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1:12-16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잊으신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은 것이다. 풀 같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기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 손은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다.
하: 몸을 구부려 매듭을 풀고 계시는 하나님
나: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손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이전 말씀은 주님을 깨우며 도와달라고 외치는 내용이었다. 과거 구원해 주신 일을 회상하며 깨우고 영원한 기쁨을 주실 것을 기대하며 주님을 깨우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자 저들은 아마도 "당신이 과거에 그 놀라운 일을 행하셨던 바로 그 분 맞냐?" 라고 질문했을 것이다. 이제 12-16절은 이러한 부르짖음과 의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12절은 히브리어로 "아니키! 아니키!" 라고 대답하신다. "나다! 나다!" 라는 뜻이다. 이어서 "너희를 위로하는" 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서 "죽을 인간을 두려워하며 한갓 풀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 하는 너는 누구냐?" 라고 물으신다. 하나님은 바로 그 하나님 맞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몰라보고 의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대신 풀 같은 존재인 사람을 두려워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라고 되물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님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13절은 그래서 "너희는 잊었다. 너희를 지으신 하나님, 하늘을 펴시고 그 땅을 세우신 주님을 잊었다" 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잊으신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잊었기에 한갓 풀처럼 잠깐 있다가 사라질 인간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 백성들에게는 자신들을 지배하고 괴롭히던 인간들만 마음에 가득 들어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마음에 창조주 하나님이 가득 차 있었다면 잠깐 지나가는 괴로움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세상 권력자들이 권력을 휘두를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휘둘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시니 것이다.
14절은 "갇혀 있는 포로들이 이제 곧 풀려난다" 라고 하신다. 원어는 하나님께서 풀어 주시려고 몸을 구부리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구부려 덪에 묶여있는 동물을 풀어주듯 그 백성의 발에 매인 것을 풀어 주고 계시는 모습이다. 아무 응답 없다고 하나님 맞느냐고 따지던 백성들에게 지금 풀어주고 계신다고 하신 것은 어째서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시는 것이다.
15절은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라고 하신다. 어떤 하나님인가?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고 거친 파도를 일으키는 하나님, 나 만군의 주다" 라고 답하신다. 16절은 창조주요 바다
까지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이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맡기고" 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 모든 말씀을 그 백성들의 입에 맡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믿고 기다리지 못했냐는 것이다. 또 "나의 손 그늘에 너를 숨겨주었다" 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손으로 덮으셔서 낮의 뜨거운 해가 그 백성을 상하게 하지 못하게 막아 주셨다는 것이다.
그 손이 어떤 손인가 이어서 설명한다. 그 백성을 덮어 주셨던 그 손은 바로 "하늘을 폈으며 땅의 기초를 놓았던" 그 손이다. 세상을 창조하셨던 그 손으로 그 백성들을 덮어주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모르고 하나님 어디 있느냐며 사람들을 두려워 떨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온에게 너는 나의 백성" 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말씀-손-손-말씀의 순서로 되어 있다.
작년 우리집 뒷 마당에 살던 들고양이들을 덫을 놓아서 잡은 일이 있다. 그 때 그 고양이들은 두려워하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내가 그 고양이들을 잡은 것은 해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만약 그대로 두면 시청의 Animal Control을 담당하는 직원이 잡아다가 안락사를 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살려주려고 잡은 것이다. 광견병 주사도 놓아주고 기생충 약도 먹이고 중성화 수술을 해 주고 그 표시로 오른쪽 귀 끝을 잘라 잡혀가지 않게 해 준 것이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들고양이들은 안락사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양이들은 그것을 모르고 덫 안에서도 펄펄 뛰고 난리를 냈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다시 우리집 뒷마당에 풀어주려고 몸을 굽혀 덫의 잠금고리를 풀던 그 순간에도 그 들고양이들은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 고양이들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때를 따라 먹이고 있기에 잘 살고 있다. 날씨가 추워졌기에 못쓰는 아이스박스에 구멍을 뚫어주고 그 안에 담요도 깔아주어 그 안에서 추위를 피할 수 있게도 만들어 주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가지 고통들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외면하시기 때문에 생기는 일도 아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우리를 잡아 병원으로 보내신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우리 멋대로 살 것이기 때문이다. 마귀의 뜻대로 세상 욕심을 따라 살다가 죽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도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하면 안된다. 우리 앞에 닥친 두려운 일을 보고 사람들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풀어주려고 매듭을 풀고 계신데도 발버둥을 치고 펄펄 뛰는 꼴이다.
어떻게 매듭을 풀어 주시고 덫의 잠금고리를 열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을 볼까? 오늘 말씀에 따르면 그 하나님의 손은 말씀으로 감싸져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 입에 맡겨주신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말씀이 아니면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없다. 날마다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지 않으면 우리가 잠시 갇혀있는 덫 안에서 펄펄 뛰다가 우리 자신만 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