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잔소리 같지만 잠언을 읽을 때 주의할 일은 전후를 연결해서 그 논리적 고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4장 끝부분에서 하나님의 지혜의 길말 똑바로 따라가라고 했고 5장에서는 곁길로 새도록 하는 첫번째 요인으로 성적인 유혹이라 했다. 성적 유혹에 빠지지 말고 아내와의 성관계를 누리며 살라 했다.
이제 6장에서는 돈에 관해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고 있다. 성적 유혹 다음으로 믿는 자를 넘어지게 하는 것은 돈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재물로 인해 남에게 해를 당하는 사람에서 그 다음에는 재물로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또 마지막에는 재물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그 강도가 점점 높아져 간다. 그 중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다.
I. 남에게 해를 당하는 사람(1-5)
6:1절도 “내 아들아”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새로운 가르침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앞에서 5장에서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인도하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여자를 조심하라고 했다. 이제 6장에서는 하나님의 지혜의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면 돈을 조심하라고 조언하려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6:1-2절은 모두 “네가 만약” 이라는 가정법으로 시작한다. 1절 앞부분의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에서 담보를 선다는 말은 창세기 43:9절과 44:32절에서 유다 자신이 베냐민의 안전에 대해 담보가 되겠다고 할 때 나온 말이다. 또 창세기 38:17-18절에서 다말이 담보물을 요구할 때도 이 말이 쓰였다. 이는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말로 자신이 담보가 되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다.
또 1절 뒷부분의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에서 보증을 선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손바닥을 ‘탁’ 하고 친다는 뜻이다. 이는 증인들 앞에서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과도 같은 행위이다. 여기서 이웃이란 돈을 빌려주는 유대인 형제를 뜻하고 타인이란 돈을 빌려가는 이방인이란 뜻으로 돈을 빌려가는 사람을 뜻한다고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말한다. 유대인 사이에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유대인이 이방인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줄 때 손바닥을 ‘탁’ 치며 자신이 담보가 되겠다고 계약서에 사인하는 장면이다. 따라서 돈을 빌려주는 이웃 사람에게는 자신이 담보가 되겠다고 말로 약속을 하고 돈을 빌려가는 이방인에게는 자신이 담보가 되었으니 꼭 갚으라며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장면이다.
원어에서는 2절도 역시 “네가 만일” 이라는 말로 이어진다. 2절 앞부분은 “네가 만일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다면” 이란 뜻이다. “네 입의 말” 이란 담보가 되겠다고 약속한 구두 계약서이다. 그 말이 덫이 되고 미끼가 되어 걸려들고 또 같은 말에 잡힌다면 이라는 가정법이다. 1절이 계약을 맺는 장면이라면 2절은 그 계약 때문에 자신의 재산을 다 빼앗기거나 잡혀 노예로 팔려가게 되는 장면이다.
3절은 원어에서 “이것을 행하라” 라는 말로 시작하고 이어서 “내 아들아” 라고 부른다. 덫에 걸린 상황이라 워낙 다급하기에 먼저 이것을 하라고 한 뒤에 내 아들아 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을 행하라는 말 뒤에 “스스로를 구원하되” 라는 말이 이어진다. 원어에서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이유이다.
그 이유는 네가 네 이웃의 손에 걸어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덫이란 동물들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아들도 스스로 덫 안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 어서 네 이웃에게 가서 풀어 달라고 낮은 자세로 겸손히 청하라는 것이다. ‘곧’ 이라는 말은 폭풍처럼 서두르라는 뜻이다. 이는 갚을 날짜가 오기 전에 폭풍처럼 달려가서 겸손히 사정하라는 것이다. 네 이웃은 이 아들을 보증 삼아 돈을 빌려 준 사람이다.
4절에서는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라고 했다. 이는 앞에서 폭풍처럼 서둘러 달려가라는 말을 보충 설명한 것이다. 정말 급하니 잠도 자지도 말고 졸지도 말고 즉시 폭풍처럼 달려가라는 것이다.
