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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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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erbs

잠언 6:20-35

하나님의 지혜가 인도하는 길만 따라가고 곁길로 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적 유혹을 피하고 아내와의 관계에서 즐거워하라 했다.

2017. 7. 27. · 안정섭 목사 · 페이스북 원문 · 잠언 6장 강해 설교

하나님의 지혜가 인도하는 길만 따라가고 곁길로 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적 유혹을 피하고 아내와의 관계에서 즐거워하라 했다. 또 재물의 유혹을 피하는 길은 먼저 남에게 피해를 입지 말고 게으름으로 자기에게 피해를 입히지도 말고 또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라 했다.

이 부분은 성적인 유혹을 피하고 아내와 함께 즐거워했고 또 재물의 유혹도 피한 뒤 재물과 명예를 얻게 된 이후의 삶에 대해 다시 권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제 20-35절은 또 다시 성적인 유혹을 피하라고 권고한다. 차이점은 앞에서는 결혼 초기에 딴 곳 보지 말고 아내와 성적인 만족을 누리며 살라는 긍정적인 권고였다면 이제 재물과 명예를 쌓은 뒤에 간음 죄에 빠지게 되면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는 부정적인 경고인 것이다.

I. 마음에 매고 목에 걸라(20-23)

6:20절도 “내 아들아”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제 지혜의 길만 따라가고 곁길로 새지 않는 다른 가르침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 가르침은 지키라는 말로 시작한다. 지키라는 말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라는 뜻이다. 마음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할 것은 “네 아비의 명령”이다. 명령이란 아버지 말씀의 권위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이 아니라 아버지가 가르쳐 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마음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명령과 짝을 이루는 말은 “네 어미의 법” 이다. 이는 1:8절에 나온 말의 반복이다. 법이란 원어에서 토라 라는 말인데 어머니가 어린 자녀를 데리고 문답식으로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다정하게 질문하면 아들은 대답한다.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 아이가 행할 말씀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가르쳐 준 하나님 말씀의 권위는 마음에 잘 간직하고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라 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가르침은 저버리지 말라 했다. 저버린다는 말은 떠나 버린다는 말이다. 어머니의 가르침의 길을 제 발로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가르쳐 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마음 안에 간직하고 어머니가 가르쳐 준 하나님의 말씀은 발로 길을 가듯 그 행함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21절에 보면 “그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라고 했다. 원어는 “항상 마음에 묶어 놓으라” 는 뜻이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탈출하지 못하게 하는 길은 묶어 놓는 것이다. 포로가 도망가지 못하게 묶어놓듯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도 항상 마음에 묶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완벽하게 외우는 것을 뜻한다.

마음에 묶어 놓는 것과 짝을 이루는 말은 “목에 매라” 는 말이다. 아버지의 명령은 마음에 묶어 두지만 어머니의 법인 토라는 구슬처럼 꿰어 목에 걸고 다니라는 것이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삶으로 행해야 할 말씀은 고대인들이 말로 전달하던 연결된 논리에 따라 줄줄이 꿰어 이해해서 걸고 다니라는 것이다. 이는 항상 연결해서 이해된 말씀을 항상 간직하고 다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에 묶어 두고 목에 주렁주렁 걸고 다니면 그 말씀들이 길을 갈 때에는 길의 인도자가 되고 또 잠을 잘 때에는 보호해 주는 경호원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가 앞서 인도하는 그림이고 또 잘 때에는 양떼가 안심하고 잘 수 있도록 밤새 지켜주는 목자의 그림이다. 또 잠에서 깨어나면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라고 했다. 이는 마음에 묶어 둔 말씀들과 목에 건 말씀들이 하룻동안 어떻게 길을 가야 하는지 조언하는 조언자가 된다는 것이다. 인도자와 경호원이 된 말씀들이 이제 조언자나 상담자가 된 것이다.

23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란 말로 시작한다. 그 이유가 되는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라고 했다. 아버지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마음에 묶어 두라 했는데 그 묶어 둔 말씀들이 어두운 밤길을 비추어 주는 등불이 된다는 것이다. 또 “법은 빛이요” 라고 했다. 이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 토라를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라 했는데 그 토라가 바로 빛이 된다는 것이다. 이 빛은 옳은 길과 잘못된 길을 밝히 비추어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훈계의 책망들이 바로 생명의 길이라는 것이다.

24절은 23절에 연결된 말이다. 앞에서 생명의 길이라 했는데 무엇을 하기 위한 생명의 길인지를 보충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악한 여자에게서 지켜 준다 했다. 악한 여자란 26절에서 창녀라고 했고 또 29절과 32절은 이웃의 아내라 했다. 창녀나 유혹하는 이웃의 아내가 악한 여자인 것이다. 따라서 악한 여자란 간음하자고 유혹하는 여자이다.

또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라고 했다. “호리는 말” 이란 “매끄러운 혀” 라는 뜻이다. 달콤하고 끈적이는 목소리로 유혹하는 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혹하는 여자의 달콤한 목소리로부터 지켜주기 위한 것이다. 이런 유혹은 먼저 유혹하는 달콤한 속삭임에서 시작한다. 부모가 가르친 훈계들은 바로 이런 여자가 말과 행동으로 유혹할 때 지켜주기 위한 생명의 길이라는 것이다.

