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27-29 예수께서 소유하고 계셨던 평화를 제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신다고 하시며 근심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하셨다. 다시 오시겠다는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완전히 다 말씀하신 것은 그 일이 이루어질 때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제자들과 함께 살면서 가르쳐 주신 모든 말씀을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세상과 다른 평화를 주시니 두려워하지 말라며 아버지께 갔다가 다시 온다는 것을 미리 말하여 믿게 하려고 한다 하시는 내용이다.
이렇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셔서 예수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고 말씀하신 다음에 27절에서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준다고 하셨다. 그 평화는 예수님 자신이 갖고 계시던 평화인데 이제 제자들에게 준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갖고 계신 평화를 제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신다는 뜻이다. 그 유산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을 성령님께서 해석해 주셔서 깨닫게 하시고 또 생각나게도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씀이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고 믿음의 공동체의 사람들과도 평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화를 유산으로 남긴다 하신 것이다.
이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거짓 선지자들과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려는 제사장들이 외치는 평화이다. 하지만 이들의 평화는 가짜이다.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게 하지도 않고 신앙 공동체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게 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들이 명예와 권력과 재물을 더 많이 갖기 위해 외치는 거짓 평화일 뿐이다.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려는 거짓 평화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남기신 말씀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진정한 평화를 주는 것이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한 것이다.
28절은 제자들이 근심하는 이유를 말씀하시며 근심대신 기뻐하라는 것이다. 근심한다는 말은 5:7절에서는 “물이 움직일 때” 라는 말에서 움직인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잔잔한 연못의 물이 갑자기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12:27절과 13:21절에서는 예수님의 마음이 소용돌이 치는 것을 나타낼 때 썼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배반할 유다를 생각하면서 그 마음에 소용돌이가 쳤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은 예수께서 떠나신다고 하신 것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에 소용돌이가 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의 마음에 소용돌이가 치는 이유는 “너희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온다고 한 내 말을 들었다” 라고 한 말에 담겨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셨다가 다시 오신다 하셨지만 제자들은 떠나신다는 말만 생각하며 근심하고 있던 것이다.
예수께서 놀라운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때 제자들은 흥분하며 따라다녔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메시야가 오셨다며 호산나를 외칠 때도 흥분하며 자신들은 이제 예수님과 함께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떠났다가 다시 온다고 하셨는데도 제자들은 떠난다는 말씀에 낙심한 것이다. 자신들의 계획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자들이 근심하는 이유를 밝히신 뒤 예수님은 만약 너희가 나를 사랑했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이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에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그 마음에 소용돌이가 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을 보내셔서 늘 함께 계시게 하신다고 하셨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생각나도록 도우실 것이라 하셨다. 그러니 예수님을 사랑해서 그 말씀을 간직하고 늘 지키는 사람들이라면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시며 영원히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이어서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셨다. 그것은 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신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해석하는데 있어 많은 논란들이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보다 더 크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떤 이단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예수님은 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답은 빌립보서 2:5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어서 2:6-7절에서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이심이라” 라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종의 형체를 가지고 죽기까지 하나님 뜻에 복종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종이 되셔서 섬기고 사랑하시면서 제자들도 역시 예수님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과 연결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 자신보다 크다고 하신 것은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신 겸손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자신보다 크다는 말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뿐이라는 뜻을 전하고 계신 것이다. 보낸 자가 보냄을 받은 자보다 큰 법이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높이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크신 분이라는 것을 제자들도 안다면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하나님께로 가신다는 것을 기뻐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29절에서 예수님은 지금 나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완전히 말했다고 하셨다. 그 목적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셨다가 다시 오신다고 예언적인 말씀을 하신 목적은 나중에 실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제자들이 깨닫고 믿게 하려는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말씀을 듣고 제자들의 마음에서 소용돌이가 친 것은 자신들의 욕심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 보다는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 했는데 그 욕심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도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우리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 감사하고 기뻐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