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34-36 예수님을 알아 본 많은 사람들은 사람을 보내어 병자들을 데려왔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그 수가 너무 많아 치료 받을 수 없었기에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했고 그 옷자락을 만진 사람들은 다 나음을 얻었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환호하는 무리들을 해산시키시며 제자들을 떠나 보내시고 홀로 기도하셨다. 제자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다. 이제 이어지는 말씀은 바다를 건너 도착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 주신 내용이 이어진다.
34절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를 건너 게네사렛 땅에 도착했다고 했다. 게네사렛이란 예수께서 머물던 가버나움에서 몇 마일 떨어진 갈릴리 바닷가에 있던 곳의 지명이다.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인 막달라와 베드로의 집이 있던 가버나움 사이에 있던 곳이다. 유대인 요셉푸스는 아름답게 우거진 초목이 지역이라고 했다(War, 3.516-521). 농사짓기에 아주 좋은 땅인데다가 바로 앞에는 갈릴리 바다가 있어 먹을 거리가 풍부하여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다.
35절에서는 그곳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보고는 주변의 모든 지역에 사람을 보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지들 중 아픈 사람들을 기억하고 사람을 보내서 모든 병든 자들을 다 예수께 데리고 온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의 죽음으로 인해 소문이 나지 않기를 바라시면서 피해다니시고 몰려든 무리들도 급히 해산시키셨지만 그 소문은 모든 갈릴리 지역에 다 퍼졌던 것이다.
36절은 예수께 간청했다는 말로 시작한다. 간청한 내용은 치료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옷자락 만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일일이 다 치료해 주실 수 없는 상황임을 보고 사람들이 단지 옷자락 만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마태복음 9:20-21절에서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믿음과도 같은 믿음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새번역은 옷자락이라는 말을 옷술이라고 번역했다. 이는 신명기 15:38절에서 "옷단의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라는 말에서 "술"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15:39절은 그 의미가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라고 했다. 그 옷술 하나하나를 보며 계명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었다.
마태복음 23:5절에 보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옷술을 크게하여 자신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했다고 했다. 이어지는 15장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나오는 것을 보면 옷술은 분명히 바리새파 사람들의 옷술과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옷자락에 달린 옷술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경건함을 자랑하여 자신들을 높이던 옷술이다. 그들의 옷술을 보던 사람들은 그들의 권위 앞에 위압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술은 사람들의 믿음을 확인해 주고 치료해줘서 구원하던 옷술이다. 예수님의 옷술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던 것이었다.
거짓된 경건을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는데 사용한다. 사람 앞에서 의를 행하는 것이고 보물을 땅에 쌓는 행위이다. 그러나 진정한 경건을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웃들을 데려와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그 능력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만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가서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들도 오늘 말씀에 나온 사람들처럼 예수님께 나올 것이다. 그들도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들처럼 예수님의만 만져도 나음을 입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로 인해 주님 앞에 나온 사람들 모두에게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