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편의 제목은 이 시편이 사무엘상 22장에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사울의 신하 도엑은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먹을 것도 주고 칼도 주었다고 사울에게 일러 바쳐서 제사장들과 그들의 성읍과 가축들까지 다 죽게 한 것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엑의 고발한 사건과 이 시편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기에 개인에 대한 예언적인 심판의 말씀이라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Tate, 88).
이 시편 전체에서 악인과 의인은 나무로 대비된다. 악인은 5절에서 큰 나무 같지만 넘어뜨리시고 끌어내서 산산조각을 낸 뒤 그 뿌리까지 뽑히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와 대비되는 의인은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감람나무의 그림이다. 이 시편을 통해 의인과 악인의 차이점을 알아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감람나무 같은 사람이 될지 알아 보도록 하자.
I. 고소 (1-4)
먼저 1-2절은 마치 검사가 피고를 세워놓고 고소하기 위해 그 지은 죄를 확인하는 질문과도 같은 것이다. 1절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용사”에게 질문하고 있다. 개역은 용사를 "강포한 자" 자라고 번역했지만 이 말 자체는 강한 자 또는 용사 라는 뜻이다. 사무엘상 22장이 이 시편의 배경이라면 용사란 도엑을 가리킬 것이다. 질문하는 사람은 먼저 용사에게 왜 악한 일을 자랑하는지 질문하고 있다. 새번역은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을 "너는 어찌하여 경건한 사람에게 저지른 악한 일을 쉬임없이 자랑하느냐?" 라고 번역했다.
이는 시리아역과 영어의 RSV의 번역을 따른 것이다. 히브리어는 자음만 있기에 한결같은 사랑을 뜻하는 "헤세드" 는 경건한 사람 이라는 뜻의 "하시드" 로 이해한 것이다. RSV와 새번역처럼 시리아역을 따라 번역하면 앞 뒤의 짝도 잘 맞고 도엑의 행동과도 잘 맞는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항상 있다" 라는 뜻인데 하나님은 항상 한결같은 사랑으로 참아 주시기 때문에 악한 네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 뿐이라는 뜻이다.
2절에서 시편 기록자는 악한 일을 한 용사를 가리켜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라고 했다. 이는 그 혀가 닥치는대로 산산히 부숴버리는 분쇄기와도 같다는 뜻이다. 그 부숴버리는 모습을 이어서 "날카로운 삭도와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라고 했다. 날카로운 칼로 사정없이 난도질하여 조각을 내는 그림이다. 새번역은 "속임수의 명수”라고 번역했다. 원어는 속임수의 일꾼이라는 뜻인데 속임수에 숙달된 전문 기술자라는 뜻이다.
3-4절은 앞에서 말한 질문들을 근거로 악인을 고소한다. 3절은 먼저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라고 했다. 선이란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뒤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할 때 쓴 말이다. 악이란 그 반대로 마귀가 즐기는 일이다. 마귀처럼 하와를 속여 죄를 짓고 멸망하게 하는 일이다. 본문에 나타난 악인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기 보다는 남을 해치는 악한 일을 하기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댓구는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이다. 의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로써 공정한 판단을 하는 말이고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는 말이다. 거짓이란 마귀에게서 나온 말로서 속여서 남을 해치는 말이다. 4절에서는 "간사한 혀여" 라고 했는데 속임수가 가득한 혀 라는 뜻이다. 이 혀는 맹수처럼 모든 것을 삼킨다는 것이다.
본문에 나타난 악인은 행동으로 마귀 짓을 할 뿐 아니라 말도 마귀가 하는 짓을 한다는 뜻이다. 악인이란 보는데서는 좋은 말을 하지만 돌아서서 입만 열만 남을 비방하고 흉을 보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 보는데서는 구제도 하고 헌금도 잘 하는 것 같지만 보지 않는 곳에서는 은밀히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악인의 악행은 행동보다는 말이 더 강조되어 있다. 말로 남을 비방하여 해치는 자들이 영원히 멸망할 자들이라는 것이다.
II. 심판의 선포(5-7)
5-7절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앞에서 악인이 잘하던 것은 악한 말과 남을 해치는 행위였다. 그러나 5절에서 이러한 자랑을 다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5절에서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큰 나무를 없애는 그림으로 단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먼저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라는 말에서 "멸하다" 라는 말은 구약에서 주로 우상을 찍어 넘어뜨리거나 우상의 신전을 무너뜨릴 때 쓰는 말이다. 우상을 찍어서 넘어 뜨리뜻 큰 나무의 밑둥을 도끼로 찍어 넘어뜨리는 장면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악인이라는 나무를 영원히 쓰러뜨린다는 것이다.
