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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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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erbs

잠언 5:1-23

앞에서는 귀-눈-마음으로 받은 훈계가 마음에 잘 머물도록 감시하고 또 입-눈-발로 말과 행동을 잘 감시하라고 했었다.

2017. 7. 6. · 안정섭 목사 · 페이스북 원문 · 잠언 5장 강해 설교

앞에서는 귀-눈-마음으로 받은 훈계가 마음에 잘 머물도록 감시하고 또 입-눈-발로 말과 행동을 잘 감시하라고 했었다. 이번에는 이 아들을 유혹해서 멸망의 길로 가게 할 길 중 성적인 죄악에 빠지지 말라고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한 뒤에 21-2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길을 다 지켜보신다 라며 지혜의 길을 따라 똑바로 걸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

I. 전해 받은 지혜를 잘 지키라(1-6)

5:1절은 다시 내 아들아 라는 말로 시작한다. 5:1절은 4:20절과 똑같은데 말을 지혜로, 말하는 것을 명철로 바꾼 것만 다르다. 지혜와 바꾼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르이다. 아버지가 하나님의 지혜를 말로 강의한 것인데 이를 아들이 그대로 받은 것으로 보고 지혜로 바꾼 것이다. 또 말하는 것이란 히브리어로 아마르이다. 이는 하라와 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 분명히 깨닫는 것이 명철이기에 이를 명철이라는 말로 바꾼 것이다. 아버지가 강의한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아버지가 가르쳐 준 것을 깨달아 알아서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귀를 잡아 늘여서라도 잘 들으라는 것이다.

2절에서는 근신을 지키라 했다. 근신이란 본래 하나님께서 악한 나라나 악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할 계획이나 목적을 세우신 것을 뜻한다. 따라서 지혜와 명철을 잘 간직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악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어떻게 지킬지 마음 속의 계획이나 목적을 잘 간직하고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하라는 뜻이다.

또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라 했다. 마음 속에 있는 지혜와 명철을 잘 간직했다면 그 다음에는 입술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키라는 말은 마치 군부대의 정문을 지키는 군인과도 같다. 다른 점은 군부대를 지키는 사람은 들어가는 사람을 검사하지만 입술을 지키는 군인은 마음에서 입 밖으로 나가는 말을 검사한다. 오직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이 나가는지 아니면 다른 말이 나가는지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 안에 있는 다른 것은 절대로 입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은 마음만 잘 지켜서는 안되고 입술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가르친 것을 다시 한번 당부한 것이다.

3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렇게 간직한 마음을 잘 유지하고 입술을 잘 단속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3절은 엉뚱하게도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라고 했다. 이는 음녀와 입맞춤을 하는 그림이다.

음녀와 입맞춤을 하면 먼저 입술이 닿는데 그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듯 달콤하다는 것이다. 이는 본래 벌집에서 직접 꿀이 줄줄 흐르는 모습이다. 그러나 둘로 갈라진 입술은 속이려는 뜻을 담은 이중적인 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 다음은 혀로 입 안을 더듬는 모습이다. 그 입 안은 그 느낌이 기름보다 더 매끄럽다는 것이다. 이는 거름망을 통과해서 찌꺼기가 하나도 없는 아주 매끄러운 올리브오일의 그림이다. 올리브오일은 제사장이나 왕을 세울 때 붓는 것이다. 약으로 마시기도 하고 상처에 바르기도 하는 것이다. 음행하는 여자의 입 안은 그렇게 좋은 올리브 오일 같지만 사실 속이려는 의도가 입 안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의 말씀을 전한 것을 잘 간직하고 입 단속 잘 하라고 하다가 갑자기 음행하는 여자의 말을 조심하라는 것일까?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수직적으로 전해 받은 지혜의 말씀과 제일 먼저 충돌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수평적으로 전해지는 음란한 말들이라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 받는 말들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성적인 유혹들인데 성적인 유혹은 항상 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악한 길로 빠지게 하는 유혹의 말들을 음녀와 입맞춤하는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다. 먼저 입술을 맛보니 꿀 같고 그 안쪽에 혀를 집어 넣어 음녀의 입안을 혀로 더듬어보니 기름처럼 매끄럽다는 것이다. 이는 부정한 여인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단계를 말한 것이다. 이는 또한 지혜의 길을 벗어나 죄악의 길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단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달콤함과 황홀한 감촉이 4절에서 갑자기 반전된다. 4절은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라고 했기 때문이다. 꿀이 흐르는 입술의 뒷맛은 쑥처럼 쓰게 되고 기름처럼 부드러운 입안의 혀는 두날을 가진 칼처럼 날카롭게 되어 아들의 혀를 난도질 한다는 것이다. 3절의 달콤함이 4절의 쑥 같이 쓰게 되고 3절의 미끄러움이 4절의 예리한 양날검으로 완전히 반전되는 그림이다.

