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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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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마가복음 12:1-12

주인 노릇하려는 포도원 소작인들을 모두 멸하신다

2022. 8. 12. · 안정섭 목사 · 마가복음 12장 강해 설교

마가복음 12:1-12 예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다가 마지막에는 아들까지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악한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로 말씀하시자 공회원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했지만 무리들이 그 비유의 뜻을 다 알았기에 무리들을 두려워해서 떠나갔다.

이전 말씀에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와서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예수께 묻자 예수께서는 답변 대신 요한이 침례를 주는 권위가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를 물으셨다. 이에 공회원들이 답변하지 못하자 예수께서도 답변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러한 유대교 지도자들을 두고 악한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저들의 거짓된 거룩의 탈을 벗기신 예수께서는 12:1절부터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많은 성경 해석자들이 앞의 논쟁과 분리된 것처럼 취급한다. 하지만 장소나 시간이 바뀌지 않았고 또 그리고 라는 말로 앞 단락과 연결이 되어 있기에 하나로 취급해야 한다. 따라서 이 비유는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구경하는 무리들을 가르치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 비유의 주인공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을 산헤드린 공회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가르치려고 이 비유를 전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을 가르치려고 전하신 것이다. 원어에서는 비유라는 말이 비유들이라는 뜻이다. 비유가 하나 뿐인데도 비유들이라고 한 것은 예수께서 여러가지 비유로 가르치셨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일구었다 했는데 원어는 포도원을 심었다는 뜻이다. 포도나무를 많이 심어 포도원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둘레에 울타리도 세웠다. 포도즙을 짜는 확도 팠다. 또 그것을 지키는 망대도 세웟다. 그리고 나서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떠났다.

이 부분은 이사야 5:1-2절에서 빌려온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 5장을 배경으로 이 비유를 이해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뜻한다. 포도원은 하나님께서 택하셔 부르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이라는 신앙공동체를 가리킨다. 이는 이사야 5:7절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망대를 성전으로 비유한 유대인들 문서도 있기 때문에 성전으로 볼 수도 있다. 농부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인 이스라엘을 관리하라고 맡긴 산헤드린 공회원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에게 포도원을 잘 가꾸라고 맡기고 멀리 떠나신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떠난 것은 아니다. 지도자들에게 맡기고 하나님은 뒤로 물러나셨다는 뜻이다.

2절에서 때가 되어서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에게 종 한 사람을 보냈다. 포도원의 소출을 받으려는 것이다. 포도나무를 새로 심은 뒤 포도를 거두려면 최소한 4년은 지나야 한다. 따라서 때가 되어서라는 말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다. 소출이란 원어에서는 열매라는 말이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종 하나를 보냈는데 맨 처음에는 때리고 빈손으로 보냈다. 때린다는 말은 채찍으로 몸을 때려 살가죽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말한다. 첫번째 종은 몸을 때리고 빈손으로 보냈다. 두번째 종은 머리를 때렸다. 작은 막대기로 꿀밤 주듯 때렸다는 뜻이 아니다. 죽지 않은 만큼 머리를 세게 내리친 것이다. 또 머리를 때리는 것은 육체적 고통과 함께 명예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함께 나오는 능욕하였다는 말이 그 뜻을 설명해준다. 능욕은 심각한 부끄러움을 주었다는 뜻이다. 또 계속해서 종들을 보냈는데 어떤 종들은 채찍으로 때리고 어떤 종들은 죽였다.

하나님은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도 이사야 시대의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원했던 것처럼 미스파트와 짜다크를 를 원했는데 미스파흐와 짜아크 뿐이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간단히 열매라고 했지만 유대교 지도자들은 구약의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에 이 비유가 이사야에서 나온 말이고 열매가 무엇을 뜻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유대인들이 다 알고 있는 비유였다.

그런데 6절은 "이제" 라는 말과 함께 하나 더 남았다라고 한다. 이 비유를 듣는 사람들은 모두들 이쯤에서는 주인이 와야 하는데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주인은 벌써 나타났어야 했다. 주인이 와서 직접 악한 종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계속 참으시며 종들을 보내는 모습은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나타낸다. 그런데 종은 더이상 없지만 하나 더 남았는데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니 또 놀랐을 것이다.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은 자기 아들까지 보내시는 사랑이다.

주인은 하나 남은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면서 자기 아들은 공경할 것이라 말한다. 공경한다는 말은 몸을 돌려 높은 사람을 향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포도원의 악한 농부들의 생각은 다르다. 주인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고 끊임없이 종들만 보내다가 마지막엔 상속자인 아들이 오다니 정말 뜻밖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저들은 주인의 인내와 한결 같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는 주인은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악한 농부들은 이 상속자만 죽이면 그 유산은 자기들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악한 농부들은 아들을 죽여서 포도원 밖에 던져 버렸다 했다. 죽였더라도 최소한 땅에 묻어주었어야 하는데 그냥 밖에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이 아들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여서 예루살렘 성 밖에 내버려둘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 묘에 장사지내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버려두었을 것이다.