둘째는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라는 말은 새번역에서는 "끌어내어 갈기갈기 찢어서" 라고 번역했다. 악인은 나무처럼 영영히 쓰러져 있지만 아직도 장막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쓰러진 나무로 비유된 악인을 장막 밖으로 질질 끌어내서 작은 조각들로 완전히 부수어 버리는 모습이다. 미국에는 Wood Chipper라는 기계를 빌려다가 쓸 수 있다. 큰 나무를 베어 도막 도막 잘라서 그 기계에 넣으면 작은 조각으로 부수어 버리는 기계이다. 가지들에서 통나무까지 다 부수어 정원의 나무 밑에 뿌릴 수 있다.
쓰러진 악인을 끌어내는 장막이란 하나님의 성막을 뜻할 수도 있고 악인의 집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Psalm 78:60; Tate, 91). 전체 문맥으로 비추어 볼 때 악인을 하나님의 집 밖으로 끌어내어 완전히 멸망시킨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셋째는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라고 했다. 악인이라는 나무를 쓰러뜨린 뒤 완전히 부스러기로 만들었지만 아직 그 뿌리가 견고히 박혀 있기에 이번에는 그 뿌리를 그 살던 땅에서 완전히 뽑아 버리시는 그림이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기중기를 써서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는 그림이다. 악인의 마지막은 그 남은 뿌리까지도 완전히 뽑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2절에서 악인이 그 혀로 의인들을 잘게 부수어 버린 것과 똑같이 갚아 주시는 것이다. 앞에서 악인은 단지 칼날로 잘게 잘라버린 것이지만 하나님은 완전히 가루로 내시고 뿌리까지도 다 뽑아 버리셔서 그 악행을 갚아 주신다는 것이다.
6-7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장면을 구경하고 있던 의인들의 반응이다. 먼저 의인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두려움 마음을 가졌다 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신 것을 보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곧 사라졌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의인들의 편에 서셔서 악인들을 심판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우리를 계속 괴롭히고 학살하던 적들을 폭격하여 완전히 박살을 내는 장면과도 같다. 처음엔 두려워하지만 이내 기뻐하며 박수를 치는 것이다.
비웃음이라 되어 있는 말은 단순히 대적이 멸망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하게 떠들며 자기 힘을 자랑하며 의인들을 괴롭히던 사람의 처지를 갑자기 바꾸어 주신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다. 이는 의인들이 하나님과 함께 웃을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절대로 악인이 망해서 꼴 좋다 라며 고소하다고 하는 웃음이 아니다.
7절은 1-4절처럼 자신의 힘만 자랑하던 것에 대한 반대의 모습이다. 1절에서 용사로 불리던 사람이 이제 8절에서는 이 사람이라 했다. 이는 아무 힘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 사람의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지 않은 것이다. 5절에서 장막에서 끌어 내셨다고 했기에 이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던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에 이 사람이 피난처로 남은 것은 자신의 재산과 권력이다. 먼저 자신이 가진 많은 재산만을 의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 대신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것은 또한 자신의 폭력이다. "제 악으로 스스도 든든하게 하던 자라" 는 말은 2절에서 심한 악을 꾀한다는 말과도 같은 말이다. 남을 완전히 파괴하는 목재 분쇄기의 칼날과도 같은 것이다.
자신이 가진 재산과 권력을 휘두르며 남을 함부로 해치면서 이러한 재산과 권력이 자신들의 피난처라고 생각하며 자신은 안전하다고 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이 시편에 나온 악인과 같다. 자신의 재물과 힘을 자랑하며 의로운 사람들을 해치지만 하나님께서 저들을 완전하게 파괴하고 그 뿌리까지 완전히 뽑아 던지신다는 것이다.
III. 감사(8-10)
8-10절은 이제 의인의 편에 서 있던 시편 기록자가 드리는 감사의 내용이다. 시편 기록자는 자신의 재산과 폭력을 의지하던 악인과는 달리 하나님을 전적으로 하나님만 신뢰한다고 했다. 악인은 베어지고 하나님의 장막에서 질질 끌어내어지고 잘게 부수어지고 또 그 뿌리까지 완전히 뽑히는 나무에 비유했었다. 그러나 시편 기록자는 자신을 올리브 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그것도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올리브 나무이다. 그렇다면 시편 기록자는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올리브 나무와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항상 물과 양분을 공급해 주시고 적당히 가지치기를 해 주셔서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와도 같은 것이다.
