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18-19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고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이전 말씀에서는 성령께서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해 주시는 것이며 자녀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뿐 아니라 고난도 받아야 하는 상속자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며 산통을 겪는 산모처럼 신음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18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17절에서 말한 함께 영광을 받는 것과 함께 고난을 받는다는 말과 연결이 된다. 함께 영광을 받을 것을 생각하며 함께 고난을 견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원어에서는 이어서 “나는 생각한다” 라는 말로 이어간다. 생각한다는 말이 복음의 기초에 대한 합리적인 생각을 근거로 분명한 확신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증거들을 확인해보고 계산한 결과로 분명히 확신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그의 청중과 독자들이 깨달음 안에 항상 머물러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바울이 그렇게 확신하며 로마서의 수신자들도 자신과 같은 깨달음 안에 머물러 살기를 바라는 내용은 현재의 고난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나타날 장차의 영광과 비교하면 현재의 고난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나타난다는 것은 감추어졌던 것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우리가 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고난과 함께 장차 드러날 영광이 현재는 감추어진 채로 주어진 것이다. 때가 되면 그 감추어진 영광은 선물 보따리를 풀 듯 그 내용이 드러날 것이다.
19절도 역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18절에서 말한 현재의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닌 이유를 설명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18-30절에서 계속 설명된다. 이 부분에서 계속 반복되는 단어들은 기다린다와 소망과 영광과 신음한다는 이 네 단어들이다. 장차 드러날 영광을 소망하며 현재의 고난을 참고 기다린다는 뜻이다. 우리가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올 영광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부모의 대기업의 상속자가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이름도 없는 회사의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서 고생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엄청난 규모의 유산을 상속받고 아버지의 회사의 최고 경영자가 되기 위한 수업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첫번째로 설명하는 것이 인간들 뿐 아니라 피조물들도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이다. 원어를 직역하면 피조물들의 걱정스러운 바람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간절히 기다린다는 뜻이다. 걱정스러운 바람이라고 필자가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 멀리 라는 말과 목을 빼고 자세히 바라본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발꿈치를 들고 목을 길게 빼고 멀리 바라보며 기다리는 모습을 그림처럼 그린 말이다. 피조물들이 그렇게 간절히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다. 개역이나 새번역 모두 목을 빼고 멀리 바라본다는 말과 간절히 기다린다는 말을 합쳐 놓았지만 원어에서는 분명히 목을 빼고 멀리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뜻이다. 간절히 기다린다는 말은 멀리와 밖에서 라는 말이 받는다는 말이 합쳐진 말이다. 멀리 밖에서 기다리며 하나님의 아들들을 받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피조물이란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이 된다. 불신자들이나 천사들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피조물이란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와 자연환경을 의인화한 것으로 해석한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그들이 살던 모든 땅이 저주를 받았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피조물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저주받은 환경을 사람으로 비유해서 기다린다고 표현한 것이다. 연극으로 비유하면 피조물은 무대이다.
이 피조물이 기다리는 것은 주연배우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물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으면 이미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하지만 완전한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진다. 피조물은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완전히 변화되어 거룩한 모습으로 등장할 성도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에 피조물들도 변해서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