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18-19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젊어서는 스스로 옷을 입고 말아올려 묶은 뒤 원하는 일을 했지만 늙어서는 스스로 팔을 벌리고 사람들이 옷을 입히고 말아올려 묶어준 뒤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하셨는데 요한은 이러한 말씀이 베드로의 죽음을 암시하신 것으로 해석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아침식사를 마친 뒤 모든 제자들을 대표하던 베드로에게 세번이나 다른 어떤 것들보다 예수님 자신을 더 사랑하는지 물으신 뒤에 예수님의 양 떼를 먹이라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젊어서는 스스로 원하는 일을 했지만 늙어서는 죽기까지 충성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릴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시고 세 번이나 양 떼를 먹이라고 하셨다. 이제 예수님은 이제 18절에서 베드로의 앞날에 대해 예언적인 말씀을 하신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는 말은 예수께서 변함없는 분명한 진리임을 강조하시며 가르치실 때 쓰시던 말이다. 분명하고 확실하니 절대로 잊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반복되는 말은 “띠를 띠고” 라는 말인데 새번역은 뒷부분에 나오는 말을 “너를 묶어서” 라고 의미를 살려 번역했다. 개역처럼 둘 다 똑같이 “띠 띠우고” 라고 번역해야 옳다. 띠를 띄우는 것은 일을 하거나 전쟁을 시작할 때 활동하기 편하도록 옷자락을 말아올려 생식기가 있는 부분을 감싸서 묶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면 마치 오늘날 짧은 바지를 입은 것처럼 되는 것이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다녔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젊어서는 혼자서 옷을 입고 혼자서 옷단을 말아올려 묶어 반바지를 입은 것처럼 만든 뒤 베드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러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대조되는 내용은 네가 늙어서는 네가 팔을 벌리면 다른 사람이 옷을 입혀주고 옷단도 말아 올려 생식기있는 부분을 감싸준 뒤 부축해서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간다는 것이다.
본래 여기서 대조되는 것은 젊은이는 스스로 옷을 입고 옷을 말아올려 활동하기 편하도록 스스로 묶지만 나이들면 스스로 팔을 벌리면 다른 사람이 옷을 입혀주고 옷을 말아올려 묶어주는 장면이다. 또 대조되는 것은 젊어서는 스스로 원하는 곳으로 갔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사람들이 부축해서 본인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간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되는 것을 속담처럼 하던 말이다. 이 말의 본래 의미는 죄수를 묶어 끌고 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새번역은 “남들이 네 팔을 벌리고” 라고 했지만 원어는 베드로 스스로 자발적으로 팔을 벌리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라면 스스로 팔을 벌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팔을 벌린다고 해야 맞기에 그렇게 바꾸어 번역한 것이다. 십자가에 달 때에는 팔을 벌린다는 말이 맨 뒤에 나와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옷을 먼저 벗기고 천으로 생식기만 감싸준 뒤 마지막으로 팔을 벌리게 해서 십자가에 묶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기억하고 전달한 요한은 19절에서 분명히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를 암시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이는 분명히 십자가의 죽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전에 주께서 잡혀 십자가에 죽으실 때는 두려워서 세 번이나 부인하며 도망을 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베드로 스스로 팔을 벌리고 주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란 뜻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스스로 원해서 잡혀 팔을 벌리고 십자가에 달릴 것이다.
젊어서는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하려고 옷자락을 묶었지만 늙어서는 남들이 베드로의 옷자락을 묶어 베드로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십자가에서 처형시키려고 끌고 가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수님을 잡아 죽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수를 잡아 죽였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팔을 벌리고 자발적으로 잡히신 것도 몰랐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베드로를 잡아 죽일 사람들도 자신들이 베드로를 잡아 죽인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도 예수님처럼 스스로 팔을 벌리고 잡혀 준 것이다. 베드로는 스스로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갈 것이라는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맡기신 양들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양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세번이나 말하자 베드로가 앞으로 죽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15:12-13절에서 예수님은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로만 세 번이 아니라 백번을 말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께서 맡기신 양들을 죽기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19절은 요한복음의 기록자가 18절의 뜻을 설명해 준 것이다. 19절은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 라고 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맡기신 양들을 죽기까지 사랑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세번이나 대답한 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그 사랑을 이렇게 확인시켜 주신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세번이나 말로 사랑한다고 했다면 이제 행동으로 예수님을 따를 차례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양 떼를 먹이는 일에 죽기까지 충성하라는 뜻이다. 앞으로 베드로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예언하신 것이라고 요한은 증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