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7-8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담대한 마음이 있으니 차라리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
이전 말씀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몸을 준비하시면서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기에 마음이 담대하고 주님을 떠나 육체의 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며 차라리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바울이 말을 급히 잘라 생략한 이유는 바로 이어지는 말을 빨리 전하기 위해서 이다. 원어의 7절에서는 바로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고 말한다. 주님과 떨어져 살면서 곧 벌거벗게 될 것인데도 왜 불안하지 않은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그 이유는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보이는 것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 것과 믿는 것이 대조가 된다. 보는 것이란 눈으로 영광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확인하고 믿는 것이다. 이와 대조되는 믿는 것은 영광의 그리스도를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다. 이는 요한복음 20:29절의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신 말씀과도 같고 베드로전서 1:8절의 보지 못하나 사랑하는 자와도 같다.
신약성서에서 보는 것이라는 말은 외적 형태를 뜻하는 말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눈으로 보는 시야를 뜻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우리 눈으로 보고 있는 세상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 눈으로 보는 외적 형태를 뜻하는 말로 해석한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우리는 영광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보이는 형상을 보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는 것을 따라 사는 것의 반대말이 되는 것이다. 현실을 보면 그리스도와 딴 집에 살면서 육체 가운데 살고 있지만 하나도 두려워하거나 근심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믿음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계약서로 주셨기 때문에 하나도 근심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이미 성령을 계약서로 주셨는데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게 해달라고 한다면 그것은 믿음의 반대인 불신이다.
믿음으로 라는 말은 원어에서 믿음을 통하여 라는 뜻이다. 대부분 통하여 라는 말은 수단이나 경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여기서 믿음을 통하여 라는 말이 믿음을 도구로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존재의 환경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눈으로 보고 나서야 믿는 영역 안에서 살지 않고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이라는 영역 안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현재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은 환난과 핍박이고 고된 순례자의 삶일 것이다. 눈으로 보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힘들고 절망적인 것뿐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주님과 완전히 분리된 채 다른 영역에서 살아가고 있고 재림시 영원한 몸을 입기까지는 벌거벗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은 분명히 주님 재림시 주님을 직접 만나고 완전한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5:7절이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긴장을 보여준다며 영원한 하늘의 집을 향해 가는 순례자의 삶의 방식을 나타낸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성령의 보증만 믿고 가지만 고린도전서 13:12절에서 말한 것처럼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다.
그래서 항상 담대하게 확신하며 산다고 8절에서 말하고 있다. 담대하다는 말은 3-6절에서 벌거벗은 몸이라는 그림과 연결해서 읽어야 하는 말이다. 이 낡은 누더기 같은 몸을 떠나서 주와 함께 살기를 훨씬 더 기뻐한다는 것이다. 몸을 떠난다는 말은 육체적 죽음을 뜻한다. 이는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뜻이다. 몸을 떠나면 주님과 함께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젠 새로운 몸을 입기 전에 벌거벗게 된다해도 하나도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이라는 계약서를 미리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죽는다면 주님과 함께 살게 되는 것이기에 육신을 입고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좋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죽은 뒤에 무의식 상태를 거친 후 나중에 재림시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있게 된다고 하지 않는다. 몸을 떠나면 즉시 주님과 함께 살게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몸을 떠나면 그 중간 상태의 영혼이 수면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즉시 함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과 같은 영광의 몸은 재림시에 받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미 성령을 영원한 몸을 주겠다는 증명서로 주셨으니 전혀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더러운 옷을 입은 노숙자였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를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옷을 벗어버리라고 하면 불안해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미 옷을 사다가 옷장에 넣어놓았다며 열쇠까지 준다면 불안해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새집에 입주할 수 있는 증명서이고 새 옷이 담긴 옷장 열쇠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도 전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