이제 5절은 1-4절의 결론이다. 결론은 3절에서 말한 “스스로 구원하라” 라는 말의 반복이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이란 말에서 노루는 Arabian gazelle 이다. 키는 4.5 피트 정도 되는데 워낙 빠르고 두려움이 많아 가두어 두면 죽기 때문에 집에서 기를 수 없는 동물이다. 사냥꾼의 손이란 삼각형모양으로 돌로 쌓아놓은 우리인데 한쪽이 열려있다. 사냥꾼들이 몰면 그리로 들어가고 잡히게 된다. 또 빚 보증 서서 위기에 몰린 사람을 사냥꾼의 덫에 걸린 새의 그림으로 묘사한다.
우리 안에 갇힌 아랍 가젤은 사냥꾼의 손에 잡히기 잔 잠깐의 기회가 있을 뿐이다. 그 순간 온 힘을 다해 돌 담을 뛰어 넘어야 한다. 덫에 걸린 새도 사냥꾼이 덫을 살짝 열고 손을 집어 넣는 순간을 이용해서 작은 틈으로 달아나야 한다. 온 힘 다해 모든 기회를 다 활용해서 달아나지 않으면 곧 죽임 당하게 되는 절박한 상황을 위기에 처한 가젤과 새의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다.
돈에 관한 첫번째 권고는 절대로 돈에 관해 남에게 해를 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처지가 딱하니 도와달라고 간청을 할 때에 함부로 보증을 서서 덫에 걸리면 돈 때문에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즉시 가서 사정해서 온 힘 다해 그 덫에서 탈출하라는 것이다.
II.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6-11)
6-11절은 게으른 사람에게 권고하는 말들이다. 앞부분과 전혀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대인들의 논리에 따라 분명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부분이다. 앞부분은 남에게 속아 금전적으로 해를 당하는 사람을 말했다면 이번에는 게을러서 자기 자신에게 금전적으로 해를 끼치는 사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일해서 번 것을 남의 빚 보증서서 빼앗기는 사람이나 일 안하고 게을러서 자신이 벌 수 있는 돈을 빼앗기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지혜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경우 돈에 대한 근심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설 자리가 없어진다.
6절은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 했다. 이 개미는 팔레스타인 지방에 있는 Harvester ant 이다. 이 개미들은 곡식을 모아 집 안에 가득히 쌓아 놓는다. 이 개미들에게 배울 교훈은 7절에 나오는데 그 교훈은 먼저 “두령도 없고” 이다. 두령은 재판을 하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다. “감독자도 없고” 라는 말에서 감독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왕의 명령을 받아 조서에 기록하여 다스리는 일을 맡은 행정관을 뜻한다. 출애굽기 5:6절에 나오는 감독관 같은 말이다. 또 통치자는 아랫사람들을 감독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창세기의 요셉이 이집트 온 땅을 감독했었다.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다스리는 사람이 없는데도 알아서 일한다는 의미이다.
9절은 원어에서 ‘언제까지’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미 추수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빨리 들에 나가서 추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게으른 사람은 잠에서 깨어났는데도 계속 자리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다. 그래서 언제까지 계속 누워 있으려느냐고 책망한다. 그리고 또 언제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느냐고 책망한다. 이 게으른 사람은 잠만 자고 있고 잠에서 깨어났더라도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는 것이다.
10절은 이러한 책망에 대한 대답이다. “좀더 자자” 는 아무 의식 없이 잠을 자는 것을 말한다. 또 “좀더 졸자” 는 꿈에 환상을 보는 것이나 꿈을 꾸는 것 같이 잠은 자지만 뇌는 활동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또 팔을 베고 누워있어야지 라는 말은 이제 완전히 깨어났지만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모습이다. 이 세가지는 잠에 빠져있는 상태에서 완전히 깨어나서 누워있는 상태까지 세단계를 순서대로 말한 것이다.
11절은 그러면 가난이 강도처럼 들이닥친다 했다. 가난이라는 강도는 집도 없고 아무도 보살피는 사람이 없이 떠돈다. 그러다가 아무런 방비도 없지 잠에 빠져있는 사람을 보면 강도는 갑자기 들이닥쳐 그 사람을 장악한다는 것이다. 가난이란 빈곤층 하층민을 뜻하는 말이다. 밤에 잠자는 중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가난이 들이닥친다는 것이다.