24절에서는 유혹이 귀를 통해 다가왔는데 이제 25절에서는 유혹이 눈을 통해 다가온다.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라고 했다. 네 마음은 본래 아버지가 가르쳐준 명령들을 묶어 놓으라 했던 그 마음이다. 그런데 만약 그 명령들을 마음에 묶어 놓지 않으면 그런 여자의 아름다움을 탐내는 마음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여자의 눈짓에 사로잡혀 포로가 되는 것이다.

유혹은 달콤하고 끈적이는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남녀가 불륜에 빠지기 시작하는 것도 달콤한 말로 유혹하는 대화에서 시작된다. 대부분 바람둥이들은 미남 미녀가 아니라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달콤한 말에 넘어가면 그 다음에는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 그 유혹하는 여자의 아름다움이 눈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다. 눈으로 유혹하는 여자의 눈짓에 사로잡혀 포로가 되는 것이다.

II.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26-29)

26절도 원어에서는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목소리와 눈짓으로 유혹하는 음란한 여자에게 홀리지 말아야 하는가 하면 이란 뜻이다.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여” 라는 말은 창녀는 재물을 빼앗아 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와 비교되는 음란한 여인은 창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이다. 다른 사람의 아내인 음란한 여자는 네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창녀는 빵을 놓고 거래를 하지만 이웃의 아내인 음란한 여자는 네 생명을 놓고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창녀와의 결합은 돈을 잃게 되지만 남의 아내와의 결합은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26절은 음행은 생명까지 잃게 된다며 그 죄의 심각성을 지적했다면 이제 27-28절에서는 그 죄의 대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두 가지 그림을 통해 말하고 있다. 먼저 27절은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라고 했다. 여기서 가슴은 21절에서 나온 마음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 아버지의 명령을 묶어두었어야 했던 곳이다. 그 가슴에 불을 묶어두고 다니면 옷이 타는 것처럼 그 마음에 음란한 여자를 연모하는 마음을 묶어두고 다니면 반드시 옷이 타게 되고 가슴까지도 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성욕을 불에 비유한 것은 우리나라나 고대 이스라엘이나 같다. 한번 불이 번지면 걷잡을 수 없는 것처럼 성욕도 한번 불 붙으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 그림은 28절에 나오는 대로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라는 것이다. 이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 말씀을 행하며 지혜의 길을 따라 걷는 대신 그 발로 숯불 위를 걸어 다니면 반드시 발이 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음도 타버리고 행하는 발도 타버리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불을 가슴에 품은 것이 마음에 일어나는 욕정이라면 숯불 위를 걸어 다니는 것은 실제 간음을 행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29절도 원어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앞에서 나온 두 가지 그림의 결과를 설명한 것이다.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 라는 말을 원어대로 직역하면 “남의 아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자” 라는 뜻이다. 성적인 결합을 남의 아내의 몸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고 표현한 것이다. 또 “그를 만지는 자마다” 라는 말을 원어대로 직역하면 “그 여자를 손으로 만진다” 라는 뜻이다. 창세기 20:6절에서 아비멜렉이 리브가를 만지지 않았다 할 때도 쓰인 말이다. 알몸으로 남의 여자를 손으로 끌어안고 성관계를 갖는 모습을 그림처럼 표현한 말이다. 그런 경우에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III. 용서받지 못할 죄(30-35)

30-31절은 간음을 도둑질과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다. 30절에서 “도둑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하지 아니하려니와” 라고 했다. 장발장처럼 배고파서 음식을 훔친 도둑이라면 그 죄를 이해하고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31절은 그래도 훔치다 들키면 일곱 배를 갚아야 하고 심하면 자기 집에 있는 모든 재산을 다 내 주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배가 고파 음식을 훔친 도둑도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벌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굶주린 성욕을 채우기 위해 남의 여자를 훔친 경우는 음식 훔친 도둑과는 달리 아무도 동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아무리 큰 돈으로도 배상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먹을 것을 훔친 도둑과 남의 아내를 훔친 도둑을 비교해서 절대로 용서 지도 못하고 갚을 길도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32절은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라고 했다. 원문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히브리인들은 심장에 생각이 머문다고 생각했고 허파와 간에 감정이 머문다 생각했다. 따라서 요즘 말로 번역하면 뇌가 없는 사람 즉 “무뇌” 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며” 라 했다. 영혼이란 영혼만이 아니라 영혼과 몸 전체를 뜻하는 말이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자해하는 사람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3절은 “상함과 능욕을 받고” 라고 했다. 원어는 얻어 맞음과 불명예를 발견할 것이라는 뜻이다. 발견한다는 말은 31절에서 들킨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도둑은 남에게 발견되는 것이지만 간음한 사람은 스스로 상함과 능욕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도둑은 금전적인 손해를 보지만 간음한 사람은 몸이 완전히 망가지고 사회적 지위도 완전히 망가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재물과 명예를 얻어 존경받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 끌려 나와 옷이 벗겨지고 사정없이 두들겨 맞는 모습이다. 만약 이스라엘 여인과 간음하다 잡혔다면 맞아 죽게 된다. 그 수치는 절대로 씻을 수 없다 했다. 능욕이라는 말은 개인적인 불명예를 뜻하는 말이지만 부끄러움이라는 말은 그 사회의 기초나 응집력을 무너뜨리는 사람에게 내리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수치를 남기는 것을 말한다.

