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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43:22-28

Dawn Word

이사야 43:22-28

용서하시는 하나님

그루터기에서 돋는 새싹과 떠오르는 빛 · 이사야 11장 · 60장

2018. 11. 10.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43장 강해 설교

이사야 43:22-28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짐을 얹어 주시고 싫증난다고 물리치신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이 하나님께 짐을 얹어 주고 하나님이 싫증난다고 물리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죄를 씻어 주시고 기억조차도 하지 않으신다.

하: 용서하시는 하나님

나: 내가 용서 받았다면 나를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이 내게 지은 모든 까지도 용서하고 기억조차도 하지 말자.

이전 말씀에서는 우리를 지으시고 불러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시는 새일을 행하신다고 했다. 오늘 말씀은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용서하신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22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하는 태도를 말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부르지도 않고 하나님에 대해 싫증을 느꼈다는 것이다. 전혀 예배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고 있음을 책망하신 것이다.

23-24절은 예배하는 태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양의 번제물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않았고 제물을 바쳐서 하나님을 높이지도 않았다고 한다. 번제물이란 제물을 통째통 불살라 드리는 제사이고 제물이란 제사를 드린 뒤에 예배자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다. 번제물과 제물은 모든 종류의 제사들을 다 포함하는 말이다. 핵심은 하나님을 높이지 않았다는데 초점이 있다.

또 이어서 예물 때문에 너를 수고롭게 하지도 않았고 유향 때문에 너를 괴롭게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예물이란 주로 곡식을 태워서 드리는 것을 말한다. 유향은 그러한 곡식을 태워 드릴 때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수고롭게 한다는 말은 짐을 얹어 준다는 말인데 노예로 부린다는 뜻이다. 곡식을 드리는 것은 가장 부담이 적은 제물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부담이 적은 제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얹어 주어 노예 삼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 유향을 태워서 드리는 제사는 괴롭게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싫다고 싫증내지도 않으셨다는 것이다.

또 24절은 향과 기름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한다. 향이란 NIV에 보면 fragant calamus 라고 되어 있다. 출애굽기 30:23절 끝부분에 있는 "창포 이백오십 세겔" 이란 말에서 창포와 같은 말이다. 왕이나 제사장들을 안수할 때 뿌리는 향기로운 기름이 이것에서 나온다. 기름이란 제물의 기름덩어리를 말한다. 따라서 식물성 기름을 사오거나 동물성 기름을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짐을 얹어 노예로 부린 적도 없고 싫증난다고 저리 가라고 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 하나님을 수고롭게 했다고 했다. 하나님께 죄의 짐을 얹어 주고 노예로 부렸다는 뜻이다. 또 너의 악함으로 나를 괴롭혔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악함으로 하나님을 싫증나게 했다는 것이다.

25절은 "그러나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든 죄들을 용서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용서한다는 말은 죄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씻어 버린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다

지워버리시고는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신다는 것이다.

앞에 나온 용서하시는 죄는 길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이다. 22-24절에서 나열한 모든 죄들이 바로 길에서 벗어난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그런 죄들의 기록을 싹 다

지워버리신다는 것이다. 뒤에 나온 기억하지 않는 죄란 말에서 죄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모든 죄들을 포괄하는 말이다. 어떠한 죄도 기억하지도 않으신다는 것이다. 죄를 적어놓은 문서의 모든 죄들을 다 지워버리시고 또 기억조차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26절은 "나에게 상기시키고 싶은 일이 있느냐?" 라는 말로 시작한다. 지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신 모든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자는 것이다. 한번 하나님과 논쟁한번 해 보자는 것이다. 하나님이 잘못했고 이스라엘이 옳다는 것을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며 증명을 해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번도 잘못한 적이 없고 언제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너희는 입이 백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지난 일들을 다 들추어가며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는 뜻이다. 인간 부모와 자녀가 논쟁을 하면 항상 아이들은 이것도 서운했고 저것도 서운했고 늘어놓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잘했고 하나님께서 잘못했다고 할 것이 단 한 개도 없다.

27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답이 없자 하나님 편에서 예를 들어 말씀하시는 것이다. 첫 조상이란 아담을 말할 수도 있지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뜻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아버지는 야곱이지만 항상 첫번째 아버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함께 묶어서 말한다. 이스라엘의 맨 처음 조상들 때부터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이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하던 모세나 여호수아와 모든 사사들을 말한다. 첫 조상 야곱과 그 다음 지도자들인 모세와 여호수아를 연대 순서로 연결해서 말한 것이다.

28절은 그래서 하나님은 성소의 지도자들을 속되게 했다고 한다. 성소의 지도자들은 모세와 여호수아 다음의 제사장들을 말하는 것이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지도자들은 속되게 만들었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존재들이 된 것이다. 그 백성들은 진멸당하게 내버려 두고 비방거리가 되도록 버려 두셨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형식적인 예배만 드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이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 태도를 책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짐을 얹어주고 꼴도 보기 싫다고 싫증을 낸 것이 아니다. 도리어 믿는 자들이 말로만 믿는다

하면서 죄를 밥먹듯 지어 하나님께 짐을 얹어 준 것이다. 그러면서 마치 바람 난 남자나 여자가 자기 배우자를 보기 싫다고 싫증을 내는 것처럼 하나님에게 싫증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완전히 지워 주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우리가 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된 이름을 위해 한결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자녀 삼아 주신 것이다. 십일조와 모든 헌금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담을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교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모든 헌금이나 예배는 부담을 느끼며 억지로 참여해서는 안된다. 기쁨과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죄를 모두 씻어 주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죄를 용서 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과거의 잘못을 들추고 비방거리로 삼는가? 용서받은 우리도 역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기억조차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의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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