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8편 기록자는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기도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시편 기록자 개인의 노래이지만 끝은 공동체 전체를 위한 기도로 끝난다. 시편 기록자는 공동체를 이끌고 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5절은 시편 기록자 자신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편들은 찬양으로 시작하지만 28편의 기록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여호와를 부르며 주께 부르짖는다 하고 있다. 정말 절박한 상황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반석이라 부르고 있다. 반석이란 바위로 된 높은 산이나 절벽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반석은 안전하게 숨거나 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다급하게 부르며 하나님의 품에 자신을 숨겨 달라는 뜻이다.
또 반석은 사람의 손으로 깎아 만들지 않은 것이어서 사람의 손으로 돌을 깎아 만든 우상들의 반대말이기도 하다.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라고 라는 말은 바로 우상들과 비교해서 한 말이다. 원문은 벙어리가 되지 말아달라는 뜻이다. 돌로 깎아 만든 우상들은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벙어리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벙어리인 우상들과 같아서 자신의 부르짖음을 듣지도 못하고 대답도 못하신다면 자신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 것이라는 것이다. 무덤이란 깊은 구덩이를 말한다. 한번 내려가면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깊은 구덩이를 말한다.
이 깊은 구덩이는 높은 산 위의 반석이신 여호와와는 완전히 반대방향이다. 그래서 2절에서는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라고 한 것이다. 지성소는 반석인 시온산 꼭대기에 있다. 그곳에 계신 여호와를 향해 손을 들고 도와 달라고 부르짖을 때 자신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어달라고 한 것이다. 간구하는 소리를 들어달라는 말은 자신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개를 숙이시고 자신에게 귀를 가까이 해 달라는 뜻이다. 깊은 구덩이에 빠져 들어갈 위기에서 건져 주셔서 반석이신 하나님의 품으로 올려달라는 것이다.
3절은 자신을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끌어내지 마옵소서” 라고 했다.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은 비슷한 말을 반복한 것 같지만 사실 다른 말이다. 악인이란 의인이란 말의 반대말이다. 악인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을 거역할 뿐 아니라 공동체에게도 적대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악을 행하는 자는 우상숭배를 생산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과 함께 깊은 구덩이로 끌어 당기게 놔두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은 말로는 이웃들에게 평화를 말하지만 그 마음에는 악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악인들과 우상숭배를 생산해 내는 자들은 드러내 놓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 아니다. 이들은 말로는 하나님과 이웃의 평화를 떠드는 자들이지만 그 마음 속에는 악이 있는 자들인 것이다.
말로는 샬롬을 말하면서 그 마음 속에 악이 있는 자들의 악은 4절에서 점점 강하게 묘사된다. 1단계 악은 “그들의 하는 일” 이다. 이는 그들의 도덕적인 행동을 따라서 갚아달라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악한 일을 한 자들에게 벌을 내려 달라는 뜻이다.
2단계 악은 “그들의 행위” 인데 이는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는 행위를 말한다. 같은 말이 예레미야 2:20절에서 그런데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였는지요?” 에서 행하다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을 두고 한 말이다. 이어서 여인들이 자신들이 낳은 자식들을 먹는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더구나 “그들의 행위가 악한대로” 라고 했기 같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심각하게 학대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깨닫고 돌아오게 하려고 학대하신 것이다. 하지먼 시편 기록자를 괴롭히던 악인들은 시기심과 탐욕 땨문에 의로운 자를 괴롭히고 학대하던 자들이다. 이 두 단계의 악에 대해서는 그들의 행위에 맞게 갚아 주라는 것이다.
3단계 악은 “그들이 손으로 지은대로” 이다. 여기서 지었다는 말은 행했다는 말이다. 이는 본래 언약과 관련해서 언약을 어긴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언약을 맺을 때는 동물을 쪼개놓고 그 가운데를 지나가면서 누구든지 이 언약을 어기면 이렇게 되도 좋다 라고 말한다. 따라서 언약을 어긴 자들에게 그 손으로 행한대로 갚아 주라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악한 어떤 행위보다도 더 악한 죄는 약한 자를 학대하는 행위이다. 약한 자를 학대하는 행위보다 더 악한 행위는 언약을 어기는 행위이다. 언약을 맺을 때 쪼갠 짐승을 놓고 계약 당사자가 지나가면서 이 짐승처럼 되도 좋다라고 약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편 기록자의 마음에 있는 언약은 하나님과의 언약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긴 행위는 사람들과 맺은 언약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악한 행위이다.
