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1편은 다윗이 대적들에게 둘러 싸여 있으면서 비난과 협박을 받고 있고 생명까지도 빼앗길 상황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님만 의지하며 찬양하겠다는 것이 이 시편의 내용이다. 이 시편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서 우리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용기를 내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지 알아 보도록 하자.
I. 기도(1-5)
먼저 시편 기록자는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주님, 당신 안에서 내가 피난처를 찾습니다” 라는 뜻이다. 대적들에게 잡혀 죽을 위험에서도 다른 곳으로 피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피할 곳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라고 했다.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는 말은 대적들의 손에 잡히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대적의 손에 사로잡히면 벌거 벗겨진 채 두들겨 맞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주님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라고 한다. 앞에서 주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공정한 재판에 자신을 맡기겠다는 뜻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자신을 대적으로부터 건져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재판정에 세워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대적들에게 벌을 내리시고 자신은 무죄선언을 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어떻게 건져 달라는 것인가? 2절에 보면 먼저 귀를 기울여 달라 했다. 먼저 자신의 기도에 귀를 가까이 대고 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속히 건져 달라 했다. 보통 자신을 건져달라는 말은 큰 소리로 외치는 법이다. 그런데 시편 기록자는 하나님께 귀를 가까이 대고 들어달라고 한 뒤 자신을 속히 건져 달라고 은밀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독수리가 낚아 채듯 자신을 대적의 손에서 신속하게 빼앗아 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적의 손에서 갑자기 낚아채려면 대적이 모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기록자와 하나님만 알도록 은밀하게 부탁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숨을 수 있는 견고한 바위가 되어 달라 했는데 독수리처럼 낚아 챈 다음에는 높고 넓고 안전한 바위 위에 내려 달라는 것이다. 견고한 요새가 되어 달라는 말은 그 안전한 바위 위에 세워진 튼튼한 요새 안으로 피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구해 주셔서 주님께서 최고로 안전하게 보호해 달라는 것이다.
3절의 반석은 2절에서 말한 안전한 바위이고 그 바위 위에 세워진 요새이신 주님을 부르며 주님의 이름을 위해 인도해 달라고 간구한다. 인도해 달라는 말은 목자가 양떼를 데리고 앞서 가면서 바른 길로 이끌고 간다는 말이다. 피난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이 목자가 되셔서 바른 길을 가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인도해 달라는 말은 특별히 보호가 필요한 어린 양을 목자의 팔로 이끌어 달라는 말이다. 위험할 때는 건져 주시고 안전한 곳에 피하게 해 주시지만 항상 피해서 숨어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린 양과 같은 자신을 안전하게 물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는 것이다. 목자는 어린 양을 특별히 잘 지켜 보면서 위험한 곳은 목자가 안고 건너기도 하는 것이다.
또 어떻게 그렇게 인도해 주시는가? 4절에서는 그들이 쳐 놓은 그물에서 건져달라 했다. 대적들은 의로운 시편 기록자를 사냥하려고 덫을 놓았고 그 덫에 걸린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피난처이시니 자신을 건져 달라는 것이다. 또 5절은 주님의 손에 나의 생명을 맡긴다 했다. 주님께서 덫에 걸린 자신을 구해서 주님의 팔로 안아 달라는 뜻이다. 또 속량해 달라는 말은 값을 지불하고 구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악한 자가 이미 덫에 걸린 시편 기록자를 잡아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미 덫에서 악한자의 손에 넘어간 상태라면 값을 지불하고 자신을 다시 사 오는 방법 밖에는 없기에 항상 변함없이 한결같으신 주님께서 값을 지불하고 자신을 사 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보면 시편 기록자는 악인들이 놓은 덫에 걸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덫에서 악한 자의 수중에 들어간 상태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순종하는 사람들은 덫에 걸리기 쉽다. 악한 자들은 신실한 자들이 어떤 말을 하든지 앞 뒤 말을 잘라내고 사람들이 오해하도록 꼬투리를 잡아 망하게 하려고 한다. 신실한 사람이 아무리 조심하고 말을 한다 해도 반드시 악한 자들에게 공격을 받게 되어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12절에서도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라 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어떻게 덫에 걸리지 않을까 아무리 조심해도 소용이 없다. 오직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간구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 그러므로 악인들의 덫에 걸릴까 노심초사 하지말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자. 악한 자들의 덫에 걸렸을 때는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자.
