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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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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erbs

잠언 8:1-36

7장에서는 아버지가 전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약속이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하고 하나님의 법은 눈동자처럼 …

2017. 8. 11. · 안정섭 목사 · 페이스북 원문 · 잠언 8장 강해 설교

7장에서는 아버지가 전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약속이 도망가지 못하게 감시하고 하나님의 법은 눈동자처럼 깨끗하게 간직하고 손가락에 매어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하라 했다. 그 이유는 눈과 코를 자극하는 미끼로 유혹하는 음란한 여인에게 빠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벌거 벗은 채 창에 찔리고 사자의 먹이가 되는 것처럼 멸망한다는 것이다.

이제 8장에서는 음란한 여인의 반대인 지혜로운 여인이 등장한다. 음란한 여인은 어두움 속에 숨어 다니며 기회를 노리다가 거짓말로 속이지만 지혜라는 여인은 네거리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직접적이고 권위적인 진리를 말한다. 음란한 여인은 땅의 세속적인 삶을 살지만 지혜라는 여인은 하늘을 높이 날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음란한 여인의 말은 듣지 말아야 하지만 지혜라는 여인의 말은 듣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I. 지혜에게 듣고 선택하라(1-11)

1절의 지혜가 부르고 명철이 소리 높인다라는 말과 3절의 “불러 이르되” 라는 말 사이에는 지혜가 자리잡고 있는 장소가 나온다. 1절의 부른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한다는 뜻이다. 성경을 큰 소리로 들려 줄 때도 이 말을 썼다. 3절의 “불러 이르되”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넘치는 기쁨 때문에 큰 소리로 외칠 때 주로 썼다.

어디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큰 소리로 들려주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큰 소리로 기뻐 외치자고 하는가? 2절에 보면 먼저 길가의 높은 곳이라 했다. 높은 곳이란 높은 성벽 중 가장 높은 곳이란 뜻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길가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분주한 거리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의 성벽 가장 높은 곳에서 지혜가 큰 소리로 하나님의 지혜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또 네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교차로 이기도 하지만 음란한 여인이 유혹하는 길을 따라갈지 아니면 지혜라는 여인을 따라갈지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지혜는 그 갈림길에 서서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며 바른 길을 선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3절에 보면 “성문 곁과 문 어귀” 라고 했다. 이곳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팔기도 하고 또 재판할 일이 있으면 이곳에 와서 재판을 받기도 했던 곳이다. 이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다. 지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함께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듣고 그 놀라운 구원 역사에 함께 기뻐하자고 한다는 것이다. 또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는 도시에 들어가는 모든 입구라는 뜻이다. 지혜는 가능하면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의 지혜를 듣고 그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기뻐 외치며 함께 찬양하길 바란 것이다.

1절은 지혜가 부르고 명철이 소리를 높인다 했는데 4절은 내가 부르고 내가 소리를 높인다 했다. 이제 여인으로 의인화된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들과 인자들 즉 사람의 아들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먼저 모든 사람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친 다음 5절에서는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라고 했다. 어리석은 자는 7:7절에서 나온 “어리석은 자” 와 같은 말이다. 이들에게는 명철하라 했는데 지혜를 분간하라는 뜻이다.

