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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새벽말씀 › 이사야 › 40:1-11

Dawn Word

이사야 40:1-11

좋은 소식을 전파하라

2018. 10. 25. · 안정섭 목사 · 이사야 40장 강해 설교

이사야 40:1-11 하나님 맞을 준비를 하고 기쁜 소식을 전파하면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먹이시며 인도하신다.

하: 준비된 마음에 임하시는 하나님

나: 이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온 삶을 다 바치자.

이제 이사야서의 전반부가 끝이 났다. 이전 말씀에서 히스기야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들을 바빌로니아 사신들에게 다 보여주었고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 바빌로니아로 옮기실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히스기야를 메시야로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히스기야는 죄성을 지닌 인간일 뿐이라고 알려주면서 이제 오늘 말씀부터는 진정한 메시야를 기다리라는 내용이 이어진다.

1-39장은 세상의 힘있는 자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게 함락되고 성전도 파괴되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포로로 잡혀가자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은 과연 의지할만한 분이신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유대 사람들은 두가지 질문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버리신 것이 아닌가?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계시는 주님이신가? 이제 40장 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대하고 소망하라는 것이다.

40:1-2절은 이사야 후반부를 여는 서곡과도 같다. 어떤 상황이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놓여져 있든지 하나님의 목적은 그 백성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건져 내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린다. 그러나 모든 유대사람들을 다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경건하고 거룩하기 때문에 구원하는 것도 아니다. 거룩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남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건져 내시고 씻어주셔서 자기 백성을 삼으신다는 것이다. 주도권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있다.

1절은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6:9절에서는 이 백성이라며 심판의 메세지를 전했지만 이번에는 “나의 백성” 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연약을 맺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위로하시려는 것이다. 위로한다는 말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조문할 때 쓰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고통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위로해 주시려는 것이다.

2절은 예루살렘 주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 주어라 라고 했다. 원어는 예루살렘 주민이 아니라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을 여인으로 의인화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에게 그 억울함을 풀어 준다는 뜻은 아니다. 죄에 대한 형벌을 다 받았다는 말은 예루살렘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뜻이다. 지은 죄에 비하면 아직도 멀었지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용서해 주셨다는 뜻이다. 지은 죄에 비해 갑절의 벌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지은 죄는 정말 큰데도 그 죄의 갑절이나 더 큰 용서를 받았다는 뜻이다.

3-5절은 이제 주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무엇인가 잘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잘한 것은 아직도 단 한개도 없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용서해 주시고 이제 다시 사랑하는 여인 예루살렘에게 가서 함께 거하신다는 것이다.

3절의 “한 소리가 외친다” 는 말의 일차적인 의미는 6장의 스랍들의 외침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전달자의 목소리이다.

그 목소리 다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행차하시는 것이다. 후에 신약성경에서는 스랍들의 외침이 침례요한이 외치는 소리로 이해되었고 하나님의 행차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신 것으로 이해되었다.

왕이 행차할 때는 그 길을 준비하는 법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데리고 바빌로니아에서 오신다. 그 오시는 길은 사막길이다. 하나님은 사막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오실터인데 그 사막에 하나님께서 편안히 오실 수 있는 고속도로를 곧게 만들라는 것이다. 구부러진 길은 악한 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은 곧은 길이다. 곧은 하나님의 고속도로를 내라는 것이다.

4절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오실 고속도로를 만드는지 설명한 것이다. 깊은 골짜기는 메워져야 하고 높은 산과 언덕은 깎아져야 한다.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라고 했다. 이 두가지 장소의 차이가 무엇일까? 칠십인역 구약성서는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하라는 말을 굽은 길을 곧게 만들라는 말로 번역했다.

그렇다면 하나는 구불구불한 길을 바로 잡으라는 말이고 하나는 울퉁불퉁한 거친 지형을 평평한 골짜기로 만들라는 뜻이다. 골짜기는 산과 산 사이에 있는 평평한 곳이다. 그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을 평평하게 다듬으라는 뜻이다. 이는 실제로 도로포장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오실 수 있도록 그 마음을 다듬으라는 뜻이다.