위에서 말한 세 종류의 악인들에게 행한대로 갚아 달라고 두번 말한 뒤 4절 끝부분에서는 “그들에게 갚으소서” 라고 했다. 하지만 세번째 갚으라는 말은 되돌려 주라는 말이다. 두번 주라고 한 뒤 마지막에는 되돌려 주라는 것이다. 행한 그대로 거울로 반사하듯 그대로 그들에게 되돌아 가게 해 달라는 것이다.
1-4절에서는 여호와를 2인칭으로 부르다가 5절에서는 갑자기 3인칭으로 바꾸어 부른다. 이는 시편 기록자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통해 응답하신 내용이기 때문이다. 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건축물의 비유로 전달하고 있다. 여기서 악인들의 정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3-4절에서 말한 악인들은 5절에서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라고 했다. 행하신 일이란 4절에서 “하는 일” 과 같은 말이다. 악인들이 행하는 일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비교되는 것이다. 하나님 행하신 일이란 아무 자격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시고 언약을 맺으신 일이다. 또 손으로 지으신 것은 성막을 짓게 하셔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성막만 짓게 하신 것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를 만드신 일이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를 만드셨는가? 구약성경에 보면 나와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고 우상숭배하는 악인들은 모두 멸하셨고 그 남은 자들로 하여금 공동체를 이어가게 하셨다. 성경을 보고 그 사실을 깨닫는다면 절대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다. 그러나 시편 기록자가 고발하는 악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구원역사와 공동체를 세우신 일을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다.
생각한다는 말은 눈으로 보고 판단한다 또는 분간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공동체를 세워가신 일들을 보고도 판단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건설하신 것을 인정하지 않는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파괴하시고 건설하지 아니하신다 했다. 파괴하는 것과 건설하는 것은 정확히 반대말이다. 이러한 악인들을 헌집 벽 털듯 헐어버리시고 다시는 세우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새집을 짓기 위해 헌 집을 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다시는 세우지 않겠다 하시며 헐어버리시는 것은 악인들의 영원한 멸망이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제사장을 통해 응답하시자 시편 기록자는 6-9절에서는 감사의 찬송을 드린다. 이 부분에서는 군대와 요새의 비유로 찬양을 한다. 하나님께서 시편 기록자를 지켜 주시는 군대가 되시고 또 요새가 되어 주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군대와 요새는 전쟁 중에만 필요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대적들이 완전히 멸망한 뒤에는 더 이상 군대는 필요없다. 그래서 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어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6-7절은 5절의 응답에 대한 시편 기록자의 감사이다. 그 감사는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이다. 왜 찬송하는가? 2절에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라고 기도했는데 6절에서는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구하는 부르짖음을 들어주셨기 때문이다. 듣는다는 말이 명령형에서 완료형으로 바뀐 것만 다르고 완전히 똑같다.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즉시 대적들을 물리쳐 주셨는가? 전혀 아니다. 여전히 대적들은 시편 기록자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완전히 들으셨기에 시편 기록자의 눈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7절에서 시편 기록자는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시고 방패이신 것을 보게 된 것이다. 힘이란 힘이 아주 센 천하 무적의 장수이다. 그래서 적을 완전히 허물어서 땅속 깊은 곳에 완전히 박아버릴 것이다. 방패란 적의 어떤 공격도 다 막아낼 수 있는 방패이시다. 시편 기록자는 열왕기하 6:14-17절에서 눈이 열려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된 엘리사의 종과도 같은 상황이다.
