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편은 베냐민 사람 구시가 다윗에 대해 거짓 고소한 말을 듣고 부른 노래라고 한다. 구시의 거짓 고소 때문에 모든 베냐민 사람들이 다윗의 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7편은 사냥꾼에게 쫓기는 그림으로 시작한다. 아주 위급한 상황에 있기에 구원해 달라는 아주 다급한 호소로 시작하는 것이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재판정에 오르셔서 공정한 재판을 해 달라 간청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편 기록자의 요구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심판자로 등장한다. 재판관이 아니라 전사로 등장하셔서 공격할 준비를 하시기 때문이다. 시편 7편의 재판은 일반 법정이 아니라 위대한 전사이신 왕이 직접 벌을 내리시는 군사법정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께로 피신하여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1절에서 시편 기록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며 주께 피하고 있다. 1절에서 시편 기록자가 대적들에게 쫓기는 장면을 세개의 동사로 마치 헐리우드 영화의 추격장면처럼 묘사하고 있다. 첫번째는 주께 피한다는 말이다. 이는 쫓기고 있지만 아직은 거리가 떨어져 있는 장면이다. 이어서 두번째로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는다. 이는 정신없이 달아나는데 이제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잡힐 위기에 있는 모습이다. 세번째는 개역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원어에는 1절 끝에 건져달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이미 대적들의 손에 잡힌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가 채어가듯 하나님의 손으로 확 낚아 채 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건져 달라는 말이다.
그러나 2절을 보면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잡힌 상태에서 적들에게 공격 당하는 모습을 사자가 잡은 먹이를 물어 뜯어 찢고 뜯는 모습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유라는 것을 잊지 말라. 원어에서 시편 기록자는 자신의 영혼이 찢기고 뜯긴다 했다. 찢고 뜯는다는 말은 두개의 독립된 동사이다. 사자가 아직 살아있는 사냥감을 입으로 물어 찢는 것이다. 계속 물어 찢다보니 마침내 다리 한쪽이 조각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그것이 뜯는 것이다. 시편 기록자는 대적들에게 잡혀 만신창이가 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계속 살려 달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말이다. 말로 이간질 시키고 영혼을 발기발기 찢어놓고 죽인다. 이러한 강력한 무기로 시편 기록자를 죽이고 있는 모습을 사냥감을 추격하여 잡아 사자처럼 물어 뜯고 갈기갈기 찢어내고 있는 모습으로 그림처럼 묘사한 것이다. 아직 한쪽 다리나 팔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피해를 입었지만 숨통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더욱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3-5절은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결백함을 호소하고 있다. 1절의 여호와 하나님 이란 말은 건져 달라는 호소였지만 이제 3절의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기 위해 부르는 말이다. 세개의 “만일 내가” 라는 말로 시작하는 결백호소의 퍼레이드가 이어지지만 4절의 “만일 내가” 다음에는 접속사로 연결되는 중문이 나오기 때문에 사실상 네개의 “만일 내가” 가 이어지는 셈이다.
먼저 3절의 첫번째 “만일 내가” 는 “이런 일을 행했다면” 이다. 이런 일이 무엇인지 나와있지 않지만 이는 악인들이 시편 기록자를 거짓 고소한 내용이다. 절대로 이런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일 내가 이런 일을 행했다면” 이라고 결백을 호소한 것이다.
두번째 “만일 내가” 는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이다. 이는 고소한 내용 이외에도 다른 불의한 일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행했다면 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시편 기록자는 대적들이 고소한 내용은 물론이고 그 밖의 어떤 불의한 일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3절에서는 개인적인 관계에 있어서 율법에 어긋나는 어떤 행동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세번째 “만일 내가” 다음에 나오는 말은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이다. 원어는 샬롬을 악으로 갚았거나 라는 말이다. 샬롬이란 서로 평화의 언약을 맺은 동맹상대를 말한다. 만일 왕인 다윗이 평화조약을 맺은 상대에게 악으로 갚았다면 이라는 말이다. 네번째는 접속사로 이어지는데 “대적에게서 까닭없이 빼앗았거나” 이다. 이것도 역시 왕인 다윗이 적국을 아무 까닭없이 약탈했다면 이라는 뜻이다. 다윗은 개인간의 도의 뿐 아니라 국가간의 도의도 분명히 지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만일 내가” 시리즈는 사자에게 잡혀 숨통이 끊어지지 직전의 상황과도 같은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결백을 외친 것이다.
