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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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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1편

시편 기록자는 주님께서 힘 주시고 승리를 주셔서 계속 승리하게 하시고 존귀하게 하시며 원수들은 멸망하게 하실 주님을 찬양했다.

2017. 2. 28. · 안정섭 목사 · 페이스북 원문 · 시편 21편 강해 설교

시편 기록자는 주님께서 힘 주시고 승리를 주셔서 계속 승리하게 하시고 존귀하게 하시며 원수들은 멸망하게 하실 주님을 찬양했다. 원어에서 1절은 “여호와여, 주의 힘 안에서” 라는 말로 시작하고 13절에도 역시 “여호와여, 주의 힘 안에서” 라는 말이 있다. 여호와를 부르며 여호와의 힘 안에서 그 힘을 의지하겠다는 것이 이 시편을 둘러 싸는 액자와 같은 구실을 한다.

1-6절에서 왕은 하나님께서 이미 베풀어 주신 선하심을 회상하며 감사를 드리는 내용이다. 1-5절은 계속 두가지가 서로 대조된다. 그 공통점을 찾아 보면 대조되는 것은 마음 안에 있는 것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먼저 1절은 “왕이 주의 힘 안에서 기뻐하며” 와 “왕이 주의 구원 안에서 즐거워하리이다” 라는 말이 똑같은 구조로 대조된다. “기뻐하며” 라는 말은 왕의 마음 속에 있는 기쁨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주께서 주신 힘도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대조되는 “주의 구원”의 역사는 “주의 힘” 이 눈에 보이도록 표출된 것이고 “즐거워 하리이다” 라는 말도 빙빙 돌면서 춤을 춘다는 뜻이니 역시 마음 속에 있는 기쁨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표출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쟁에 나가 이길 힘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왕은 마음 속으로 혼자서 기뻐한 것이다. 그러나 그 힘으로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신 것을 경험하고는 대단히 기뻐하며 빙빙 돌며 춤을 준다는 것이다.

2절도 역시 마음 속에 감추어진 것과 겉으로 드러난 것이 대조된다. 먼저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는 왕이 마음 속으로 원하는 것을 생각하게 하신 것이다. 이는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마음 속으로 승리하게 해 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 대조되는 것은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 이다. 이번에는 마음 속에 숨겨진 것이 아니라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내어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해도 다 들어주실 뿐만 아니라 입술로 소리내어 기도하는 것도 거절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절하지 않으신다는 말은 기도 응답을 뒤로 미루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이는 입술로 구한 것은 바로 이루어 주신다는 뜻이다. 입술로 소리내어 기도한 것은 즉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이루어주신다는 것이다.

원어에서 3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2절에서 마음 속의 소원도 들어 주시고 말로 기도한 것도 이루어 주시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역시 보이지 않는 것과 눈에 보이는 것이 대조된다. 먼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이다. 여기서 복은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며 왕을 만나 주신 것 자체가 복이다. 이와 대조되는 눈에 보이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이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순금으로 된 왕관을 씌워주신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사실 진짜 왕은 하나님이시다. 진짜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다윗을 택하시고 만나 주셨을 때 이미 풍성한 복과 함께 만나 주셨다. 그 풍성한 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 바로 대관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순금 왕관을 씌워주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임명하셨다면 왕의 임무는 전쟁터에 나가 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이다. 4절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저가 생명을 구하매” 라는 말이다. 이는 왕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 여호와께 살아 돌아오게 해 달라고 마음 속으로 원한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영영한 장수” 를 주셨다. “영영한 장수로소이다” 라는 말은 원어에서 “그의 날의 길이가 영원히” 라는 뜻이다. 전쟁터에 자주 나가야 했던 고대의 왕들은 대부분 전쟁터에서 죽었다. 만약 어떤 왕이 오래 살았다면 계속 평화의 시대였거나 계속 승리를 했다는 뜻이다. 왕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 한번 살아서 돌아오게 해 달라고 마음 속으로 구했는데 하나님은 계속해서 눈에 보이는 승리를 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날의 길이가 영원히” 지속되게 해 주신 것이다. 이 말은 다윗 왕 한사람이 영생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윗의 왕가의 왕들에게 계속해서 승리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만약 다윗 왕가의 왕들이 계속 다윗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계속 승리하게 해 주시면 일어나는 일들이 5절에 나온다. 먼저 5절 앞부분의 “주의 구원으로 그 영광을 크게 하시고” 라는 말을 직역한다면 “그분의 영광이 당신의 승리를 통해 대단히 위대하게 존재한다” 라는 뜻이다. 이러한 다윗 왕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단지 하나님께서 왕에게 승리하게 하셨으므로 모든 백성들이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느낄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도록 해 주신 것은 바로 왕에게 위엄과 존귀를 내려주신 것이다.

