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편에는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대적들과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는 시편 기록자가 대조된다. 그러나 멸망의 길을 가는 대적들이 멸망할 것이기에 기뻐하는 모습이 아니다. 저들은 시편 기록자가 절대로 본받지 말고 따르지 말아야 할 모델로 자신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인 그림은 주께로 피하고 주를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보호막이 되어 주셔서 지켜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영원히 기뻐하는 모습이다.
먼저 1-3절은 시편 기록자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를 그리는 장면이다. 여기서 세가지 기도하는 모습이 나온다. 시편 기록자가 드리는 기도는 첫번째로 1절 앞부분에서는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이다. 말이란 분명히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똑똑히 말하는 것이다. 맨처음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 분명한 목소리로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귀를 기울여 달라는 말은 가까이 오셔서 귀 좀 빌려 주시고 자기의 말을 들어 달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개역개정에서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이다. 개역개정은 철저히 의역을 해서 원어가 완전히 뭉개져 버렸다. 원어는 새번역처럼 “나의 신음소리를 듣고 분간해 주십시오” 이다. 신음소리란 알아 들을 수 없게 중얼거리는 소리이다. 오랫동안 분명한 목소리로 기도하다가 지쳐 이젠 신음소리처럼 중얼거릴 뿐이다. 그렇지만 그 신음소리를 듣고도 무슨 말인지 분간하고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세번째 기도 단계는 2절에 나오는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이다. 소리내어 기도하다가 지쳐 신음소리로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없자 이번에는 울부짖는 것이다. 부르짖는 소리는 말이 아니라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소리내 울다가 또 ‘흑, 흑’ 거리며 흐느껴 우는 모습이다. 이 울음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 달라는 것이다. 흐느껴 울고 소리 내서 울면서 하는 말은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이다. 이러한 기도하는 모습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면 이 시편 기록자의 감정을 읽어내는데 완전히 실패한다.
나의 왕이란 나와 언약을 맺으신 왕이라는 뜻이다. 고대 근동에서 족장들이나 작은 나라의 왕들은 큰 나라의 왕과 언약을 맺고 그 왕의 보호를 받았다. 족장들이나 작은 나라의 왕들은 을이고 큰 나라의 왕은 갑이다. 이 경우 을은 갑에게 존경과 물질을 바치고 갑은 을을 책임지고 보호를 해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 왕들과는 달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셔서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하셨다. 아무 존재감도 없던 다윗을 인도하셔서 왕이 되게 하시고 다윗과 언약을 맺었다. 이처럼 돌보신 분이 또 책임지고 지켜 주시겠다는 것이다.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뿐이다.
또 나의 하나님이란 모든 피조물의 궁극적 주인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키는 고백이다. 먼저 나와 언약을 맺으시고 구원을 약속하신 왕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온 세상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나중의 고백이다. 다윗만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인가?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관계이다.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자녀 삼아 주시고는 그 아들을 믿으면 자녀 삼아 주시고 끝까지 지켜 주신다는 언약을 우리도 맺었다. 그분은 나의 왕이시다. 또 그분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나의 하나님이다.
3절에서는 이분이 이 분이 누구신지 그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 이다. 이는 하나님의 고유명사이다. 시편 기록자는 이른 아침에 자신의 왕이시고 자신의 하나님이시며 그 이름이 여호와이신 분께 기도 드리고 있다. 이 정성을 생각해서 들어달라는 것이다. 3절에서 “나의 소리” 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말로 신음소리로 통곡소리로 하던 모든 기도를 통칭하는 말이다. 또 귀좀 빌려달라, 잘 분간해 달라, 귀담아 들어달라는 세가지 동사를 통칭해서 ‘샤마’ 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샤마는 집중해서 잘 들어 달라는 것이다.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라는 말에서 “기도하고” 라는 말은 물건을 전시해 놓는다는 말이다. 제사장이 아침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든 것을 펼쳐 놓고 제물까지 놓는 모습을 나타내는 그림 언어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 시편이 아침 제사를 드릴 때 부른 찬송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편 기록자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늘어놓는 기도를 희생제사를 준비하는 그림에 비유해서 말한 시적인 표현일 뿐이다. 이른 아침에 자신이 말로 신음소리로 통곡으로 하나님의 제단 앞에 늘어놓듯 준비한 이 기도를 기쁘게 받아 주시고 응답해 달라는 것이다. 실제 제사와 시편 기록자의 기도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고 응답해 주시길 바라는 것이다.
시편 기록자가 이렇게 자신의 왕 자신의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듯 정성껏 온 맘과 온 힘 다해 기도를 드렸다고 말한 뒤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4절을 이어간다. 자신이 왜 제사를 준비하고 드리듯 이렇게 정성껏 기도의 내용을 늘어놓는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이는 자신과 다음에 나오는 악인들을 비교하려는 것이다. 다음에 열거한 악인들처럼 한다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기뻐 받으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악인들의 특징을 불의와 악함과 교만함이라고 늘어 놓으면서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여기에는 세가지 않으신다 가 나온다.
