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에서는 지혜를 따라 걸으면 걸어갈 때 넝쿨 같은 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 했고 달려도 걸릴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했다. 지혜의 길의 반대는 형이 확정된 악독한 자들의 길과 형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악한 자들의 길이다. 그런 길은 발을 들여놓지도 말고 들여놓았다면 즉시 돌아서 나오라는 것이다. 발을 얽어매고 있는 것이 있다면 끊어 버리라는 것이다. 의인의 길은 점점 더 밝아지는 아침햇살같지만 악인의 길은 캄캄해서 걸려넘어져도 모르기 때문이라 했다.
I. 마음 안을 잘 지켜라(20-23)
20절은 다시 내 아들아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잠언의 기록자는 몸의 감각기관을 가지고 지혜의 말씀을 잘 간직하라고 부탁한다. 먼저 20절은 귀를 사용해서 잘 들으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근거로 이제 자신의 말을 잘 들으라 부탁한다. 말이란 아버지가 하나님의 지혜를 말로 강의하듯 가르친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으라는 것이다. 다음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나의 이르는 것” 에 귀를 기울이라 부탁한다. “이르는 것” 이란 명령이란 뜻이다. 아버지의 명령인 것 같지만 아버지가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따라 전해준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러한 명령은 듣기 싫지만 귀를 잡아 늘여가며 들어달라는 것이다.
20절에서는 귀를 사용했는데 21절은 이제 눈을 사용해서 잘 감시하라 한다. “네 눈에서 떠나지 말며” 는 포로가 탈출하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듯 지혜를 감시하라는 것이다. 사실 아버지로부터 들은 가르침과 명령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지혜의 말씀을 여인으로 비유하여 도망가지 못하게 잘 감시하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두어 두고 잘 지켜야 할 곳은 21절 뒷부분에 보면 마음이다. 마음 속에 지키라는 말은 마음 안에 잘 가두어두고 절대로 잊지 말라는 뜻이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책이 없었기에 아버지로 부터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잘 듣고 그 말씀이 계속 마음 안에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소리를 내어 읊었다. 가르침과 명령들이 마음 속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계속 반복해서 소리를 내어 읊조리면서 감옥을 지키는 간수처럼 계속 확인하라는 것이다.
22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들은 지혜를 잘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아버지가 전해준 지혜의 말씀인 가르친 것과 명령한 것은 “그것들을 얻는 자들에게 생명이 되며” 라고 했다. 이는 3:18절에서 단단히 끌어 안으라 한 그 지혜의 말씀을 놓침으로 인해 죽게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그렇게 다시 찾으면 죽을 자들이 살게 된다는 뜻이다. 또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라고 했다. 원어는 치료해 준다는 뜻이다. 죽을 자가 살게 되는 것은 아버지를 통해 가르치신 것과 명령하신 것을 통해 치료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간직하면 그 말씀으로 인해 마음에 평화를 얻고 치료를 받아 죽을 자가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비유로 말하고 있기에 육신의 건강을 뜻하는 말은 아니다. 영적으로 죽을만큼 아팠던 사람이 회복되어 영적으로 건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23절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했다.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들이 계속 감금된 채 남아있게 하라는 것이 어떤 것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의 샘이 그 말씀으로부터 흐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들을 잘 간직하고 있으면 그 말씀으로부터 치유의 샘물이 흘러나와 우리의 몸을 치료해 준다는 것이다. 원어는 감금하고 지키는 것과 탈출하는 것이 서로 대조된다. 지혜를 잘 지켜 마음 안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하면 지혜로부터 생명의 샘물이 마음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갇혀있는 마음의 창살 사이로 생명의 샘물들이 흘러나와 자신을 치료할 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들까지 치료하는 것이다.
마음 안을 지키는 길의 중심에는 눈이 있다. 귀로 들은 것과 마음 안에 간직한 것의 사이에 눈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눈은 실제로 보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 안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눈이다. 귀로 들은 지혜의 말씀을 마음 안에 잘 머물러 있도록 마음의 눈으로 지키면 거기서 온 몸을 살리는 생명의 물이 흘러 나온다는 것이다.
II. 마음 밖을 잘 지켜라(24-27)
24-27절은 어떻게 마음을 지키는지를 말한 것이다. 마음을 지키는 것은 계속 마음만 감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을 지키는 비결은 먼저 24절은 속이는 입으로부터 돌아서라 했다. 고대인들은 마음과 직접 연결된 통로는 입이라 생각했다. 고대 이집트 문학에서도 입은 마음으로부터 직접 연결된 관이라 했다. 입은 마음에 연결된 열린 파이프이기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마음 안에 있는 악한 것들이 입밖으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를 간직하고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은 이제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라고 했다. 궤휼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본래 머리카락을 땋은 것을 뜻하는 말이다. 신체 기관에 쓰일 때에는 비비 꼬여서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을 뜻한다. 복된 말을 해야 하는데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상처를 주는 등의 말만 하는 것이 바로 고장난 입이고 비비 꼬인 입이다. 비비 꼬인 기형적인 입으로 상대를 속이려는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15절에서는 악한 사람의 길을 피하고 돌이켜 떠나라 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입으로부터 돌이키라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악한 사람들을 따라가며 그들처럼 꼬인 입으로 비비 꼬아 속이는 말은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마음 안에 하나님의 지혜를 간직하는 길은 비비 꼬아 속이는 입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다.
