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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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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erbs

잠언 4:10-19

잠언은 도막도막 끊어진 명언들의 모음집이 아니다.

2017. 6. 29. · 안정섭 목사 · 페이스북 원문 · 잠언 4장 강해 설교

잠언은 도막도막 끊어진 명언들의 모음집이 아니다. 각 부분들은 구두로 가르침을 전달하던 고대인들이 기억하기 쉬운 분명한 구조로 되어있고 또 그 각 부분들은 단단한 고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항상 앞부분과 뒷부분을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바로 앞부분인 잠언 4:5절에서는 모든 재산을 다 지불하고 지혜를 사오라고 했다. 4:8절에서는 그렇게 사온 지혜를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품듯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슴에 품으면 그 지혜가 너를 존귀하게 만들어 준다 했다. 오늘 말씀은 이제 그 지혜의 말씀을 듣고 행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여인에 비유했기에 이제 모든 값을 지불하고 사온 여인을 품고 사랑한 뒤에 그 여인의 말을 듣고 따라 행하라는 것이다. 여자의 말을 듣는 것이 행복한 가정이 되는 비결인 것처럼 하나님의 지혜의 말을 듣는 것이 복된 삶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I. 지혜를 따라 걸으라(10-13)

원어에서 10절은 “들어라 내 아들아!” 라는 말로 시작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버지의 명령은 ‘받으라’ 라는 말이다. 받으라는 말은 받아서 계속 간직하고 다니라는 뜻이다. 1:9절에서 말한 대로 목걸이처럼 간직하고 다니라는 것이다. 이는 항상 지니고 다녀야 하는 약속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이다. 지키면 축복을 주겠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내리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의 말씀이다. 그러면 네가 사는 날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의 양이 정말 많아진다는 약속이다. 또 이는 만약 계속 지혜의 말씀을 간직하고 다니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인 것이다. 아버지는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를 아들에게 전하는 것뿐이다.

11절에서 아버지는 이러한 지혜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길이란 본래 왕이 다니는 잘 다듬어진 특별히 구별된 높은 길이다. 지혜의 길이란 아버지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걸었던 경험을 근거로 아들에게 가르쳐 준 길이다. 아버지 뿐만 아니라 조상 대대로 경험을 통해 증명된 길이다. 아버지도 조상들이 증명해 주었고 또 자신이 직접 걸어 보았기에 증명할 수 있는 길을 아들의 발 앞에 던져 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지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행진하도록 이끌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지혜의 길은 지혜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의 방식을 뜻하는 말이다.

12절은 이처럼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걷도록 인도하면서 경고하는 말이다. 그 길을 따라 걸을 때 아들의 발걸음은 곤고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원어는 발이 끈이나 넝쿨 같은 것으로 휘감겨 묶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혜를 따라 걷는 길에는 장애물들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 그 길을 따라 달려갈 때에도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는 것이다. 달려갈 때도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더욱 더 안전한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13절은 그러니 그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훈계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 바르게 살아가도록 반복해서 훈련시키는 것이다. 앞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사랑하는 여인처럼 가슴으로 안으라 했는데 이제 그 지혜의 말씀을 따라 반복해서 훈련하는 것을 마음으로 꼭 붙잡고 절대로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또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포로를 감시하듯 잘 지키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글이 아닌 말로 듣고 기억하던 구약시대 사람들이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되뇌이며 행하는 모습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그 지혜가 바로 네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그 지혜를 마음에서 놓치게 되면 멸망한다는 뜻이다. 10절의 받으라는 말과 13절의 단단히 붙잡고 지키라는 말이 감싸고 있는 부분은 아버지가 가르쳐 준 지혜의 길을 절대로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II. 사악한 길을 피하라(14-17)

14절은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라 했다. 사악한 자의 길이란 지혜로운 길 즉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별된 길 곁에 연결하여 유인하는 멸망할 자들의 길이다. 사악한 자들은 이미 사형이 확정된 범죄자들이기에 그들의 길을 따라가면 역시 사형이 확정되는 것이다. 또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라 했다. 악인이란 형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자들이다. 악인의 길은 사악한 자의 길보다는 조금 괜찮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길로도 절대 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별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럴듯해 보이는 좋은 길들이 그리로 오라고 유혹한다는 것이다. 사악한 자들의 길은 그리로 발을 들여 놓기만 해도 즉시 사형판결이 확정되는 멸망의 길이기에 발을 들여놓지도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악한 자의 길이란 즉시 멸망하는 죄의 길은 아니기에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런 길을 따라 계속 걸을 수 있다. 하지만 즉시 멸망하지는 않을 것 같은 길일지라도 절대로 걷지 말라는 것이다. 따라서 좌로나 우로나 절대 다른 길로 치우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가 인도하는 생명의 길로 똑바로 걸으라는 것이다.

