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6절은 지혜를 찾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듯 끌어안고 다니면서 두려운 일을 듣거나 악인들의 멸망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 했다. 이어지는 3:27-35절은 어떻게 지혜를 단단히 끌어안고 살 수 있는지 또 하나님께서 악인들과 의인들을 각각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비교하면서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3:27-31절은 지혜를 끌어안은 자들에게 하지 말라는 내용들이고 32-35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이끄는 그 이유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끌어 안은 뒤 어떻게 그 지혜를 따라 실천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알아 보도록 하자.
I. 선한 이웃이 되라(27-30)
이 부분에는 선한 이웃이 되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세가지가 나온다. 첫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데 인색하지 말라는 것이다. 개역 27절에서는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라고 했다. 원어에서 “마땅히 받을 자” 는 놀랍게도 “주인에게(בעל)” 라는 뜻이다.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는 ״선(טוב)을 계속 보관하고 있지 말라” 라는 뜻이다. 선이란 그냥 착하게 대하라는 뜻이 아니고 물질을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물질을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때는 즉시 돌려주고 절대로 우리가 보관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가진 물질은 우리 소유가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이런 말이다. 이모 집사님이 어려운 목회자나 선교사들이 우리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500불씩 주라며 제게 5000불을 맡기셨다고 하자. 그러면 그 돈은 내가 보관하고 있지만 내 것이 아니다. 형편이 어려운 어느 목사님이 방문하셨다면 즉시 500불을 드려야 한다. 그 청지기 직은 맡은 돈 5000불이 다 떨어질 때까지이다. 따라서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이라는 말도 맡은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어 그 돈 돌려주라고 하실 때에는 지체말고 돌려주라는 것이다.
28절은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라고 했다. 청지기로서 맡은 돈이 남아 있다면 주인이 사람을 보내서 찾으러 왔을 때 즉시 그 자리에서 돌려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라고 맡기신 것이기에 절대로 나중에 준다고 하면서 그냥 돌려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물질도 도와야 할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면 그들을 거지취급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주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가서 받아오라고 심부름을 보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웃에게 줘야 하는 것을 가지고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이다. 29절에서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라는 말은 번역상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이라는 말은 경제적으로 너를 의지하며 안전하게 잘 살고 있다면 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네 식당의 종업원이 식당 주인인 네게서 월급을 받고 평안히 살고 있거든” 이라는 뜻이다.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라는 말은 본래 밭을 간다는 뜻이다. 또 나무나 금속에 조각칼로 홈을 파서 무늬를 새길 때에도 이 말을 썼다. 시편 129:3절에서는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에 갈아 그 고랑을 길게 내었도다” 라고 비유적으로 사용했다. 이는 채찍으로 때려 등에 길게 고랑이 생겼다는 것이다. 잠언 3:29절에서도 이 말이 비유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이웃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길 계획은 생각조차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당연히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아서 그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생기게 하려고 생각조차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신을 신뢰하는 힘없는 이웃들에게 줄 것을 주지 않아서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셋째는 자신을 대적하는 힘 있는 자들에게도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이다. 30절에서 “다투지 말며” 라는 말은 본래 몸싸움 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상대가 앞에서 말한 두 사람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고 함께 싸울 수 있는 사람일지라도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때는” 이라는 조건이 달려있다. 해를 끼칠 때 방어는 할 수 있겠지만 공격하거나 싸움을 걸지 말라는 뜻이다. 이 싸움은 물질로 인한 싸움으로 해석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물질을 가지고 이웃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이다.
II. 폭력을 행하는 이웃을 부러워 말라(31)
31절은 30절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힘 있는 상대와 싸워 이기면 더 큰 힘을 갖게 된다. 상대만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많은 사람들도 그 힘을 보고 함께 굴복하게 된다. 만약 전학 온 고등학생이 그 학교의 일짱과 맞붙어 이겼다면 그 학교의 모든 일진들이 다 굴복하기 마련인 것과도 같다. 31절에서 “포학한 자” 이란 앞에서 나온 세가지 경우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 사람은 불쌍한 주인에게 돌려주지도 않고 자신의 종업원들에게 마땅히 줘야 할 것도 주지 않고 비슷한 상대와 싸워서도 이긴 사람이다. 이 사람은 가장 강한 상대까지 힘으로 제압하고 모든 물질과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이다. 이러한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포악한 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청지기 라는 생각이 없고 자기가 관리하고 있는 것이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물질을 이웃에게 나눌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자기들이 더 갖기 위해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물질과 힘으로 남을 굴복시키고 그들의 것도 빼앗고 자신 앞에 엎드리도록 만드는 사람들이다. 믿는 자들이 그런 사람들이 누리는 그 힘과 권력을 보고 부러워한다면 그 다음에는 그들의 행위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는 말은 그들의 길을 따르지 말라는 뜻이다. 길은 삶의 방식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다.
이렇게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는 마음은 곧 시샘하는 마음이고 모든 죄악의 뿌리이다. 하와는 하나님을 부러워하여 사탄의 꼬임에 넘어갔다. 가인은 그 동생 아벨을 부러워하다가 죽였다. 포악한 사람이 누리는 물질과 명예와 권력을 부러워하게 되면 자신도 그러한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여 그 길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 길은 멸망의 길이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포악한 자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로 부러워하며 따라가려 한다. 하지만 그 길은 축복의 길이 아니고 절대로 따라가지 말아야 할 멸망의 길인 것이다.
