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9:1-8 히스기야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들을 바빌로니아 사신들에게 다 보여주었고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 바빌로니아로 옮기실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하: 형통할 때가 위기라고 경고하시는 하나님
나: 만사 형통할 때나 고난 중에 있을 때나 항상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에서는 이사야가 하나님께서 알려준 병의 치료법을 전하자 히스기야는 그 증거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이제 히스기야가 자신이 소유한 부를 바빌로니아 사신에게 자랑하는 내용과 이사야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38:20-21절은 이사야가 먼저 말하고 히스기야가 묻는 내용이었는데 39:1-8절은 히스기야의 행동이 먼저 나오고 이사야가 예언하는 내용이 나온다.
결국 증거를 구하는 히스기야의 모습과 자신의 부를 자랑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이 이사야의 예언 사이에 끼워져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자를 통해 선포되고 있는데도 하나님을 완전히 믿지 못하며 자신의 부를 의지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39:1절은 히스기야가 바빌로니아왕이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에게 친서와 예물을 보냈다는 것이다.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간 기적과 함께 히스기야의 병이 나았다는 소식도 들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히스기야가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 새로 일어나는 강국 바빌로니아를 의지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나님만 신뢰하던 히스기야가 강한 이웃나라를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바빌로니아 왕이 사신을 보낸 것은 단순히 축하의 뜻이 아니다. 앗시리아에게 반기를 들게 해서 바빌로니아의 영향권에 두려는 정치적인 속셈이다.
2절은 히스기야가 바빌로니아에서 온 사신을 반가이 맞으면서 자신이 가진 모든 보물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무기고에 있는 무기들까지도 다 보여주었다. 이는 히스기야가 바빌로니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다. 개인 간에도 아주 친밀한 관계가 아니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 히스기야는 옷을 다 벗고 자신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두손을 들고 항복을 하고 있는 셈이다.
보물을 보여준 것은 이러한 보물들이 다 바빌로니아 왕의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고 또 무기들을 다 보여준 것은 무기가 이것 뿐이니 바빌로니아 왕의 보호가 없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히스기야는 마치 벌거벗다시피 한 모습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창기의 모습과도 같다.
사실 이사야에 나오는 사건들은 연대 순서로 배치되었다기 보다는 연이어지는 시리즈 설교처럼 믿는 자들을 가르칠 목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신약의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경험한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믿는 자들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이 가르치려는 초점은 물질이 많고 건강까지 갖고 있을 때 인간들이 그러한 물질을 의지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와 마가복음 10장의 젊은 관원도 역시 물질 때문에 눈이 멀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물질을 포기해야만 하나님만 신뢰할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3절에서 이사야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히스기야에게 질문을 해서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하려 하고 있다. 3절에서 질문은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고 어디서 왔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히스기야는 먼나라에서 온 손님이라고만 대답했다. 특별히 한 말은 없고 자신을 축하하러 먼 나라에서 온 손님이라 잘 대접했을 뿐이라는 뜻이다.
히스기야가 죄를 고백하지 않자 이사야는 4절에서 다시 또 묻는다. 역시 다 알고 있으면서 스스로 죄를 깨닫고 고백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사야의 질문은 무엇을 보여주었느냐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궁궐 안에 있는 모든 보물들과 창고에 있는 모든 무기들까지 하나도 빼 놓지 않고 다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제 히스기야는 스스로 자신의 모든 죄를 다 고백한 셈이다.
5-6절에서 이사야는 히스기야가 사신들에게 보여준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모두 빠짐없이 바빌로니아로 옮길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7절에서는 뿐만 아니라 아들들 중에서도 포로로 끌려가서 바빌로니아의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라고 까지 했다. 보물들과 무기들 뿐 아니라 모든 귀족계층의 사람들까지 다 빼앗긴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완전히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만 의뢰하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기에 그 축복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8절은 히스기야가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이 옳다며 그대로 따르겠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계속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자식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우선 그 심판이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은 것만이라도 다행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이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했을 때 벽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태도이다. 이는 히스기야는 메시야가 아니라 죄성을 가진 인간일 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히스기야 때 태평성대를 이루었고 하나님을 신뢰하던 훌륭한 왕이었기에 그가 메시야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러한 히스기야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도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오직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만이 온전히 하나님 뜻에 순종하신다며 그 분을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죄성은 40장부터 나오는 진정한 메시야를 기다리라는 내용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돌아보면 히스기야와 같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모든 일이 형통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가진 것과 누리고 있는 것들을 기뻐하며 그러한 것들을 의지한다. 특히 물질이 부족할 때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던 사람들이 물질이 풍부해지면 하나님을 버리고 물질을 의지한다. 물론 말로는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말 뿐이고 사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렇게도 훌륭한 믿음을 가졌던 히스기야도 그랬다. 오늘날 믿는 자들 중에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고통 중에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는 축복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하고 물질도 부족함이 없고 자식들도 모두 다
잘 되고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위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이지 세상에서 성공이나 만사 형통이 아니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뢰하는 삶이 진정한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