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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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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9편

시편 29편 1절에는 힘(עז)을 여호와께 드리라는 말이 나오고 마지막절에는 “여호와게서 힘을 주신다” 는 말이 나온다.

2017. 8. 21. · 안정섭 목사 · 페이스북 원문 · 함께 올린 그림: 마테이코 「프스코프의 스테판 바토리」 · 시편 29편 강해 설교

시편 29편 1절에는 힘(עז)을 여호와께 드리라는 말이 나오고 마지막절에는 “여호와게서 힘을 주신다” 는 말이 나온다. 힘(עז)이란 단어가 사람에게 쓰이는 경우는 주로 전쟁터에서 상대와 싸울 때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따라서 시편 29편은 전쟁터의 그림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신들의 모든 힘을 여호와께 드리고 그분께 엎드려 경배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힘을 주신다는 것이다.

I. 예배로의 초대(1-2)

1절의 “권능 있는 자들아” 라는 말은 원어에서 “신들의 아들들아” 라는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신들 중에 최고로 압도적인 힘을 갖고 계시니 자신들이 가진 모든 영광과 전쟁을 행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려드리라는 것이다. 이는 강한 힘을 가진 왕들이 자신들의 왕관과 왕의 칼을 최고로 강한 왕 앞에 바치는 그림이다.

2절은 “여호와의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라고 했다. 1절에서는 신들의 아들들이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권능을 여호와께 드리라 했는데 2절에서는 여호와의 이름 때문에 영광을 드리라는 것이다. 자신의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의 발 앞에 내려 놓으면 다음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 이름 때문에 영광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라고 했다. 거룩한 옷을 입는다는 말은 거룩함의 화려함 안에서 라는 뜻이다. 전사로서의 왕의 옷을 벗고 자신의 힘을 나타내는 칼도 여호와 앞에 내려 놓았다면 다음에는 여호와를 예배하는 화려한 예배자의 옷을 입고 여호와의 발 앞에 엎드려야 하는 것이다.

II. 여호와의 목소리를 찬양하여라(3-9)

시편 기록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온 세상 모든 신들을 목소리로 굴복시키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3-9절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은 “여호와의 목소리” 라는 말이다. 3절은 여호와의 목소리가 물 위에 있다고 했다. 물은 가나안 사람들이 비를 주관하는 신이라고 믿는 바알신과 연관이 있다. 여호와의 목소리가 물 위에 있고 바알 신은 그 발 아래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라는 말은 “영광의 신께서 천둥을 치시니” 라는 뜻이다. 여호와가 이젠 영광의 신으로 바뀌었다. 영광의 신의 목소리가 물을 발로 밟고 물 위에 서있는데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천둥소리처럼 우렁찬 소리로 물 위에 서 계신다는 것이다. 또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라고 했다. 여호와에서 영광의 신으로 바뀐 이름이 이제 다시 여호와로 돌아왔다. 모든 신들이 그 발 아래 엎드려 자신들의 영광과 능력을 다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에 영광을 돌렸는데 그 영광의 신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라는 것이다. 많은 물은 구약에서 악의 상징처럼 쓰였다. 여호와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리시며 많은 악한 신들 굴복시키고 계시는 모습이다.

4절도 “여호와의 목소리” 라는 말로 시작하는 두개의 댓구로 되어 있다. 여호와의 목소리는 힘이있다는 말에서 힘이란 1절의 힘이 전사인 왕이 칼을 휘둘러 적장을 쓰러뜨릴 수 있는 팔의 힘을 뜻한다 볼 수 있다. 그러나 4절의 힘이란 몸 전체에 고루 퍼져있는 잠재된 힘을 말한다. 하나님께 쓰일 때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omnipotent)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 “여호와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있다” 라는 말에서 위엄이란 화려하게 장식된 왕의 모습이다. 1절의 영광이란 빛나는 왕관을 뜻한다면 4절의 위엄이란 왕의 몸 전체가 화려하게 장식된 모습이다. 1절의 신들의 영광와 능력은 부분적으로 빛나고 부분적인 힘이지만 4절의 힘과 위엄은 하나님의 존재 전체에 고루 퍼져있는 힘과 찬란하게 빛나는 위엄이다.

5절도 역시 “여호와의 목소리” 라는 말로 시작한다. 전능하시고 위엄에 찬 여호와의 목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신다 했다. 이와 짝을 이루는 부분은 여호와의 목소리가 여호와로 바뀌고 백향목이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바뀐다. 백향목은 아주 단단하여 쪼개기 어려운 건축재료이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이스라엘 북쪽 가나안 사람들의 상징인 레바논 산을 의미한다. 여호와의 목소리는가나안 사람들의 레바논 산도 쪼개신다는 것이다.

6절은 5절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개역은 “그 나무를” 이라고 의역을 했는데 원어는 ‘레바논’이다. 6절은 원어에서 두개의 짝을 이루는 댓구로 되어 있는데 개역은 그 댓구를 뭉개버렸다. 앞에서 레바논 산을 레바논의 백향목이라는 상징물로 비유했다면 6절은 구체적으로 레바논이라는 지명으로 부른 것이다.