첫째 4절에서는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라고 했다. 죄악이란 정의라는 말의 반대말이다. 정의는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정결한 제물로 인정 받아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죄인으로 인정 받아 부정하여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지 못할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속성에 반대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동체에도 적대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자들의 내면은 늘 조화롭지 못하고 늘 불안하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둘째 4절 뒷부분에 보면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라고 했다. 악이란 선의 반대말이다. 선은 하나님과 머물 수 있는 것이지만 악은 하나님과 머물 수 없다. 머문다는 말은 하나님의 성전에 초대받은 손님으로 들어와 성전에서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보다 조금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 것이 “머물지 못하며” 라는 말이다. 미가 3:2에 보면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라고 했다. 이 구절은 선과 그 반대말인 악이 동시에 나와서 4절의 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셋째는 5절에 나온 “오만한 자들” 이다. 오만한 자들이란 자랑하는 자들이란 뜻이다. 자랑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칭찬할 때 쓰는 할랄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말로 자신들의 강함을 자랑하며 자기 자신들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바로 오만한 자들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대신 자기들 스스로를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가장 큰 죄악이다. 이들은 주님 앞에 감히 나설 수도 없다고 했다. 이는 주님의 눈 앞에 잠시도 어른거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꺼져 버리라는 뜻이다. 죄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면서 하나님의 진노하심도 점점 강해진다. 첫째는 ‘메조포르테’ 라면 둘째는 ‘포르테’ 이고 셋째는 ‘포르테시모’ 인 셈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벌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어떻게 벌하시는지 설명한 내용이 6절이다.
6절에서 거짓말하는 자들은 멸망시키신다고 했다. 그런데 “피흘리기를 즐기는 자” 와 “속이는 자” 는 싫어하신다고 했다. 피흘리는 자는 살인자이고 속이는 자는 남을 속여서 남의 것을 탈취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어째서 살인자와 사기범들은 미워하시면서 거짓말 하는 자들은 완전히 멸망시킨다 했는가?
거짓말이란 사람들 앞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행동 그 자체를 말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다른 사람을 죄인이라고 증인을 서서 죽게 한다. 이들은 거짓 증언으로 자신들의 범죄를 숨기고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 증언을 해서 자신들의 죄악을 숨기고 남을 속이며 악을 행하는 자들이기에 이런 자들은 멸망시키신다 한 것이다. 이런 기도를 드린 이유는 대적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도 절대로 이러한 세단계의 죄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뜻도 되는 것이다.
7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된다. 앞에서 말한 악인들과 시편 기록자 자신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자신이 어떻게 악인들과 다른지를 자랑해야 맞다. 그런데 시편 기록자는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라고 했다. 주의 풍성한 사랑이란 한결 같은 사랑을 뜻하는 ‘헤세드’ 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헤세드를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직접 보여주게 했다.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취하게 하고 집을 나가 창녀 짓을 하고 있으면 계속해서 데려다가 아내의 옷을 입히고 아내의 자리에 앉히도록 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헤세드의 사랑을 힘입은 시편 기록자도 악인들보다 낫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자신도 악하지만 언약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힘입었기에 주의 집에 들어갈 신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편 기록자는 죄에서 면제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러한 한결같은 사랑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풍성한 사랑이란 말은 이러한 헤세드의 사랑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편 기록자도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사랑을 셀 수도 없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기에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향해 절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편 기록자는 아직 하나님의 성전 안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이제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8절에서 “여호와여!” 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그 다음에 원어에서는 “인도하시고” 라는 말이 나온다. 어디로 인도하는가 하면 “주의 의로” 인도해 달라는 것이다. 또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라는 말은 구불구불한 길을 바로 잡아 달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악인들의 장애물들과 방해들을 제거해 주셔서 곧장 나아가게 해 달라는 뜻이다. 하나님과의 맺은 언약에 근거해서 공정하게 재판해 주시고 길을 열어 주셔서 주의 의로움 안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시편 기록자의 왕이시고 시편 기록자의 하나님이신 그 이름 여호와를 예배하려는 것이다.
9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주의 길을 곧게 해 달라는 것이 곧 악인들의 방해를 제거해 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왜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해 주셔야 하는가 하면 그 이유를 네가지로 고발한다. 첫째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의 문자적인 뜻은 그들의 입 안에는 고정된 것이 없다라는 뜻이다. 이는 시편 기록자가 마치 악인들의 입을 들여다 보고 검진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둘째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라고 했다. 심중이란 그들의 깊은 속이다. 이제 시편 기록자는 악인들의 입 속에 내시경을 집어넣고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속을 들여다 보니 “심히 악하며” 라고 했는데 이는 멸망 그 자체라는 것이다. 마음 속에 진리는 하나도 없고 오직 악한 생각 뿐이어서 완전한 멸망만 가득 들어있다는 것이다.
