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편에는 군사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시편 3편의 전체적인 그림은 전쟁터에서 적에게 포위되어 있는 그림이다. 전쟁터에서 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으면서도 편안히 잠을 자고 깨어나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모습이다.
먼저 시편 기록자는 근심으로 찬송을 시작한다. 그 근심은 대적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적이란 전쟁터에서 진을 펼치고 마주 서있는 적군을 가리키는 말이다. 1-2절에는 많다는 말이 세번이나 반복된다. 먼저 1절에서는 아침에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니 천지 사방에 시편 기록자를 치려는 적군들만 가득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1절 뒷부분의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라는 말은 명령만 떨어지면 즉시 공격할 태세를 갖춘 적군들을 말한다. 진을 치고 있는 모습에서 공격할 태세로 즉시 전환된 것이다.
공격할 태세를 갖춘 상태에서는 먼저 말로 조롱하여 상대편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법이다. 사무엘상 17:8-9절에서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말로 조롱하며 도전하는 모습도 역시 공격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말로 상대의 사기를 꺾으려는 것이다. 2절에서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라는 말도 역시 시편 기록자의 사기를 꺾기 위해 빈정거리며 조롱하는 모습이다. 구원이란 말은 전쟁의 승리를 나타내는 군사용어이다. 시편 기록자는 이제 독안에 든 쥐와 같은 상황이기에 하나님이라도 시편 기록자를 승리하게 할 수 없다고 조롱하는 것이다. 진을 치고 있는 적군들이 공격태세를 갖추고 말로 조롱하며 사기를 꺾는 이 세단계는 한편의 동영상과도 같이 움직이는 모습이다. 그 가운데서 시편 기록자는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대적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포위 되어 있던 시편 기록자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점점 더 커지게 된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대적들도 점점 크게 보이게 된다. 신명기 1:28절에 보면 돌아온 정찰대들 대다수는 “그 백성들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라고 했다. 이들은 모두 대적들을 바라보며 두려움이 점점 커져 가면서 대적들의 덩치는 점점 더 커져갔다. 성벽들도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그들의 덩치는 커져가고 있었고 그들의 성벽들도 함께 높아져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늘에 닿을만큼 높아진 것이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강한 대적들을 보았지만 즉시 눈을 돌려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에 두려움 없이 승리를 장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강력한 대적들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두려움은 점점 커져가면서 대적들도 점점 자라서 하늘까지 닿을만큼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 대적들의 높이는 곧 두려움의 높이이다. 하지만 대적을 바라보는 자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즉시 눈을 돌려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면 대적들은 쪼그라들고 결국 망하게 되어있다. 이것을 알았던 시편 기록자는 계속해서 대적들을 바라보지 않고 즉시 고개를 돌려 하나님을 바라 본 것이다.
시편 기록자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 어떤 분인지 고백한 것이 3절이다. 첫째 시편 기록자는 하나님을 “나의 방패시요” 라고 고백했다. 나의 사방을 에워싸는 방패라는 뜻이다. 이 방패란 말도 역시 군사용어이다. 이는 대형을 갖춘 군대가 좁은 간격으로 서서 사방을 방패로 막은 채 적의 불화살이 멈추길 기다리는 모습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어떤 방향에서 화살이 날아와도 다 막아서 시편 기록자 자신을 지켜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둘째 나의 영광이란 자신을 왕의 자리에 세워 주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지켜주실 분일 뿐 아니라 영광도 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셋째 내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라 했다. 이는 다시 승리하게 하셔서 왕의 자리에 앉아 머리를 들게 하신다는 것이다. 반대로 머리를 숙이게 한다면 패배하여 적의 발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시편 기록자는 두려움이 가득한 가운데서 대적들을 보지 않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니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 주시는 분이시고 영광을 주시는 분이시고 회복시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고백은 과거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을 발견하고는 4절에서 즉시 여호와를 향해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그의 거룩한 산으로부터 응답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난 시편 기록자는 이제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화가 밀려왔다. 그래서 5절에서 시편 기록자는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라고 고백한 것이다. 상황이 나아졌기 때문이 아니다. 시편 기록자는 여전히 대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안전하게 붙들고 계셨기에 포위망 한 가운데서도 안심하고 잠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누워자고 깨었으니” 완전하게 눕고 밤새도록 계속 잠을 잤다라는 뜻이다. 시편 기록자는 적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완전하게 누워 계속 깊은 잠을 잤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라며 감격해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두려움 때문에 잠을 못자기 마련이다. 잠깐 새우잠을 자다가도 깜짝 놀라서 깨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면 아침에 완전하게 깨어날 수 없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부시시한 눈으로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런데 ‘깨었으니’ 라는 말도 완전하게 개운한 몸으로 일어났다는 뜻이다. 이러한 고백은 시편 기록자가 얼마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2절에서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는데 하나님을 바라보고 부르짖어 기도한 뒤에 응답을 받고는 적들의 포위망 한 가운데에서도 엄마 품 안에 있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품 안에서 깊이 잠이 든 것이다.