II. 신뢰의 기도 (6-8)
6-8절은 왜 자신이 하나님께만 피하는지 이유를 말한 것이다. 6절에서 시편 기록자가 미워하는 것과 사랑하여 믿고 의지하는 대상을 비교한다. 먼저 시편 기록자가 미워하는 것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 이다. 원어는 “텅빈 수증기를 간직하는 자들” 이란 뜻이다. 이는 마치 이른 아침에만 있는 안개를 간직하는 자와도 같다. 우상이란 본래 존재하지 않는 안개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안개를 아무리 한아름 품어 안아도 그것을 간직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은 미워한다는 것이다.
대신에 자신은 주님만 의지한다는 것이다. 의지한다는 말은 몸을 맡기고 기댄다는 뜻이다. 수증기를 품는 자들은 아무리 잘 간직한다해도 그 수증기에 몸을 맡기고 기댈 수는 없다. 그러니 시편 기록자는 그러한 수증기를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대신 자신은 주님께 몸을 맡긴다는 것이다.
7절에서는 시편 기록자가 왜 그렇게 주님을 확신하며 몸을 맡기는지 설명한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 때문이다. 그동안 자신이 잘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항상 한결 같은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해 주셨기 때문이다. 자신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항상 돌보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혼이 좁은 곳에 끼어 고생하고 있다는 것도 다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8절도 역시 시편 기록자가 왜 그렇게 주님을 확신하며 몸을 맡기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그 이유는 대적의 손에서 독수리처럼 자신을 채어 내신 주님께서 자신을 원수의 손에 넘기지 않으시고 자신을 안전하고 평탄한 반석에 내려 놓으셨다는 것이다. 2절에서 자신을 속히 낚아채어 안전한 바위 위에 내려달라고 했는데 자신은 실제 그런 경험을 했었다는 것이다.
III. 슬픔의 기도 (9-13)
9-13절은 슬픔의 기도이다. 9-10절은 자신의 고통을 육체적 고통으로 표현했다. 긍휼을 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은 묶여있다는 것이다. 고통 받는다는 말은 묶여 있다는 뜻이다. 또 그 고통 때문에 울다가 지쳐 시력조차 잃었다 했다. 고통 때문에 슬피 울다가 눈이 팅팅 부어 눈을 뜰 수 없게 된 것을 말한다. 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몸도 역시 그렇게 움직일 힘조차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10절도 역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긍휼을 구하는 내용이다. 자신은 슬픔으로 힘이 소진되었다 했는데 슬픔으로 이제 자신의 생명을 다 소비해 버렸다는 것이다. 햇수가 탄식 속에서 흘러 갔다는 말은 탄식 속에서 자신의 살 날이 다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힘은 자신의 죄로 인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뼈조차 다 써서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11절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다. 대적들이 자신을 비난한다 했다. 특별히 자신의 이웃들에게 또 친구들에게 끔찍스러운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보면 피하여 도망간다는 것이다. 대적들 뿐 아니라 이웃들과 친구들까지 자신을 징그러운 벌레 보듯 한다는 것이다.
12절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자신은 죽은 사람처럼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 깨어진 질그릇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깨어진 질그릇은 밖에 버리고 아무도 주목하지도 않고 사용되지도 않는 것이다. 자신은 깨진 질그릇처럼 길에 버려져서 아무도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13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12절의 이유를 설명한다. 어째서 자신이 깨진 질그릇과 같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이는 실제 자신의 몸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 수군거리며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사방에서 협박을 받고 있다. 수군거리며 비난하는 것보다 더 나아간 것이 협박하는 것이다. 협박이 더 진행된 것이 자신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민다는 것이다.
