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에서 지혜는 네거리에 서서 음녀가 유혹하는 길로 가지 말고 지혜가 인도하는 길로 가라고 외쳤다고 했다. 지혜가 인도하는 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길인데 악을 미워하는 것이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 했다. 자신을 높여 주님의 영광까지 차지하는 교만한 자들을 미워하라 했다. 악한 행실을 미워하고 죄를 죄가 아니라고 속이는 패역한 입을 미워하라 했다. 그 지혜는 역사 속에서 세상을 다스린 자들에게 계략과 참 지식을 주었고 또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도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역사를 주관하는 지혜를 따르는 길이 바로 복된 길이라 했다.
잠언의 기록자는 7장에서 음란한 여인을 따라가지 말라 했고 8장에서는 지혜로운 여인을 따라가라 했다. 이제 9장은 이 두 여인들이 서로 자기의 잔치 자리에 오라고 한다며 본격적으로 둘을 비교하고 있다. 지혜라는 여인은 진짜 사랑으로 초대하지만 음란한 여인은 거짓 사랑으로 초대한다. 아들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따라가야 하며 다른 중간의 길은 없다.
I. 지혜의 잔치(9:1-6)
1-3절을 보면 지혜라는 여인은 잘 차려 입은 지체 높은 귀부인이다. 1절은 이 여인은 일곱 기둥을 깎아 세워서 집을 세웠다. 일곱 기둥을 깎아 세워 집을 지었다는 것은 대단히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뜻한다. 모든 사람을 다 초대해서 함께 잔치를 즐길 만큼 웅장하고 화려하면서 완벽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벌일 목적으로 지어진 집이다.
잔치를 위해 집을 지었다면 다음으로는 잔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2절에서 이 여인은 짐승을 잡았다. 히브리어는 “잡은 것을 완전히 잡았다” 라는 말이다. 이미 잡은 짐승을 완전히 잡았다 했기에 이 여인이 짐승을 죽이는 그림이 아니라 이미 죽인 짐승을 칼로 토막쳐서 요리하는 그림이다. 한국어에서도 장모가 씨암탉을 잡았다 라고 한다면 암탉을 죽여서 그냥 놔두었다는 뜻이 아니고 요리했다는 뜻이 포함된 말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혜는 고기 요리를 준비한 것이다.
이어서 “포도주를 혼합하여” 라는 말은 포도주를 담갔다는 뜻이 아니고 이미 담가둔 포도주에 물을 섞어 마실 수 있게 한 것을 뜻한다. 꿀이나 향이 나는 허브들을 섞었을 수도 있다. 잔치 손님들이 즐겁게 마실 수 있도록 음료수를 준비했다는 뜻이다.
“상을 갖추고” 라는 말은 고기를 먹고 음료수를 마실 수 있도록 상을 차려 놓았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살을 빵이라 하고 자신의 피를 포도주로 비유하며 먹고 마시라 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지혜가 요리해 놓은 고기와 맛있게 섞어놓은 포도주는 이제 와서 즐겁게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되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다.
이제 상을 차려 놓았으니 다음 단계는 손님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자기의 여종들을 보내어” 라는 말은 젊은 여자 하녀들을 한꺼번에 사방으로 보내는 모습이다. 음란한 여인은 침대로오라고 유혹하지만 지혜가 파견하는 하녀들은 젊은 청년들을 지혜의 학교로 오라고 부르는 모습이다. 이 하녀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던 스승들이나 부모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성읍의 높은 곳은 성벽의 높은 곳이다. 그곳에 서서 모든 사람들에게 지혜의 잔치에 오라고 초청하는 것이다.
그 외침의 구체적인 내용들은 4-6절에 나온다. 어리석은 자란 쉽게 속아넘어가는 사람이다. 이들은 네거리 갈림길에서 음란한 여자가 유혹하는 길을 향해 이미 발길을 돌렸다. 지혜가 보낸 하녀들은 이런 어리석은 젊은이들에게 지혜가 초청하는 길로 발길을 다시 돌리라고 초청하는 것이다. 또 “지혜가 없는 자” 란 원어의 의미는 심장이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즉 어느 것이 옳은지 그른지 생각하는 능력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도 역시 지혜가 초청하는 잔치로 오라고 부른 것이다. 음란한 여자가 손짓하는 멸망의 길로 이미 향하여 가고 있는 자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서서 하나님의 지혜의 길로 오라는 것이다.
