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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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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erbs

잠언 3:13-26

3:1절에서는 가르침을 잊지 말고 계명을 마음에 잘 간직하라 했다.

2017. 5. 29. · 안정섭 목사 · 페이스북 원문 · 잠언 3장 강해 설교

3:1절에서는 가르침을 잊지 말고 계명을 마음에 잘 간직하라 했다. 이제 그 지혜의 가치를 알려주며 잘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지혜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이 지혜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이러한 지혜가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가르쳐 준다.

1. 아담에게 지혜의 가치(13-18)

원어에서 13절은 복이 있다는 말로 시작하고 이 부분의 끝부분인 18절 마지막 단어도 복이 있다는 말로 끝이 난다. 그 안쪽에는 지혜가 가장 귀하고 값진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지혜는 부와 명예와 함께 오래 살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생물학적으로 오래 산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를 간직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오래 오래 산다는 뜻이다.

지혜를 찾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 했다. 사람이란 히브리어로 아담이다. 잠언의 기록자는 창세기의 아담과 연결해서 전달하고 있다고 본다. 첫 아담을 반면교사 삼아서 현재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사는 다른 아담은 장래에 놀라운 복이 있다는 것이다. 지혜를 찾는다는 말에서 찾는다는 말은 아주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찾아 나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온 마음 다하고 온 힘 다해 찾아 나서는 사람이 발견한다는 것이다. 발견한다는 것은 소유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발견한 명철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갖고 다니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것이다. 명철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하!’ 하는데서 멈추면 안된다. 항상 그 말씀을 갖고 다니면서 살아야 한다.

14절은 왜냐하면 이란 말로 이어진다. 지혜를 얻는 것을 은을 얻는 것과 비교했다. 은을 얻는다는 말에서 얻는다는 말은 상인이 돌아다니며 거래를 한다는 뜻이다. 또 이와 대조되는 정금을 얻는 것이란 말에서 얻는다는 말은 본래 온다는 말에서 생겨난 것이다. 위대한 용사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황금을 가지고 오는 것을 상상하게 하는 말이다. 상인이 은을 싸게 산 것보다 승리한 용사가 황금을 가지고 오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바로 지혜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귀한 지혜는 15절에서 진주보다 더 값지다 했다. 또 네가 갖고 싶어하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했다. 갖고 싶어하는 것이란 금이나 은이나 모든 종류의 보석들을 다 포함하는 말이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지혜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16절은 귀금속과 비교할 수 없는 귀한 지혜가 주는 이익들을 말하고 있다.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다 했다. 그러나 고통 가운데서 오래 사는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이기에 그 왼손에는 부귀영화가 있다고 했다. 장수가 오른 손에 있는 것은 장수가 훨씬 더 좋은 복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복은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오래 사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왼손은 오른손보다 좋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른손은 음식을 먹는 손이지만 왼손은 화장실 가서 쓰는 손이다. 따라서 왼손에 있는 부귀는 하나님과 오래 동행하는 것만 못한 복이다. 부귀는 원어에서 부와 명예라는 뜻이다. 부는 재물이 많은 것이고 명예는 재물이 많음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는 것이다. 부와 명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간직하고 따라 살면 저절로 부자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오랫동안 복된 교제를 나누며 오래 살 때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지혜가 없이 장수와 부와 명예를 누린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가장 소중한 것은 도둑맞은 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간직한 자는 오른 손에는 장수를 왼손에는 부와 명예를 들고 서 있던 사람은 이제 17절에서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라고 했다. 이는 맛이 아주 달콤하면서도 몸을 치료하는 약과도 같은 길이다. 또 “그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라는 말에서 지름길로 번역된 말은 원어에서 “그녀의 모든 길” 이다. 지혜의 모든 길이란 뜻이기에 지혜를 간직한 채 가는 모든 길이란 뜻이다. 지혜를 간직한 채 가는 모든 길에는 평강이 있다는 것이다.