또 빈곤은 방패로 무장한 용사처럼 겁도 없이 달려들어 공격한다는 것이다. 빈곤이란 창세기 8:3, 5절에서 물이 줄어들었다는 말에 쓰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부족하지 않았다는 말에도 쓰였다. 시편 23:1절에서 다윗이 부족함이 없다라고 할 때도 쓰였다. 다윗의 고백에서 부정어를 뺀 것이 빈곤이란 말이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셔서 축복해 주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보급물자가 끊기는 것은 밤에 몰래 찾아 오는 것이 아니고 무장한 용사처럼 대낮에 찾아 온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 길이 없는 사람들은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일할 수 있는데도 놀면서 돈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도와주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문제는 게으른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복지국가란 열심히 노력해도 살 길이 없는 사람들을 돕는 국가이지 빈둥빈둥 노는 사람들을 먹고 살도록 돈을 주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미혼모나 그 밖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먹고 살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하는데 그것을 노리고 함께 결혼하여 살면서도 미혼모나 미혼부로 신고하고는 뒹굴거리며 놀고 먹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게으른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해쳐서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갈 자리가 없게 한다.
돈에 관한 두번째 경고는 게으름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금전적인 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스스로 열심히 일을 해서 먹고 살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의 길을 따라 살면서 악에 빠지지 않는 길이라는 것이다.
III.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12-19)
이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고 뒹굴거리며 잠만 자는 사람은 빈곤해질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다음 단계는 남을 속이거나 해치고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다.
12절의 불량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벨리알인데 본래 옷이 다 닳아 떨어졌다는 뜻이다. 여호수아 9:13절에서 기브온 사람들이 옷이 다 낡아 떨어졌다고 거짓말 할 때 이 말을 썼다. 또 신명기 8:4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옷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 때도 이 말을 썼다. 황소가 다 낡아 떨어졌다는 말은 밭을 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건달이란 말은 쓰레기 같은 상태라서 아무 쓸모없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 말은 실제로 몸이 너덜너덜 떨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정말 구제불능으로 악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량하고 악한 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구제불능 쓰레기 같은 자들 곧 악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신실한 사람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이다. 고린도후서 6;15절에서 귀신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들은 구부러진 말을 하며 다닌다 했다. 구부러진 말은 진리를 왜곡한다는 뜻인데 이 구절처럼 비유적으로 쓰일 때는 사람들에게 사기를 친다는 뜻이다.
13절은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라고 했다. 먹이가 될만한 사람 하나 발견하면 그 사람의 등 뒤에서 서로 눈으로 윙크하여 신호를 보내고 발로 신호를 보내고 손가락으로 그 사람을 가리키며 함께 공모하여 그 재산을 탈취하려 한다는 것이다. 눈은 몸의 맨 위에 있고 발은 몸의 맨 아래에 있다. 눈짓은 포위망을 좁히라는 신호이고 발짓은 이제 공격하라는 신호이다. 손짓은 거만한 태도로 상대를 얕잡아 보는 것이다.
몸짓으로 서로 신호를 주고 받은 다음 14절에서는 불량하고 악한 자들의 숨겨진 마음에 대해 말한다.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며” 라고 했다. 악을 꾀한다는 말은 본래 악을 밭 갈듯 간다는 뜻이다. 악인들은 악을 키울 수 있도록 악의 밭을 갈아 씨 뿌릴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이어서 “다툼을 일으키는 자” 고 했는데 이는 분쟁의 씨앗을 뿌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농부의 그림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짓고 있는 악의 농사는 결실을 거두지 못한다. 15절에 보면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 고 했다. 갑자기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 같은 재앙이 닥쳐 저들이 심은 악의 농작물은 완전히 망한다는 것이다. 배가 완전히 파괴되거나 목이 부러져 죽은 엘리 제사장처럼 회복 불능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갑자기 닥쳐오는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이다. 저들은 어떠한 치료약도 없이 영원한 멸망한다는 것이다.
이제 16-19절은 주님께서 혐오하시는 일곱가지 죄악의 목록이다. 일곱 가지는 몸의 윗부분에서 아랫부분으로 내려가면서 말하고 있다. 17절에는 위에서 아래로 세가지가 나온다. 첫째 “교만한 눈” 이다. 교만한 눈은 이사야 10:12-14절에 나오는 앗시리아 왕의 교만한 눈과 같은 것이다. 또 다니엘 11:12절의 남쪽 왕의 교만한 눈이다. 이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없다. 눈은 몸의 맨 꼭대기에 있어 먼저 말한 것이다.