올리브나무는 가장 오래 사는 나무의 상징이다. 나무가 늙어서 죽고나면 그 뿌리에서 다시 새싹들이 나와 다시 무성하게 자란다고 한다.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들이 다시 부활하는 모습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곡식은 가뭄이 들면 다 말라 죽지만 올리브 나무는 산비탈이나 자갈밭이나 어디에서나 잘 견디고 가뭄에도 말라 죽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중해 연안의 사람들은 올리브 나무가 자신들을 살린 생명의 나무라고 말을 한다.
올리브나무는 지중해 연안 사람들에게 그만큼 중요한 나무이다. 빵도 버터를 발라 먹기보다는 올리브유에 찍어서 먹는다. 올리브유는 음식으로도 쓰고 요리할 때 쓰기도 한다. 다른 종류의 지방분은 오래 보관할 수 없지만 올리브 오일은 항상 변함이 없어 오래 보관이 가능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상처에 바르는 약으로도 사용했고 화장품으로도 사용해왔다. 올리브 기름은 또한 등불을 밝히는데도 썼다. 이는 생명과 다산과 힘의 상징으로 쓰였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올리브나무와 같다는 것이다. 의인은 올리브 나무처럼 가뭄과 어려운 조건에도 견디며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1절에서 악인은 악행을 하면서도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한 것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이제 끝부분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만 의지하겠다고 했다. 1절에서 악인을 번성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즉 헤세드 때문이라 했다.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 때문인데도 악인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시편 기록자는 시편을 마무리 하면서 끝부분에서 자신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즉 헤세드를 영영히 의지한다고 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피하여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것이 하나님의 집에 있는 올리브 나무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의 재물과 힘을 의지하며 의인들을 말로 해치는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온 악인처럼 어리석은 사람이다.
9절은 이 시편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께 찬양드리며 다짐을 하고 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며 주님을 영원히 찬양한다 했다. 또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겠다고 했다. 주님의 이름을 의지한다는 말은 주님의 이름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가뭄에 견디는 올리브나무처럼 주님의 이름이 선포되길 기다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선하기 때문이다. 시편 기록자는 거룩한 자들 앞에서 하나님만 예배하고 하나님만 높이며 힘들 때에도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드러나길 기다리는 삶을 살겠다고 서약하는 것이다.
결론 및 적용
고대의 왕이나 귀족들은 대부분 강한 힘을 가진 용사들이다. 다윗도 용사였고 다윗의 측근이었던 장군들도 모두 용사들이었다. 이러한 용사들은 권력과 함께 많은 재물도 소유했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악인도 역시 재물과 권력을 함께 가졌던 강한 용사였다. 이 용사는 재물과 권력 뿐만 아니라 대단한 말솜씨까지도 지녔다. 그러나 그 혀로 의인들을 속이고 헐뜯고 비방하여 갈아 버리는 사람이었다. 오늘 말씀에 나온 악인은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 안에 있던 사람이면서 하나님 대신 재물과 자신의 힘을 의지한 사람이다.
오늘날 의인들 뿐만 아니라 악인들 역시 믿음의 공동체 안에 있다고 봐야 한다. 하나님을 아예 모르는 이방인들은 시편 기록자의 비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동체 안에 있는 악인과 의인은 둘 다 나무와 같다.
먼저 악인은 아주 웅장하고 거대한 나무같다. 많은 사람들의 박수 갈채를 받으며 부귀와 명예를 누린다. 이러한 자신들의 성공을 겉으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축복하셨다고 떠든다. 하지만 이들은 속으로는 자신들의 능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에 때가 되면 쓰러지고 끌려나가 산산히 부숴지고 뿌리채 뽑힌다.
반대로 의인은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빈약하고 보잘 것 없는 올리브 나무와 같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박수 쳐 주지도 않는다. 부귀영화도 명예도 없이 고생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의인들은 가뭄에 끝까지 견디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들을 맺는다.
하나님의 한결같은 헤세드의 사랑은 악인들에게나 의인들에게나 동일하게 미친다. 차이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의지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깨닫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길 기다리느냐의 차이이다. 우리가 그런 존재임을 안다면 지금 힘들더라도 시편 기록자 처럼 지난날 주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며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거룩한 성도들 앞에서 주님의 이름이 높이 드러날 날을 기다리며 고난을 견디며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