5절은 그렇게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한 결과이다. 그러면 주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본다는 것이다. 이는 출애굽 때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이제 높은 산처럼 교만해진 마음을 낮추고 악한 마음으로 구부러진 마음도 바로 잡아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란 종말론적인 공동체이다. 그러한 공동체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이처럼 주님께서 임하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6절에서는 “너는 외쳐라” 라고 한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하실 공동체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에 묘사되어 있다. 모든 육체가 풀이라는 말은 잠깐 있다가 말라 버리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라는 뜻이다 게다가 그 풀들의 꽃은 풀보다 더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의 모든 아름다움” 이란 원어에서는 “모든 헤세드” 이다. 헤세드는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주로 쓴 말이지만 여기서는 사람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뜻하는 말로 쓰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행하면 꽃처럼 아름답겠지만 그 아름다움은 잠깐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들꽃과도 같다는 것이다.

7절은 “주님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라고 했다. 이는 유대지방에 있는 사막의 모습이다. 5월에 동쪽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면 푸른 풀밭은 48시간 안에 겨울의 잔디밭처럼 갈색으로 말라붙어 버린다. 하나님께서 입김을 부시면 인간들의 모든 영광도 풀과 풀의 꽃들처럼 말라 버린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입김이란 말에서 입김이란 바람이란 뜻인데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유한한 인간들은 사라져 버린다. 꽃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전하는 자들의 그 사랑도 역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유한함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강조점은 8절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다” 라는 말에 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유한한 인생들의 세상 영광은 사라져 버리지만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에 임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빛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은 성령께서 말씀 위에 임하실 때 나타나는 것이다.

9절에서 시온이란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시온산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높은 산에 올라가서 좋은 소식을 전하라는 것이다. 시온과 대조되는 말은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살던 도시이다. 예배하는 성전보다 조금 넓어진 곳이 예루살렘이다. 그 도시 안에 살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좋은 소식을 외치라는 것이다.

그 외칠 내용은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라” 라는 것이다. 이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회복시켜 주신다는 기쁜 소식을 크게 외치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살던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제 그 주변의 유다 성듭들에게 외쳐야 한다. 그 외칠 내용은 “여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계신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세상의 힘을 의지했기에 떠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모두 시온 산에 와서 영원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뜻이다.

10절을 원어대로 직역하면 주 하나님께서 권세와 함께 오신다는 것이다. 그가 그의 강한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 강한 팔은 용사의 칼과 도끼를 휘두르는 팔이다. 모든 대적들을 물리치실 팔이다. 또 이어서 “그가 그 백성에게 주실 상급을 가지고 오신다”고 했다.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그 강한 팔로 무기를 휘두르셔서 모든 대적들을 멸하셨다면 그 다음에는 전리품을 가지고 오셔서 나누어 주실 차례이다. 전쟁에 이긴 왕이 그 병사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 주는 그림으로 하나님의 승리를 묘사하고 있다.

이제 11절은 목자의 그림이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시기이기에 이제 하나님은 목자와 같이 자신의 양떼를 먹이시는 것이다. 어린 양들을 팔로 모으시고 품에 안으신다는 말은 아직 어린 믿음의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따라갈 힘이 부족하기에 안고 가신다는 뜻이다. 또 젖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고 했다. 새끼를 낳아서 젖을 먹이는 어미 양과 같은 사람들은 조심조심해서 이끌고 가신다는 것이다.

이사야가 전하는 회복의 메세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돌아오실 길을 닦는 것에서 시작해서 하나님 앞에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말씀을 널리 전파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평탄하게 하여 주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기 좋도록 준비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준비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파해야 한다. 확성기가 없던 시절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 외쳤다. 우리도 높은 곳에 올라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외쳐야 한다. 그러면 위대한 전사이신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그 백성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 주시며 목자와 같이 돌보신다는 것이다. 마음 밭을 준비하게 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먹여주시고 안전하게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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