거짓된 소문을 듣고 모두가 자신을 보면 수군거리고 비난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소문을 듣고 수군거리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직접 다가와서 협박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음모까지 꾸민다는 것이다. 자신을 적대시하는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IV. 신뢰의 기도2 (14-18)
14절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신뢰하는 모습이다. 그런 심각한 위기 속에서도 “주는 내 하나님” 이라고 고백하며 주님만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15-18절은 이렇게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신뢰하며 기도를 끝맺는 모습이다. 15절의 구해 달라는 것은 1절과 같으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구해 달라는 것이다. 자신의 미래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이다. 구해 달라는 것이 미래로 미루어진 것은 당장 응답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응답이 없는 주님일지라도 완벽하게 신뢰하고 자신을 맡기는 모습이다.
16절도 역시 미래에 자신에게 주님의 환한 얼굴을 비추어 달라는 것이다. 한결 같은 사랑으로 자신을 해방시켜 달라는 것이다. 17절은 자신에게 환한 빛을 비추어 달라는 16절과는 반대이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얼굴의 빛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지옥에 내려가게 해 달라는 것이다. 18절은 거만한 태도로 의로운 사람을 경멸하며 함부로 거짓말 하는 자들의 입을 닫아 달라는 것이다.
V. 감사와 찬양(19-24)
18절과 19절 사이에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19절부터는 주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19절은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라고 고백한다. 자신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고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에게 정말 풍성한 복을 마련해 두셨다는 것이다. 주님은 주님만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자신처럼 주님께 피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라고 간증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20절은 독수리의 그림으로 주님의 보호를 설명한다. 주님께서는 독수리가 그 새끼를 날개 아래로 보호하듯 그 날개 그늘에 숨기시어 헐뜯는 무리들 공격하는 무리들 사탄 마귀들로부터 지켜 주셨다는 것이다. 또 헐뜯는 무리들이 쏘아대는 비난의 화살을 주님께서 자신의 날개로 막아 주셨다는 것이다. 또 그들을 그 발로 움켜 잡고 2절에 나온 것처럼 높고 안전한 바위와 요새에 감추어 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화살처럼 쏟아지는 악한 자들의 혀들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해 주셨다는 것이다.
21절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는 모습이다. 자신이 완전히 포위되었을 때 놀랍도록 한결 같은 사랑을 자신에게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은총이라고 번역된 말은 한결 같은 사랑이다. 22절은 자신이 포위되었고 주님께로부터 끊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도 자신의 간구를 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낙심한 상황에서 간구했는데도 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을 사랑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시편 기록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힘든 상황에서 모든 성도들에게 함께 찬양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신실한 사람은 지켜 주시고 거만한 자는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24절은 용기를 내라고 권면하고 있다. 자신처럼 낙심 중에서도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라는 것이다.
결론 및 적용
우리가 어떠한 어려움에 있더라도 아무리 낙심되는 상황에 있더라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누가복음 23:46절에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라고 하셨다. 우리의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에라도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주님께 맡겨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모두 맡긴다는 것이 쉽지 않다. 본인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는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힘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도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러한 사람들을 의지하려는 것은 마치 안개를 의지하는 것과도 같다. 뭔가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본인의 기도 제목을 들어주셨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이다.
시편 30편 기록자는 찬양할 만한 기쁜 일만 있어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이 형통해서 함께 찬양하자는 것이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아무런 의지할 것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도 찬양하자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말할 수 없는 힘든 상황에 있더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찬양해야 한다.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함께 찬양하자고 권면해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맡기면서 믿고 찬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위기에서 낚아채 주시고 안전한 바위와 요새에 올려 주시고 그 날개로 막아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우리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The church of the Holy Mother of God in Asen's fortress, free image from wiki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