5절에서는 만약 이 네가지 악들 중에 하나라도 자신이 행했다면 자신을 추격하는 적들이 자신을 덮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적들이 자신을 덮치는 장면을 다시 네 단계로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다. 첫째 대적들이 자신의 영혼을 추격하는 것이다. 개역에는 ‘쫓아’ 라고 되어있다. 둘째는 대적들이 자신의 영혼을 완전히 추격하여 덮치는 모습이다. 개역에는 ‘잡아’ 라고 되어있다. 셋째는 시편 기록자의 생명을 땅에 짓밟는다. 이는 발로 목을 짓밟아 죽이는 모습이다. 마지막에는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라고 했다. 이는 다윗의 영광이 시체가 되어 먼지 속에 던져진 모습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러한 시체와 쓰레기들을 버리는 곳에 버리면 기후가 건조하기 때문에 햇빛과 열과 미생물들에 의해 분해되어서도 먼지처럼 흩날리게 된다. 그러한 먼지가 가득한 쓰레기장에 버려져서 아예 터잡고 계속 버려져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결백하지 않다면 완전히 멸망해도 좋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윗은 결백하기에 이제 하나님께 부탁한다. 6-9절은 재판정의 그림과 전쟁터의 그림이 섞여있다. 따라서 전쟁터에서 왕이 직접 즉결 처분하는 모습이다. 6절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진노로 일어나시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콧김으로 일어나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활동하지 않고 계신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만약 앉아 계시다면 진노의 콧김을 품으며 일어나 달라는 것이다. 일어난 다음에 해 주실 일은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이다. 이는 진노의 콧김을 품으며 일어나신 하나님께서 창이나 칼을 높이 쳐들고 고함을 치는 그림이다. 또 “나를 위하여 깨소서” 라는 말은 만약 주무시고 계시다면 잠에서 깨어 나시라는 부탁이다. 이어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라고 했다. 이미 자신을 위해 심판을 약속하지 않으셨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7절에서 민족들의 모임이 주님을 빙 둘러싸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는 재판정인데 그 자리로 돌아와 달라는 것이다.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이 둘러싼 그 한가운데 법정으로 돌아오셔서 좌정해 달라는 부탁이다.
이렇게 재판석에 좌정해 달라고 한 것은 대적들을 심판해 달라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윗 자신을 재판해 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결백을 밝혀 주시면 자신을 거짓 고소한 대적들이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 첫번째는 나의 의를 따라 심판해 달라는 것이다. 시편 기록자의 의란 완전한 의가 아니고 대적들이 고소한 내용에 대해서 옳다는 뜻이다. 또 나의 성실함을 따라 라는 말은 항상 변함없이 진실하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은 항상 변함없이 하나님만 따르고 사랑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와 진실함을 증명해 달라고 한 뒤에 9절에서는 드디어 악인들의 악을 뿌리 뽑아 달라고 간구한다. 이는 악을 영원히 사라지게 해 달라는 뜻이다. 이는 기존에 존재하던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고 그 흔적조차도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을 나타내는 그림언어이다. 그 다음에는 완전히 사라진 악의 터 위에 의인들을 굳게 세워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낱낱이 살피는 분이라 했다. 양심이란 말은 원어에서 “콩팥들” 이란 말이다. 이는 히브리인들이 감정과 사랑이 머무는 곳이라고 믿었던 곳이다. 역시 건물을 세우는 그림언어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을 세우실 때 그 마음 속의 생각들과 마음들을 완전히 다 점검하시는 건축물 감리사가 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의인들의 속사람의 모든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살피신다는 것이다. 살피신다는 말은 잠언 17:3절에도 나오는데 “도가니는 은을 화덕은 금을 단련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신다” 라고 했다. 따라서 마음을 살피신다는 말은 단순히 자세히 보신다는 말이 아니고 금이나 은을 단련하여 순수한 금과 은만 골라내듯 우리의 마음과 모든 감정들까지 다 점검하여 속사람을 순수하게 만드신다는 뜻이다. 완벽한 건축물 감리사이신 하나님은 잘못 시공한 부분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잡아내어 고치게 만드신다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재판은 끝이 났다. 그래서 10절은 이제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라고 한 것이다. 원어는 내 방패는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 라는 말이다. 이젠 그림이 전쟁터의 그림으로 바뀐듯하다. 하지만 이는 앞선 재판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고대는 오늘날 처럼 삼권분립이 된 것이 아니고 재판과 형의 집행은 바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올바른 재판을 통해 대적들에게는 벌을 내리시고 시편 기록자는 방패로 안전하게 지켜 주신다는 뜻이다.
그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분” 이라고 했다. 구원하신다는 말은 전쟁터에서 대적의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9절에서 마음 속에 잘못 시공된 것들은 다 골라 버리고 재시공하여 완벽하게 순수한 마음만 남았다. 그래서 10절에서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자 구해 주신다는 것이다.