먼저 나오는 구절은 “여호와께서 레바논을 송아지같이 뛰게 하시며” 이다. 여호와의 목소리는 레바논 산을 꺾으셨기에 큰 고통에 놀라서 펄쩍펄쩍 뛰는 송아지처럼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댓구는 “시룐을 들송아지 같게 만드셨다” 라는 것이다. 시룐은 헬몬산을 가리키는 말인데 야생 숫송아지처럼 뛴다는 것이다. 헬몬산은 이스라엘 북쪽의 레바논 산들 중에 가장 높은 산이다. 이 산은 야생 숫송아지 처럼 뛴다는 것은 더 격렬하게 뛰는 모습을 뜻한다. 이는 기뻐 뛴다는 뜻이 아니라 여호와의 목소리에 산허리가 꺾여 고통스럽게 펄쩍펄쩍 날뛰는 모습이다.

7절도 “여호와의 목소리” 라는 말로 시작한다. 화염이란 불의 불꽃이란 뜻인데 번개가 번쩍이는 것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이 번개는 전사들의 무기인데 이방 신들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목소리가 그 번개를 쪼개셔서 쓸모없이 만드신다는 것이다. 또 8절도 “여호와의 목소리”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번에는 광야를 진동하신다 했다. 진동하신다는 말은 광야를 휘저어 빙빙 돌리신다는 뜻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것은 가데스 광야를 휘저어 빙빙 돌리신다는 것이다. 5절에서 백향목을 꺾으시고 레바논의 백향목을 꺾으신다 한것과 똑같은 구조이다. 레바논과 시룐이 이스라엘 북쪽의 이방 신들을 뜻한다면 가데스 광야는 이스라엘 남쪽의 사막이다. 이번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남쪽으로 내려오셔서 가데스 광야를 죽을 쑤듯 휘저으신다는 것이다.

9절도 “여호와의 목소리” 라는 말로 시작한다. 암사슴을 낙태케 한다는 말은 암사슴을 휘저어 놓는다는 말이다. 앞에서 광야를 휘저어 놓는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는 여호와의 목소리가 가데스 광야를 휘저어 놓으신 결과이다. 영어의 NIV는 “The voice of the Lord twists the oaks” 라고 되어있다. NIV 번역자들은 다른 사본들을 보고 암사슴을 큰 상수리나무로 번역한 것이다. 큰 상수리나무로 번역하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왜냐하면 큰 나무를 흔들어 뽑아 놓으신 것이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무 하나를 뽑아 흔들어 놓으시고 숲 전체를 뽑아 벌거숭이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데스 광야가 벌거숭이 사막이 되었나보다. 숲을 벌거벗기시니 암사슴이 놀라 새끼를 낳는다는 것도 역시 뜻은 통하지만 NIV의 번역이 이 시편 전체에서 사용한 문학적 기법에 잘 맞는다.

9절 끝부분은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라고 했는데 원어는 “그의 성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 이란 뜻이다. 북쪽 레바논 산을 꺾으시고 남쪽 가데스 광야를 휘저으셔서 그 숲을 벌거벗기신 여호와의 목소리의 힘을 보고 성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여호와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이다.

III. 권능과 평화를 주시는 여호와(10-11)

9절 끝에서 모두가 “영광!” 이라고 외쳤는데 이제는 모두가 여호와를 찬양하는 모습이 나온다. 10절은 “여호와는 홍수 위에 좌정하셨음이여” 라고 했다. 홍수란 노아의 홍수로 온 세상을 심판하신 것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여호와께서 악한 온세상을 완전히 심판하셨다는 것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북쪽과 남쪽의 신들을 본보기로 두들겨 패신 여호와의 목소리는 이미 온세상의 모든 신들을 굴복시키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1절은 모든 신들의 아들들이 자신들의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드렸다고 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 신들 뿐 아니라 온 세상을 물로 완전히 심판하시고 그 홍수 위에 보좌를 두셨다는 것이다. 그 여호와는 이제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왕으로 영원히 보좌에 앉아 계시다는 것이다.

11절은 그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힘(עז)을 주신다 했다. 그 힘은 1절에서 신들의 아들들에게서 빼앗은 그 힘이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는 영원한 왕이신 여호와는 이제 자신을 경배하는 그 백성들에게 힘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 힘은 위대한 전사이신 하나님의 전투능력이다. 그렇게 여호와께서 주신 힘으로 무장한 백성들은 아무도 넘보지 못하기에 “자기 백성들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라고 했다. 복을 주신다는 말은 본래 무릎을 꿇는다는 뜻이다. 자기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신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덧붙여진 말이 “평화 안에서” 이다. 여호와께서 힘을 주셔서 대적들을 물리치게 하신 것은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 백성들이 평화 안에서 여호와께 무릎을 꿇고 경배드리는 것이 바로 복이다.

결론 및 적용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신 신이시다. 모든 신들을 굴복시키시고 홀로 영광 받으실 분이시다. 믿는 우리의 모든 대적들도 완전히 물리쳐 주실 분이시다. 온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고 그 심판하신 물 위의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셔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게 하실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하나님만 믿는 우리에게 주신 복은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하나님 주신 평화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짐승의 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보혈로 죄사함 받고 그 보좌 앞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리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믿는 자들도 그게 복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오늘 시편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평화 가운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복이라 했다. 우리도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힘과 능력과 명예도 다 우리 주님 발 앞에 내려 놓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도 주님을 예배하는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한다. 내가 입고 의지하던 모든 것 다 벗어 놓고 주님을 예배하는 옷을 입고 평화 가운데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 진짜 복이다.

사진출처: Wikipedia: History of Poland in the Early Modern era, Báthory at Psków, siege of the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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