34-35절은 이제 질투심에 불이 타서 복수하려는 남편을 어떤 경우에도 막을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부정어가 세번이나 반복되며 강조된다. 34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간음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벌이 왜 이렇게 심한가 하면 이라는 뜻이다. “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라는 말은 자기 아내를 범한 이 남자 때문에 분노가 치밀어 죽일 듯 분노하고 있는 상태이다. 남편이라는 말은 보통 아담이란 말을 쓰지만 여기서는 “게베르(גבר)” 라는 말을 썼다. 이는 강하고 잔혹해서 인정사정 없는 남성을 뜻하는 말이다.

이 인정사정 없고 잔혹한 남성은 “원수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라고 했다. 원수 갚는다는 말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법을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본래 이 경우는 법을 집행하는 자가 이 사람의 형을 집행해야 한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형을 집행하는 자리에서 왜 이 남자가 직접 복수를 하는가? 이는 간음이 그 사회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범죄이기 때문에 때로는 법정에서 그 남편에게 직접 처형 시키도록 권한을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제 삼자는 형을 집행하면서도 불쌍히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분노에 찬 그 남편은 절대로 불쌍히 여기지 않고 잔혹하게 그 형을 집행할 것이다.

둘째로 35절에서는 “어떤 보상도 받지 아니하며” 라고 했다. 이는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거들떠도 보지 않고 그대로 두들겨 패서 죽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 때 줄 돈은 단순한 벌금이 아니라 자기 생명 값이다. 전재산을 다 털어 준다 해도 거들떠도 보지 않고 형을 집행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 라고 했다. 이는 자신의 생명 값이 아니라 법적으로 정한 상대가 입은 피해에 대한 위자료이다. 위자료를 몇 배를 준다고 제안을 해도 들은 척도 안하고 그대로 두들겨 패서 죽일 것이라는 것이다.

결론 및 적용

지혜가 이끄는 바른 길을 따라 가려면 먼저 아내와 성적으로 만족한 생활을 해서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하고 재물로 인한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하며 간음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재물과 명예를 쌓은 성공한 사람이 남의 배우자를 탐하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이다.

젊은 날에 바라보기만 해도 꿀이 떨어지는 시절에는 네 아내의 우물에서 물을 마시라고 권하기만 해도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남에게 사기 당하지도 않고 성실하게 일했다면 재물과 명예를 얻었을 것이다. 그 경우 부부간에 서로 시들해져서 몸이 멀어지게 되고 부부간의 사랑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게 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때에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여자보다 특히 남자들이 유혹에 빠지기 쉽다. 여자들은 폐경기 이후에는 성생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지만 남자들은 70이 넘어도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산업화되기 이전 세대들은 손자를 얻으면 남편을 피하기 위해 손자를 끼고 자는 경우가 많았다고 내 젊은 날 아버지 또래의 선생님들에게 들었다. 폐경이 된 이후 남편에게 관심이 없는데도 남편이 귀찮게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연로하신 여 성도님들이 80이 넘은 남편이 자꾸 귀찮게 한다고 하소연 하는 소리까지도 들었다.

부부 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여자일수록 아들 딸에 집착이 더 강하다고 한다.그런경우 아들 딸이 결혼해서 분가해도 아들 딸에게 집착하고 또 손자 손녀에 집착하다가 며느리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편과 관계가 좋지 않다보니 나이들면 친구들 만나 깔깔거리며 음담패설하고 논다. 요즘 농담으로 퇴직한 남편이 세끼 밥 얻어먹으려 하면 삼식이라고 말하는 것도 부부관계가 소원해진 한국 사회의 한 단편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먼저 부부간에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나이가 들 수록 부부는 늘 함께 놀아야 한다. 바람난 배우자의 경우 100퍼센트 배우자 잘못이라 할 수 없다. 부부간에 늘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부모라면 자녀들도 그렇게 남처럼 살게 되고 가정 불화를 겪으며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잠언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여인으로 비유하며 그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잠언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음란한 여인이나 이웃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모든 세상 유혹을 상징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8장에서 다시 지혜라는 여인이 부르고 있다라는 말로 되돌아가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우리는 부귀와 명예를 얻어 편안할 때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 먼저 부부간에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음란한 문화와 정욕이 우리를 유혹해서 넘어지게 하고 모든 것을 다 잃고 부끄러움 당하고 멸망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보는 요즈음 이 말씀을 더욱 마음에 묶어두고 또 목에 걸고 따라 걸어야 한다.

사진출처: Free image from 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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