5절의 ‘너는 와서’ 라는 말은 4절의 발길을 돌이키라는 말과 연결되는 동작이다. 음란한 길로 가던 발길을 돌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즉시 지혜가 인도하는 잔치 자리에 빨리 와야 하는 것이다. 와서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다. “내 식물을 먹으며” 라는 말도 원어에서는 “먹을 것을 먹고” 처럼 동사와 목적어가 똑 같은 말로 강조하고 있다. 이는 2절에서 지혜가 잡은 것을 잡았는데 이젠 그 먹을 것을 먹으라는 것이다. 또 2절에서 섞어놓은 포도주도 마시라는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 무엇인지 6절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먼저 “어리석음을 버리고” 는 이미 음란한 여자가 유혹한 탐욕을 따라 가는 길을 떠나라는 것이다. 이는 4절에서 발길을 돌린 그 다음 행동이 그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 길을 떠나면 지혜가 인도하는 길로 오게 되어 있다. 지혜가 인도하는 길로 와서 생명을 얻으라고 했는데 원어는 살라는 것이다. 음녀를 따라가는 길은 죽는 길이지만 지혜가 인도하는 길로 오면 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혜가 인도하는 길은 멈추어 있는 길이 아니다. 그래서 살 뿐만 아니라 또 “명철의 길을 행하라” 라고 한 것이다. 지혜에게 오면 이제 명철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II. 초대장의 부록(7-12)
7-12절은 초대장에 추가로 덧붙여진 부록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7절 앞부분은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라고 했다. 능욕을 받는다는 말은 말로 욕을 먹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훈계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법이다. 그런데 거만한 사람은 자기가 최고 높다고 생각하기에 자기에게 훈계를 하면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쌍욕을 퍼붓는다는 뜻이다. 또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라는 말에서 악인이란 거만한 사람보다 한 수 위인 사람으로 범죄자 라는 뜻이다. 또 흠을 잡힌다는 말은 사람들 앞에서 얻어 맞아 이가 부러지거나 팔 다리가 부러져 불구가 된다는 뜻이다. 7절은 쌍욕을 먹고 얻어맞아 코피 터지고 이가 부러지는 그림이다.
그러므로 8절에서는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라고 한 것이다. 미워한다는 말은 원수 삼는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자를 미워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원수 삼는다는 뜻이다. 말로 욕하는 것보다도 심한 것은 때려서 불구가 되게하는 것이다. 때려서 불구가 되게 하는 것보다 더 심한 것은 원수삼는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은 욕하고 때린 뒤에도 계속 남아있는 마음이 원수 삼는 것이다. 반대로 지혜로운 사람을 꾸짖으라고 했다. 그러면 그가 너를 사랑할 것이라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말씀으로 책망한다면 그런 사람은 자신을 바른 길로 인도해줘서 고맙다고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9절은 훈계하는 사람과 배우는 지혜로운 사람 사이의 관계가 발전되는 모습을 말하고 있다.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라고 했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지혜를 주면 점점 더 지혜로워진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점점 더 성장해가는 사람이다. 또 의로운 사람은 가르칠수록 학식이 더한다 했다. 의로운 사람이란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따라 올바르게 판단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가르치면 그 학식이 점점 더 늘어나 점점 더 올바르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10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지혜의 시작점이라는 뜻이다. 또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라고 했다. 원어는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 바로 이해력이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바로 이해력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10절은 누구에게 훈계를 해야 하고 누구에게 훈계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비방하고 욕하면서 자기 하고 육신의 욕망이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은 훈계하면 안된다. 그런 사람에게 훈계하면 욕설이 날아오고 주먹이 내 이빨을 부러뜨린다. 그러나 여호와를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올 출발점에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바로 훈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11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란 말로 10절과 연결된다. 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고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 이해력인가 하면 이란 뜻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거룩하신 이를 아는 사람은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라 했다. 날 수가 많아진다는 말은 사는 하루 하루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또 “네 생명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 라는 말은 네 생명의 햇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비슷한 말이 두 번 반복된 것 같지만 하루 하루가 늘어나 한 해가 되고 그 한 해 한해가 많이 모여 오래 산다는 뜻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12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란 말의 뜻은 만약 네가 지혜로우면 그것은 네가 너 자신을 위해 지혜로운 것이라는 뜻이다.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라는 뜻은 네가 거만하면 너 혼자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여호와를 경외하고 거룩하신 이를 알면 네가 살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망한다는 뜻이다. 결국 자기에게 이롭게 하느냐 아니면 스스로 자기를 해치고 죽이느냐 네가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III. 어리석은 여자의 잔치(13-18)
이제 13-18절은 어리석은 여자의 잔치가 지혜의 잔치와 비교된다. 지혜는 손님을 초대하기 위해 집을 화려하게 짓고 고기와 술을 준비하여 잔칫상을 차린 다음 손님을 불러오라고 하녀들을 보냈었다. 하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자기 집 문 앞의 높은 곳에 앉아서 자신의 잔치에 오라고 유혹한다.
13절의 어리석은 여자는 9:1절에 나온 지혜의 경쟁자인 음란한 여자이다. 이 여자는 수다스럽다 했다. 7:11절의 “떠들며”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떠든다는 말은 천둥치는 소리나 말이 끄는 전차들이 달려오는 소리 같은 시끄러운 소리를 뜻한다. 이는 교양 없이 천박한 언어로 시끄럽게 떠든다는 뜻이다. 또 “어리석어서” 라는 말은 지각이 없다는 뜻이다. 또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는 지식이 없다는 뜻이다. 8:12절에서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 라는 말과 대조되는 말이다.