말로 유혹한 다음에는 행동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래서 개역과 개역개정은 5절을 “그의 발” 과 “그의 걸음” 이라고 번역해서 유혹에 빠진 아들인 것처럼 오역을 했다. 하지만 원어는 분명히 여성이다. 그 여자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고 그 여자의 걸음은 스올로 내려간다라고 해야 한다. 사지는 낮은 곳이고 스올은 그보다 더 깊은 곳이다. 이는 성적인 결합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언어유희이다.

이는 부정한 여인과 입맞춤을 한 뒤 성관계를 갖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 여자는 먼저 성기에 접촉하게 하고 또 깊이 삽입하게 한다는 것을 암시한 표현인 것이다. 비유적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지 않고 세상 탐욕의 인도에 따라 탐욕과 깊이 관계를 갖으며 사랑하며 살게 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죽음의 길이고 완전한 멸망의 길이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우상숭배를 주로 음행에 비유한 것과도 같다.

6절은 이제 스올로 내려가 그곳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그린다. 역시 그가 아니고 그 여자이다. “그 여자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의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고 했다. 역시 은밀한 깊은 곳으로 인도했는데 그 곳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 깨달을 줄 모른다는 것이다.

똑같은 말이 21절에서는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라고 했는데 난하 주석을 보면 “헤아리시느니라” 라고 되어 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길을 살펴보시고 다 아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가 인도하는 스올의 깊은 곳은 그 여자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길이 든든하지 못해도 깨닫지 못한다 했다. 이는 목표를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게 하는 모습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이리저리 방황한 것과도 같고 노숙자가 잘 곳을 찾아 방황하는 모습과도 같다는 것이다. 이처럼 음녀는 자신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II. 음행의 어리석음에 대한 교훈(7-14)

원어를 보면 7절은 “그런즉 내 아들들아” 라는 말로 시작한다. 앞에서 말한 가르침을 다 들었으니 이제부터 하는 하는 말도 잘 듣고 그 말을 버리지 말라고 다시 한번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버리지 말라는 말은 비켜서거나 돌아서지 말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전한 지혜의 길로부터 비켜서고 돌아서서 음녀의 입술과 혀가 이끄는 길로 들어가지 말라는 뜻이다.

잘 들어야 할 말은 8절에 나온대로 “네 길에 그 여자에게서 멀리하라 그 여자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이다. 네 길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행하는 길이다. 그 길 옆에서 유혹하는 음란한 여자를 멀리 비켜가라는 것이다. 그 여자를 피할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가서 그 여자의 집 문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현재명이 작곡한 노래처럼 “오가며 그집 앞을 지나노라면”도 하지 말고 조영남의 노래처럼 불꺼진 창 아래서 서성이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는 4장에서 말한 발을 얽어 매는 덫에 걸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실제 여자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 길에서 곁길로 빠지지 말라는 비유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따라가는 길과 대조되는 것은 놀랍게도 창녀의 길이다.

9절은 원어에서 “그렇지 않으면” 이란 말로 시작한다. 개역개정은 “두렵건대” 라는 말로 번역했다. 이어서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라고 했다. 음란한 여자를 피하지 않아서 그 덫에 걸려 성관계를 하면 숨어 있던 기둥서방이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하는 모습과도 같다. 이제 존귀한 자가 약점을 잡혔으니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존영이란 명예라는 뜻이다. 왕이나 귀족들이 빛나는 옷을 입고 존귀한 자리에 서 있는 그림이다. 고대의 명예는 자신의 힘과 노동으로 물질을 많은 얻은 것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자신의 노력으로 존엄한 자리에 서게 되었는데 음녀의 유혹에 빠져 이는 모든 것을 다 잃고 음녀의 기둥서방의 노예로 남은 수한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10절도 역시 원어에서 “그렇지 않으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역시 8절과 연결해서 하는 말이다. 이는 9절에서 존영을 잃은 결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라는 말에서 재물이란 본래 힘이란 뜻이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위해 일을 해서 자신의 부와 명예를 쌓지 못하고 그 부와 명예를 다른 사람들이 다 가져간다는 것이다. 이제 기둥서방의 노예가 되었기에 일하면 다 그에게 들어간다는 것이다. 또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 라고 했다. 음란한 여자가 유혹하는 길로 빠지면 악인의 노예가 되어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남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11절도 역시 “두렵건대” 라는 말로 시작한다. 역시 8절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약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라고 했다. 10절에서 남을 위한 노동을 하다가 고된 노동 때문에 일찍 몸을 망치고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한탄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헛된 욕심의 유혹을 따라 죽도록 수고했는데 모두 악인들 이방인들의 배만 채워주고 자신은 몸만 망치고 정작 죽게 되어서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모든 세상 사람들의 말로가 이와 같다.

