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20-22 피조물들이 허무에 굴복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곧 피조물들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을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피조물과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상식이다.
이전 말씀에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고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제 피조물들과 함께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누릴 것을 기대하며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다.
20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19절과 연결이 된다. 왜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모든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피조물 자신의 뜻이 아닌 굴복하게 하신 분 즉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말이다. 허무란 전도서 기록자가 1:2절에서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는 마치 엄청난 돈을 들여 발사한 인공위성이 고장난 채 쓸데없이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것과도 같다. 인간들이 사는 무대인 온 세상이 제기능을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소망이 있다. 헛되게 만드신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1절은 20절 끝에서 소망이 있다고 한 말을 설명한 것이다. 개역은 원어에서 20절 끝에 있는 소망 안에서 라는 말을 21절에 붙여서 “그 바라는 것은” 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제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자유를 누린다고 했다. 썩어짐의 종살이란 영광의 자유 란 말의 반대말이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엔 썩어지고 멸망해가던 자연환경도 변화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영광은 이사야 65:17에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것인데 이전 것은 기억되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사야는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막이 옥토가 되어 꽃이 필 것이라고 32:15과 35:1에서 말하고 있다.
22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우리는 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환경인 모든 자연환경도 이처럼 새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될 것을 소망하면서 기다림 가운데 현재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은 우리는 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을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비유했다. 유대교 묵시문학에서도 현재 이스라엘의 고통을 메시야의 저주나 메시야 시대의 출산의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바울은 자신과 로마서에서 논쟁의 대상인 유대인 기독교인들 모두가 함께 알고 있는 상식이기에 우리는 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출산의 고통 뒤에는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 기쁨이 있듯 피조물이 고통가운데 기다린다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