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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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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7편

이 시편에서 시편 기록자는 억울한 일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2017. 1. 27. · 안정섭 목사 · 페이스북 원문 · 시편 17편 강해 설교

이 시편에서 시편 기록자는 억울한 일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의롭다는 뜻의 진실이란 말로 시작해서 15절 역시 의롭다는 뜻의 떳떳하게로 끝이나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로 대적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힘든 상황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다가 아침에야 확신을 얻고 평안을 누리는 모습이다. 이 시편을 통해 우리는 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첫째 기도는 1-5절은 자신의 결백에 근거한 기도이다. 그 중 1-2절은 자신의 결백을 밝혀 달라는 기도이고 3-5절은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내용이다. 먼저 1절에는 들어달라는 뜻을 가진 말이 세번이나 나온다. 하지만 이 세가지 들어달라는 말은 뜻이 조금씩 다르다.

첫째 들어달라는 말은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에서 나온다. ‘들으소서’ 라는 말은 말은 듣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부르는 것이다. 의의 호소 라는 말은 법정에서 자신은 무죄라고 호소한다는 뜻이다. 시편 기록자가 대적의 거짓 고소에 대해 억울해 하며 “하나님! 날 좀 보세요. 내 말 좀 들어보세요. 나는 죄가 없는데 정말 억울해요” 라는 식의 외침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즉시 도와주지 않으셨고 시편 기록자는 거짓 고소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편 기록자의 두번째 들어달라는 말은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에 나온다. “주의하소서” 라는 말은 좀 저 적극적이고 주의 깊은 청취를 부탁하는 것이다. 시편 기록자는 너무 억울하다며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잘 들어 달라는 것이다.

시편 기록자는 울부짖다가 이제 울음을 삼키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에서 “귀를 기울이소서” 가 세번째 들어달라는 말이다.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에 귀를 좀 빌려 달라는 것이다.

이어서 주님께 기도를 드리는 내용이 2절에 나온다.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에서 “주께서” 라는 말은 “주님의 얼굴로부터” 라는 뜻이다. 또 판단이라는 말은 현명한 재판을 내린 기록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명한 재판이 주님의 얼굴로부터 나와서 길이 남을 판례로 기록되게 해 달라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주님의 얼굴 중 어디에서 오게 해 달라는 것인가? 바로 이어서 “주의 눈으로” 라고 했다. 주님의 눈으로 공평하게 살펴보아 달라는 것이다. 본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알아달라는 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결백한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을 다 보시고 자신의 누명을 벗겨 달라는 뜻이다.

어떻게 벗겨달라는 말인지 3-5절에 나온다.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하면 시편 기록자 자신이 율법적으로 아무런 흠이 없고 완벽하다는 말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자신이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에 대해 결백하다는 뜻이다.

누명을 벗기는 방법은 금을 검사해서 불순물을 찾아내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검사하는 1단계는 3절에서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이다. 이는 금광석을 눈으로 검사하여 불순물을 골라 내는 모습이다. 시편 기록자에게 잘못이 있는지 하나님의 눈으로 완전히 찾아보셨다는 것이다.

2단계는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이다. 눈으로 검사해서 아무런 불순물도 발견하지 못하시자 이번에는 심문을 통해 그 마음 속의 불순물을 찾아 보시는 모습이다. 이는 금광석을 쪼개어 속을 들여다 보는 그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밤이 새도록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이번에는 자신의 속마음을 쪼개어 하나님 앞에 보여 드리듯 아뢰는 모습이다.

3단계 검사방법은 “흠을 찾지 못하였사오니” 인데 이는 불로 녹여 금 속의 불순물을 찾아내는 모습이다. 하나님은 눈으로 살펴 조사하시고 쪼개어 그 속까지도 조사하셨는데 이번엔 완전히 녹여서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모든 죄를 다 찾아내려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 검사에서 하나님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셨다는 것이다. 왜 발견할 수 없었는가 하면 시편 기록자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않겠다 했기 때문이다.

검사가 끝나고 아무런 혐의가 나오지 않자 시편 기록자 스스로 변호한 내용이 4-5절이다.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에서 “사람의 행사” 는 도덕적으로 죄악된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의 입술로 말씀하신 대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포악한 자” 란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빼았아 가는 강도를 말한다. 그러한 자의 길을 가지 않았다는 말은 단순히 따라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자신을 꼬여도 절대 넘어가지 않고 자신을 지켰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악한 자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악한 자들이 다가와서 꼬이기 때문에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 시편 기록자는 포악한 자들로부터 자신을 완벽하게 보호했다는 뜻이다.

5절에서는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라고 했다. 이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시편 기록자의 발로 내려온 것이다. 원어는 내 발이 주님의 길을 단단히 붙잡았다는 뜻이다. 발이 어떻게 길을 붙잡는가? 이는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길에 발을 밀착시키고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이다. 길이란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주님께서 말씀으로 알려주신 길에 완전히 밀착해서 따라 갔다는 뜻이다. 행여나 넘어질세라 말씀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며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한 것이다. 한번도 미끄러진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둘째 기도는 6-12절에서 대적의 공격에 근거해서 기도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6절은 “내가 불렀사오니” 라고 했다. 이는 모두가 알아 듣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는 것이다. 그렇게 큰 소리로 부른 이유는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에 나온다. 하나님게서 응답해 주실 것이기에 그렇게 큰 소리로 하나님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렇게 큰 소리로 부를 때 귀를 기울여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몸을 구부리시고 귀를 가까이 해 달라는 말이다.