18절은 지혜는 그것을 얻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나무 라고 했다. 17절에서 치료하는 약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나무는 영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생명나무는 창세기 2장에서 에덴 동산에 있던 나무와 연결되는 말씀이다. 13절에서 아담이라고 한 말도 바로 이 생명나무와 연결하기 위해 한 말이다. 생명나무를 붙든다는 말은 끌어 안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여인으로 비유하고 있기에 사랑스러운 여인을 끌어안듯 그렇게 생명나무를 끌어안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이다. 17절과 연결해 보면 이 여인을 끌어 안는 것은 달콤하면서도 치유가 되는 것이다. 이 여인을 끌어 안고 있으면 평화가 흘러 넘치는 것이다. 그 여인을 끌어 안는 것은 또한 영생을 얻는 길이라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지혜와는 상관없이 영생을 얻으려 했다. 그래서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러나 잠언의 기록자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생명나무를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잠언의 기록자는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그 생명의 나무라는 것이다. 그 지혜를 얻는 사람이란 지혜를 점점 더 단단히 붙잡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은 깊이 알면 알수록 점점 더 단단히 끌어안는 것이다. 지혜를 얻은 자란 달콤하면서도 평안을 주는 여인을 단단히 끌어안고 절대로 놓치지 않는 그림이다. 그렇게 되는 것이 복이 있는 사람이 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2. 주님에게 지혜의 가치(19-20)

앞에서 잠언 기록자는 창세기의 아담과 창세기의 생명나무의 그림으로 지혜를 잘 붙잡아야 복이 있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이제 잠언 기록자는 그 지혜를 창세기의 창조의 하나님과 연결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 지혜로 땅의 기초를 놓으셨다는 것이다. 그 명철로 하늘을 펼쳐 놓으셨다는 것이다. 이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역사를 가리킨다.

또 20절에서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라고 했다. 깊은 바다로 번역된 말은 원어에서는 단순히 깊다는 뜻이다. 이는 땅속 깊은 암반층을 갈라지게 해서 창세 때부터 그 아래에 있던 깊은 물줄기를 터뜨렸다는 뜻이다. 광야를 헤멜 때 메마른 사막의 바위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신 것도 깊은 곳의 바위를 갈라지게 하셔서 사막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신 것이다. 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구름에서 비도 내리게 하시는 분이시다. 이는 창조하신 세상을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간직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바로 그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그 창조하신 세상을 운행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이처럼 귀하고도 놀라운 것이라는 뜻이다.

3. 아들에게 지혜의 가치(21-26)

아담에게 지혜란 어떤 것인지 또 하나님께는 지혜란 어떤 것인지 말한 것은 아들에게 당부하기 위해서다. 이제 21절에서 “내 아들아” 라고 부르며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라고 당부한다. 이는 13절에서 열심히 찾아 간직한 지혜와 명철(분별력)을 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지켜보라는 것이다. 원래 지혜는 말로 전해준 것을 귀로 들은 것이었다. 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말로 들은 그 지혜가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찾아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한번 찾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지혜가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고 했다. 이는 귀로 들은 지혜의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찾아서 늘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을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로 가르친 부모가 먼저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지혜를 말로 가르친 스승들이 또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지혜와 지식을 귀로 들을 뿐 아니라 늘 사람들에게서 눈으로 확인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것이 너의 시야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는 말의 뜻이다.

그렇게 늘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살다 보면 자신도 그런 욕망이 불일 듯 일어나기 마련이다. 22절에서는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라고 했다. 원어에서 영혼이란 말은 본래 숨쉬는 모든 생명체가 가진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욕망을 뜻하는 말이다. 굶주릴 때 그 목구멍에 음식을 집어 넣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영혼이란 말은 갈망한다는 말과 종종 함께 쓰인다. 귀로 지혜의 말씀을 듣고 눈으로 그러한 본보기를 늘 바라보고 산다면 그 다음에는 욕망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든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찾듯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존재가 되게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간절히 찾는다면 하나님에 굶주려 죽어가던 영혼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인해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뜻이다.

