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1장에서는 의인과 악인이 비교되었다. 의인은 재난에서 구출되지만 악인은 재난 속으로 더 깊이 빠져 들어가 멸망한다 했다. 의인의 말과 행동과 물질 사용을 통해 공동체를 튼튼하게 세운다 했지만 악인은 말과 행동과 물질 사용으로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했다. 또 명예를 얻은 덕있는 여자와 자신 만을 위해 치장하는 돼지 똥맛 같은 여자가 비교되었다. 자신의 재산으로 씨를 뿌려 풍성하게 거두는 의인은 생명나무가 되지만 자신만을 위해 저장해 두는 악인은 말라죽어 바람에 다 날아가고 바람만 그 자리에 남는다 했다. 12장에서도 역시 의인과 악인이 비교된다.
I. 착한 아들과 못된 아들의 비교(1-3절)
1절은 아버지의 훈계를 사랑하는 청소년 아들과 거절하고 돌아서는 못된 청소년 아들이 비교된다. 아버지의 훈계를 사랑하는 아들은 지식도 사랑한다. 지식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고 훈계는 행동으로 옮기도록 반복해서 훈련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지혜를 따라 행하도록 반복해서 훈련시키는 것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아들은 결국 하나님 말씀의 지식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아버지의 징계를 싫어하는 아들은 미련한 아들이다. 징계라는 말은 훈계를 따르지 않고 악한 일을 할 때 훈계 대신 책망을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책망을 미워하고 돌아서는 아들은 정말 짐승 같은 것이다. 짐승같다는 말은 본래 낙타나 다른 가축을 가리키는 말이다. 짐승처럼 우둔하다는 것이다.
2절은 1절과 연결이 된다. 아버지의 훈계를 사랑하고 지식을 사랑하는 아들은 2절의 선한 사람이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받는다 했다. 은총이란 하나님의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 된다는 뜻이다. 훈계를 듣고 잘 따르면 아버지가 기뻐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도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망 받기를 거절하는 아들은 악을 꾀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정죄를 받는다 했다. 정죄를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는다는 뜻이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 기뻐 받으시지만 악한 사람은 유죄판결을 받고 멸망한다는 것이다.
3절에서도 악인과 의인이 비교가 된다. “사람은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라고 했다. 굳게 선다는 말을 건축물의 그림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이는 11:28-29절의 나무 심는 그림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악인은 뿌리를 굳게 내리지 못하기에 굳게 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의인의 뿌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11:28절에서 의인은 푸른 나뭇잎처럼 번성한다 했다. 물 없는 사막에서 물가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게 튼튼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뿌리를 내리는 곳은 12:1절에 나온 아버지의 훈계이고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에 뿌리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악인이고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사람이 의인인 것이다. 의인은 말씀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II. 어진 아내와 욕을 끼치는 아내의 가정 비교(4-7)
못된 아들과 착한 아들을 비교한 뒤 이제 4절은 그런 아들의 어미들을 비교한다. 뿐만 아니라 5-7절은 그 남편들도 비교한다. 따라서 아들 아내 남편의 순서로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어진 아내란 말에서 어질다는 말은 본래 남자의 다리나 말의 다리가 강하다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군대에 쓰이면 강한 군대라는 뜻이 된다. 잠언 31:3절에서는 남자의 성적인 능력을 뜻하는 말로도 쓰였다. 여자에게 쓰일 경우는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강하고 고상한 성품을 지녔다는 뜻이다.
이 여인은 앞에서 계속 쓰인 지혜를 가리키는 비유가 아니라 진짜 여인이다. 아내가 가정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영적으로 굳게 서서 고상한 성품을 보인다면 그 남편 머리에 면류관이 된다는 것이다. 아내로 인해 남편은 왕관을 쓴 것처럼 그 이웃들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아내가 말씀 위에 뿌리를 내리고 바로 서면 남편도 경건하게 말씀대로 살며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람들을 사랑해서 이웃들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어진 아내의 반대말은 욕을 끼치는 아내이다. 욕을 끼친다는 말은 수치를 안겨준다는 뜻이다. 2:17절에 나오는 젊은 시절 짝을 버린 여인과도 같은 여자이다. 잠언 19:13절에 나오는 다투기를 잘하는 아내이다. 따라서 욕을 끼치는 아내는 하나님의 지혜로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과 혈기를 따라 행동하는 여자이다. 어진 아내는 남편을 높이 보이도록 드러내지만 반대로 욕을 끼치는 아내는 남편의 뼛속을 썩게 한다 했다. 아내는 본래 남편의 갈비뼈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내가 썩으면 남편의 뼈도 썩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남편의 뼈가 썩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가 천천히 죽어갈 뿐이다.
