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1:1-8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바라보라. 하나님께서 우리 귀에 대고 속삭이시는 구원의 비밀을 듣고 간직하여 그 말씀대로 살면 욕을 먹겠지만 끝까지 견디라.
하: 욕을 먹더라도 말씀대로 살라는 하나님
나: 사람들을 좋게 하기 보다 하나님을 좋게 하는 삶을 살자.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도록 전하고 가르치자.
이전 말씀은 하나님의 종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이라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그렇게 하나님의 종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하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1절은 원어에서 "들으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누구에게 들으라 하는가? 새번역은 "구원을 받고자 하는 자들" 과 "도움을 받고자 하는 자" 들이다. 원어는 "의를 쫓는 자들" 과 "주를 찾는 자들" 이다. 이 두 그룹의 사람들은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앞에서 나온 하나님의 종의 음성을 듣고 의를 얻으려고 온 힘 다해 달리며 쫓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의가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의를 쫓기에 그 다음에는 주님이 어디에 계신지 찾고 있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의를 이루려고 애를 쓰다가 자기 의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1절 뒷부분은 "보아라!" 라는 말로 이어진다. 무엇을 보라는 것인가? "너희가 떨어져 나온 바위를" 보라는 것이다. 또 "너희를 파낸 구덩이를" 보라는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 John Calvin은 바위와 파낸 구덩이가 채석장의 비유라며 너희는 돌을 잘라낸 바위와 구덩이 같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자손이라고 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에서 왔다. 17세기 영국 침례교 목사였던 John Gill은 채석장의 비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바위가 마르고 단단한 바위와 같아서 자녀를 낳을 수 없었던 아브라함이라고 말했다. 또 파낸 구덩이는 태가 닫혔다가 열린 사라를 뜻한다고 했다. Gill은 바로 다음 2절에 아브라함과 사라와 연결시켜 그렇게 읽은 것이다.
John Oswalt는 바위가 아브라함이고 구덩이가 사라라고 한 해석을 Calvin이 반대했다고 했다(Oswalt, 334). 그러나 Calvin이 반대한 것은 아브라함의 강한 믿음 때문에 아브라함을 바위라고 불렀다는 해석이다. 또 반대로 아브라함이 나이가 들어 다 닳아버린 바위라고 하고 사라는 불임이었기에 바위 구덩이라고 했다는 해석도 반대한 것이다. 그럴듯하고 은혜가 되는 해석이지만 본문의 문맥으로 볼 때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을 돌로 비유한 것이다. 높이 솟은 바위에서 떼어낸 커다란 돌이고 또 움푹 패인 곳에서 떼어낸 커다란 돌이라는 것이다.
2절을 보면 둘 다 자식을 낳을 수 없었던 아브라함과 사라를 비유한 것은 분명하다. 1절 뒷부분에서 바위와 구덩이를 보라고 했는데 2절에서 같은 말로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라고 했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대로 이삭을 주셨고 이스라엘은 그렇게 불가능 가운데서 가능하게 하신 기적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위와 구덩이를 보라고 한 다음에 같은 말로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라고 한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라고 한 이유는 "내가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에는 자식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은혜를 내려서 그 자손을 수없이 많게 하였다" 라는 말에 설명이 되어 있다. 자식이 없던 노 부부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그 자손을 수없이 많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기적이다. 그 기적에서 너희가 나왔다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3절은 바로 "주님께서 시온을 위로하신다.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신다" 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수많은 자손을 주신 하나님께서 폐허가 되어 버려진 시온을 위로하신다는 것이다. 폐허가 된 시온은 마치 돌을 떼어낸 채석장처럼 황폐한 곳이다. 하지만 시온은 그래도 채석장같지는 않다. 건물은 폐허가 되었지만 그 땅은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위로하시는가?"
"주님께서 그 광야를 에덴처럼 만드시고 그 사막을 주님의 동산처럼 만드실 때에" 라는 말에 나와있다. 주님께서 에덴 동산을 만드셨을 때는 주님께서 아담과 하와와 늘 친밀한 교제를 하며 지내셨다.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그 교제가 단절된 것이다. 유다의 죄 때문에 유다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시온은 파괴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이다. 땅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위로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기쁨과 즐거움이 깃들며, 감사의 찬송과 기쁜 노랫소리가 깃들 것이다" 라는 말에 담겨있다. 기쁨이 감사의 찬송으로 즐거움이 기쁜 노랫소리로 나타나는 것이다. 초점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다. 하나님께 등을 돌렸던 자녀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 품에 안기며 하나님께 감사 찬양과 기쁨의 노래를 들려 드리는 것이다.
초점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것이 4절에도 분명히 드러난다. 1절에서는 듣고 보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나에게 귀를 기울이라" 고 하셨다. 단순히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가 아버지의 입 가까이에 귀를 대고 은밀하게 말씀해 주시는 그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은 친밀한 관계가 회복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귀담아 들으라는 말은 "귀를 좀 빌려다오" 라는 뜻이다.
귀에 대고 몰래 알려 주시는 말씀은 "법은 나에게서 비롯되고" 이다. 법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토라 즉 모세오경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라는 뜻이다. 또 "나의 의는 만백성의 빛이 될 것이다" 라고 했다. 의란 역사서에 나타난 공정한 재판을 했던 기록들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말씀들을 만백성을 위한 빛으로 세우신다는 것이다.
5절에서 말하는 구원은 단순히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고" 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는 일이 가까이 와 있다는 뜻이다. 또 "나의 구원이 이미 나타났으니" 라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미 하나님에게서 나갔다는 뜻이다. "나의 능력으로 뭇 백성을 재판하겠다" 라는 말은 하나님의 팔로 사람들을 재판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인 토라와 현명한 재판 기록인 역사서들을 주셨으니 이제 그 말씀에 따라 그 팔로 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이 재판은 단순히 유죄와 무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벌을 주고 상을 주는 것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섬들이 나를 우러러 바라보며 나의 능력(팔)을 의지할 것이다(기다릴 것이다)" 라는 말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멀리 땅 끝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재판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6절은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 보아라 그리고 땅을 내려다 보아라" 라고 했다. 왜 보라고 하는가? 하늘은 사라지고 땅도 옷처럼 다 헤어진다는 것이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다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하고 하나님의 의는 꺾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늘이 없어지고 땅이 다 닳아 없어진다해도 하나님의 구원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7절은 다시 들으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젠 귓속말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소리로 선포하시는 것이다. "의를 아는 사람들아, 마음 속에 내 율법을 간직한 사람들아" 들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알 뿐 아니라 그 율법을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한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것이다. 그 내용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비방하는 것에 놀라지 말아라" 라는 것이다. 비난이란 책망한다는 뜻이다. 또 비방이란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 댄다는 말로 책망보다 훨씬 나쁜 말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간직하고 살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책망을 듣고 심한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 책망을 두려워 말고 욕을 들어도 놀라지 말아야 하는지 그 내용이 8절에 나온다. "좀이 옷을 먹듯 그들을 먹을 것이며 벌레가 양털을 먹듯이 그들을 먹을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러한 악인들은 모두 다 멸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방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어서 "그러나 나의 의는 영원하며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칠 것이다" 라고 했다. 하나님의 의로운 재판은 영원히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것은 모든 세대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구원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신다.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게 하시고 가까이에 두시며 지켜 주신다. 그 구원은 영원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도 참고 견디며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 길이 구원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