7절은 자신에게 몸을 구부리시고 귀를 가까이 대신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내용이다. 원어에서는 “주의 기이한 인자를 나타내소서” 라는 말이 7절 맨 앞에 나온다. 인자 라는 말은 한결같은 사랑을 뜻하는 헤세드이다. 이 말은 언약에 근거한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 달라는 뜻이다. ‘기이한’ 이란 말은 특별히 다르게 취급해 달라는 뜻이다. 부모가 자기 자녀들에게는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 같은 그런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필자가 어릴적 나보다 5살 정도 위인 막내 이모와 함께 살았다. 중학교 졸업하고 시골에 있던 이모를 데려다가 우리와 함께 살면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한 것이다. 그 때 필자의 어머니는 우리와 막내 이모께 흰머리를 뽑아 달라고 하셨다. 그런데 막내 이모가 흰머리를 뽑으면 돈을 안주는데 우리에게는 한개 뽑는데 1원씩 준다 하셨다. 흰머리 30개 뽑으면 30원이 생겼다. 라면 1봉지에 20원 하던 시절 30원이면 제법 큰돈이었다. 막내이모는 불공평하다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는 막내 이모에게는 강제노동을 시키셨고 우리에게는 급여를 주며 일을 시키셨다. 그 차이가 무엇인가? 아들인가 아닌가이다. “기이한 인자” 란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계약을 맺은 것에 근거해서 한결같은 사랑을 따로 구별해서 보여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그런 사랑을 보여달라 하는가? “구원하시는 주” 이다. 그러나 무조건 구원하시는 분이 아니다. “주께 피하는 자” 라는 말은 원어에서 “당신의 오른 손으로 피하는 자” 란 뜻이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에게 쫓길 때 하나님의 오른손 안으로 피하는 자에게 그런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따라서 언약에 의해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달라고 한 것은 모두에게 그렇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가 하나님의 품으로 피할 때 한결같은 사랑을 드러내 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께 피해야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8절에는 새끼를 지키는 어미 독수리의 그림이 나온다.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는 독수리가 높은 하늘을 날면서도 자기 새끼를 그 눈동자로 지켜 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보호하시려고 지켜 보시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눈동자로 지켜 보시는 것을 어미 독수리의 그림이다. 같은 그림이 신명기 32:10절에는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라고 했다.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수리가 자기 새끼들을 지키듯 그 눈동자로 지키셨다는 뜻이다.

또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라고 했다. 만약 새끼들을 해치려는 다른 동물들이 나타나면 그 날개로 덮어 그 새끼들을 그 그늘 아래에 감추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새끼를 해치려는 다른 동물들을 그 매서운 눈으로 노려본다. 조금만 수상한 동작을 하면 즉시 그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찢어버릴 것이다.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위기를 만나면 하나님께서 즉시 나타나셔서 그렇게 보호하셨다는 것이다. 시편 기록자 역시 그러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고 있다.

9절에서는 대적들이 공격하려 하고 있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다. “나를 압제하려는 악인” 이란 칼을 휘둘러 시편 기록자를 해치면서 약탈해 가려는 대적을 말한다.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들” 이란 시편 기록자를 죽이려고 시편 기록자를 둘어 싼 원수들을 말한다. 그런 자들의 공격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시편 기록자는 곧 잡아 먹힐 위기에 있는 독수리 새끼와도 같은 모습이다. 어미 독수리에게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이 대적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10절에 보면 “자기 기름에 잠겼으며” 라고 했다. 이는 대적들의 심장이 기름으로 가로막혀 있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3:17절에 보면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라고 했다. 자기의 심장에 지방이 가득 끼일 만큼 되었다면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물질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이렇게 지방이 가득 끼일만큼 호의호식하면서 다른 형제 자매들은 불쌍히 여기지 않고 냉담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신실한 종인 시편 기록자를 그렇게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편 기록자는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나이다” 라고 악인들을 고발하고 있다. 자신들이 가진 것들이 모두 자신들이 이룬 것처럼 말하는 자들이다.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이다.