눈 아래에 있는 것은 “거짓된 혀” 이다. 이는 말로 남을 속여 빼앗는 것이다. 그 다음은 아래로 더 내려가서 무죄한 사람을 피 흘리게 하는 손이다. 피 흘리게 하는 손이란 단순히 죽인다는 뜻이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모든 죄를 다 포함하는 말이다.
18절에는 이제 몸의 중심에 있는 심장이 나온다.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이란 악한 일을 계산하고 있는 심장이다. 마음으로 악한 일을 꾸미고 있는 모습을 심장으로 묘사한 것이다. 더 내려가면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이 나온다. 이 발은 악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이 발은 심장에서 꾸민 계략을 실행하는 행동대장이다. 이제 몸의 각 부분을 통해 악인을 묘사하는 것이 끝이 났다.
19절은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은 진실을 거슬려 말하는 사람이다. 재판정에서 거짓으로 증거하여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는 자이다. 또 이들은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라고 했는데 원어는 형제 사이에 불화의 씨앗들을 뿌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서로 이간질 시켜 자신들이 서로 싸우게 한 뒤 중간에서 이익을 탈취하기 위해서이다.
결론 및 적용
오늘 말씀은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 같지만 모두 돈과 관련된 지혜이다. 먼저 남에게 속아서 경제적으로 손실을 입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고 또 게으름으로 인해 자기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손실을 입히지 말라는 것이고 또 남을 속여서 남에게 경제적인 손실을 입히지도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빠지는 첫째 요인은 성적 타락이고 이제 그 둘째 요인은 금전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 말은 목회자들이 특별히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에서 성공한 뒤 성적인 문제와 돈 문제로 나락에 떨어지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목회자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우리의 옛 어른들도 남자가 돈 벌어 성공하면 첩질한다고 했다. 물질과 성적인 타락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누구나 빠지기 쉬운 죽음에 이르는 함정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돈에 관해 깨끗해야 한다. 남을 속여 돈을 빼앗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늘 잠언 말씀에서는 남에게 속아 넘어가 돈을 빼앗기는 것도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는 길이라고 말한다.
함부로 남의 빛 보증을 서면 안된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로또를 사거나 도박을 하여 카지노에 돈을 다 빼앗기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가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속임수이다. 카지노에 가서 돈을 잃은 사람은 그 잃은 돈에 정신이 팔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 설 자리가 없다. 항상 잃은 돈만 생각하다가 계속 돈 다 빼앗긴다. 그런 사람의 마음 속에는 돈과 슬롯머신 돌아가는 소리 뿐이다.
돈을 빼앗으려는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해도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다면 역시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가지 못한다. 믿는 자들은 성실하게 일해서 자기 손으로 수고의 열매를 먹어야 한다. 시편 128:2절에서도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 이 복이라 했다. 게으름 부리고 놀면서 남에게 얻어 먹으려고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궁리를 하기 때문에 역시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설 길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다음 단계로 반드시 넘어간다.
마지막 단계는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이간질해서 이익을 취하는 단계이다. 믿는 자들 안에도 밀수가 탈세 사기 장물 판매 다단계 판매 등을 통해서 남의 돈을 빼앗는 자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 교회에서 헌금 많이 하고 중요한 직분을 맡는다 해도 이런 자들은 멸망할 자들이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성적으로 깨끗한 삶 다음에 중요한 것은 돈에 대해 깨끗하게 사는 것이다. 가난해도 깨끗하게 가난해야 하고 부자가 되도 깨끗하게 정당한 방법으로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 ‘청빈(淸貧) 이란 말만 있는데 ‘청부(淸富)’ 라는 말도 생겨야 한다. 부자는 무조건 공공의 적인 풍토는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믿는 자들이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고 베풂으로 존경 받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물에 대한 근심과 탐욕이 마음을 차지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다. 그러면 지혜의 말씀을 따라갈 수도 없게 된다.
사진출처: flickr, Lazy Sunday, Photographed by mtch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