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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마태복음 › 14:22-33

Dawn Word

마태복음 14:22-33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2021. 11. 9.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14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14:22-33 예수께서는 환호하는 무리들을 해산시키시며 제자들을 떠나 보내시고 홀로 기도하셨다. 제자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에 헤롯의 귀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한적한 광야로 피하셨지만 몰려든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치료해 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먹여 주셔서 종말론적 잔치의 모형을 경험하게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무리들과 제자들을 모두 보내시고 홀로 남아 기도하시다가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시는 장면이 이어진다.

22절은 원문에서 "즉시"라는 말로 앞부분과 이어간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었을 때 제자들은 모두가 흥분을 했을 것이고 무리들은 환호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외딴 광야로 오신 목적은 기도하시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목적을 따라 예수께서 무리들을 해산시키는 동안에 제자들은 먼저 배를 타고 건너가도록 재촉하신 것이다.

재촉했다는 말은 본래 강제로 시켰다는 아주 강한 뜻을 품고 있는 단어이다. 제자들은 그곳에서 하늘 나라의 잔치를 경험했기에 그곳에 계속 머물며 무리들의 환호를 받고 싶었을 것이다. 무리들은 예수가 메시야라며 왕으로 세우려는 분위기로 모두가 들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고조된 분위기가 예수님의 사역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아셨다. 미처 제자들을 제대로 훈련시키지도 못하고 죽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강제로 배에 태워 건너가게 하신 것이다.

23절은 그렇게 무리를 해산시키신 후에 기도하시기 위해 따로 산에 올라가셨다. "따로"라는 말은 13절에도 나온다. 사람들을 떠나 따로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시기 위해 건너오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으시고 배를 타고 건너오신 목적을 놓치지 않고 제자들을 다 보내시고 따로 산에 오르신 것이다. 날이 저물었고 거기서 혼자 계셨다. 혼자 계시며 아버지께 한동안 기도하셨을 것이다.

예수께서 오르신 산은 갈릴리 바다 서쪽의 산들 중 한 봉우리일 것이다. 그 산 봉우리들은 대략 갈릴리 수면에서 1200 피트(366m)정도가 된다(Mounce, 144). 예수께서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자들이 탄 배를 보실 수 있었을 것이다. 24절은 제자들이 탄 배가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개역에서 "수리"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많은 스타디우스"이라는 뜻이다. "스타디우스"라는 말에서 운동장을 뜻하는 영어의 Stadium이라는 단어가 온 것이다. 이는 약 600 피트(185 m)정도 되는 거리이다(Louw-Nida Lexicon 8127). Hagner는 "많은 스타디우스"라는 말이 1-2마일 정도 해변에서 떨어진 거리일 것이라고 했다(Hagner, 423). 바람이 거슬러 불기 때문에 파도로 인해서 배가 심하게 출렁이며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25절에서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고 했다. 사경이란 새벽 3-6시 사이가 된다. 제자들은 밤새도록 파도와 싸운 탓에 공포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대부분 경험이 많은 어부라서 배를 잘 다루는 사람들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바람과 파도로 인해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셨다는 것이다. 26절은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서 유령이라고 말하며 두려움으로 인해 비명을 질러댔다.

27절은 원문에서 "즉시"라는 말로 시작한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명을 질러대자 들으시고 즉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 말씀은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 말라!" 이 세마디이다. "안심하라"는 말은 용기를 내라는 것이다. "나다"라는 말은 "나는 나다"라는 뜻인데 출애굽기 3:14절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그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28절에서 베드로가 대답하여 말하길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로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했다. 베드로가 "주여"라고 부른 말도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다. 베드로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물위를 걸으시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창세기 1:2절에서 수면 위를 운행하고 계신 그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도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에 참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주님과 함께 물 위로 걷게 해 달라고 한 것이다.

29절에서 예수께서는 "오라!"라고 하셨다. 그래서 베드로는 명령에 따라 배에서 내려서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 아마도 짧은 거리를 생각없이 걸었을 것이다. 30절은 그런데 베드로가 거센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자 물에 빠지기 시작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었을 때는 걸을 수 있었지만 거센 바람에 출렁이는 바다를 보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보지 못하자 물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여!"라고 외치며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소리친다.

31절도 "즉시"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즉시 손을 내미셔서 베드로를 붙잡으셨다.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으셨다고 했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손에 닿을 만큼 가까이 걸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무서운 바람과 파도를 보았을 때 빠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책망하셨다.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다고 하지 않고 적다고 하셨다. 적은 믿음으로 배에서 내려 바다 위로 걸은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이 믿음보다 더 커지자 물에 빠진 것이다.

32절은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에 함께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고 했다. 예수께서 명령하지 않고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기만 했는데도 바람은 멈춘 것이다. 베드로를 두렵게 한 바람은 이제 예수님이 두려워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리며 순종한 것이다. 예수님은 태초에 천지 만물을 지으시기 전부터 수면 위를 운행하시던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분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운행하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도 예수님께 굴복한 것이다.

33절에서 배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께 절하며 말하길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했다. 절했다는 말은 단순히 어른께 예를 갖추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를 했다는 뜻이다. 절한다는 말은 신을 예배할 때 쓰는 말인데 유대인들은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만 믿었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다는 뜻이다.

Hagner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나중에 교회에서 고백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로 이해했을 것이라고 했다(Hagner, 424). Wilkins도 역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후에야 예수님의 신적 정체성을 확실하게 알았기에 제자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이런 말을 했는지는 불확실하다고 했다(Wilkins, 518). 제자들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는 확실한 신앙고백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천사와도 같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이러한 제자들의 고백과 경험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에야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먹이신 것과 연결된다면 물 위를 걸으셔서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님은 창세기 1장의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이 된다. 마태는 예수님이 진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백성들을 먹이시고 인도하신 그 하나님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도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확실하게 깨닫고 이를 말로 증거하다가 나중에 기록한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본인에게 들어오는 내용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예수께서 본래 목적을 놓치지 않으시고 그 일에만 집중하시는 모습이다. 수많은 무리들과 제자들이 환호할 때도 예수께서는 본래 기도하시려는 목적을 놓치지 않으시고 모두 보낸 뒤 홀로 기도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지상사역 기간 동안 항상 그렇게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놓치지 않고 사셨다.

두번째로 들어오는 것은 베드로의 모습이다. 믿음이 부족했을 때 필자도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응답해 주신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세상의 어려운 일들과 두려운 일들을 바라보았을 때 물에 빠졌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우리 주님만 바라볼 때는 풍랑이 이는 바다도 걸을 수 있지만 그 풍랑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순간 우리 주님은 우리 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물에 빠지는 것이다. 주님만 바라보자.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맡기신 사명을 절대로 놓치지 말자.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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