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1:17-23 예루살렘에게 진노의 잔을 마시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이제 하나님은 그 잔을 거두어 그 대적들에게 마시게 하고 예루살렘을 남은 자들을 통해 회복시키시겠다 하신다.
하: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보자.
이전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잊으신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은 것이라 했다. 풀 같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기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도 보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그 손은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제 오늘 말씀은 고통의 잔을 다 마셨고 주께서 그 잔을 거두었으며 이제 회복될 것을 말씀하신다.
9절에서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깨우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제 17절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깨우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런데 원어는 "네 스스로 일어나라! 네 스스로 일어나라!" 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시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잠들어서 누워있는 것이 아니고 대적들에게 공격을 받고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이다. 이사야는 이러한 모습을 진노의 잔을 바닥까지 다
들이마셨다고 표현했다. 진노의 잔을 마시고 하나님의 진노에 취해서 쓰러져 있는 셈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 진노를 거두셨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깨어 일어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18절은 "네가 낳은 모든 아들 가운데 너를 인도하여 줄 아들이 없을 것이며 네가 기른 모든 아들 가운데 너의 손을 이끌어 줄 아들이 없을 것이다" 라고 했다. 원어는 2인칭이 아닌 3인칭이다. 그녀가 낳은 아들과 기른 아들들이 예루살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고 제자리에 바로 앉도록 인도해 줄 이가 없다고 예루살렘이 처한 상황을 설명한 말이다. 그녀가 낳은 자녀들이 다
죽었거나 그들도 모두 다 쓰러져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17절에서 스스로 일어나라고 했지만 예루살렘은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상태이다. 게다가 자신을 일으켜 줄 자녀들도 죽었거나 다 쓰러져 있는 상태이다. 도움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상태이다. 18절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루살렘이 처한 상황을 설명한 말이다. 누가 그녀를 일으켜 줄 것인가? 오직 하나님 뿐이다.
새번역 19절은 "전쟁으로 땅은 황폐해지고 백성은 굶주려 죽었다" 라는 것이 두가지 재난이라고 했다. "폐허와 파괴 기근과 칼" 이란 말을 가지고 두가지 재난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그 백성은 굶어 죽은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두가지 재난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 47:9절에도 똑 같은 구절이 나오는데 47:9절에는 자식을 잃는것과 과부가 되는 것이 두가지 재난이라고 했다.
18절에서 일으켜 줄 아들이 없다고 한 것은 예루살렘이 과부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남편이 있다면 남편이 먼저 일으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도 없는데다 자녀들도 죽었고 지금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섣불리 해석하는 것보다는 비유로 말하고 있으니 두가지 재난도 자식을 잃고 남편까지 잃은 비유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폐허와 파괴는 성벽과 건물들이 파괴된 모습이고 기근과 칼은 그 성의 주민들이 굶어죽고 적들의 칼에 찔려 죽은 것을 나타낸다. 그러니 누가 예루살렘을 위로하겠느냐는 것이다. 답은 아무도 없다. 오직 하나님 뿐이다.
20절은 예루살렘의 자녀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비유로 설명한 것이다. 원어에서는 먼저 "네 아들들은 지쳐 쓰러져 있다" 는 말이 먼저 나온다. 어디에? 파괴되어 폐허가 된 예루살렘의 거리 모퉁이마다 지쳐서 쓰러져 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그물에 걸린 영양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물에 걸린 영양이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완전히 탈진되어 쓰러진 모습으로 비유한 것이다. 그것은 "주님의 진노와 책망을 하도 많이 받아서" 그렇다라고 이어서 설명을 했다. 원어는 "주님의 진노의 잔 한가득" 이라는 뜻이다. 그 독한 것을 다 마시고 쓰러져 있다는 것이다. 그 진노의 잔은 하나님의 책망이다. 파괴되고 불타는 예루살렘의 거리 모퉁이마다 예루살렘의 아들들이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그림이다.
원어에서 21절은 "이 말을 들으라" 는 말로 시작한다. 고통을 받고 있는 예루살렘에게 네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하나님의 말을 들어보라는 것이다. 이어서 "마치 포도주라도 마신듯 비틀거리는 자야" 라고 했는데 원어는 "취했지만 포도주로 취한 것이 아니다" 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은 포도주에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취했다는 것이다.
22절은 "너의 주 그의 백성을 지키려고 싸우는 너의 하나님" 이란 말을 잘 봐야 한다. "너의 주" 라는 말은 "너의 주인들"이라는 뜻으로 여러 명의 주인들이란 뜻이다. 이는 흔히 인간인 남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앞에서 자식들도 다 잃고 과부가 되었다 라고 한 말과 연결해서 하는 말이다. 그동안 음란한 예루살렘은 호세아에 나오는 고멜처럼 수많은 남편들 사이에서 음란하게 살았다. 이제 그 남편들은 다 죽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 남편들이라는 말 다음에 "주 너의 하나님" 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제 예루살렘의 남편들은 오직 한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원어는 "너의 주인들, 곧 너의 하나님 주님" 이라고 한 것이다.
그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보라! 내가 너의 손에서 비틀거리게 하는 그 잔 곧 나의 진노의 잔을 거두었으니 다시는 네가 그것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이다. 예루살렘을 쓰러지게 한 분은 대적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끊임없이 우상숭배를 하며 한결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 예루살렘을 깨닫게 하시려고 징계하신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그 진노의 잔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23절은 이제 예루살렘이 마시던 그 진노의 잔은 예루살렘을 괴롭힌 자들 손에 쥐어주신다고 했다. "그들은 바로 너에게 '엎드려라 우리가 딛고 건너가겠다' 하고 말한 자들이다" 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예루살렘의 등을 밟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빌론을 사용하셔서 예루살렘을 징계하셨다. 이제 하나님은 페르샤의 고레스를 사용하셔서 바빌론을 징계하신다.
오늘 말씀 17절에서 스스로 깨어 일어나라고 하신 것은 예루살렘이 스스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을 짓밟은 이웃 나라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라는 것이다. 그렇게 심판하신 뒤에 하나님은 남아있는 신실한 자들을 회복시키신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줄로 생각하는 교만한 나라들은 하나님께서 벌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세상 것을 함께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남편을 여럿 둔 예루살렘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도 다른 것을 의지한 것을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쓰러진 우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일으켜 주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스스로 선줄로 생각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