12절은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라고 했다. 귀로 들은 훈계를 미워했고 책망하시는 말씀을 코방귀 뀌고 간직하지 않은 것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13절은 자신이 스승의 목소리를 잘 듣고 간직하지 않은 것을 한탄하고 또 가르치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을 한탄하고 있다.

14절은 이러한 후회가 최고조에 달하는 모습이다. 훈계와 책망을 듣지 않고 헛된 유혹을 따라가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멸망의 순간까지 왔다는 것이다.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악에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염려하노라” 라고 했다. 많은 무리라는 말은 원어에서는 온 회중이란 원어에서는 두가지 말로 나뉘어 있다. 앞에 나온 말은 특별한 목적으로 소집된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이 사람의 재판을 방청하도록 소집된 사람들이다. 또 뒤에 나온 말은 재판을 위해 지명된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두 가지 사람들은 모두 이 사람의 재판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음행을 한 사람은 돌로 쳐 죽이는 것이지만 창녀와 음행을 한 경우는 그렇지 않다. 존경 받던 이 사람은 기둥서방의 노예로 고통을 당하다가 죽게 될 위기에서 재판을 해 달라고 호소를 했는데 이제 모두가 다 모여들었고 공개적으로 재판을 받고 공개적으로 망신 당하는 멸망의 최고조에 이른 것이다.

III. 지혜와의 결혼(15-20)

3-14절이 음녀가 유혹하는 길로 가서 음녀와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아내와 사랑을 나누라는 것이다. 이제부터 나오는 말들은 성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말들로 마치 19금 영화를 보는 듯한 장면인데 그 느낌을 알 수 없도록 번역이 되어 있다.

15절은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라고 했다. 우물과 샘은 여인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네 아내의 샘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며 네 아내와 성관계를 갖으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16절에서는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라고 했다. 잠언 기록자의 아들이 음녀와 성관계를 하는 동안 아내라는 샘은 흘러 넘쳐서 바깥과 거리로 흐른다는 것이다. 바깥은 집 밖을 뜻하고 거리는 광장을 뜻한다. 이곳들은 본래 창녀들의 장소이다. 흘러 보낸다는 말은 끊임없이 넘쳐 흐른다는 말이고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네 아내의 샘을 마시게 된다고 경고하는 말이다.

17절은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란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주로 이방 사람들이란 뜻으로 쓰는 말이다. 아내를 다른 사람들의 성욕을 채우도록 내어주지 말라는 것이다. 아내가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과 성관계를 갖는 것은 바람난 남편에게 화가 나서 맞바람을 피우는 모습이 아니다. 아내가 정숙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들이 남의 샘물을 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기둥서방의 노예가 되고 아내도 끌려가 창녀가 된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소유처럼 취급되었기 때문에 남편이 기둥서방의 노예가 되면 아내도 역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18절은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라고 했다. 아내와의 성관계로 만족하라는 뜻이다. 또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여라” 라고 했다. 당시 사람들은 청소년 때 결혼했다. 어려서 결혼한 그 배우자하고만 성관계를 갖고 함께 그 기쁨을 누리며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19절은 젊어서 얻은 그 아내를 암사슴과 암노루로 비유했다. 사랑스러운 암사슴이란 말은 성적 매력이 있는 암사슴이란 뜻이다. 아름다운 암노루란 아름답게 차려입은 여인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암사슴과 암노루는 숫사슴 숫노루에 비해 작고 예쁘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지 여성을 비하해서 동물로 표현한 것이 아니다. 둘 다 아담하고 아주 예쁜 동물들이다.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라는 말은 아내의 젖가슴으로부터 나오는 액체로 끊임없이 실컷 배를 채우라는 말이다. 아내를 사랑하여 그 젖가슴을 한없이 빨아대는 모습을 그림처럼 표현한 말이다. 하지만 아내의 젖가슴으로부터 마신 것은 젖이 아니라 포도주이다.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여라” 라는 말은 아내의 포도주에 취해서 정신이 몽롱할만큼 성적인 황홀경에 빠지라는 뜻이다. 아내의 젖가슴으로부터 배터지도록 마시라는 것은 자신의 성적욕구를 해소하는 도구로 아내를 사용하지 말고 아내가 만족하도록 애무해주라는 뜻이다. 그래서 성관계를 통해 함께 오르가즘을 느끼며 살라는 뜻이다.