전쟁에서 계속 승리한 왕은 왕관을 몇 개씩 가졌고 이웃 나라의 왕들이 모두 엎드려 굴복하게 되므로 그 위엄과 존귀를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위엄과 존귀는 왕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낸 것 뿐이니 절대로 교만하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힘 주신 것을 마음 속으로 기뻐하기만 해도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승리를 주셔서 빙빙 돌며 춤추게 하신다. 승리하게 해 달라고 생각만해도 응답해 주신다. 하나님을 만난 것 자체가 복인데 왕관을 씌워주신다. 전쟁터에 나가 살아돌아오게 해달라고 생각만 해도 연전연승하게 하신다. 연전연승한 왕에게 숨겨진 영광이 위엄과 존귀로 드러나게 하신다. 이처럼 시편 기록자가 1-5절에서 마음 속의 생각과 눈에 보이는 증거를 대조한 것은 하나님은 마음 속으로 생각만 해도 분명히 눈에 보이는 증거를 주신다는 것이다.

6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렇게 위엄과 존귀를 왕에게 내려주신 이유는 바로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이다. 영원토록 최고의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렇게 위엄과 존귀를 주셨다는 것이다. 영원토록 최고의 복을 받는다는 것은 다윗이 그렇게 영원히 복을 누린다는 뜻이 아니다. 다윗 왕가의 왕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충실할 때 그렇게 영원토록 최고의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또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라고 했다. “주 앞에서” 라는 말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뜻이다. 전쟁에서 계속 승리하고 돌아와서 하나님의 전에 나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데 얼마나 기쁜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1절에서는 힘을 주셔서 기뻐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승리할 힘을 주셨다는 것으로 기뻐한 것이다. 그런데 6절에서는 승리하게 하신 결과로 얻게 된 복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기쁨이 넘치고 있는 것이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나 전쟁터에서나 전쟁터에서 돌아와서나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께 경배 드리며 기쁨이 넘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부분인 7-13절은 미래의 성공에 대한 확신을 담고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과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것을 회상하며 기뻐한 후에 7절도 왜냐하면 이란 말로 이어진다. 왜 그렇게 기쁨이 넘치는가 하면 미래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계속 승리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 확신은 두가지 때문이다. 그 첫째 확신은 왕이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에 근거한다.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하나님은 계속해서 왕이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확신은 가장 높으신 분의 한결 같은 사랑을 통해서 왕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왕이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경험했기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다윗의 자손들이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지 않았기에 망한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오해했다. 자신들이 어떠한 잘못을 했더라도 하나님은 자신들과 언약을 맺었기에 무조건 한결 같은 사랑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언약의 당사자가 언약을 지킬 경우이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말씀을 통해 그 사랑을 돌이켜보고 늘 그 은혜를 깨달으며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관리해야 했던 것이다. 이 시편에서 다윗도 하나님을 의지 했기에 그 한결 같은 사랑을 늘 회상하면서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8-12절은 이처럼 늘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회상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왕에게 축복하셔서 원수들을 물리치게 해 주시는 내용이다. 그 내용은 순서대로 되어있다. 먼저 “왕의 손이 왕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냄이여” 라고 했다. 손으로 찾아내었다는 말은 깊이 숨어있는 원수들을 손으로 샅샅이 뒤져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왕의 오른 손이 왕을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내리로다” 라고 했다. 이는 앞에서 손으로 뒤져 눈으로 발견한 것을 오른 손으로 사로잡는 모습이다. 이는 마치 내가 어릴 적 벼가 익어가던 논을 샅샅이 뒤져 메뚜기를 발견하면 오른 손으로 잡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다.

