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2;1-6 하나님은 예루살렘에게 스스로 먼지를 털고 일어나서 스스로 목에 매인 사슬을 풀고 존귀한 옷을 입고 존귀한 자리에 앉으라 하신다. 이러한 놀라운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임을 알라.
하: 존귀한 자리에 앉게 하시는 하나님
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존귀한 자리에 앉혀 주셨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자.
이전 말씀에서는 예루살렘에게 깨어나라고 부르며 예루살렘에게 진노의 잔을 마시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이제 하나님은 그 잔을 거두어 그 대적들에게 마시게 하고 예루살렘을 남은 자들을 통해 회복시키시겠다 하신다고 했다. 오늘 말씀도 역시 "깨어라! 깨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전 말씀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있던 상태에서 스스로 깨어나라고 부른 것이지만 오늘 말씀은 회복된 예루살렘이 아직도 자고 있기에 깨우면서 이제 고귀한 왕비의 옷으로 단장시키기 위해 깨운 것이다.
1절의 "깨어라" 라는 말은 51:9절과 똑같다. 그러나 51:9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을 깨운 것이지만 이제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깨우는 모습이다. 51:17절에서는 "스스로 깨어나라! 스스로 깨어나라!" 라고 했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깨어라! 깨어라!" 라고 한 뒤 "힘을 내어라" 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일어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스스로 일어나고 스스로 힘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일어나 힘을 내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이제 다시는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너에게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라는 것이다. 할례받지 않은 자는 이방인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어서 부정한 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에는 영적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들만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이 완전히 거룩하게 회복될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성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 골로새서 2:11절에 보면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바울은 육신의 할례를 손으로 만든 우상에 비유하며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것을 말하고 있다.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백성들만 새예루살렘에 들어오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1절에서는 누워있던 예루살렘이 일어나 땅바닥에 앉았다. 이제 1절은 그 땅바닥에서 먼지를 털고 일어나 보좌에 앉으라는 것이다. 1절에서도 스스로 힘을 내라고 했는데 역시 2절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스스로 먼지를 털고 일어서서 보좌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또 "포로된 딸 시온아 너의 목에서 사슬을 풀어 내어라" 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에 매인 사슬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포로이기에 땅바닥에 앉았던 시온이었는데 하나님께서 풀어주셨으니 이제 먼지를 털고 일어나 목에 매인 사슬도 풀고 아름다운 왕비의 옷을 입고 보좌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순종하여 스스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저절로 움직여지는 로보트가 아니다.
3절은 "너희가 값없이 팔려 갔으니 돈을 내지 않고 속량될 것이다" 라고 했다. 시온은 자신의 죄 때문에 잡혀간 것이지 하나님께서 팔아 먹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과 시온 사이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시온의 값을 받아야 할 어떤 존재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과 시온의 직접적인 관계의 문제일 뿐이다. 하나님 명령으로 시온을 잡아 넣으신 것이고 이제 하나님 명령하시니 석방된다는 것이다. 시온은 잡혀가 있을 때도 하나님의 소유였고 이제 석방된 후에도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온의 소유권을 어느 누구에게도 넘긴 적이 없다는 것이다.
4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연결된다. 왜 값없이 팔려갔으니 돈을 내지 않고 석방되는가 하면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처음에는 이집트에 잠시 머물러 살려고 내려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앗시리아는 아무 까닭도 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로잡아 강제로 이주시켜 노예로 부렸다는 뜻이다. 이것은 5절에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을 설명하기 위한 예를 든 것이다.
5절은 바빌로니아에서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나의 백성이 까닭도 없이 여기에 사로잡혀 왔고"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바빌로니아에게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그 백성들을 징계하셔서 깨닫게 하시려고 잡혀가게 하신 것이다. 바빌로니아가 잘해서도 아니고 어떤 대가를 지불한 것도 아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그 지배자들은 그들을 조롱한다고 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다는 것이다.
6절은 "그러므로" 라는 말이 이끄는 두개의 문장으로 되어있다. 첫번째 "그러므로" 가 이끄는 말은 "반드시 나의 백성이 나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다. 이는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본 것과 연관된 말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자비와 신실하심이 그 백성들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 "그러므로" 가 이끄는 말은 "그날이 오면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과 내가 그들에게 말한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스스로 경험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면 그 다음 단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죄의 노예로 사슬에 매여 땅바닥에 앉던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석방시켜 주시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의 옷을 입혀 주시며 하나님의 곁의 귀한 자리에 앉게 하셨다. 우리가 고난을 겪는 것과 우리를 고난에서 건져 주시는 것도 모두 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처음에는 놀라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 그러나 그 분을 깊이 알아가는 것은 그분이 하신 말씀을 통해서이다.
세상의 악한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배하고 핍박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권한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잠시 우리를 다스리지만 그들도 곧 사슬에 매여 땅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원히 존귀한 자리에 앉으며 아무도 다시는 우리를 종으로 삼지 못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과 말씀으로 날마다 친밀한 교제를 맺어야 한다. 그래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잘 알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