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0편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증인들을 불러 모아놓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재판하시는 장면이다. 과거에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시고 여러 차례 확인까지 하셨다. 그런데 그러한 언약을 지키지 않고 있기에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 지도자들을 하나님의 법정에 세우고 증인들 앞에서 그 죄를 묻는 내용이다.
먼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형식적인 제사를 드린다고 책망하셨다. 또한 그들의 지도자들은 본격적으로 계명을 어기는 악한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고 언약을 깬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찢어 버리신다고 경고하신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이 두 종류의 사람들 중에 어디에 해당하는지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하면 진정한 감사와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I. 불러 모으시는 하나님 (vv. 1-6)
1-6절은 온 세상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온다. 1절의 “해 돋는데부터 해지는데 까지 라는 말은 온 세상이라는 장소를 가리킬 수 있고(NIV, NLT) 온 종일이라는 시간을 가리킬 수도 있다 (LXX, WTT, ESV, NASB; Craigie and Tate, 365). 시간을 나타낸다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라는 뜻이다. 장소라면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뜻이다. 시편 113:3절에도 같은 표현이 나오는데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이 말은 구약에서 주로 장소를 나타낼 때 쓰였다. 그렇게 부르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을 재판하기 위해서 증인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2-3절은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2절은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라고 했다. 온 세상 위에 두루 비추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른 아침 해 뜨는 장엄한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온 세상을 비추시는 영광의 하나님이 아침 해가 뜨는 모습처럼 그렇게 온 세상에 임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3절에서 하나님은 해가 뜨는 것처럼 그렇게 조용조용 오시지 않으신다고 했다. 삼키는 불길을 앞세우고 사방에서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며 오신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엄청난 수의 불병거들이 흙먼지를 일으키서 사방에서 몰려오는 모습이다. 그 불병거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에 심키는 불길을 앞세우며 온다고 한 것이다. 이는 찬란히 빛나는 영광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압도적인 힘을 가지신 만군의 주시라는 뜻이다.
그렇게 오시는 목적이 4절에 나온다. 그 목적은 당신의 백성을 재판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위의 하늘과 아래의 땅을 증인으로 부르신 것이다. 신명기 32:1 절에서도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라고 했다.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들과 언약을 갱신할 때 썼던 말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언약을 맺은 백성들을 재판하려고 언약을 갱신할 때 불렀던 증인들을 다시 소집한 것이다.
5절은 재판을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피고로 법정에 세우는 모습이다.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라고 했다. 성도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한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또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라고 했다. 이는 동물을 둘로 갈라서 양쪽에 늘어놓고 그 사이를 지나가며 언약을 맺는 장면을 나타낸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는 또한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시고 신명기에서 다시 재계약을 맺은 그 백성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을 하나님의 법정에 피고로 세우라는 뜻이다.
6절은 먼저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라고 했다. 이는 마치 "재판관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방청객들은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라고 선포하는 장면과도 같다. 공의로운 재판관이 입장하신다고 하늘이 선포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라고 했다. 하나님 말고는 공의로운 재판관이 없다는 것이다. 공정한 재판을 하실 하나님께서 입장하시니 모두 일어서서 공정한 재판관님을 예를 갖추어 맞이하라는 것이다.
II.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의인들에게 주시는 경고 (7-15)
7-15절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하나님의 일반 백성들에게 경고하시는 내용이다. 7절에서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라고 했다.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이란 뜻이다. 너희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들으라는 것이다.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라는 말은 너희 죄를 모든 증인들 앞에 낱낱이 밝히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8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친 제물 자체를 가지고 책망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계속해서 빼먹지 않고 끊임없이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제사의 형식에 있어서는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재판관 앞에 일어선 사람들은 외형적으로는 거룩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 번제를 빠짐없이 드렸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잘했다는 칭찬은 아니다. 이는 겉으로만 형식을 잘 갖추어 하나님을 경배했다는 뜻이다.
9절에서는 이런 제물 다 필요없다고 하신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고 하셨다. 이는 진정한 감사가 담기지 않은 그런 형식적인 제사는 받지 않을 것이니 그만 드리라는 것이다. 10절에 보면 숲속의 모든 짐승과 산 언덕에 있는 모든 짐승들도 다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필요 없다는 것이다. 또 11절에서는 모든 새들과 들에 있는 모든 생물도 다 하나님 품에 있다고 하신다. 이는 온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 것이기에 먹을 것이 없어서 제물을 바치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2절에서 "내가 가령 주려도" 라는 말은 가정법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에 음식을 드실리가 없다. 그러나 "설사 하나님이 배고프다고 한다고 가정해도" 라는 뜻이다. 그런다고 해도 온 세상에 가득한 것이 모두 다 하나님 것이기에 사람들에게 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어 13절에서는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고 하신다. 역시 절대로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런 것 다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제사를 드리라고 할까? 그 이유가 14절에 나온다. 14절은 먼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로부터 감사하는 마음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사를 표현할 때는 말로만 하면 진실성이 없다. 감사를 전할 매개체가 필요한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내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주신 것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이다. 이는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과자를 사주고는 "아빠도 한 입만!" 하고 아이에게 입을 벌리는 것과도 같다. 이렇게 하나님께 자신의 소중한 것을 드림을 통해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또 이어서 "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라고 한 것이다.
