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1:9-11 고통 가운데서도 과거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회상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영원한 기쁨을 주실 날을 기대하라.
하: 영원한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나: 주님 앞에 설 그날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가르치는 삶을 살자.
이전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바라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귀에 대고 속삭이시는 구원의 비밀을 듣고 간직하여 그 말씀대로 살면 욕을 먹겠지만 끝까지 견디라고 했다.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망할 것이지만 우리의 구원은 영원하기 때문이라 했다. 이제 주님께서 깨어 나셔서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외침이 이어진다. 앞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종을 통한 구원이 놀랍기는 하지만 지금 현재 고통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
9절은 "깨어나십시오" 를 두번이나 반복한다. 이는 마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가 아버지를 깨우는 모습과도 같다. 이어서 "힘으로 무장하십시오. 주님의 팔이여" 라고 했다. 어서 일어나서 싸울 준비를 하라고 계속해서 깨우는 모습이다. 또 "오래 전 옛날처럼 깨어나십시오! 라합을 토막 내시고 용을 찌르시던 바로 그 팔이 아니십니까? 도 역시 계속해서 흔들어 깨우는 모습이다. 라합은 이집트를 상징하고 용은 바로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어지는 10절을 보아도 그렇게 읽는 것이 문맥상 맞다.
10절은 "바다와 깊고 넓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의 깊은 곳을 길로 만드셔서 속량받은 사람들을 건너가게 하신 바로 그 팔이 아니십니까?" 라고 했다. 이는 창세 때 바다와 육지를 가르신 그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출애굽 때 홍해를 가르시고 그 백성들을 건너가게 하신 그 놀라운 역사를 되새기는 것이다. 역시 과거 구원해 주신 놀라운 역사를 기억하며 하나님을 깨우는 모습이다.
11절은 35:10절과 똑같다. 이사야는 남은 자들의 완전한 회복을 바라보며 이미 전한 말씀을 다시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일어나셔서 그 백성을 완전히 구원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주님께 속량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라고 했다. 바빌론에서 노예로 잡혀있는 자신을 위해 주께서 값을 지불하시고 석방시켜 주셔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뻐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라는 말은 "영원한 기쁨이 그들 머리 위에 머물 것이다" 라는 뜻이다. 이는 승리한 자들의 머리에 화관을 쓴 모습이다. 단순히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모습이 아니다. 영원한 기쁨이 화관처럼 머리 위에 둘러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님 다시 오실 날에 영원한 몸을 입고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환난과 핍박을 끝까지 견디고 승리한 자들에게 영원한 기쁨이라는 화관이 씌워져 있다.
이제 "즐거움과 기쁨만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이다" 라고 말한다. 즐거움과 기쁨의 반대말은 슬픔과 탄식이고 넘친다는 말은 사라진다는 말의 반대말이다. 즐거움과 기쁨이 자신들을 추격해와서 자신들을 덮친다는 뜻이다. 창세기 31:25절에서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러" 라는 말에서 "뒤쫓아 이르러"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라반은 야곱이 도망한지 3일만에 알아채고는 열심히 추격하여 야곱을 덮친 것이다. 추격해와서 덮치는 것과는 반대로 슬픔과 탄식은 멀리 도망가버린다는 것이다. NIV는 이 부분을 "Gladness and joy will overtake them, and sorrow and sighing will flee away" 라고 번역했다. 즐거움과 기쁨이 추격해와서 자신들을 덮치고 반대로 슬픔과 탄식은 멀리 도망가버리는 모습의 대조를 잘 살려 번역한 것이다.
우리도 지금 고통 중에 있다면 주님이 다시 오셔서 완전한 승리를 이루게 하시고 우리도 주님처럼 영광의 몸을 입고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하며 살 그날을 바라보며 살자. 그 날에 우리 주님께서 씌워주실 영원한 기쁨의 화관을 기대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