이제 6절에서는 “천만인_이 나를 에워 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시편 기록자는 고백했다.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라는 말은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천만인이란 단순히 천만명의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수많은 군대를 의미하는 군사용어이다. “나를 에워싸 진 친다” 라는 말도 수많은 군대가 전투대형으로 포위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군사용어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니 잠시 편안해졌다 라는 뜻이 아니다.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평화를 누리겠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자신을 붙들고 있는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려움이 평화로 바뀐 것이다.
이제 시편 기록자의 이러한 평화는 7절에서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바뀌었다. 7절에서 ‘일어나소서’ 라는 말은 신명기 10:35절에도 나온다. 이 말은 원래 전쟁을 위해 하나님의 궤가 출발하는 모습이다. 오늘 시편에서 하나님의 궤는 시편 기록자와 함께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궤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상징일 뿐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이스라엘 군대가 궤를 앞세우고 승리할 것을 생각하고 나갔다가 궤를 빼앗기고 완전히 패한 일도 있었다. 다윗은 지금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기에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라고 말한 것이다.
이어서 시편 기록자는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했다. 원어에서는 “나를 구원하소서” 라는 말이 먼저 나오고 “나의 하나님” 이라는 말이 뒤에 나온다. 구원하소서 라는 말은 2절에서 나온 말과 같은 말에서 온 말로 역시 전쟁터의 승리를 달라는 말이다. 다급하면 구해 달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법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일어서시자 시편 기록자와 그 일행들이 “승리하게 해 주세요” 라고 외치는 함성이다.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라는 말 바로 앞에 원어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전쟁에서 승리한 왕이 적국의 왕을 자신의 발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모욕을 주기 위해 그 뺨을 치는 모습이다. 물론 시편 기록자는 아직 승리하지 않았다. 여전히 수많은 대적들이 자신을 에워싸고 죽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렇게 하실 것을 확신하기에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일처럼 말한 것이다. 또 그 다음에는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시편 기록자의 대적의 뺨을 얼마나 세게 쳤는지 그 이빨이 다 부러져 버리는 모습이다. 뺨을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이빨들이 다 부서지고 그 부서지는 이빨들이 피와 함께 튀어나오는 것과 같은 한편의 만화 같은 그림입니다. 이제 시편 기록자의 원수들은 이빨이 빠진 사자처럼 될 것이다. 또 이빨이 다 빠졌기에 아무 말도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완전한 하나님의 승리이고 대적들에게는 완전한 패배이다.
8절은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라고 했다. 역시 승리는 여호와께 있다는 말이다. 이제 장면은 바뀌어 승리하신 여호와께서 개선장군처럼 개선하시는 그림이다. 왕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그 다음에는 백성들에게 그 전리품이 나누어지는 것이다. 이제 승리하신 주께서 그 전리품인 복을 주의 백성들에게 하사해 달라는 뜻이다. 시편 기록자는 자신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모든 백성들에게 복이 내리길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 3편은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고민거리들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고민과 근심이 가득한 가운데서도 시편 기록자처럼 오직 하나님만 전적으로 신뢰하고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승리와 축복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5:7절에서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라고 했지 않은가?
그러나 ‘아, 오늘부터는 내가 두려운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고 하나님만 보게 되고 두려움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늘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기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패가 되어 주시고 승리하게 해 주신 경험들이 날마다 쌓여가야 한다. 마치 크레딧 카드를 제 때에 착실하게 갚아 나가서 크레딧이 쌓여가는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도 두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평화를 누리며 단잠을 잘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하루 아침에 ‘짠!’ 하고 성장하지 않는다. 우리 예수님게서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도 편안히 주무실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물에 빠지면 죽을 수 밖에 없는 몸이셨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있으셨기에 안심하고 주무신 것이다. 우리도 그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배워야 한다. 날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지금 두려운 일로 가득 둘러싸여 있는가? 가장 최근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경험한 일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시편 기록자처럼 찬양과 기도를 드리자.
그림출처: The Battle of Lalakaon, as depicted in the Madrid Skylitzes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Lalakaon
(구글 검색에서 "free to use or share" 옵션으로 검색한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