사실 이렇게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서원한 것을 갚는 것만 하라 하셔도 그 백성들은 당연히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연히 받을 제물을 당연히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뭔가 더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15절에는 그렇게 감사를 표현한 다음에 재난을 만나면 재난의 날에 하나님을 부르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 진실되고 친밀한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면 거절하지 않고 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제물로 제사를 드리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가르치시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게 해서 계속 도와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백성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로운 사람들에게는 감사가 없다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담지도 않고 형식적으로 드리는 것을 책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약 거지라서 먹을 것이 없다면 감사가 없는 선물도 받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기에 그런 선물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그런 형식적인 제사는 자신들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거지 취급하는 것이다. 지금 시편 50편에서 하나님은 먼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러한 잘못을 먼저 책망하시는 것이다.
III. 악을 행하는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경고 (16-23)
앞부분에서는 감사없이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일반 백성들을 책망했다면 이제 16-23절에서는 그보다 더 나쁜 사악한 자들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이들은 놀랍게도 율법을 가르치는 제사장이나 율법학자들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다. 16절에서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었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대상으로 책망하신다는 증거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말로는 먼저 스스로 신실하다고 하는 믿는 자들을 책망한 뒤에 이어서 목회자나 신학자들을 향해 악인들이라고 대놓고 책망하시는 것과도 같다. 신실한 믿는 자들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형식적인 예배를 책망한 것이지만 이번에는 지도자들을 향해 대놓고 악인들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17절에서는 이런 자들이 말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라고 했다. 교훈이란 어린아이에게 가르치기 위해 매를 들고 훈련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뒤로 던진다는 말은 못된 십대의 청소년인 아들이 부모가 훈계할 때 비아냥 거리며 대들고 욕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부모가 훈계하고 가르칠 때 중얼거리고 욕하면서 그냥 흘려듣는 청소년과도 같다. 하나님께 대해서 그렇게 대드는 불량 청소년들 같은 자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18절에 보면 “도둑을 만나면 그와 친구가 되고 간음하는 자를 만나면 곧 그와 한패거리가 되었다.” 라고 했다. 이는 십계명의 제 7계명의 간음하지 말라와 8계명의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을 어기는 것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백성들 보지 않는데서 도둑질하고 몰래 간음하는 그러한 악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19절에는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라고 했다. 새번역은 "입으로는 악을 꾸며내고 혀로는 거짓을 지어내었다.” 라고 번역했다. 이는 십계명중 9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을 말한다. 이는 자기들의 악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꾸며내고 거짓 증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20절에서는 형제자매를 비방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거짓증거를 하다못해 심지어는 자기 형제자매들에게까지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21절에서는 이렇게 악한 일을 저질러도 하나님께서 잠잠하신 것이 하나님이 그들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악을 행해도 상관없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자기들과 똑같은 수준인줄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들을 호되게 꾸짖고 저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보이겠다는 것이다. 죄악에 대해 잠잠하신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결 같은 사랑으로 인내하시며 지켜 보고 계시는 것이다. 때가 되면 분명히 심판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22절에서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잊은 자들이라 책망하고 있다. 책망하는 목적은 깨닫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말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잊은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책망하는 목적은 깨달으라는 것이다. 깨닫지 못하면 내가 너희를 찢을 때에 구하여 줄 자가 없을까 두렵다 라고 했다.
이는 언약을 맺을 때 두조각으로 찢어놓은 짐승을 놓고 했던 말을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언약을 맺을 때 "누구든지 이 계약을 어기면 이 짐승처럼 되도 좋다" 라고 외치며 쪼개진 짐승 사이로 지나간다. 이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약속한대로 저들을 두 조각으로 찢으실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고는 실제로 찢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23절은 14절에 나온 감사를 다시 말하고 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라라"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재계약을 맺자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 이는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두번째 조건은 올바른 길을 걷는 것이다. 올바른 길이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명령을 그대로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는 악한 지도자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지도자들이 먼저 올바른 길로 가야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도 바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결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오늘 시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모습이다. 특별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는 신실한 성도들 중에는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며 감사를 드리는 경우가 많다.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빼놓지 않고 했고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스스로 경건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돈이 없어서 우리에게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리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물질적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로부터 진심이 담긴 감사를 받으시길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한 진실된 감사는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내려 놓음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헌금 많이 드렸다고 스스로 거룩하다고 착각하지 말라. 우리 마음에 진정한 감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또 물질을 드리는 것 없이 자신은 진정한 마음을 담아 감사 드린다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헌금 액수 자체가 그 사람의 경건의 지표는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드리는 헌금의 비율은 분명히 경건의 지표가 된다. 마태복음 6:21절과 누가복음 12:34절에는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 라고 되어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적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지독하게 아끼면서도 하나님께는 온 힘 다해 드린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좋은 집 좋은 차 명품들을 아낌없이 사면서 하나님께는 말로만 감사를 드린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면 명백한 사기이다. 하나님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이다. 따라서 헌금은 액수가 아니라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드리는 것이다. 이 시편에서 거룩한 자들을 책망하신 것도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담지 않고 습관적으로 드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감사하는 마음이 없이 형식적인 감사를 드리는 사람들보다 더 악한 사람들은 말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순종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물질적 탐욕을 따라 살기에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것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다. 자신의 성적 탐욕을 따라 살기에 몰래 간음을 일삼는 자들이다.
최고로 악한 죄인은 오늘 말씀에 19-20절에 나온 입으로 악을 꾸며내고 혀로 거짓을 지어내는 자들이다. 남의 허물을 들추어 내며 남의 말을 전하여 이간질 시키는 자들이 최고로 악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 안에 있는 형제 자매를 덮어주지 않고 계속 까발리고 이간질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 자신이 거룩해지고 높아지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악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찢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온 맘 다해 드리도록 하자. 말로만 거룩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삶으로 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자. 그래서 우리가 걸어가는 그 길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따라올 수 있도록 하자.
사진출처: Yvette T., I love my father, flicker. 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