7절 뒷부분에서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는 힘이시고 방패이신 여호와를 마음으로 완전히 의지하였다는 뜻이다. 또 “도움을 얻었다” 는 말도 역시 완료형이다. 이미 완전히 도움을 얻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완전히 의지하니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도움을 얻은 것이다. 그 결과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라고 했는데 이는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큰 소리로 노래하며 소리를 함성을 지르는 모습이다. 또 이어서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라고 했다. 앞에서는 기뻐하며 노래하고 소리를 쳤는데 이제 정식으로 자신이 노래를 만들어 찬송을 부르겠다는 것이다.
8절에서 다시 제사장이 시편 기록자와 모든 예배자들에게 말한다. 시편 기록자는 여호와가 힘과 방패라 한 것을 받아서 이번에는 여호와가 힘과 요새라고 했다. 방패의 그림에서 요새의 그림으로 바뀐 이유는 시편 기록자 뿐 아니라 여호와의백성들의 힘이시기 때문이다. 그 백성들이란 5절에서 여호와께서 행하신 구원역사와 그 손으로 지으신 그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절대로 모든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골라내서 버리시고 남은 자들로 이어나간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거짓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척 하며 우상숭배하던 악인들을 모두 골라 땅 속 깊은 곳에 던져 버리시고 남은 그 백성들의 힘이 되시는 것이다. 기름부음 받은 자는 왕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요새가 되어 주신다. 그래서 그 왕과 그 왕을 따르는 자들을 보호해 주신다.
9절은 하나님 나라가 영원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나라의 구성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인데 하나님 나라의 구성요소도 역시 국민 영토 주권이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국민은 주님의 백성이다. 주님의 백성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을 주님께서 구원해 주셔서 되는 것이다. 이 시편에 나온 악인들 같은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일 지라도 완전히 멸하셔서 골라내시지만 시편 기록자와 같은 의인들은 악인들과 함께 망하게 두지 마시고 구원해 달라는 것이다.
주의 산업이란 주님의 소유된 재산이란 뜻이다. 재산이란 영원히 대대로 물려주는 땅을 말한다. 결국 하나님 나라의 영토인 것이다. 출애굽기 15:17절의 모세의 노래에 보면 “주의 기업의 산” 이라는 말이 나온다. 주님의 성전이 세워질 시온 산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따라서 주님의 소유된 재산이라는 말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 산 즉 예루살렘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의 목자가 되어 인도하신다. 세상의 왕들은 억압하고 다스리지만 하나님께서는 목자가 되셔서 인도해 주신다. 언제까지 인도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한다. 어떻게 인도하는가? 인도해 달라는 말은 안고 가시거나 어깨에 매고 가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목자이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안고 가시고 어깨에 메고 가시는 것이다.
8절의 기름부음 받은 자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메시야이다. 본래 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메시야를 기다렸다. 고대 그리스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메시야는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이미 오셨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셨다. 이제 다시 오실 일만 남았다. 9절에서 그 백성들을 어깨에 메고 가시는 목자이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드러내 보여 주셨다. 그분이 오늘도 연약한 우리를 메고 가신다. 그 분이 다시 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혈통의 이스라엘이 아니다. 구약성경을 보아도 모든 혈통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마치 썩은 사과를 골라내듯 거짓으로 거룩한 척하는 악한 자들은 골라내서 버리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깼기 때문이다. 악한 자들은 완전히 멸하시고 남은 자들로 하나님 나라를 이어오셨다. 예수님 오신 뒤에는 새로이 언약을 맺으시고 예수를 믿는 자들은 그 백성으로 삼겠다 하셨다.
교회가 타락했을 때도 버리셨고 종교개혁을 통해 남은 자들을 골라 내셔서 그 백성으로 삼으셨다. 그렇다면 오늘날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모든 믿는 자들이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 거짓으로 그리스도의 평화를 말하며 교회를 통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은 모두 골라내실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이 명령하신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의 명령에 순종하여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자들을 그 백성으로 삼으실 것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못하다고 걱정하지 말라 연약한 자들은 그분이 어깨에 메고 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을 존중하며 따르는 것이다.
사진출처:boston.c0m
사진설명: A Kashmiri nomad carries a sheep on his shoulders in Srinagar on September 25,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