이제 시편 기록자는 독수리의 그림에서 군대가 포위하고 있는 그림으로 바꾸어 전달한다. 11절은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저희가 에워싸며” 라는 말은 군대가 포위하는 그림이다. 시편 기록자 일행이 피하려고 걸어가고 있는데 계속해서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그림이다. “주목하고 땅에 넘어 뜨리려 하나이다” 이제 포위망은 손에 닿을만큼 좁혀진 것이다. 대적들은 시편 기록자를 잡아 개구리를 땅에 메어치듯 그렇게 땅에 메어 치려고 노려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지 12절에서는 달려드는 사자의 그림으로 전달하고 있다. 먼저 “저는 움킨 것을 찢으려고 하는 사자 같으며” 라고 했다. 땅에 집어던져버린 시편 기록자를 마치 사자가 그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찢으려는 순간에 비유한 것이다. 또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라고 했다. 고양이과 동물들이 공격하려 할 때에는 등을 굽히고 앞 뒷 발을 가까이 밀착한다. 기회를 노렸다가 스프링처럼 뛰어올라 전광석화처럼 먹이를 낚아챈다. 젊은 사자는 가장 혈기 왕성한 10대 청소년 같은 시기의 사자를 말한다. 이런 경우 젊은 사자가 눈 앞에 있는 먹이를 놓치는 경우는 없다. 일촉즉발의 위기이고 절대절명의 위기라는 것이다. 그러니 빨리 자신을 구해 달라는 것이다

셋째 기도는 13-15절에 나온다. 이는 대적들의 멸망과 자신의 구원을 위한 기도이다. 13절은 여호와의 구원의 동작이 동영상처럼 연속해서 이어진다. 원어에는 “일어나십시오” 가 맨 먼저 나오고 그 뒤에 주님이 나온다. 정말 다급한 상황이기에 먼저 일어나 달라고 다급하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동작은 “저를 대항하여” 이다. 이는 대적을 죽이려고 칼을 겨누고 대적에게 다가가는 그림이다. 천하 무적인 여호와께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그 다음 동작은 “넘어 뜨리시고”이다. 이는 대적을 이기고 땅에 엎드려지게 하시라는 말이다. 넷째 동작은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구원의 도구는 여호와의 칼이다. 대적이 살아 있는 동안은 시편 기록자는 안전하지 못하다. 땅에 엎드려진 대적을 여호와의 칼로 그 목을 쳐서 자신을 구원해 달라는 것이다.

14절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당신의 손으로 구해 달라는 것이다. 앞에서 칼로 구해달라는 것은 칼로 적을 제거해 달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그 칼을 놓으시고 그 오른 손으로 시편 기록자를 잡아서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세상 사람이란 수컷이란 뜻이므로 남자들이란 뜻이다. 전쟁을 하고 권력을 쥐며 사람들을 압제하던 자들은 모두 남자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컷들이 누구인가 이어서 설명한다. 이들은 그들의 몫이 금생에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전혀 없고 자신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자들이다. 놀라운 것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라는 말이다. 주님께서 많은 재물로 축복해 주신 자들이 악인들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재물의 축복을 받고도 저들은 자신들만 배가 터지도록 누리다가 남은 것은 그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그래도 남아서 그 자식의 자식들에게까지 계속 물려주는 자들이라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 기록자가 고발하는 악인들은 그렇다면 정말 흉악한 죄를 저지른 죄인들이 아니다. 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물질을 받아 자기들만 배불리 채운 자들이다. 오늘날 이것을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러나 시편 기록자는 자기 소득을 가지고 자기만 배불리 먹는 것이 죄라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의 대적이고 멸망을 당해야 할 자들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실컷 먹고도 남아서 자식들에게 물려 주고 또 그 자식의 자식들에게도 물려주면서도 불쌍한 형제 자매들은 돌아보지 않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편 기록자는 15절에서 이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라고 했다. 의롭다는 말은 앞에서 계속 고발한 불의한 자들의 반대이다. 자신은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그 사랑 가운데 행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겠다는 것이다.

언제 보는가? 15절 끝부분에 보면 “깰 때에” 라고 했다. 꿈이나 환상으로 신비한 체험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밝은 아침에 여호와의 얼굴을 뵐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한결같은 사랑을 이웃에게 행했기에 하나님을 떳떳하게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때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라고 했다. 다른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형상으로 만족한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모양도 형제도 없는 분이시기에 주님의 임재를 체험한다는 뜻이다. 밝은 아침에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말씀과 함께 동행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입고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그 분을 믿는 자는 구원하시겠다는 새언약의 백성이 의인이다. 그러나 언약만으로 의인이라 할 수 없다. 시편 17편에 나오는 악인도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되었다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간절히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품 안으로 피하는 자가 의인이다.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자신의 결백함을 호소하는 자가 의인이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 길에 발을 바싹 붙이고 조심스럽게 걷는 자가 의인이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주신 그 사랑에 감사해서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참아주면서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는 자가 의인이다.

누가 악인인가? 하나님께서 물질로 크게 축복해 주셨는데도 자기 배만 불리우며 호의호식 하는 자들이 악인이다. 자신들의 배를 불리우기 위해 의로운 자를 거짓으로 모함하는 자가 악인이다. 불쌍한 형제 자매를 보고도 냉담하면서 자기들만 누리며 사는 자들이 악인들이다.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경험하고도 자신이 잘나서 이룬 줄 알고 자기 욕심과 생각을 따라 사는 자가 악인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죄인이냐 말하지 말라. 살인, 강간, 강도, 절도등의 흉악한 죄를 이어야 죄인이 아니다. 죄인이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도 그 사랑에 감사할 줄 모르고 그 사랑을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 바로 죄인이다.

사진출처: Wikipeida, White tailed ea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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