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26-27 우리가 소망 중에 신음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탄식으로 대신 간구해 주시면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마음의 생각을 다 아신다.
이전 말씀에서 성령의 첫 열매로 구원 받은 우리는 우리 몸의 완전한 구원을 소망하며 참음으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 때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며 우리 대신 간구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생각을 아신다는 내용이다.
26절은 이와 같이 라는 말로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8:16절에 나온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한 것과 같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8:16절과 연결하여 이와 같이 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어떤 이는 참으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해석과 소망이 우리를 견디도록 해준다는 해석과 22-23절의 피조물들과 우리의 신음을 비교한다는 해석을 제시하며 바울은 단지 이와 같이 라는 말을 사용하여 성령 안에서의 삶이 갖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말하고자 하여 사용한 것일 뿐이고 앞의 구절들과 평행을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라는 말은 대부분 앞에서 말한 것과 비교하는 경우에 쓰인다. 그렇기에 다수는 이와 같이 라는 말이 22-23절의 피조물들과 우리의 신음과 비교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와 함께 신음하시는 성령님이 우리의 약함을 도우신다고 했다. 도우신다는 말은 원어에서 함께 마주 잡는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출애굽기 18:21-22절에서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그들이 재판하도록 하여 모세와 함께 담당하면 쉬울 것이라고 한 것에서도 나온다. 모세가 쓰러지려 할 때 함께 일을 담당하여 함께 잡아주는 장면을 나타낸 말이다. 누가복음 10:40절에서는 혼자 음식을 준비하던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자신을 도와주라고 명하라고 예수님께 불평할 때도 나온다. 따라서 이는 우리가 연약하여 감당할 수 없을 때 성령께서 함께 잡아주신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약함이란 바로 이어서 나오는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개역이나 ESV, NIV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고 번역했지만 새번역이나 NASB나 RSV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고 번역했다. 어떤 이들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는 무엇이 최선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모른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우리의 연약함이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는 뜻이다. 우리는 연약하기에 단지 우리의 탐욕만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을 하나님께 간구해주신다는 것이다.
기도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체험하는 훈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도는 아들을 통하셔 성령님에 의해서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다. 26절 끝부분에 나와있는 간구한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위로 다가간다 또는 위에 호소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위 즉 하나님께 호소한다는 말이다. 탄식이란 신음소리를 말한다. 언제 말도 못하고 신음소리만 내는가? 극단적인 고통이 올 때는 말도 못하고 신음소리만 내는 것이다. 누구나 갑자기 극심한 고통이 찾아오면 윽 소리만 내고 아무 말도 못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울이 22절에서 비유로 사용한 출산의 고통이다. 산모가 아파 죽겠다고 계속 종알종알 떠들어댄다면 아직 덜 아픈 것이다. 정말 큰 고통이 오면 말도 못하고 숨도 못쉬게 아파 신음소리만 내게 된다.
실제 말도 못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아픈 것은 우리가 사는 무대인 자연환경과 주인공인 믿는 자들이다. 성령님은 실제 아픈 주인공이 아니다. 그런데도 성령께서는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 숨막히는 고통을 느끼시며 신음소리만 내신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출산의 고통으로 숨도 제대로 못쉬며 신음하는 딸의 손을 잡고 함께 신음하는 친정 어머니와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성령께서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가 신음할 때 우리와 함께 신음소리로 하나님께 간구하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법정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변호하시는 분 이라면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의 무대에서 변호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27절에 나온다. 아무 말도 못하고 우릴 위해 신음소리만 내시는 성령님의 생각을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성령님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 꿰뚫어보고 아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마음도 성령님의 신음소리만 듣고도 다 아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