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은 21-23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문맥에 따르면 요한복음 전체이다. 25절에서 이 세상이라도 다 담아둘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증언했다는 말은 오랫동안 말로 증거되다가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요한복음이 AD 70-80년에 갑자기 기록되었다고 하면 안된다. 이미 수십년간 증언하던 것을 죽기전에 기록으로 남긴 것이 요한복음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을 기억한 것을 말로 증언하고 글로 남기는 일을 맡기신 것이다. 21:7절에 보면 예수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져서 엄청난 양의 고기가 잡혔을 때 주님이시라고 먼저 깨닫고 소리쳤던 사람도 바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요한은 베드로와는 달리 침착하고 통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났던 사람이다. 그래서 요한에게는 예수님의 가르치신 것과 행하신 것을 기억하고 증언하며 기록에 남기는 일은 맡기신 것이다.
반면에 베드로에게는 여러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고 양 떼들을 돌보는 일은 열정적인 베드로에게 맡기신 것이다. 하지만 요한도 분명히 충실한 목자였다. 그러나 요한은 베드로와는 달리 일정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자신이 맡은 형제 자매들에게 가르치고 돌보며 요한복음의 내용들을 증언하다가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기록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부분이 요한의 제자들에 의해 추가된 후기일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들을 보면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되다는 것을 안다는 말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철저히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란 예수님의 사역을 목격하고 증언한 모든 제자들이다. 만약 후대에 추가한 것이라면 사본들에 이 부분이 없는 것이 나타나야 하는데 전혀 없다. 따라서 후대에 추가했다는 주장은 사본학적으로 근거가 없다. 또 다른 증거는 증언하고 있다는 말을 현재형으로 기록했고 기록했다는 말은 과거형으로 기록한 것이다.
만약 후대의 제자들이 이 부분을 기록했다면 둘 다 과거형으로 기록해야 맞다. 증언이란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목격한 사람들 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증언한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기록한 사본도 전혀 없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후대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증언한다는 말 때문에 그 중에 예수의 사역을 목격한 자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이다. 게다가 요한복음이 기록된 것은 AD 70-80년으로 본다면 요한의 제자들 중에 예수님의 사역을 직접 목격한 자가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직접 예수님을 증거하고 다녔지 요한의 제자가 되어 그 말씀을 배울 리가 없다.
이 부분은 21절에서 베드로가 질문한 것에 대한 대답이기에 요한 자신이 직접 기록한 것이 맞다. 신약성경에서 썼다는 말은 직접 글씨를 썼다는 경우에도 쓰이지만 주로 저자가 불러주고 다른 사람들이 받아쓴 경우에 쓰인다며 요한복음의 끝부분도 분명히 요한이 쓰게 한 말이라고 말일 수도 있다. 24절은 분명히 21-23절과 연결되는 것이기에 이 부분은 분명히 요한이 쓴 것이다.
25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나 다 기록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어서 그것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들을 다 담아 두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덧붙였다. 낱낱이 기록한다는 말은 그 일들을 하나 하나 다 기록한다면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행하신 일들과 가르치신 말씀들을 다 기록한다면 그 책을 온 세상에 보관한다 해도 보관할 장소가 모자랄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진술도 예수님의 사역을 처음부터 목격한 증인이 아니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후대의 제자들이 요한의 증언을 제한적으로 들은 제자들이 이런 말을 기록할 수 없다.
이를 두고 흔히들 과장법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를 과장법으로만 해석하면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중요한 초점 하나를 놓치게 된다. 요한은 요한복음 1:1-2절에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 곧 하나님이신데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천지 만물을 다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요한이 요한복음 1장부터 21장까지 계속 강조하며 증거하고 있는 것도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21장 마지막을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도 역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점이다.
요한은 단순히 3년여 동안의 지상 사역만 말하고 있지 않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신 예수께서 요한 당시까지 하신 사역을 다 기록하여 책으로 만든다면 정말로 지구에 가득 쌓아도 모자랄 것이라는 뜻이다. 요한은 그 점을 마지막으로 강조하며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온 세상에 가득 쌓아도 모자랄 그분의 사역을 증거하고 기록한 것이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의 사역을 가장 중요한 핵심만 증거하고 기록하여 전달하는 사역을 맡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