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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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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5편

이 시편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고 대답한 것이다.

2017. 1. 12. · 안정섭 목사 · 페이스북 원문 · 시편 15편 강해 설교

이 시편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고 대답한 것이다. 성전에 들어가길 원하는 사람은 먼 나라에 흩어져 살던 순례자들이다. 명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려고 산을 넘고 사막을 건너 먼 길을 걸어와서 성전 문에 도착하여 들어가도 되는지 묻는 상황이다. 이에 제사장은 들어와도 좋은 조건을 대답한 것이라고 보통 해석한다.

이 시편에서 성소에 들어가도 좋은 조건을 10가지이다. ‘10’ 하면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십계명도 있고 열 손가락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열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이 열 가지를 노래로 부르며 암송하게 했을 것이다. 이 중 다섯은 긍정적인 조건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나머지 다섯은 부정적인 조건들이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첫째 1절은 순례자 또는 예배하길 원하는 자의 질문이다. 첫째 질문은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이다. 머무른다는 말은 남의 땅에서 손님으로 잠시 머물러 있는다는 뜻이다. 창세기 12:10절에서 아브라함이 이집트에서 머물 때 이 말을 썼다. 또 창세기 26:3절에서 이삭이 그랄의 아비멜렉에게 가서 임시로 머물 때도 이 말을 썼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장막에서 손님으로 잠시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순례객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의 손님으로 머물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이다.

둘째 질문은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장막이 있는 그 이웃으로 살 자가 누구냐는 뜻이다. 먼 곳에서 성전 문 앞에 서고 보니 잠시 왔다가 가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하는 말이다. 계속 하나님의 장막 옆에 집을 짓고 살면서 자주 하나님께 나아가 경배하고 싶은 욕심에서 질문한 말이다. 지금은 멀리 타국에서 살고 있지만 이 순례객의 간절한 소망은 하나님의 이웃이 되어 살면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사는 것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 중에는 몇 시간을 운전해 가서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성도님 중에도 약 300km 거리에서 세시간씩 고속도로를 달려와 주일 예배에 참석했었다고 한다. 그런 분들은 교회가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아침 저녁으로 지나다가 교회에 들러 기도하고 가고 주일 예배 뿐 아니라 수요예배나 다른 예배들도 참석하길 원한다. 하지만 교회가 너무 멀어 주일에 한번 오면서 안타까워한다. 이 시편에 등장하는 예배자는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2-5절 앞부분까지는 제사장이 대답하는 내용이다. 이 대답은 열가지로 되어 있는데 열손가락으로 세면서 기억하도록 한 것이다. 유대인들이나 중동 사람들은 오른손은 깨끗한 손이고 왼손은 더러운 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말씀에서도 다섯 가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것인데 긍정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다. 이는 오른 손으로 하나씩 손가락을 꼽으며 노래했을 것이다. 또 나머지 다섯 가지는 사람들과의 관계인데 부정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왼손의 손가락을 꼽으며 노래했을 것이다.

먼저 2절은 긍정적인 내용으로 하나님과 관계에서 나오는 세가지가 먼저 나온다. 그 세가지는 발에서 시작해서 손으로 올라가고 마지막엔 입으로까지 올라간다. 첫째는 발이다. “정직하게 행하며” 란 말에서 ‘행한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걷는다’ 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올바르게 사는 것을 는 모습에 비유한 그림이다. 창세기 17:1절을 보면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이 “정직하게 행하며” 라는 말과 순서만 다르고 똑 같은 말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완전히 행하라는 뜻이다. 또 “정직하게” 라는 말은 레위기에서는 흠없는 제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산 제물로 흠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둘째와 셋째는 첫째에 나온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걸어가는 삶이 어떤 삶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어떻게 말씀을 따라 걷는 것이 흠없는 삶인가? 둘째는 손이다. “공의를 실천하며”에서 실천한다는 말은 신명기 33:11의 “그의 손의 일”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실천한다는 말은 본래 손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공의란 말은 올바른 판단이란 뜻이다. 구약에서 강조하는 도덕적인 삶을 올바른 판단을 통해 손으로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또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흠없이 걸어가는 삶인가? 셋째는 입이다.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라고 했기 때문이다. 발에서 시작해서 손을 거쳐 이제 입에까지 올라온 것이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란 믿을만한 말을 하는 사람이다. 속으로는 딴 생각 하면서 입으로만 좋은 말 진리의 말을 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마음 속의 생각과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말이 항상 일치되게 하는 사람이다. 이 세가지는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말한 것이다. 오른손 손가락 세개를 꼽으며 노래했다. 아직 오른손에는 두개의 손가락이 남아있다.