또 미련한 자들이란 7:7절에서 “젊은이 가운데 지혜 없는 자” 인데 원문은 심장이 없는 젊은이란 뜻이다. 이들에게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라고 했는데 직역하면 심장을 분간하라는 뜻이다. 히브리인들은 심장에 생각이 머문다고 생각했다. 심장에 하나님의 지혜의 생각이 없고 대신 세상 탐욕이 자리잡고 있기에 그 심장을 잘 살펴보고 판단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지혜라는 여인이 가르치는 대상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7장에서 말한 이미 음란한 여인에게 듣고 있는 어수룩하고 지혜없는 젊은이들로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이미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에는 귀를 막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저들이 이제 네거리에 서 있기에 지혜는 포기하지 않고 저들에게 배우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똑바로 지혜가 가르치는 길로 가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원어에서 6절은 들으라는 명령으로 시작하고 10절은 “받으며” 라는 말로 끝이 난다. 음녀의 거짓 유혹에 속지말고 지혜의 명령을 듣고 그 가르침을 선택하여 간직하라는 뜻이다. 들으라와 받으라는 말 사이에는 지혜의 입과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이 담겨있다. 원어에서 6절은 들으라는 말에 다음에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라고 했는데 품위있는 고귀한 말만 한다는 뜻이다. 이는 음란한 여자가 쌍욕하고 음탕한 말을 하며 천박하게 떠드는 것과 반대되는 말이다. 또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는 무엇이 옳은지 공정하게 판단하는 말만 한다는 뜻이다. 지혜가 올바른 판단력을 주는 말만 할 터이니 네 갈래 길 즉 지나온 길 말고 세 갈래 길에 서 있는 젊은이에게 잘 듣고 올바로 판단하여 길을 가라는 것이다.

7절도 역시 원어에서는 왜냐하면으로 시작한다. 왜 지혜의 말을 잘 듣고 바른 선택을 해야 하면이란 뜻이다. 이어서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라고 했다. 음란한 여자가 거짓으로 속이는 것과는 반대이다. 믿을만한 진실만 말한다는 것이다. 또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라고 했다. 악이란 1:11-15절에 나온 탐욕스러운 남자의 행동이고 또 7:14-21절에 나온 음란한 여자의 행동이다. 거짓 대신 진리를 말할 뿐 아니라 탐욕스럽고 음란한 행동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우상숭배이기에 혐오한다는 뜻이다. 8절은 지혜가 전하는 말들은 모두 다 의로운 것이며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라고 했다. 굽은 것이란 꼬였다는 뜻인데 속임수를 뜻한다. 패역한 것이란 구부러지고 뒤틀린 것이 없다는 뜻이다.

9절은 “이는 총명이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라고 했다. 밝히 안다는 말은 원어에서 똑바르다는 뜻인데 8절의 구부러지고 뒤틀린 것이란 뜻의 패역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또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 라고 했다. 지식 얻은 자란 지식을 찾는 사람이란 뜻이다. 지식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젊은이도 지식을 찾아서 지혜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길의 범위 안에서 걸으며 그 왼쪽이나 오른쪽 길로 새지 말라는 뜻이다.

10절은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라고 했다. 훈계란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반복적인 책망이다. 잘 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잔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또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라고 했다. 훈계가 잘못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계속 반복해서 책망하는 것이기에 은에 비교했고 지식이란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아는 것이기에 금에 비교한 것이다. 잘못을 책망 받는 것은 은보다 낫고 어떻게 해야 바른 것인지 알고 행하는 것은 금보다 낫다는 것이다. 11절은 왜냐하면 이란 말로 이어진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지혜는 진주보다 더 낫고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는 것이다. 진주는 금보다 더 귀한 것으로 보았기에 이제 지혜는 진주보다 더 낫고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음녀가 유혹하는 탐욕의 길로 가지 말고 지혜가 인도하는 가장 값진 길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II. 지혜의 가르침 (12-31)

지혜는 12-31절에서 두 가지로 나누어 지혜가 얼마나 값지고 귀한 것인지 가르치고 있다. 먼저 12-21절에서 지혜는 역사를 주관해왔고 앞으로도 주관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12절은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라고 시작한다. 지혜는 명철 위에 터잡고 산다는 뜻이다. 지혜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것이고 명철이란 어떤 것이 가장 귀한 것인지 비교해 보고 깨닫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 비교해서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지혜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믿는 자들이 물질을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어떤 것이 소중한지 비교해 보고 지혜로운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혜와 명철은 늘 함께 붙어 살기 때문에 따로 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지혜와 명철이 늘 함께 살면서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라고 했는데 근신이란 계획을 세우는 능력을 뜻한다. 지혜와 명철과 함께 또 지식과 지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 계획을 세우는 능력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13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라고 말한다. 따라서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할까 고민하기 보다는 악을 미워하면 그것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란 뜻이다. 첫째 미워할 악은 교만과 거만이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자기를 높이는 것이다. 교만은 본래 식물이 자라거나 물이 차 오르는 것을 뜻하는 말에서 온 말들이다. 식물이 자라면 고개를 높이 들 듯 교만도 역시 자신을 높이 드는 것이다. 거만이란 본래 주님의 장엄함에 쓰이는 말이다. 따라서 자신을 주님의 장엄함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 거만이다. 이러한 교만과 거만은 자신을 주님보다 높여 자신이 주님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기에 주님과의 관계를 깨지게 한다.