또 “네 목의 장식이 되리니” 라는 말은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라는 말고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 영혼이란 말은 욕망이란 뜻이고 그 욕망은 목구멍에 있다. 그러한 목구멍을 감싸고 있는 바깥 부분이 바로 목이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볼 수 있게 우리의 목에 항상 하나님의 지혜를 걸고 다니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아들은 또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보여주어 사람들의 눈 앞에서 그 지혜가 떠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식물들을 목에 걸었다면 이제 걸어가야 할 차례이다. 이제 모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 위를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23절은 그래서 “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라고 했다. 이는 그 걸어가는 길이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고 따라가는 사람들의 무대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라고 했다. 걸림돌이나 덫 같은 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끝까지 안전하게 잘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귀로 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이 아들에게서 보게 한다는 뜻이다.

길을 걸어가며 여행을 하다 보면 잠을 자야 한다. 이스라엘 주변은 사막길이다. 사막의 어느 바위 밑에서 잠을 자게 된다면 절대로 편안히 잘 수가 없다. 사나운 짐승들도 있고 강도들의 위험도 있다. 그래서 자는 둥 마는 둥 경계를 하며 잘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는 사람은 그러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눕기만 하면 곧 단잠을 잔다 했다. 이는 어떤 실제적인 위험도 없을 뿐 아니라 무서운 악몽도 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은 걸어갈 때만 지켜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을 잘 때도 지켜 주신다는 것이다.

물론 이처럼 걸어가는 것이나 잠을 자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 길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안전하게 지켜 주신다 했다. 하지만 25절에서는 두려운 모습이 나온다. 갑작스럽게 닥치는 두려운 일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갑자기 닥치는 두려움이란 소식을 듣거나 보고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듣거나 보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악한 사람들에게 닥치는 멸망을 보고 무서워하지 말라 했다. 이는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서 있는 모습으로 상상해 볼 수 있겠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심판 날에 양과 염소를 따로 세운다 했다. 예수님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앞에 있던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을 보더라도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원어에서 26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왜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가 하면이란 뜻이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네가 의지할 분이 되시기 때문이다. “의지할 이” 라는 말은 옆구리에서 허벅지 사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부분은 아무런 보호막이 없는 치명적인 급소이다. 우리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다가 옆구리나 허벅지를 만지면 기겁을 하고 놀라 날 물으려 한다. 아무런 보호막이 없는 급소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방어하려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너의 몸의 아랫배 부분이 되어주신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너의 약한 부분을 지켜 주신다는 뜻이다. 또 너의 발이 덫에 걸리지 않게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여호와께서 약한 부분을 막아주실 뿐 아니라 걸려 넘어지거나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론 및 적용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노력을 다해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어떤 값진 보화보다 더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함께 사는 삶은 가장 귀하고 복된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삶이 고통스러운 삶은 아니다. 달콤하고 즐거우면서도 우리의 아픔이 치유가 되는 길이다. 그러한 지혜를 찾았다면 단단히 붙들고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혜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는가? 이는 사람을 통해서 찾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들려 줄 뿐 아니라 보여주어야 한다. 성도들은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들려줄 뿐 아니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보고 지혜를 찾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완벽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간절히 찾으라고 할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서 결점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행하는 모습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얼마만큼 간절하게 찾아야 하는가? 사막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 목이 말라 혀가 갈라지도록 목이 마를 때처럼 찾아 나서야 한다. 이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지혜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전하는 자들에게서 그렇게도 간절히 찾아야 한다. 찾았다면 물 없이 하루를 사막 길에서 헤메이다가 물을 찾고는 그 물을 들이키듯 해야 한다. 그렇게 그 지혜를 우리 목구멍에 쑤셔 넣어 삼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걸어가야 한다. 우리가 바로 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어떠한 위험에서도 보호해 주신다. 우리의 옆구리가 되어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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