15절은 14절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그런 길은 피하라는 말은 어떻게 악독한 사람의 길에 발을 들여 놓지 않을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피하라는 말은 본래 묶인 것을 풀어주거나 머리카락을 자를 때 쓰는 말이다. 악독한 자의 길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넝쿨 같은 것이 발을 얽어매어 그 길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피하고 지나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런 길에 발이 얽혀 그 걸음이 12절처럼 곤고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미 발을 들여 놓아서 악독한 사람의 길에 발이 얽혔다면 그것을 과감히 끊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지혜의 길을 따라 똑바로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돌이켜 떠날지어다”에서 ‘돌이켜’ 라는 말은 14절의 악한 사람의 길을 걷게 될 때는 돌아서라는 뜻이다. 돌아서서 그 길을 빠져 나와 다시 지혜의 길을 따라 가라는 것이다. “떠날지어다” 라는 말은 강이나 물이 흐르는 와디를 건너가라고 할 때 쓰는 말이다. 악한 자의 길에서 돌아 나오다가 올바른 길로 빠져 나오라는 뜻이다. 또 그런 길을 만나면 그리로 빠지지 말고 그냥 건너 뛰거나 통과하라는 뜻이다.

16절은 그러한 사람들의 길들을 피하고 가지말며 돌아서고 건너 뛰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악한 일을 저지르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강한 세가지 욕구는 식욕 성욕 수면욕이다. 그 중 가장 강한 것은 수면욕이다. 저들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저들에게는 가장 강한 수면욕보다 더 강한 것이 악한 일을 저지르려는 욕망이라는 것이다.

또 그들은 “잠이 오지 아니하며” 라고 했는데 이는 잠을 강탈당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남의 발을 얽어매어 넘어지게 하지 않으면 잠을 강탈 당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밤에 악한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때문에 그들의 수면시간은 강탈당한다는 것이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수면시간을 강탈당하는 것은 자신들의 뜻이 아니다. 악한 일을 하려는 욕망이 정말 강한데 그러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잠을 강탕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낮이나 밤이나 악한 일에 온 힘을 다해 집중하는 모습이다.

17절도 계속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불의의 떡을 먹기 위해 싸우는 자들이다. 또 강포의 술을 마시기 위해 싸우는 자들이다. 빵과 포도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끼니마다 함께 먹는 주식들이다. 이는 악한 일과 폭력을 삼시 세끼 밥 먹고 포도주를 마시듯 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포도주의 붉은 색은 저들이 사람들을 해쳐서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을 상징한다.

III.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의 비교(4:18-19)

18-19절은 의인들의 길과 악인들의 길을 비유로 비교하고 있다. 18절에서 의인의 길은 마치 동틀 때의 햇살 같다는 것이다. 이는 대낮이 될 때까지 점점 밝아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낮이 지나면 어두워진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동틀 때부터 대낮까지 점점 더 밝아지듯 의인들의 길은 점점 더 밝아진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빛은 의인들의 참된 경건과 도덕성의 상징이다. 지혜의 말씀을 따라 걷는 의인들의 참된 경건과 도덕성은 점점 더 밝게 빛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19절은 악인에 대한 비유이다. 멸망할 악인의 길은 캄캄해서 무엇에 걸려 넘어졌는지 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들은 빛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전혀 깨닫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저들은 영원히 멸망하게 되었는데도 자신들의 행위가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마무리

이 말씀에는 두개의 숨은 그림이 서로 비교되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라는 아내의 그림과 악한 길을 따라 즐기며 살라고 유혹하는 는 음란한 여인의 그림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여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똑바로 따라 가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한다. 그러면 점점 더 밝아지는 햇살과 같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란한 세상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의 길 옆에 길을 만들어 놓고 그리로 오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절대로 악인들의 길에는 발도 들여놓지 말아야 한다. 만약 들여 놓아서 발이 얽혔다면 즉시 과감히 끊어버려야 한다. 하나님 말씀과 반대되는 잘못된 습관들 악한 행동들은 발버둥을 칠 수록 더욱 더 옭아매는 덫과도 같다. 방법은 단 하나 과감히 끊어 버린 후 돌아서는 것이다. 돌아서서 다시 제길로 나와 똑바로 걷는 것이다. 그 길이 생명의 길이다.

사진출처: free image from pixabay photographed by Insub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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