잡은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 말한 것이 9절이다. “왕이 노하실 때에 그들을 풀무불 같게 할 것이라” 라고 했다. 왕이 원수들을 불구덩이로 만든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삼키시리니 불이 그들을 소멸하리로다” 라고 했다. 사로잡은 원수들을 완전히 멸망시킨다는 것을 불에 타 없어지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원수들은 완전히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았다. 10절에 보면 “왕이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 라고 했다. 후손을 멸한다는 말과 자손을 끊는다는 말이 같은 말이 말만 바꾸어 반복한 것 같지만 다른 말이다. 앞에 나오는 “그들의 후손” 이란 말은 “자궁의 열매들” 이란 뜻으로 어린 아이들을 뜻하는 말이다. 두번째는 자손이란 말은 원어에서 씨앗이란 뜻이다. 이는 여자의 몸에 뿌려진 씨앗이라는 뜻으로 태중의 아기를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린 자녀들 뿐 아니라 그 태중의 아기들까지도 완전히 다 파괴하겠다는 뜻이다. 원수들은 이처럼 완전히 멸망시키신다는 것이다.

11절은 “왕을 해하려고 음모를 꾸몄으나 이루지 못하도다” 라고 했다. 원수들은 자신들이 이처럼 완전히 멸망할 것을 알고 미리 손을 써서 왕을 죽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원수들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뿐이 아니라 12절 앞부분은 오히려 “왕이 그들로 돌아서게 함이여” 라고 했다. 왕을 죽이려는 음모가 발각되고 오히려 반전되어 그들이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그들의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 에 나온다. 정신없이 도망가는데 어느 틈에 왕은 이들의 코 앞에 갑자기 나타나 활시위를 당긴 채 그 화살의 끝을 저들의 얼굴에 대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왕은 파죽지세로 연전연승하는 왕인데다가 신출귀몰하는 놀라운 왕이다. 이정도면 왕이 스스로 높은 자리에서 교만해 지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힘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승리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원수들의 음모를 미리 알게 하셔서 지름길로 앞서가서 원수들의 얼굴에 화살을 겨누게 하신 분도 역시 하나님이시다. 승리의 왕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지금까지는 왕과 하나님에 대해 3인칭으로 말했는데 이제 13절에서는 하나님께 직접 영광을 돌리는 내용이다. 13절 첫부분은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라고 했다. 원어는 “높아지십시오 여호와여 당신의 힘 안에서” 이다.

승리의 왕이다. 패배한 장수는 낮아지는 것이다. 모두가 낮게 엎드린 상태에서 승리한 장수는 높이 우뚝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편에서 진짜 장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뚝 서셔서 모든 대적들을 다 무릎 꿇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목소리로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당신의 힘을 찬양하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겸손하고 신실했던 그리스도인들이 망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자신의 승리와 성공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교만에 빠지고 자신이 왕이 되어 멸망의 지름길로 전력질주 하는 데 브레이크가 되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렇게 성공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너무 높아져 있기에 어느 누가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이 시편을 통해 우리가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하는 것은 힘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승리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원수들의 음모를 막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높아져야 할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만약 내가 성공해서 내가 높아지고 결국 멸망한다면 차라리 그런 성공은 안하는 편이 낫다. 어떠한 경우에도 높아지시고 찬송과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사진출처: wikimedia: U.S. Invictus team archer Chasity Kuc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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