하나님 말씀을 모르고 자기 뜻과 혈기대로 살았던 적이 있다면 이 말씀의 뜻을 잘 알 것이다. 자기 멋대로 분노하고 마음대로 행동해서 남편을 서서히 죽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고 있다면 남편들을 기쁘게 하고 남편들도 하나님을 닮아 왕관을 씌워주게 되는 것이다. 만약 지금도 혈기대로 살아서 남편을 계속 분노하고 남편들에게 욕과 저주를 퍼붓고 있다면 그 남편들은 지금 뼛속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5절은 4절에 나온 두 종류의 아내들의 남편들을 비교한 것이다. 어진 아내의 남편은 의인이다.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라고 했다. 정직하다는 말은 공정한 재판을 한다는 뜻이다. 의인은 언제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할까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왕관을 쓴 것처럼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욕을 끼치는 아내의 남편인 악인의 생각 속에는 항상 공정한 재판의 반대인 속임수 뿐이다.
5절에서는 의인-악인의 순서로 생각을 비교했다면 6절에서는 악인-의인의 순서로 말을 비교한다. 역시 5절과 연결이 된다. 5절에서 생각 속에 속임수 뿐인 악인의 말은 6절에서는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이다. 피 흘릴 음모가 담긴 말은 직접적으로는 법정에서 거짓 증언하여 누명을 쓰고 죽게 하는 것이다. 간접적으로는 거짓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속여 멸망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라고 했다. 5절에서 공정한 재판을 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의인은 6절에서는 말로 사람들을 구해낸다는 것이다. 구원한다는 말의 직접적인 의미는 법정에서 진실된 증언을 해서 누명을 벗겨주는 것이다. 또 간접적으로는 진실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5절에서는 생각을 비교했고 6절에서는 말을 비교했다면 7절은 그 생각과 말의 결과를 비교한다. 7절에서 “악인은 엎드려져서 소멸되려니와” 라고 했다. 엎드려진다는 말은 3절의 나무의 그림언어가 계속되는 것이다. 악인은 뿌리 채 뽑혀 뿌리가 하늘을 향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뜨거운 사막의 햇빛과 바람에 의해 완전히 말라버린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부서지고 흩어져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의인의 집은 깊이 뿌리를 내리고 든든히 서 있는 나무와 같이 튼튼한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앞에서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의 그림이 점점 희미해지고 대신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의 그림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III. 의인과 악인의 열매 비교(8-12)
4절에서 어진 아내의 남편이 존경을 받는다 했는데 이제 8절에서는 그 남편이 칭찬 받는 모습이 나온다.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라고 했는데 원어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입이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뜻이다. 정직한 말로 죽을 사람을 살려 냈기에 그 살아난 사람은 자신의 은인의 입에 대해 칭찬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라고 했다.
마음이 굽었다는 말은 심장이 쭈그러들었다는 뜻이다. 히브리 사람들은 심장에 지식과 지혜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은 심장이 쭈그러들어서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갈 자리가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1절에 나온 대로 짐승 같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심장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없기에 자신의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함부로 쏟아놓아 말로 남을 해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칭찬과 멸시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9절은 칭찬 받으려고 과시하는 허세를 지적한다. “비천히 여김을 받을 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 란 사람들에게 물질로 베풀지 못해서 무시당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종이 있다. 종이 있다면 종이 자신을 돕거나 자신을 대신해서 일해서 먹을 것을 마련해 줄 수 있다. 따라서 종이 있는 사람은 먹고 살만은 하기에 스스로 높은 체 하면서도 먹을 빵이 없는 사람보다 낫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높은 체 하는 사람은 존경을 받기 위해 이웃들에게 빵을 다 나누어 준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 먹을 빵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헛된 명예를 얻으려고 허세를 부린 사람을 말한다. 칭찬과 멸시는 정직한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살릴 때 얻는 것이지 절대로 물질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9절에 나온 진짜 진실한 행동과 거짓된 행동이 10절에서도 비교가 된다. 먼저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라고 했다. 집짐승의 생명도 돌보아 준다는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종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라고 했다. 악인이 베푸는 자비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시장에서 거리에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는 돈과 음식을 나누어 준다. 그러나 정작 자기 집에 있는 종과 가축들에 대해서는 잔인할 만큼 적게 주어 이익을 늘리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대기업 회장이 불우이웃 돕기에는 거액을 내놓아 언론을 통해 드러내지만 정작 그 하도급 업체들에게는 잔인하리만큼 싸게 후려쳐서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의인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진실한 마음으로 대해서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다.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도 이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기 위해 행동할 뿐이다. 교회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나는 곳에는 돈을 잘 쓰지만 이름이 나지 않으면 불쌍한 이웃도 무시하는 사람이 바로 이러한 사람이다.