이어지는 3절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노래한 것이다. 많은 주석을 확인해 보았지만 발에서 손을 거쳐 입으로 이어지는 그림이 2절과 3절에서 반복된다는 것을 설명한 내용은 아직 보지 못했다. 고대의 시편은 글로 읽던 것이 아니라 말로 듣고 따라 부르던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 말로만 듣던 사람들에게는 기억장치가 필요한데 이 시편에서 기억장치는 발과 손과 입 그리고 열 손가락이다. 이 시편을 듣고 따라 부르던 사람들은 발과 손과 입을 2절과 3절에 연결했을 것이다. 3절에서 이 세가지는 모두 다 “하지 아니하고” 이란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먼저 발이 나온다. 하지만 “그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에서 발을 찾을 수는 없다. 한글성경이나 영어성경 아무리 읽어보아도 이 부분에서 발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원어를 보면 “남을 허물하지 않는 사람” 이란 말은 원어에서 ‘라갈(רגל)’ 인데 본래 발이란 뜻이다. 이 말이 군대의 정탐꾼들이 적국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몰래 잠입해서 들어가는 모습을 나타내던 그림언어이다. 이 말이 비유적으로 쓰여 남의 과거의 비밀을 몰래 알아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귓속말로 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발걸음을 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손님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의 과거의 부끄러운 삶을 필자에게 들려주시는 분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내용들은 모두 다 아름답지 못한 과거에 대한 말들이다. 이러한 소문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도 그 소문들도 함께 간다. 그런 말들이 나면 보통 당사자들은 한인 교회를 나오지 않고 미국 교회로 나가거나 숨어버린다. 한국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는 사람이란 바로 이런 사람들처럼 살금살금 걸어가 스파이처럼 정보를 캐낸 다음 귓속말로 남에게 전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 예배해도 받지 않으신다. 흔히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잘못 알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말로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 착각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남의 허물을 조사해서 다른 사람에게 폭로하는 사람은 그 버릇 고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그래서 발로 스파이처럼 몰래 가서 정보를 캐내오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웃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둘째도 손이라는 말이 숨겨져 있다. 두번째 부정적인 조건은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라는 말에 나타나 있다. “악을 행하지 않는 사람” 이란 말에서 행한다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아사(עשה)’ 이다. 이 말은 창세기 33:17에서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에서 “지었다” 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는 손으로 만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비유적으로 쓰여서 지어낸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남에게 복수하려고 말을 보태거나 없는 말을 만들어서 퍼트리거나 의도적으로 악한 계획을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이가 하나님의 손님이 되고 이웃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친구를 해칠 악한 계획을 손으로 만들어내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믿는 자가 만약 원한을 품고 남에게 보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당장 버려야 한다. 그런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 남에게 피해를 입고 화가 나서 그를 비방하는 것도 역시 악한 계획을 손으로 만들어 내는 행위이다. 이처럼 말로 보복할 계획을 마음으로 꾸미고 있다면 그런 사람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그렇지 않은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들어갈 수 있다.

셋째는 입이다. 셋째 부정적인 조건은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에 나타나 있다. 비방한다는 말은 입과 관련이 있는 말이다. 입으로 이웃을 해치는 비방이란 성적인 모욕, 애 낳지 못하는 것, 과부, 굶주림과 질병, 할례 받지 않는 것, 대적으로부터 부상을 입은 것 등이다. 모두 다 이미 본인이 심한 상처를 가지고 열등감과 좌절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무엘상 1:6절에 보면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히고 업신여겼다고 했다. 이는 애도 못낳는 여자라고 괴롭히고 업신여겼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한나가 남편 엘가나에게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울기만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을 잃고 고통 가운데 사는 여자에게 과부라고 조롱하고 멸시한다면 어떻겠는가? 굶주림과 질병은 둘 다 육체의 고통이다. 이러한 육체의 고통을 가지고 놀린다면 정말 가슴에 원한이 사무치게 된다.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지역에서 살고 있다면 그 자체가 천대받는 놀림거리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약점을 지적하면 안되는 것이다. 전쟁터에 나가서 부상을 입고 다리를 저는 사람에게 절름발이라고 놀리면 안된다.

위에 제시한 목록에 없다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무엇이든지 남의 가슴에 사무친 아픔을 말로 건드리면 그것이 바로 이웃을 말로 모욕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가만 두어도 아픈 사람들이다. 모두 큰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악인들은 이러한 약한 사람들을 조롱하고 짓밟는다. 만약 누구든지 나보다 못한 조건에서 살고 있다고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하나님 회개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설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세가지는 부정적인 조건들이기에 왼손으로 꼽았을 것이다. 왼손에도 두 손가락이 남아 있다.

이제 4절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된 조건이다. 앞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말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과 진정한 동반자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진정한 동반자 관계에 있는 사람은 두가지 조건에 맞아야 한다.