III. 악한 자는 심판하시고 의로운 자는 축복하실 것이다(32-35)
32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앞에서 말한 그런 자들을 왜 따라가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밝힌 것이 32-35절에 나온다. 이처럼 성공한 포악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여러 가지 말로 지혜로운 사람과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32절의 “패역한 자”이다.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운 일을 하는 자이다. 레위기 18:22절의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운 사람이다. 신명기 12:31절은 자녀를 불살라 이방신에게 제사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운 사람이다. 신명기 14:3-8절에서는 부정한 동물을 먹는 사람이 역겨운 사람이다. 그 밖에도 이방신전에서 예배 중에 성행위하는 것도 역시 역겨운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은 다 자신의 탐욕을 따라 더러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이다.
나는 이런 일 하나도 하지 않는다고 안심하지 말라. 오늘날은 우상숭배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운 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누구든지 자신의 탐욕을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운 우상숭배자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웃을 돌보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물질을 숭배하며 사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 보시기에 토할 것 같은 역겨운 사람들이다.
이와 비교되는 사람은 “바른 길을 걷는 사람” 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경건한 태도로 바로 서 있는 사람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과는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다는 것이다.
둘째는 33절의 “악인”이다. 악인이란 32절의 패역한 사람보다 더 악한 사람이다. 패역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토할 것같이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유죄판결을 내린 저주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와 비교되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 이다. 의로운 사람이란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인 것이다.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라고 했다. 여호와의 저주는 멸망할 자를 구원하지 않고 내버려 두시는 것이다. 하지만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라고 했다. 원어에서는 악인의 집과 의인의 집이 서로 다른 말이다. 악인의 집 이란 말에서 집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세운 건물이다. 하지만 의인의 집에서 집이란 말은 양떼들이 머물러서 풀을 뜯는 초장을 뜻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보호해 주는 곳이다. 악인들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보호막 안에서 살고 저주를 받아 멸망하지만 의인들은 하나님 지으신 푸른 초장에서 목자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복된 삶을 산다는 것이다.
셋째는 34절의 “거만한 자”이다. 거만한 자는 패역한 자보다도 악인보다도 더 고단수의 악인이다. 앞에서는 단수였는데 거만한 자는 갑자기 복수로 말한다. 이제 가장 악한 자들 모두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거만한 자가 최고의 악인인 이유는 이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을 깔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들도 깔보고 억압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33절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악인들보다 몇 수 위인 최고수 악인이다. 왜냐하면 악인들은 하나님의 유죄판결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을 깔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에 서서 하나님을 조롱하고 깔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되는 사람들은 겸손한 사람들이다. 하나님 앞에 낮게 엎드려 하나님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깔보는 자들을 깔보신다 하지만 겸손히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은혜를 주신다는 말은 불쌍히 여기시고 선물을 주신다는 뜻이다.
35절에서는 앞에서 말한 내용의 결론을 내린다. 지혜로운 자란 앞에서 나온 정직한 자, 의인, 겸손한 자이고 미련한 사람이란 패역한 사람, 악인, 거만한 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영광을 가업으로 물려 받는다 했다. 가업으로 물려 받는다는 말은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신다는 뜻이다. 자녀는 아버지가 소유한 영광도 물려 받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지혜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영광을 물려받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미련한 사람들은 수치를 당한다 했다. 수치를 당한다는 말은 높은 곳에 전시된다는 뜻이다. 마치 벌거벗겨진 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올려놓은 모습과도 같은 것이다. 예수께서 벌거벗으신 채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우리가 당할 수치를 대신 당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영광의 자리에 드셨다. 하지만 미련한 사람들은 영원히 수치를 당하는 자리에 전시될 것이다. 이는 전쟁에서 패한 포로들의 자리이고 반역에 실패한 역도들의 우두머리들의 자리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영원히 앉게 되지만 미련한 사람들은 벌거벗겨진 채 조롱 당하는 자리에 영원히 있게 되는 것이다.
결론 및 적용
하나님의 지혜를 사랑하여 그 가슴에 품은 자는 그 지혜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 한다. 오늘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은 물질을 나누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물질의 청지기 라는 것이다. 물질은 절대로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비유가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이다. 그 중 마가복음 12:1-12절에 보면 포도원 주인은 관리를 맡은 소작인들에게 소출을 받아오라고 한다. 그러나 악한 소작인들은 주인이 보낸 사람들을 때리고 죽이고 마지막에는 상속자 아들까지 죽였다 라고 했다. 그 뒤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을 모두 진멸하고 다른 사람에게 포도원을 맡긴다 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주인행세 하려고 하다가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마지막엔 예수님도 죽였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지혜를 사랑하여 가슴에 품었다면 우리도 주인행세 하면 안된다. 우리는 우리가 맡은 물질의 청지기일 뿐이다. 우리가 맡은 하나님의 물질을 가지고 우리의 탐욕을 채우는데만 사용하는 것은 더러운 우상숭배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운 일이다.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영원한 지옥에 던지실 것이다.
최고단수의 악인인 거만한 자들은 오늘날 하나님이 없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고 조롱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세상을 주름잡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물질로 왠만한 나라도 사들일 만큼 성공한 사람들이다. 또 최고의 지식과 명예를 얻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보다 더 성공했다며 하나님을 짓밟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짓밟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짓밟고 조롱거리로 만드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이제 제발 그런 사람들을 성공의 모델로 삼지 말라.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자녀들도 그렇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교회에 충성하여 그런 사람들처럼 복 받는 자들 되라고 강단에서 부추기지 말라. 그들은 모두 멸망할 존재들일 뿐이다.
하나님을 을 조롱하며 자신을 높이고 겸손한 자들을 짓밟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조롱거리로 만드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맡기신 그 일을 바르게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을 낮추며 겸손히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항상 지켜주시고 높이셔서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게 하실 것이다.
사진출처: free image from flickr, Darron Birgenheier, Willie and son and dog, running an antique plow behind an antique Case tra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