20절은 그런데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라고 했다. 사모한다는 말은 19절에서 아내와의 성관계로 황홀경에 빠진다는 말과 똑 같은 말이다. 또 음녀란 남의 여자라는 뜻이다. 어찌하여 아내와 성적 쾌락에 빠지지 않고 남의 여자와 성적 쾌락에 빠져 술취한듯 비틀거리겠느냐는 뜻이다.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의 포도주로 비틀거리는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진짜 해로운 독주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죽어가는 모습이다.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는 말에서 가슴이란 앞에서 나온 아내의 젖가슴과는 다른 말이다. 이는 여자의 젖가슴보다 조금 아랫 부분을 뜻하는 말이다.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릴 때 아기의 얼굴이 있는 위치가 바로 가슴이란 말이다. 부정한 여자의 젖을 빨기 위해 가슴 바로 아래에 얼굴을 묻고 있는 그림이다.

IV. 결론적 충고(21-23)

이제 21절은 ‘대저’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는 왜냐하면 이라는 뜻이다. 왜 아내의 가슴의 술로 취해서 부부간에 함께 황홀경에 빠져 비틀거리고 부정한 여자의 독주로 비틀거리면 안되는가 하면 이란 뜻이다. 이제 아버지는 다시 자신이 가르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라고 했다.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지혜의 말씀으로 가르친 그 길만 똑바로 따라 가고 있는지 아니면 음녀의 유혹에 빠져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지 다 아신다는 것이다. 또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라고 했다. 난하 주석을 보면 “헤아리시느니라” 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모든 길을 살펴 다 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살펴 보시고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실제로 악을 행하지 않고 마음 속으로 계획하기만 했어도 음행이고 살인이라고 하신 것이다.

22절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은 악인의 모습이다. 악인은 자기의 악이라는 덫에 걸린다는 것이다. 자신의 죄악이 자신을 사로잡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죄의 줄에 매이나니라고 했다. 자기 죄의 줄들이 자신을 단단히 당겨 옭아맨다는 것이다. 이는 먼저 줄로 된 덫에 걸리는 장면이다. 그 줄은 자기의 악이다. 그런데 한번 걸리면 빠져 나가려고 하는데 그 때 자기의 죄들이 그 줄을 잡아 당겨서 점점 옥죄어 빠져 나가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은 악인들에게 벼락을 내려서 죽게 할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악에 걸려들고 또 자신의 죄들의 그 줄을 잡아 당겨 꼼짝도 못하게 되어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23절은 악인은 훈계가 없어서 죽는다는 것이다. 그 마음에 아비의 훈계가 없어서 죽는다는 것이다. 또 많은 미련함 때문에 길을 잃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가르치는 길로 가지 못하고 부정한 여인이 유혹하는 길과 같이 자기 쾌락을 쫓다가 빠져들어 길을 잃는다는 것이다.

결론 및 적용

오늘 말씀은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의 길을 벗어나 딴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는지 부정한 여인과의 관계를 통해 설명했다. 부부간에 성적으로 친밀한 관계로 살아야 한다. 함께 성적으로도 만족을 주며 친밀한 관계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유혹하는 자들이 유혹하여 음행에 빠지게 할 것이다.

아내와 더불어 성적 쾌락에 취해 비틀거리라는 말을 바꾸면 남편과 더불어 그렇게 취해 살라는 뜻이다. 아내와 남편이 한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처럼 살면 안된다. 항상 처음 만나 사랑할 때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음란 마귀가 절대로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나는 음행한 적이 없으니 오늘 말씀과는 상관 없다고 하지말라. 부부간에 서로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지혜의 길을 벗어나 멸망의 길로 빠지게 하는 최고 위험한 길 하나를 예를 들어 소개한 것이다. 또 잠언 전체의 큰 그림으로 보면 지혜를 사랑하는 여인으로 비유하고 있고 세상의 모든 욕망들을 멸망하게 하는 음녀로 비유하고 있으니 비유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아내나 남편과 깊은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음란한 여인에게 빼앗기듯 하나님의 지혜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세상 탐욕에게 우리 마음의 중심을 빼앗기고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사진출처: Flickr: Old Couple, Photographed by Ian MacKenz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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