지혜가 또 추가하고 있는 것은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 이다. 패역한 입이란 하나님의 도덕적 윤리적 질서를 뒤집어 엎으려는 거짓말이다. 간음이나 동성애가 죄가 아니고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도 바로 하나님의 질서를 뒤집어 엎으려는 대표적인 패역한 입이다. 그렇게 말하며 그렇게 행하는 것이 악한 행실이다.

14절은 지혜라는 여인이 자신을 사랑하여 자신의 길을 택하고 따라오는 이들에게 주는 것들을 말하고 있다. “계략과 참 지식” 은 본래 왕에게 정치적 군사적 조언을 하는 제갈공명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명철은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략과 건전한 지혜를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생각하는 것이고 능력이란 그 생각한 것을 행할 수 있는 용사와 같은 힘이다.

15-16절은 똑같이 “나로 말미암아” 라는 말로 시작한다. 지혜가 전해 준 계략과 참 지식으로 세상을 다스린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15절 앞부분은 지혜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라고 했다. 원어는 왕들은 계속 왕노릇 했다는 뜻으로 주어와 동사가 같은 말로 되어 있다. 16절 앞부분도 역시 “나로 말미암아” 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원어는 15절 앞부분과 비교되는 댓구이다. 지혜의 도움으로 재상들이 바르게 다스린다는 것이다. 원어는 지도자들은 지도자 노릇 한다는 뜻으로 역시 주어와 동사가 같은 말로 되어 있다. 15절과 16절 앞부분은 둘 다 주어와 동사가 같은 말로 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두꺼비가 두껍다 또는 넓이가 넓다 라는 말과 같은 말놀이이다. 15절의 왕이나 16절의 재상이란 말은 둘 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나 총독 같은 사람들을 뜻한다.

15절 뒷부분의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의 댓구는 16절 뒷부분의 “존귀한 자들 곧 모든 의로운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이다. 원어에서 16절은 다스린다는 말과 재판한다는 두개의 다른 동사들을 하나로 번역해 버렸는데 잘못 번역한 것이다. 15절의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는 것도 공의에 따라 올바른 재판을 한다는 말은 16절 뒷부분의 귀족들 곧 공의로 재판하는 자들도 올바른 판결을 내린다는 말과 짝을 이루는 것이다. 15절과 16절 앞부분은 왕이나 총독처럼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이라면 15절과 16절의 뒷부분은 그 명령을 법에 따라 집행하는 그 신하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동안 역사 속에서 다스린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계략과 참 지식을 줘서 다스리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혜가 역사를 주관했다는 뜻이다.

17-21절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혜가 주는 선물들이다. 그 동안 왕과 신하들에게 계략과 참 지식을 줘서 다스리게 했던 지혜가 이번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의 선물을 준다는 것이다. 또 지혜를 간절히 찾는 자들을 만나준다 했다. 원어는 찾는 자들이 발견한다는 뜻이다.