돌아섰다면 그 다음은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라고 했다. 사곡이란 미끄러져 빠져 나가는 입술이란 뜻이다. 꽈배기처럼 비틀어 꼬는 말을 하는 사람들보다 한 수 더 높은 악인들은 미끄러져 빠져 나가는 입술이다. 미끄러져 빠져 나가는 입술이란 말로는 말씀을 지키는 척하고 순종하는 척하고 사람들 보는데서는 거룩하게 지키는 척하지만 사실은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는 입술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면서 사실상 경멸하는 자들이다. 비비 꼬인 입을 피해서 돌아서면 그 다음에는 이목구비가 똑바른 사람들이 유혹한다. 이들의 입술은 미끄러져 빠져나가는 입술이기에 까딱 잘못하면 이들에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입술에서 멀리 떠나야 하는 것이다.
또 어떻게 마음을 지키는가? 25절은 “네 눈은 바로 보며” 라고 했다. 네 눈들은 계속 앞만 보게 시키라는 것이다. 이는 눈의 방향이 앞에 있는 길을 보게 시키라는 것이다. 그리고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라고 했다. 어떻게 앞에 있는 길을 보는가 하면 계속해서 그 앞을 눈꺼풀로 훑어가면서 보라는 것이다. 만약 악한 곁길이 그리로 오라고 유혹하거든 그 눈꺼풀을 닫아버려 눈이 보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25절은 눈과 눈꺼풀의 협응작용으로 하나님의 지혜의 길만 바라보고 딴길로 벗어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또 어떻게 마음을 지키는가? 25절에서 눈으로 앞만 보고 눈꺼풀이 다른 곳을 보지 못하게 했다면 26절은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라고 했다. 이는 길이 평평한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혹시나 발을 휘감는 오라 줄이나 덫 같은 것은 없는지 또 걸림돌은 없는지 눈으로 분명히 확인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위험을 피하면 모든 네 길이 안전하게 잘 세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26절의 강조점은 똑바로 하나님의 지혜의 길만 따라갈 때도 행여나 발을 얽어매는 것이나 걸림돌이 없는지 잘 살펴보라는 것이다.
또 어떻게 마음을 지키는가? 27절은 이제 발이다.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라는 말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발을 내딛지 말라는 것이다. 잘못 생각하면 왼쪽은 악한 길이니 가면 안되지만 오른쪽은 선한 쪽이니 가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인도하는 길로만 갈 것이며 어느쪽으로도 샛길로 빠지면 안된다는 것이다. 만약 어느 한쪽으로 발을 내딛었다면 즉시 발길을 돌리라는 것이다. “네 발은 악에서 떠나게 하라”는 말은 악한 길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발을 내딛는 것은 지혜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바르게 행하는 것이 지혜의 말씀을 마음 속에 잘 간직하는 비결이고 완성이다.
이 부분은 우리 몸의 감각기관을 중심으로 대칭구조로 되어 있다. 24-27절은 입-눈-발이다. 역시 중심에는 눈이 있다. 21-23절이 마음 안을 감시하는 눈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지혜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길을 감시하는 눈이다. 역시 실제 눈이 아니고 마음의 눈이다.
결론 및 적용
오늘 말씀은 먼저 귀-눈-마음의 순서로 나왔다. 눈이 그 중심에서 잘 감시하라는 것이다. 또 행하는 길은 입-눈-발의 순서로 나왔다. 역시 눈이 그 중심에서 말과 행동을 잘 감시하라는 것이다. 귀-눈-마음과 입-눈-발 사이에는 죽을 몸이 생명의 물로 인해 건강해지는 그림이 나왔다. 들은 말씀을 잊지 않도록 마음을 잘 감시하면 그 말씀으로 인해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 말씀을 근거로 말과 행실을 잘 감시하는 길이 생명을 얻는 길이라는 것이다.
24절은 원어에서 돌아서라 또는 비켜서라는 말로 시작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21-23절의 마음 안을 살핀 뒤에 혹시라도 잘못된 말이 나가지 않도록 즉시 돌아서거나 비켜서라는 것이다. 또 24-27절에도 역시 돌아서라 또는 비켜서라는 말이 나온다. 마음 밖의 길을 살핀 뒤에도 잘못된 행동이 있다면 즉시 돌아서거나 비켜서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혜의 말씀을 간직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늘 안과 밖을 잘 감시하고 잘못된 것을 발견하면 즉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서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것이지만 돌아서지 않고 육신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멸망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두마디로 요약한다면 감시하고 돌아서라는 것이다.
사진출처: free image from Pixaba, photographed by tookapic
사진에 다는 사족: 길만 보고 따라가야 하는데 이녀석은 왜 두리번 거리는지요. 유혹하는 곁길에는 눈꺼풀 닫고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하는데요. 제 말이 아니고 잠언 기록자의 말입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