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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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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Word

고린도후서 5:9-10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라

빛이 새어 나오는 질그릇 · 고린도후서 4장

2026. 10. 21. · 안정섭 목사 · 고린도후서 5장 강해 설교

고린도후서 5:9-10 우리는 몸을 떠나든지 머물러 있든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야하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선한 일이나 가치없는 모든 일에 대해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전 말씀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담대한 마음이 있으니 차라리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는 몸을 떠나든지 머물러 있든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려는 것이라며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고 하는 내용이다. 온다

9절은 "그러므로 또한"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5:1-8절에 나온 내용을 어떻게 실천할지 결론을 내리는 부분이다. 바울은 5:1-8절에서 죽음 이후 주님과 함께 있을 소망을 말했다. 그래서 "그러므로 또한" 이라고 말하며 사나 죽으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말하는 것이다.

원어에서는 "그러므로 또한" 이라는 말 다음에 야망을 갖고 있다는 말로 이어간다. 개역은 "힘쓰노라"로 번역하고 새번역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라고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바울의 편지들에서만 세번이 나오는 말이기에 바울만의 독특한 표현이다(롬 15:20; 살전 4:11). 이 말의 본래 사전적인 의미는 명예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본래 명예를 추구한다는 말이지만 목표를 삼는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명예를 얻으려고 온 힘을 다해 애를 쓰는 모습이기에 목표를 삼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바울이 얻으려는 명예는 세상 명예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인정을 받는 명예이다. 당시 세상의 명예는 왕이 주는 작위였겠지만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몸 안에 머물러 살고 있든지는 현재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생활을 뜻한다. 반대로 몸을 떠나서 산다는 말은 죽음 이후의 상태를 뜻한다. 이 표현에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동안이나 죽은 이후가 나란히 놓여있기에 죽은 이후에도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은 뒤에도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행위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수사학적 진술일 뿐이다. 이는 마치 하수영이 노래한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것과도 같다고 본다. 이러한 노래 가사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말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진심으로 아내만을 사랑한다는 뜻인 것이다. 바울이 살든지 죽든지 라고 말한 그 의미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최선을 다해 주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표현을 강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의 영원한 몸을 보증을 해주셨기 때문에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 있든지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 드리길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목적이다. 우리 삶의 목적은 영원한 몸을 입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몸을 입는다는 것은 이미 확정되었고 분명한 계약서까지 우리 안에 있으니 우리는 이제 온 힘 다해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10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하며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타나야 한다는 말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법정에 출두해야 한다는 뜻만이 아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나고 밝혀진다는 뜻이다. 이는 히브리서 4:12-13절에서 마음 속의 생각과 의도까지 다 밝혀내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벌거숭이처럼 드러나 있다는 표현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재판장이 되셔서 재판하시는 그 하늘나라의 법정에 우리는 출두하면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의 모든 숨겨진 것들이 환히 밝혀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에 앞에서 환히 밝혀져야 한다고 했지만 모든 믿는 자들이 집단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 심판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어서 그 결과 각 사람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그가 행한 모든 일을 따라 받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몸으로 행한 일이란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행한 것을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라는 표현에서 악한 일이란 가치없는 일이라는 뜻이지 악한 일이 아니다. Harris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결정되는 것은 신분이 아니라 보상이라고 말한다(Harris, NIGTC. 408-09). 이는 믿는 자가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온 방향을 말하는 것이고 그 동인 실수한 것도 있고 잘한 것도 있을텐데 그 모든 것을 밝혀 보상하신다는 뜻인 것이다.

따라서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이란 착한 일 많이 했나 안했나가 아니다. 선한 일 악한 일이란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는가 아닌가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가치있는 일을 얼마나 했는가 영원한 가치가 없는 일을 얼마나 했는가를 평가하시는 것이다. 행한대로 받는다는 것은 행한대로 상을 받고 벌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상을 받기는 받는데 그 행한 일의 가치에 따라 서로 다른 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10-15절에 이것이 분명히 나와 있다. 금이나 은이나 대리석으로 집을 지은 사람과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은 사람이 나온다. 금이나 은이나 대리석은 불에 타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고 나무나 풀이나 짚은 금방 타 없어질 세상의 가치와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육신이라는 텐트를 입고 살 동안 모든 성도들은 각자 수고를 해서 건물을 지었다. 그 준공검사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신다는 것이다. 그 심판은 불로 태워보는 것이다. 변함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지혜를 위해 수고한 사람은 그 수고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지만 세상의 지혜로 수고한 사람들은 홀랑 타버리고 남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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