먼저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가 그 첫째 조건이다.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라는 말의 뜻은 말로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을 직접 욕한다는 뜻은 아니다. 호세아 4:6절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라” 라고 했다. 즉 하나님을 하는 지식을 거부하고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망령된 자들이다. 반대로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고 기뻐하며 그 말씀에 따라 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순종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생각이 없는 사람은 경멸하고 고난을 참고 견디면 하나님 말씀으로 채워가며 순종하는 사람은 우리가 존경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이다.

둘째 하나님과 진정한 동반자 관계에 있는 사람은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에 나온다. 원문을 직역하면 자신이 다친 것에 대해 맹세하고 나중에 바꾸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A 집사님이 10만불짜리 BMW 새차를 뽑아 처음으로 다고 교회에 왔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나와 보니 B집사님이 차를 후진하다가 20년된 똥차로 A 집사님 차의 문짝 하나가 살짝 쭈그러들었다. 처음엔 잘 아는 처지이고 별 것 아닌 것 같아서 그냥 괜찮다고 자신이 보험으로 고치면 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공장에 입고시켜 견적서를 받아보니 수리비가 만불이 나왔다. 생각할수록 너무 아까워서 다시 말을 전화해서 물어 내라고 했다. 하나님과 진정한 동반자 관계에 있는 사람은 이런 손해를 입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지키는 사람이다. 이제 오른손 남은 두 손가락 다 사용했다.

이제 왼손 나머지 두 손가락이 남았으니 부정적인 조건이 나올 것이다. 그 내용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이웃과 동반자의 관계를 가지려면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첫째 조건은 “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아니하며” 이다. 이자 라는 말은 히브리어에서 본래 뱀이 문다는 말에서 온 말이다.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거짓 예언을 하며 백성들을 뜯어 먹는 것을 말할 때 썼다. 미가 3:5절에 보면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라고 했다. 레위기 25:36절에 보면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라고 했다. 유대인 형제들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라 한 이유는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함께 생활하는 형제 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자를 받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유대인 형제들이 꿀 때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양식을 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자를 받게 되면 그 다음 해에 수확해도 먹을 것이 없어 또 꾸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이자 대신 담보물을 잡았다가 받으면 돌려 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에게는 꾸어주고 이자를 받으라 했는데 무조건 이자를 받으라는 뜻이 아니다. 레위기 25:35절에 보면 거류민이나 동거인들에게도 받지 말라고 했는데 이들이 '게르'와 '토샤브'이다. '게르'와 '토샤브'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거하는 가난한 이방인들이다. 하지만 신명기 23:20절에 나오는 타국인은 '나크리'인데 이들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지나가는 외국인들이다. 이들은 돈을 빌려 큰 이익을 남기는 사람들이기에 이들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함께 거하는 형제자매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불쌍히 여겨 이자 없이 먹을 것을 빌려주라는 뜻이다. 왼손 마지막 손가락은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다. 뇌물을 받으면 거짓 증언을 하거나 잘못된 재판을 해서 무죄한 사람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5절 끝부분은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는 말로 끝이 난다. 이는 축복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믿는 자들에게는 소망인 것이다. 하나님의 앞에서 예배자로 사는 그 위치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누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이웃이 되어 친밀한 관계로 살 수 있는가? 오늘 시편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교훈을 준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흠 없는 사람이 된다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렇게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 죄를 위해 흠 없는 제물이 되게 하셨다. 이제 우리는 그분을 믿고 그분께서 전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가득 채워 순종해야 한다.

어떻게 순종하는가? 오른손 세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신 말씀을 발로 따라 걸으며 손으로 옳은 일을 행하며 입으로 진실되게 말해야 한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어느 누구도 완전하다고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그렇다고 반대로 죄 용서 받았으니 생각없이 아무렇게나 하나님 앞에 나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흠없는 제물로 인정해 주셨으니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가야 한다. 예배하러 나갈 때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용서가 없다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또 왼손 세 손가락에 해당하는 세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남의 허물을 염탐해서 퍼트리는 일은 하지 않았는지 남에게 보복하려고 말을 지어내지는 않았는지 이웃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일은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회개해야 한다.

어떤 사람과 사귀어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배우길 거절하는 자를 경멸하고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자는 존경해야 한다. 그러면 교회는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세상의 원리를 따라 세상 사람들처럼 존경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멸시하면 그런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마음으로 약속한 일은 반드시 행해야 한다.

또 믿음의 형제들과도 동반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 교제를 하며 살아야 한다. 어려울 때 도와주고 억울한 일은 함께 고민하고 부모의 마음으로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교제해야 한다. 물질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고통을 주는 사람들은 경멸하며 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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