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18-19 아브라함은 희망이 사라진 뒤에도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 말씀을 믿었고 자신과 사라의 몸이 이미 죽은 것 같은 때에도 그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이전 말씀에서는 아브라함과 그 씨에게 온 세상을 상속재산으로 주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으로 된 것이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약속을 확정해 주시는 것이라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얼마나 진실되게 믿었는지를 말해주는 내용이다.
18절은 16절 중간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말에서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을 가진 사람인지 설명하는 관계대명사절이다. 그는 희망이 없을 때 희망 위에서 믿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희망이 없을 때 라는 말은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희망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다수의 주석가들은 이러한 해석을 따른다. 대부분 영어 번역들은 against hope로 번역해서 불가능한 희망이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또 이 말은 희망하고 있었는데 그 희망이 이제 저 너머로 사라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희망이 저 너머로 사라졌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라는 의미일 수 있다. 어떤 이는 인간적인 희망이 탈진했을 때 하나님께서 희망을 주셨다고 해석한다. 새번역도 이러한 해석을 따라 희망이 사라졌다고 번역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무엇에 근거해서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는가? 18절 끝부분에 “하신 말씀대로”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이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이다. 이처럼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한 말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도 역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너의 씨가 이처럼 많아질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은 창세기 15:5절에서 온 것이다.
왜 희망이 사라졌을 때라고 했는가 하면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가 이미 75세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만큼 많은 자손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을 때는 이미 80이 훨씬 넘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래서 희망이 없을 때라고 한 것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희망이 저 너머로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에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는 것이다. 세상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만큼 믿을만한 존재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은 약해지지 않았다고 19절에서 말하고 있다. 19절은 믿음이 약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자신의 육체가 이미 죽은 것을 바라보았다고 되어 있다. 필자가 바라보았다고 번역한 말은 원어에서 자기 몸을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관찰한다는 뜻이다. 나이가 백세가 되어서 자기 육체를 자세해 생각해보니 이미 죽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또한 사라의 태도 이미 죽은 것도 알았다. 이는 마치 90이 넘은 우리 교회 남자 성도님이나 85세가 넘은 여자 성도님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과도 같은 것인데도 아브라함은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물론 그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했기에 갈대아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왔고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왔을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12:2 에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의 믿음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했다. 창15:3에 보면 자식이 없으니 엘리에셀이 상속자가 될것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네 자손을 별처럼 많게 할 것이라고 약속을 확인하시자 의심치 않고 믿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도 아브라함은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지 않았다. 창 16:2에서 그 아내 사라가 여종과 동침하려 아이를 낳으라고 했을 때도 사라의 말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도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네 씨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말씀은 분명히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가 아닌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인간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 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다.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란 뜻이지만 아브라함은 많은 사람의 아버지란 뜻이다. 아브라함은 큰 부자였고 대상들이 지나가는 중요한 길목에서 살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머물다 갔을 것이다. 낙타에게 물을 먹이고 음식이나 양식을 샀을 것이다. 그리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갔을것이다.
한번 상상해보자. 하루저녁은 아브라함의 집에 머물던 상인이 아브라함과 함께 모닥불 가에 앉아 아브라함에게 이름을 물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처음엔 아브람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존귀한 아버지란 뜻이니 수많은 자손들을 거느린 족장이란 뜻이다. 당연히 자녀가 몇명이냐고 물었을 것이다. 한 명도 없다고 했을 때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꾼 뒤에도 손님들은 아브라함에게 이름을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은 더 우습게 들렸을 것이다. 많은 사람의 아버지란 뜻인데 자녀가 한 명도 없다니 말이 안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누구나 실망하고 믿음이 약해질 수 있다.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17:17절에 보면 땅에 업드려 웃었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자 그대로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모두가 할례를 받게 했다. 자신과 아내의 생식능력이 완전히 죽었음을 알고도 하나님의 말씀이 옳고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또 100세에 얻은 아들을 바치라고 명하셨을 때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며 믿고 행동에 옮겼다.
아브라함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의심하기도 했고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랐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셨고 그 때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은 것이다. 말씀을 통해 약속이 점점 구체화되어 갈때 아브라함의 믿음도 점점 강해진 것이다. 믿음이란 자기 생각이 없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다를 때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