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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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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1-4

마음 속의 생각까지 다 아시는 예수님

2021. 8. 14. · 안정섭 목사 · 마태복음 9장 강해 설교

마태복음 9:1-4 예수께서는 치료를 받으러 친구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아시고 치료해 주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정죄하여 죽이려고 온 율법학자들의 마음까지도 다 아시고 악한 생각을 하는지 책망하셨다.

이전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귀신들린 한 사람을 치료하시기 위해 수많은 돼지 떼들을 희생시키셨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에게 쫓겨나셨다. 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시자 세종류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내용이다.

9:1절은 예수께서 다시 배에 오르셔서 바다를 건너 자기 마을로 돌아오셨다는 내용이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의 본거지인 가버나움으로 되돌아오셨다는 뜻이다. 자연만물과 귀신들까지 굴복시키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질병까지 치료하시는 권세를 지니신 분이 개선장군처럼 돌아오셨다는 것이다.

2-4절에는 신기한 구경거리를 나타내는 “저것 좀 봐!”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 먼저 2절 앞부분에 신기한 구경거리가 나온다. 그 구경거리는 “사람들이 중풍병 환자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께로 날라왔다” 라는말이다.물론중풍병에걸린사람을친구들이메고오는모습도놀라운구경거리였을것이다.

하지만 더 큰 구경거리는 2절 뒷부분에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라는 말이다. 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예수님은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생각을 보신 것이다. 주님 앞에 나가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중풍병자의 생각을 보셨다. 또 그 병자를 불쌍히 여겨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온 친구들의 생각도 보신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의 마음을 아시는 것이 큰 구경거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형제자매를 불쌍히 여기는 간절한 마음을 가질 때도 우리 주님은 우리 마음 속을 보시고 다 아시는 것이다.

이러한 죄인과 불쌍히 여겨 데리고 온 친구들의 마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기운을 내라 아이야” 라고말씀하셨다.개역개정에서“작은자야” 라고번역된말을새번역에서는“아이야” 라고번역했다.이말은보통자기의어린자녀를친근하게부르던말이다.사람들은죄인이라고멸시하며멀리하던중풍병자를예수님은자신의자녀를부르듯다정하게부르시며안심시킨것이다.

예수님은 다정하게 부른 후 “네 죄가 용서 받았다” 라고 말씀하셨다. 네 죄가 용서 받았다는 말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미 용서하신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 아니다. 지금 그 자리에서 예수님 자신의 권세로 죄 용서를 선포하고계시는것이다.또죄용서받았다는말은수동태로되어있기때문에치료하신분은하나님임을나타낸다.

예수님은 왜 병을 치료하기보다 먼저 죄 용서 받았다는 것을 선포하셨을까? 그것을 알려면 질병과 장애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야 한다. 당시 이 중풍병자는 죄인 취급 받던 사람이다.뿐만아니라스스로도죄인이라고생각했다.왜냐하면당시신체적장애가있으면죄때문이라고생각했다.

욥기 4:7절에보면욥의친구인데만사람엘리바스는“죄없이망한자가누구인가정직한자의끊어짐이어디있는가?” 라말했다.유대인들은죄때문에장애가생겼다고생각했던것이다.요한복음 9:1-2에서도제자들은“이사람이맹인으로난것이누구의죄때문이냐?” 라고물었다.이러한생각은주변사람뿐아니라장애가있는사람자신의생각이기도했다.따라서육체적인질병보다더심각한문제는“죄인”이라고낙인이찍힌것이다.

죄를 용서한다는 말에서 용서란 무슨 뜻일까? 시편 103:12에서 다윗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라고 했다. 또 예레미야 31:34에 보면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죄를 기억지 아니하시리라"라고 했다. 그렇다면 죄를 용서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이상 죄와 연관시키지 않겠다는뜻이다.

알라스카 선교사들이 성경을 에스키모 말로 번역을 하던중에 에스키모들에게는 용서란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교사들은 오랫동안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에스키모들이 사용하는 한 단어를 발견했다. 그 뜻은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는 단어였다. 선교사들은 그 단어가 성경에 나오는 죄를 용서한다는 뜻과 정확하게 맞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그 단어를 에스키모 성경 전체에서 용서라는 단어를 번역하는데 사용했다.

사람들은 한번 죄인으로 낙인찍으면 계속 죄인으로 기억한다. 한번 감옥에 갔다오면 별하나 달았다고들 말한다. 한국에서는 그런 사람은 어디에 가도 취직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런 사람을 보면 경계하고 멀리한다. 사람들은 바람난 배우자를 용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용서가 아니다. 두고두고 되새기고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그렇지 않다. 예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의 죄를 더이상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죄사함 즉 죄 용서이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죄사함이나 죄 용서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보시고 그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주를 믿고 형제 자매를 중보하는지 아닌지 예수님은 우리 마음 속을 보시고 다 아신다. 우리가 형제 자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여 주님 앞에 간절히 중보기도 할 때 주님은 우리 마음의 진심을 보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주님을 진정으로 믿고 그분 앞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나 더이상 죄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두번째 신기한 구경거리가 3절에 나온다. 언뜻보면 율법학자 몇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속으로 중얼거린 것이 구경거리인듯 한다. 하지만 율법학자는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나타났다. 절대로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니다. 자세히 보면 진짜 신기한 구경거리는 그 다음에 나온다.

오늘 본문에서 율법학자들이 속으로 말했다는 말은 생각만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4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여기서 "생각을 아시고"라는 말을 원어대로 직역하면 “생각을 보시고” 라는 뜻이다. 2절에서 중풍병자와 그를 데리고 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에서 보시고와 똑같은 말이다.

따라서 진짜 신기한 구경거리는 앞에서 나온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마음을 보시고 아신 것이다. 또 이 부분에서 나온대로 율법학자들의 마음도 보시고 아신 것이다.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마음은 예수님께 나가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반면에 율법학자들의 마음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신성모독죄로 죽이려는 악한 생각 즉 불신이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진짜 믿음이 있는지 아니면 악한 생각이 있는지 다 아신다는 것이다.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 용서를 선포하시는 것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은 죽여서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구약의 율법이다.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스스로 하나님인 척 해서 하나님 이름을 모독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기회가 되면 죽여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4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라고 하셨다. 이는 율법학자들이 수많은 기적들과 증거들을 보고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오히려 죽일 생각까지 품은 것을 다 아시고 책망하신 것이다. 저들은 예수님이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께 이런 악한 생각을 품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말하지 않았어도 마음 속의 생각까지 다 아시는 예수님이 바로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생각을 다 알고 계신 것이 놀라운 구경거리이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율법학자들이 왜 예수님 앞에 와 있을까? 그것은 저들이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또 바다를 잔잔케 하셨다는 것과 귀신들을 내쫓았다는 소문도 들었을 것이다. 이런 소문을 들었다면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저들은 믿지 않고 단지 예수님을 잡아 죽일 근거를 찾으려고 예수님 앞에 온 것이다. 예수님은 저들의 악한 마음을 다 읽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 속에있는 진심을 다 알고 계신다. 이웃을 사랑하여 주님 앞에 나와 중보하는 선한 마음도 다 알고 계신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예수님보다 자기들의 명예를 더 높이려는 악한 마음도 다 알고 계신 분이신다. 그러므로 절대로 예수님을 속이려하면 안된다. 사람들 앞에서는 거룩한 척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그런 꼼수가 전혀 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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