11절은 10절과는 상관없이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과 헛된 꿈을 쫓는 사람을 비교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0절과 계속 연결되는 말이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라고 했다. 자기의 밭을 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칭찬이 없어도 자기 할 일을 성실히 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밭을 가는 지혜로운 사람도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좋은 평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성실하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밭인 의로운 일을 부지런히 행할 뿐이다.
하지만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라고 했다. 헛된 것을 꿈꾸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기 위해 돈을 쓰기도 하지만 이런 사람은 지혜가 없다고 했다. 심장이 없다 즉 뇌가 없다는 뜻이다. 10:13절에서는 지혜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10:13절에서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채찍이 그 등에 떨어진다 했다. 그래서 자신을 스스로 해치기에 심장 즉 뇌가 없는 사람이다.
12절은 “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라고 했다. 이익이란 말은 요새라는 뜻도 된다. 따라서 악인은 악한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할 요새를 쌓는 것이다. 앞에서 나온 것처럼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 위해 사람들 보는데서 선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으로 자신을 보호할 요새를 쌓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의한 요새이다.
그러나 이와 비교되는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라고 했다. 의인은 사람들의 칭찬을 생각하지 않고 거짓이 없는 진실한 선행으로 그 뿌리가 깊이 내려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3절과 7절처럼 건축물의 비유와 식물의 비유가 섞여있는 것이다. 열매 없는 건축물인 요새와 수많은 열매를 맺은 나무를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IV. 의인과 악인의 말과 행동 비교(13-14)
13 절은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라고 했다. 무고한 사람을 덫을 놓아 해치는 악인들이 거꾸로 자신들이 놓은 입술의 그물에 자신들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물에 걸린다는 말은 덫에 걸린다는 말이다. 덫이란 상어나 물고기들 입처럼 윗부분과 아랫부분으로 되어 있다. 아랫부분은 고정이 되어 있고 윗부분이 움직인다. 그 안에 사냥감이 들어오면 윗부분이 내려와 갇히게 된다. 이 덫은 악인의 입을 형상화한 것이다. 악인은 자신의 입술의 덫으로 의인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실수로 자신들이 걸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로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라고 했다. 의인들은 그러한 곳에 갇히더라도 벗어나게 하신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악인이 대신 걸렸기 때문이다.
14절은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라고 했다. 이는 환난에서 벗어난 의인의 모습이다. 12절에서 결실한다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주어 열매를 많이 맺은 것이다. 자신의 말의 열매들을 배불리 먹고 만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말한 것을 다시 분명하게 설명한 것이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라는 말이다. 의인이 말로 사람들에게 많은 결실을 맺게 했는데 그 열매들이 자신에게 되돌아와서 자신이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의인은 말로만 지혜를 가르친 것이 아니다. 그 행동으로도 가르친 것이다. 말과 동시에 그 행함으로 가르쳐 열매를 맺은 것을 다시 돌려 받는다는 것이다.
결론 및 적용
오늘 말씀에서 비교되는 순서는 아들, 아내, 남편이다. 결국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가정에서 가르치는 말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 중심은 아버지일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아내이다. 잠언 1:6절을 보아도 “어미의 법” 이라 했다. 법이란 모세 오경을 가리키는 토라이다.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결혼한 경우 아비가 이방인이고 어미가 유대인이면 그 자녀도 유대인 취급을 하지만 아비가 유대인이고 어미가 이방인인 경우에는 이방인 취급을 한다.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어미의 역할이다. 아비는 그 말씀대로 지키도록 반복해서 훈계하고 듣지 않으면 벌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어미가 남편에게는 아내가 된다. 아내는 남편에게 면류관을 씌워주기도 하고 뼈를 썩게도 한다. 현명한 여인을 통해 그 자녀가 의인으로 자라고 남편도 의인으로 빛나게 된다. 즉 믿음의 교육은 가정에서 아내가 교관이라면 남편은 훈련조교인 셈이다. 그렇게 서로 협력하여 자녀를 말씀으로 키우고 남편을 세워주면 그 자녀들과 남편의 말과 행동으로 공동체를 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정이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가 되어 메마른 사막 같은 세상에서도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사진출처: Alfred Gilbert- Mother Teaching Child, from flicker by ketrin1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