개역 18절의 부귀라는 말은 원어에서 한 단어가 아니고 부와 명예라는 두 단어이다. 이는 장구한 재물과 공의와 짝을 이루는 댓구이기에 부귀라고 한 단어로 번역하면 시의 운율이 깨져버리는 것이다. 재물이 많으면 또한 사람들에게 존귀한 자로 인정받는 것이기에 부와 명예는 한 쌍으로 붙어 다니는 것이다. 장구한 재물과 의도 역시 한 쌍이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부는 의로움과 하나이다. 의롭지 못한 재물과 명예는 쉽게 사라지지만 의로운 재물은 오래 지속되는 법이다. 부와 명예보다 한단계 더 높은 것이 장구한 재물과 의이고 이는 점점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다는 뜻의 점층법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지혜를 사랑하면 부자가 되고 존경도 받는다는 뜻인가? 19절에 보면 그런 뜻이 아니다. 19절은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부와 명예 뿐 아니라 장구한 재물과 의로움 같은 것도 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지혜로 맺게 되는 열매는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또 “내 소득” 이란 열매와 짝을 이루는 말로 내가 거두게 하는 곡식 이란 뜻이다. 지혜가 거두게 하는 곡식들은 순은 보다 좋다고 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혜를 사랑하면 부와 명예 같은 것을 준다는 뜻이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준다는 것이다.

20절에서 지혜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라고 했다. 정의로운 길이란 공정한 재판의 길을 따라 걷는다는 뜻이다. 또 공의로운 길이란 현명한 재판을 내린 판례의 길을 따라 걷는다는 뜻이다. 정의가 법에 분명히 나타난 대로 재판하는 것이라면 공의는 법에 나와있지 않지만 현명한 재판을 했던 기록을 바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공정한 재판과 현명한 판단을 하며 하나님의 길을 따라 걷는다는 것이다. 21절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물을 주어서 그의 곳간이 가득차게 하여 줄 것이라 했는데 이 재물은 금과 은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앞에서 말한 공정한 재판과 현명한 재판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

지혜의 가르침의 두번째 부분은 22-31절이다. 앞에서는 역사를 주관한 지혜가 자신을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는 상을 말했다면 이 부분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창조에 참여했던 지혜를 말하고 있다. 22절은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라고 했다. 창세기 1:1절 이전부터 여호와는 여인으로 표현한 지혜와 함께 계셨다는 것이다. 지혜는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다녔다는 것이다.

23-26절은 창세 전에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창조의 순서대로 구체적으로 하나씩 설명하고 있다. 23절은 영원 전 아득한 그 옛날 땅도 세워지기 전에 나는 이미 세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24절은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태어났다고 말한다. 큰 샘이 터져 바다가 된 것인데 바다의 근원인 큰 샘조차 생기기도 전에 이미 지혜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25절은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지혜가 이미 났다고 했다. 이는 큰 샘들이 터져 물이 온 세상을 뒤 덮은 뒤의 일을 말한 것이다. 물이 조금씩 빠지면 산들이 먼저 드러나고 그 다음에 언덕들이 드러나는데 그 기초가 생기기도 전에 지혜가 이미 태어났다는 것이다.

26절은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의 진토의 구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라고 했다. 산과 언덕이 드러난 뒤에 물이 계속 빠지면 주거지와 경작지들이 드러나고 흙들도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다 드러나기 전부터 지혜는 있었다는 것이다.

창조의 다음 순서는 27-31절에 나온다. 27절에서 “하늘을 지으시며” 는 별들이 있는 높은 하늘을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시는 모습이다.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라는 말은 바다 위에 수평선을 긋고 바다와 하늘을 구분하셨다는 뜻이다.

28절은 그 구름이 떠 다니는 낮은 하늘을 만드시고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셨다 했는데 깊은 샘들에서 계속 샘물이 터져나오게 하셔서 바다를 채우시고 그 물들이 육지와 경계를 이루게 하셨다는 것이다. 29절은 그 바닷물이 하나님의 명에 따라 바다에만 머물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의 기초를 세우셨다는 것이다. 그 때에도 지혜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늘과 땅을 세운 뒤 30-31절에서 지혜는 하나님 곁에서 땅과 바다의 모든 생물들을 창조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30절의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에서 “창조자” 란 최고의 기술자 라는 뜻이다. 하나님 곁에서 최고의 기술자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생물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때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창세기에 보면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창조하시며 좋았더라고 기뻐하셨는데 그 때 바로 그 모든 일이 지혜가 한 것이고 하나님도 좋아하셨고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늘 기뻤다는 것이다.

