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23-25 성령의 첫 열매로 구원 받은 우리는 우리 몸의 완전한 구원을 소망하며 참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이전 말씀에서 피조물들이 허무에 굴복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곧 피조물들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을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피조물과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상식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첫 열매로 성령 받은 우리도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고 있다는 내용이다.
23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이 뿐만 아니라 ……까지도 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며 기다리는 것은 22절에서 말한 우리들의 무대인 자연환경 뿐만이 아니라 첫 열매로 성령 받은 우리도 양자삼아 주실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첫 열매란 보통 구약에서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성령의 첫 열매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것이다. 여기서 첫 열매라는 말이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것이고 아직 완전히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담보물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장차 올 것을 확증해주는 보증금(deposit)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다른 바울서신들에서는 확증하시는 의미로 도장을 찍어주시는 것으로 설명한 것과도 같다(고후 1:22; 엡 1:13; 4:30).
여기서 성령의 첫 열매란 성령 받고 이미 구원받은 믿는 자들이다. 하지만 완전한 구원 즉 몸의 구원은 앞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이다. 성령은 이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시켜주고 있지만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아들의 형상을 입음으로 확정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영생을 소유하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소유한 것은 아니기에 성령의 첫 열매라고 한 것이다. 아직 몸의 구속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우리도 역시 해산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것이다.
24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왜 우리가 성령의 첫 열매로 보증을 받은 것인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소망 안에서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소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망이라는 말의 의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완전한 구원이다. 이미 보이는 것은 소망이 아니다. 왜냐하면 소망이란 뜻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발뒤꿈치 쳐들고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소망하겠느냐고 말한다.
이를 집을 살 때 미리 지불하는 돈(down payment)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집을 살 때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산다. 이미 값을 지불하고 산 자신의 소유이지만 그 대출금을 다 갚기 전에는 완전한 소유가 아닌 것이다. 현재의 고난은 마치 주택자금 융자 받아 산 집의 집값을 갚아 나가는 것과 같이 완전한 몸의 구원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구원은 행위가 따르지 않으면 빼앗기는 것은 아니기에 완전히 딱 맞는 비유라고 할 수는 없다.
본인은 이를 Ph.D candidate에 비유하고 싶다. New Orleans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는 코스를 다 마치고 구두 자격시험을 마치고 논문 계획서가 통과되면 그 때부터 PhD candidate이라고 부른다. 그 때부터는 교수가 되어 강의를 할 수도 있고 학교에서 필요하다면 정식 교수로도 임용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다. 완전한 PhD학위는 논문을 완성해서 제출하고 교수님들의 최종 심사를 통과했을 때 확정되는 것이다. 그 때까지 학생은 계속해서 논문을 쓰고 고쳐가며 고난 중에 견디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약속된 몸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25절은 그러나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란다면 우리는 참으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몸의 구원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고난을 견디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몸을 입기를 열망하는 마음이 없이 인내만 한다면 무기력에 빠지거나 무관심이나 비관주의에 빠지고 자포자기 하기 쉽다. 반대로 열망은 있는데 인내가 없으면 당장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께 반역하기 쉽다. 따라서 인내와 열망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아직 볼 수 없는 우리 몸의 구속을 간절히 바라면서 참으며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