이제 비유는 끝이 났다. 9절에서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질문하신다. 포도원 주인이 이제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자 9절 뒷부분에서 모든 청중들은 대답하길 포도원 주인은 가서 악한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라 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제자들을 가리킨다. 이제 성전은 폐쇄되고 공회원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 이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성전을 대신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과 성전 산을 통째로 바다에 던지는 기도를 하라고 하신 것이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확정이 된 것이다.

이제 10절에서 예수님은 도전자들에게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다. 예수님은 너희들은 이러한 성경구절도 읽어보지 못했느냐? 라고 하셨다. 성경 전문가들에게 이러한 말 자체만 해도 엄청난 모욕이다. 비유에서 악한 농부들이 주인의 종의 머리를 때린 것과도 같은 모욕이다. 이렇게 한방 날리시고는 시편 118:22-23절을 인용하신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되었다” 라는 말에서 건축자들은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버린 예수님은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중요한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계속해서 시편을 인용하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랍게 보인다” 라는 말에서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라는 말은 직역하면 “주님으로부터 이것이 이루어졌다” 라는 뜻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버린 돌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소중한 머릿돌이 되었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정말 놀랍다는 것이다.

11절 끝부분의 “우리 눈에는 놀랍게 보인다”는 말은 이사야의 예언이지만 또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제자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오늘 본문에 나온 공회원들은 갈릴리에서 온 예수와 그 제자들을 병균보다 조금 낫게 여겼다. 갈릴리 사람이란 말만 나와도 예루살렘에 살던 유대교 지도자들은 멸시했다. 더구나 갈릴리 지방의 하층민들의 집단인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은 정말 완전히 멸시당하는 존재였다. 그것은 갈릴리 출신인 제자들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과 제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시작하셨다는 것에 놀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이 놀랍다는 것은 마가복음에 나타난 마가의 모토이기도 한다.

예수님은 이처럼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해서 공회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셨다. 이에 대한 반응이 12절이다. 그런데 한글성경들은 모두 원어와 말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원어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원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맨 먼저 나오는 말은 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회원들의 마음 한쪽 구석에 있던 것이다. 또 공회원들의 마음의 또 다른 한쪽 구석이 바로 이어서 나온다. 그것은 공회원들이 무리를 두려워 했다는 것이다. 원어는 이 두 마음이 그리고 라는 말로 연결이 되어 있기에 공회원들의 마음에는 잡으려는 마음과 무리들을 두려워하는 두가지 마음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원어와 말의 순서가 바뀐 부분은 바로 그 다음이다. 그 다음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연결된다. 왜냐하면에 이어지는 말을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들이 알아차렸다” 이다. 그들은 공회원들일 수도 있지만 구경하는 무리들일 수도 있다. 원어의 어순대로 보면 공회원들이 무리를 두려워했다라고 한 뒤 바로 이어서 왜냐하면 그들이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들은 무리들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무리를 두려워했다 라는 말과 그들이 알아차렸기 때문이라는 말을 연결한다면 구경하던 무리들이 예수님의 비유와 이사야의 말씀의 뜻을 다 알아차렸다는 뜻이 된다. 무리들은 공회원들이 바로 악한 농부들이라는 것을 다 알아 차리고 공회원들을 향해 분노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회원들은 무리들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만약 비유의 의미를 알아차린 것이 공회원들 뿐이라면 무리를 두려워했다는 말은 연결이 되지 않는다. 12절 마지막 부분은 공회원들은 예수를 그대로 두고 떠나가는 부분 이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입장하여 예수님께 도전장을 던지던 공회원들은 이제 알몸으로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고 있는 것이다.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로부터 회개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성전에서 주인 노릇을 하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선지자들을 배척하고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원수들을 한결 같은 사랑으로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원수들을 용서하고 구원하기 위해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아들까지도 죽였다는 것이다. 제자들도 유대교 지도자들과 똑같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를 자신들의 밥그릇을 키워 줄 메시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그런 메시야가 아니라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드러내는 죽임당하는 메시야라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시려는 것은 하나님 원하시는 용서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나 혼자만의 거룩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 기뻐하시는 공동체의 열매이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분명히 열매를 내 놓으라 하실 것이다. 그 때 우리가 내 놓을 것은 우리를 통해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 인내하고 용서하며 이루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공동체를 내 놓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에서 찾으신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인내하며 가르치신 것처럼 가르쳐야 한다.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예수님 닮은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그러나 말씀만으로는 안됩니다. 예수께서 본을 보이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섬기는 본을 보여야 한다. 사랑으로 섬기는 것은 바로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은 열매를 맺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길어서 미안합니다. 비유가 한 덩어리라 짧게 끊을 수 없었습니다. 복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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