셋째 시편 기록자는 다시 악인들의 내시경을 깊은 곳에서 꺼내 목구멍 안쪽을 들여다 본다. 들여다 보니 그 목구멍은 “열린 무덤” 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굴에 시체를 넣고 돌로 막는다. 무덤을 열어 놓았다면 곧 시체가 도착한다는 뜻이다.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이 가득해서 악취가 풍겨 나온다. 그 안쪽 깊은 곳에는 멸망이 가득하기에 그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다는 것이다.
넷째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라고 했다. 이는 부드럽고 듣기 좋은 말만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혀는 마치 에덴 동산의 뱀의 혀와도 같다. 그럴듯한 말을 듣기 좋게 하지만 의인들에게 위험한 말을 하고 하나님을 욕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10절에서는 다시 하나님을 부르며 이러한 자들을 정죄하셔서 자기들 꾀에 빠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시편 기록자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함정에 자신들 스스로가 빠지게 해 달라는 것이다. 또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 내소서” 라고 고발한다. 함정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집에 나온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시편 기록자는 그 사람들을 쫓아내 달라고 기도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를 배역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11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악인들은 자기들 함정에 빠지고 또 성전에서 쫓아내 주셔야 하지만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라고 했다. 앞에서는 자신을 위해 기도했지만 이번에는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악인들에게 쫓기다가 주님의 품으로 피한 사람은 모두 다 한 사람도 예외없이 이제 돌아서서 자신들을 쫓던 자들을 바라보며 기뻐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 다음은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라고 했다. 보호라는 말은 천막 같은 것으로 가려주는 것을 말한다. 다윗 당시엔 성전이 없고 성막이 있었기에 그 성막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 성막으로 자신들을 가려서 대적들이 볼 수 없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영원히 환호성을 지르며 외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기뻐한다는 말은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한다는 뜻이다. 이 성막은 단순한 천막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보통 천막이 아니다. 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은 악인들이 멸망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이들은 예배할 때 뿐 만이 아니라 그들의 모든 일상의 삶이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일상의 모든 삶을 통해 기뻐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로다” 라고 했다. 이번에는 주께로 피하는 자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모든 백성들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주님의 보호를 받는 자들이 그 분 안에서 기뻐하고 이제 그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이 자신과 같은 기쁨을 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제 단순히 대적들이 무서워 주께 피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시편 기록자는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다 함께 주님의 품 안에서 함께 즐거워하길 원하는 것이다. 즐거워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공의로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반응으로 기쁨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12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주는 의인에게는 복을 주시며” 라고 했다. 이 복이 무엇인가? 바로 뒤에 이어서 나온다. 또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로다” 라고 했다. 이 방패는 아주 큼직한 방패이다. 로마군의 전신방패 같은 것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는 하나님의 성막으로 보호해 주시는 모습이었는데 그 성막은 평범한 천막이 아니라 전신방패로 사방을 완전히 감싼 것과 같은 완벽한 보호막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완벽한 보호막 안에서 거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기뻐 함성을 외치는 것 그 자체가 복이다.
누가 우리의 대적이고 악인인가? 시편 기록자가 말한 이들은 이방인들이 아니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전에 나와 예배하려는 자들이었다. 우리의 대적들도 교회 밖에 있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다. 시편 기록자에 따르면 우리의 대적들 악인들은 교회 안에 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오늘 시편 기록자가 말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뼈에서 살을 뜯는 자들이 악인들이다. 스스로 거룩한 체 하며 사람들 앞에서만 의를 행하여 자신을 자랑하고 실제로는 악을 행하던 자들이 악인들이다.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자신들의 더러운 죄악을 숨기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내가 기도해 보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며 사람들을 겁주고 협박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자들이 멸망할 자들이다. 계속 말 바꾸며 남을 속이는 자들이 멸망할 자들이다. 말로는 듣기 좋은 말들을 하면서 실제로는 비방하는 자들이 멸망할 자들이다. 입만 열면 세상의 썩은 것들의 악취가 풍겨 나오는 이들이 멸망할 자들이다.
누가 의인인가? 행위가 의로운 사람이 의인이 아니다. 행위로는 어쩌면 악인과 같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셀 수도 없이 많은 한결 같은 하나님 사랑을 입어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우리가 바로 한결 같은 사랑을 입은 의인들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그 놀라운 사랑에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사랑을 베푸는 자가 의인이다. 그렇게 헤세드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보호막 안에 들어와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며 찬송 드리는 사람이 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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