11-16절은 다시 재판의 그림이다. 하지만 재판정에서 전쟁터로 갔다가 다시 재판정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고대에는 전쟁터에서 전쟁에서 이기면 그 즉시 재판이 벌어졌고 그 자리에서 대적들을 쳐형시켰기 때문이다. 11절은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 이라고 한 것이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날마다 진노를 느끼시는 분이다. 날마다 진노를 느끼시기에 그 즉시 그 때 그 때마다 재판하여 즉결처분을 집행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날마다 진노를 느끼시며 날마다 형을 집행하시려 해도 힘이 없으면 할 수 없다. 오직 강한 자만이 악인을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12절은 하나님을 가공할 능력을 지닌 전사로 묘사한다. 칼을 갈고 활을 당기어 심판을 준비하신다 했다. 그 조건은 만일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 경우이다.
활을 겨눈다는 말은 9절의 굳게 세워 주신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기둥을 세우는 것이 집을 짓는 준비를 하는 것이라면 활 시위를 당기고 있는 것은 즉시 발사할 준비를 한 것이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볼 수 있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즉시 벌을 내려야 맞다. 그러나 하나님은 칼을 갈고 활시위를 당겨 놓고만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또 13절에서는 살상 무기를 준비하신다 했다. 살상 무기란 원래 사냥도구를 가리키는 말인데 악인들을 처형하는 도구이다. 역시 12절에서 나온 예비하심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어떻게 예비하시는가 하면 이번에는 화살 끝에 불을 붙이시면서 예비하신다. 활시위만 당기신 줄 알았더니 화살 끝에는 불도 붙어있다.
왜 그렇게 악인들을 심판하시는지 14절에 나옵니다. 14절은 원어에서 ‘보라!’ 라는 말로 시작된다. 이어서 임신과 출산에 관한 동사 세 개가 연결되어 나온다. 첫번째는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원어는 품었다는 말이다. 죄악이라는 말은 주로 우상숭배를 말한다. 악인들이 우상숭배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잔해를 잉태했다” 고 했는데 우상숭배가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 잔해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는 거짓을 출산한다 라고 했다. 첫번째 악은 우상숭배하는 마음을 속으로만 품고 있었다. 그것이 악한 행동으로 드러나고 마지막에 거짓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거짓말로 시편 기록자를 거짓 고소하여 죽이려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칼을 갈고 화살에 불을 붙여 활시위를 당겨 놓고 계시지만 이러한 악인들을 즉시 심판하시지는 않고 기다리신다. 그런데도 악인들은 저절로 망하는 모습이 15절에 나온다.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라고 했다. 웅덩이를 깊이 파고 그 흙도 다 퍼내고 표시 안나게 위장해 놓았다. 그러다가 실수로 자기들이 그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 함정은 사자 따위를 잡기 위해 판 함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앞에서는 다윗의 대적들이 사자처럼 자신을 말로 물어 뜯었지만 저들은 이제 자기들이 판 구덩이에 빠진 사자의 꼴이 되었다.
16절에는 그들의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라고 했다. 여기서 머리는 머리 전체를 말한다. 남의 목을 칼로 쳤는데 그 칼이 자기 머리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이는 수평 방향으로 칼날이 부메랑처럼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 “그의 포학은 자기 정수리로 돌아간다” 라고 했다. 정수리는 머리털로 덮고 있는 부분을 말한다. 이번에 돌아간다는 말은 원어에서 떨어진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자기들이 시편 기록자를 향해 화살을 쏘았는데 그 화살이 자기들의 정수리 위로 사정없이 떨어지는 그림이다.
17절은 이제 상황은 끝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그 내용은 먼저 여호와께 감사를 드리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재판 때문이다. 또 그 다음에는 악기로 연주하며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한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악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말이다. 거짓말로 중상모략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오늘 시편 7편에서도 베냐민 사람 구시가 거짓으로 모략해서 모든 베냐민 지파가 다윗을 적대시하고 공격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도 이런 상황에서 흔히 우리가 우리의 결백을 밝히려고 해명하려 하고 함께 맞서 싸우려 하기 쉽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시편 기록자는 먼저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기도했다. 또 대적을 고발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 앞에 호소했다. 그 다음에 자신이 직접 대적들을 벌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정하신 재판에 맡겼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준비하시지만 악인들은 결국 자기들의 거짓의 함정에 빠져 멸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적들은 대부분 교회 밖에 있지 않고 교회 안에 있다. 누구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직접 갚으려 하면 안된다고 오늘 시편 기록자는 말한다. 대신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결백을 밝히면서 억울함을 호소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정하신 재판에 완전히 맡겨야 한다고 가르친다. 절대로 스스로 악인들을 대적하여 이기려 하면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시편을 예수 그리스도에 비추어 재해석한다면 모략과 비방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며 예수 그리스도와 고난을 함께 받는 자들을 보호하시고 마지막 때 온 세계 만방이 모인 그 한 가운데에 재판관으로 오셔서 의인들은 그 분의 방패로 지켜 주시면서 악인들은 완전히 멸망시키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사진: Michelangelo & the Mumia Skin in Last Judg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