14절에 보면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라고 했다. 이는 집을 짓고 음식을 준비하고 잔칫상을 차린 뒤 하녀들을 보내 사람들을 초청해오는 지혜와 비교된다. 이 여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잔칫상도 없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도 보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훈계하고 가르쳐 사랑의 교제를 나누라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 성읍의 높은 곳에 앉아있다. 이는 사람들의 존경 받는 자리에 스스로 앉았다는 뜻이다. 이런 자리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가르치던 바리새인들의 자리이다. 로만 카톨릭 교황이 앉아서 가르치는 자리와 같은 자리이다. 스스로 자기를 높여 존경 받는 자리에 앉는 여자이다.
15절에 보면 이 여자가 훈계하려는 사람들이 나온다.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을 불러 이르되” 라는 말은 자기들의 길을 똑바로 가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라는 뜻이다. 이들은 똑바로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 사거리에 이르렀다. 이 여자는 16절에서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라고 소리쳤다. 어수룩한 사람은 어디로 갈지 판단력이 없는 사람이다. 9절에서 의로운 사람은 가르칠수록 학식이 더할 것이라고 한 말과 반대이다. 이 사람은 판단할 기준도 없고 그 학식도 전혀 없는 사람이다. 지혜의 말을 들었더라면 지혜가 오라는 길로 따라가서 지혜로워지고 학식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듣지 않았기에 어리석은 여자의 꼬임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들은 지혜를 따라 사는 의로운 공동체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의 속을 들여다 보면 한번도 진정으로 의로운 공동체에 속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17절에 보면 이처럼 지각이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라고 말한다. 이 여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기에 같이 훔쳐서 마시고 몰래 남이 준비한 것을 훔쳐 먹자고 한다. 이 여자의 잔치는 훔쳐 먹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의 것을 훔쳐 먹는가? 이 여자가 훔쳐서 마시는 물은 포도주가 아니다. 훔쳐서 마시는 물과 몰래 먹는 떡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렇다면 이 음란한 여자가 준비한 것은 바로 자신의 몸을 먹고 마시라는 것이다. 남편 몰래 자신의 깊은 샘에서 물을 마시고 자신의 몸을 먹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네 아내의 샘에서 먹고 마시는 것보다 훨씬 더 달고 맛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실제 간음을 뜻할 수도 있지만 잠언 전체를 볼 때 영적인 간음을 뜻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따르지 말고 대신 성욕을 비롯한 모든 탐욕을 즐기자는 것이다.
18절은 “오직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라고 했다. 그 여자에게 걸리면 죽는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 여자를 찾아온 사람마다 이미 스올의 깊은 곳에 가 있다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라고 했다. 이 여자는 수많은 어리석은 자들을 유혹한 뒤 죽여서 자신의 방 지하에 무덤에 넣어 두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7:27절에서 그 여자의 집은 스올로 트인 길이며 죽음의 안방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라는 말과 연결되는 말이다. 7:27절은 집과 방은 성적 이미지를 담은 비유적 표현이다.
결론 및 적용
지혜는 집을 짓고 고기를 요리하고 포도주를 준비해서 상을 다 차린 후 사람들을 초대했다. 예수님도 역시 요한복음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초대했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먹는 잔치에 참여하라는 초청이다. 이 초청은 이미 몸을 돌려 음란한 여자가 인도하는 길로 발을 들여놓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보낸 초청장이다.
우리는 지혜가 준비한 잔치와 어리석은 여자가 준비한 잔치를 비교해봐야 한다. 지혜가 준비한 잔치는 거룩한 분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서로 사랑으로 한 몸이 되어야 하는 잔치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고 한 몸 되라 하셨다. 지혜의 말씀을 배우고 따르며 거룩한 분을 아는 사람들을 분별해서 가르치고 배워서 한 몸을 이루어야 하는 잔치이다.
이 여자도 역시 와서 먹고 마시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먹을 것은 없고 대신 자신의 샘에서 훔쳐 마시고 자신의 몸을 훔쳐먹으라고 유혹한다. 이는 마치 낚싯꾼들이 루어로 유혹하는 거짓 잔치이다. 성욕과 물욕 명예욕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 여러 가지 탐욕이라는 루어로 유혹하지만 그것을 따라가 물면 죽음만이 있다.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음녀를 따라가 멸망의 구덩이에 던져진다. 심지어는 믿는 자들도 역시 그렇게 따라가다가 멸망한다.
길은 오직 두 종류 뿐이다. 하나님의 지혜만 따라가는 한 길과 음녀를 따라가는 길들이다. 그 중간의 길은 전혀 없다. 믿는 자들 중에 중간을 걷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 앞에서는 거룩한 척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탐욕을 따라 산다. 이들은 믿지 않는 자들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은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이니 어떻게 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들은 음녀에게 속아 탐욕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이들의 마음을 아시기에 결국 생명의 길이냐 멸망의 길이냐 둘 중 하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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