31절은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면” 라는 말은 사람들이 즐거워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한 세상의 모든 생물들을 보고 즐거워했다는 뜻이다. 또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라는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지으신 생물인 사람들을 지으시고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그 때 지혜도 하나님과 함께 기뻐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창세기의 창조 순서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III. 지혜의 초청과 경고(32-36)

32절은 “그러므로 내 아들들아”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또 다시 중요한 가르침을 주려는 신호이다. 먼저 내 말을 잘 들으라 했다. 순종의 시작은 말을 잘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라고 했다. 이 도는 아버지의 길이 아니고 아버지가 가르쳐준 하나님의 지혜의 길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길을 따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이다.

33절은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했다. 훈계란 바르게 행할 수 있도록 계속 반복해서 귀가 따갑도록 잔소리하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가 하나님의 지혜로 훈계를 할 때에 젊은 아들들은 듣기 싫어한다. 하지만 듣기 싫어도 잘 들어야 지혜를 얻는 것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버리면 음란한 여자의 속임수에 넘어가 죽게 되는 것이다.

34절은 잘 듣고 버리지 말아야 할 지혜의 말이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했다. 이 문은 지혜가 사는 집의 문이다. 지혜가 드나드는 문 곁에 서서 잘 지켜보라는 것이다. 지혜가 문을 나서면 항상 그 지혜를 놓치지 말고 잘 따라가라는 것이다. 지혜가 어디를 가든지 지혜를 놓치지 말고 따라 가라는 것이다. 아마도 9장에서 나오는 지혜가 잔치에 초대하는 초청을 놓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지혜를 잘 지켜보았다가 지혜가 초청할 때 즉시 따라 들어가지 않으면 그 잔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가 문에서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한 것이다.

35절은 지혜의 말을 듣는 사람이 복이 있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 이유는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라고 했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을 듣고 그 초청을 듣고 지혜를 따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총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36절은 문을 지키지 않고 있다가 지혜를 놓치는 사람은 자기 영혼을 해하는 자라 했다. 실수로 지혜를 놓쳐서 따라가지 못하면 음녀의 유혹에 따라가게 되고 결국 자기 자신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 지혜를 미워하는 사람은 실수로 놓친 것이 아니고 고의적으로 미워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지혜 대신에 음란한 탐욕이라는 여인을 사랑하고 따라가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다.

결론 및 적용

우리도 역시 네거리에 서 있다. 한 길은 우리가 지나온 길이고 우리가 선택할 길은 나머지 세갈래 길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지혜의 말에 귀를 막고 음녀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포기하지 않고 지혜가 주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세상 어떤 보화보다 더 귀하다며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어떻게 지혜를 따라가서 값진 보물을 얻는가?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인데 그 첫째 악은 교만과 거만이다. 음녀의 달콤한 꼬임에 넘어가 교회 안에서 자신을 높이다가 마침내는 하나님 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 바로 교만과 거만이다. 둘째 악은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신 것을 죄가 아니라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가 바로 거짓된 입이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성도로 얻어 부귀영화를 꾀하려고 그들의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거짓된 입니다. 목회자들이나 평신도들이나 모두 교만과 거짓된 입을 미워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고 값진 보물을 얻는 길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역사를 주관하도록 했고 하나님과 함께 온 천지 만물을 창조했다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 능력이 있는 지혜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 바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 바로 8장에서 강조하는 초점이다. 우리는 특별히 지혜가 드나드는 입구를 잘 지켜 보고 절대로 놓치지 않아서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지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그 길이 음녀에게 속아 멸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길이다.

사진출처: 우리집 마루에 테이프 붙이고 직접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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