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3:14-21 우리를 지으시고 불러주신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셔서 목마른 우리를 마시게 하신다.
하: 새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나: 과거에 경험한 은혜만 계속 우려먹지 말고 현재 나와 함께 하시며 공급하시는 생수의 강을 경험하고 그 은혜를 나누자.
이전 말씀은 하나님만이 우리가 어디로 가야 구원을 받을지 미리 알려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분별하게 하실 수 있는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시라고 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만이 이러한 구원자시라는 것을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두고 말한다.
14절은 "너희들의 속량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이라고 한다. 속량자란 룻기에 여러 번 나오는 "기업 무를 자"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자식도 없이 과부가 된 여인을 취해서 자식을 낳게 하고 값을 지불하여 그 조상의 땅을 회복시켜 준 보아스가 바로 속량자이다.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을 위해 값을 지불하고 석방시켜 그 땅을 회복시켜 주시는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속량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완전하게 성취된다. 어떻게 속량하시는가? 하나님께서 바빌론에 군대를 보내어 다
부수어 버리고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페르샤의 고레스를 통해 성취되었다. 하지만 고레스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15절은 다시 하나님 자신을 소개한다. 하나님은 여호와이시고 너희의 거룩한 분이시며 이스라엘의 창조자 너의 왕이라고 하신다. 여호와라고 소개한 것은 애굽에서 건져 내셔서 광야 길을 통해 인도하신 여호와라는 것이다. 거룩한 분이라는 말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신 후 예루살렘의 성전에 거하시던 분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창조자 라는 말은 이스라엘을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바로 너희의 왕이시라는 것이다.
16-17절은 출애굽 때의 일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어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묘사하고 있다. 과거에 구원하신 그 일이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등잔 심지처럼 꺼버렸다는 말은 완전히 꺼 버렸다는 뜻으로 다시는 빛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과거 출애굽 때처럼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잡고 있는 바벨론을 완전히 멸하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구원의 역사를 현재 진행하고 계신 것이다.
18절은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옛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과거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일을 기억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현재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때가 좋았다고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19절에 나온다.
19절은 원어에서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하나님께서 새 일을 시작하신다는 것이다. 새 일이란 새로운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옛일만 추억하며 슬퍼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새일이 이미 드러났는데 너희는 아직도 알지 못하느냐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 때도 영적인 눈이 어두우면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겠다는 것이다. 광야라는 말은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다. 그곳에 길을 내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들짐승들만 사는 광야에 길을 낸다는 말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게 되는 것이다. 사막이란 물이 없어 쓸모없는 땅이다. 그곳에 강이 흐르게 하신다는 것이다. 물 한방울도 없는 쓸모없는 땅에 강물이 흐르면 그 땅은 옥토가 되는 것이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20절은 들짐승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리와 타조도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다. 이는 들짐승들이 실제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목마른 들짐승들도 물을 실컷 마시고 기뻐하는 모습을 그림처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사막을 방황하며 목이 말라 죽어가는 것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증을 풀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내가 택한 내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었기 때문이다" 라고 한 것이다.
21절은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라고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 지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광야에 물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낸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7:37절에서 자신이 바로 그 물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요한은 그 물이 믿는 자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킨다고 설명해 놓았다.
오늘날 우리의 구원의 역사도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과거에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잊으라는 뜻이 아니다. 감사하며 찬양해야 하지만 그 일은 현재에도 계속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흘러 넘치는 생수를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흘려 보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