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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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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erbs

잠언 11:1-31

잠언 10:17-32절에서 의인과 악인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간직하고 따라가느냐 아니면 듣는척만 하고 …

2017. 10. 17. · 안정섭 목사 · 페이스북 원문 · 잠언 11장 강해 설교

잠언 10:17-32절에서 의인과 악인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간직하고 따라가느냐 아니면 듣는척만 하고 잊어버리고는 자기 마음대로 가느냐에 있다고 했다. 그 구별법은 하나님 말씀 간직해야 할 자리에 미움을 간직하고 거짓말로 감추든 아니면 말로 드러내 해치든 하는 것은 다 악인이다. 의인은 마음 안에 간직한 하나님의 말씀만 가려서 말해서 양떼를 먹이는 목자가 되는 사람이다. 이제 11장은 정직함과 의로움으로 공동체를 살리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I. 의인과 악인의 운명(1-8)

1절은 속이는 저울과 정확한 추가 대조된다. 속이는 저울은 미워하셔도 정확한 저울 추는 주님께서 기뻐하신다 했다. 고대에 물건을 팔거나 사는 사람들은 무게를 확인하기 위해 저울 추를 갖고 다녔다. 그런데 부정직한 상인들은 두개의 저울 추를 사용했다. 물건을 살 때는 무거운 추를 사용하고 팔 때는 가벼운 추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렇게 속이는 저울을 사용해서 남을 속이는 사람은 미워하신다는 것이다. 미워하신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에바흐’ 인데 토할 것 같이 역겹고 부정한 제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기뻐하신다는 말은 정결한 제물을 받고 기뻐하시는 모습이다. 속이는 저울을 사용하는 사람은 가증한 제물과 같고 정직한 추를 사용하는 사람은 기뻐 받으시는 제물과 같다는 것이다.

2-3절은 교만과 사악한 자 라는 말이 샌드위치처럼 바깥쪽을 감싸고 있다. 그 안에는 겸손한 자와 정직한 자가 나온다. 앞에서 물건을 팔 때 사용하던 저울의 그림언어가 2-3절에도 나온다. 자신의 무게를 달 때 속이는 저울을 사용한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자신의 가치를 재는 데 부정직한 추를 사용해서 자신을 실제 무게보다 많이 나가는 것처럼 속이는 것이 교만인 것이다. 반대로 남의 가치를 잴 때는 가벼운 추를 사용해서 조금 나간다고 무시한다. 이것이 바로 교만이다. 이러한 교만한 사람의 뒤에는 욕이 따라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반대로 겸손한 사람에게는 지혜가 따라온다고 했다. 겸손한 사람이란 자신의 가치를 분명히 알고 사실대로 드러내는 사람이다. 자신의 실체를 사실대로 드러낸다면 누구나 다 자신의 가치가 낮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정직하게 평가해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가 따라 다닌다 했다. 3절은 지혜가 이러한 정직한 사람을 따라 다니며 어떻게 명예롭게 하는지를 말한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지혜가 따라 다니며 조언을 해 주는데 그 조언을 따라 사는 정직한 자의 성실한 삶이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자들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한다고 했다. 사기꾼들은 자기들의 속임수에 자신들이 망한다는 것이다.

4-5절도 재물과 악한 자란 말이 바깥쪽에 있고 그 안에는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 곧 완전한 자(흠 없는 사람)가 그 안쪽에 있다. 역시 강조점은 지혜로운 삶을 사는 흠 없는 사람이다. 4절은 재물은 진노의 날에 쓸모가 없다고 했다. 진노란 완전히 쓸어버리고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진노를 말한다. 그 날에는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 쓸모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진노의 날에도 공의는 사람들을 죽음에서 건져 낸다는 것이다. 건져 낸다는 말은 독수리가 낚아채듯 멸망에서 건져낸다는 것이다. 재물은 마지막 날에 아무 쓸모 없지만 지혜를 따라 의롭게 살아가는 삶은 사람들을 그 멸망에서 구출해 낸다는 뜻이다.

지혜를 따라 사는 공의로운 사람은 5절에서 완전한 자와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완전한 사람이란 율법적으로 흠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길을 곧게 한다고 했는데 좌우에서 유혹하는 음녀의 길로 빠지지 않고 지혜가 인도하는 길로 똑바로 간다는 뜻이다. 그 가는 길에 걸림돌이 없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악한 자는 자기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진다 했다. 똑바로 가지 못하고 길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는 뜻이다. 자신이 행한 악이 걸림돌이 되어 걸려 넘어지고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는 뜻이다.

5절에서 흠 없는 사람은 걸려 넘어지지 않고 똑바로 간다 했고 악인은 걸려 넘어져 떨어진다 했다. 이제 그 뒤의 이야기가 6절에 나온다. 완전한 자는 곧 정직한 자이다. 정직한 자의 공의는 걸려 넘어지지 않고 계속 똑바로 가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걸려 넘어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 사악한 자는 자신들의 욕심에 포로가 되어 그 멸망의 구덩이에 계속 갇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욕심이 자신들을 얽어 매고 있어서 빠져 나오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자신의 탐욕의 포로가 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6절 뒷부분의 악인의 운명이 7절에 계속 이어진다. 악인은 죽음과 함께 그 소망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불의의 소망도 없어진다 했다. 악인들은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있어도 죽음과 함께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 뜻이다. 8절도 의인과 악인의 운명이 비교된다. 의인들은 환난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악인들은 자기의 길을 간다 했다. 이는 그 환난 속으로 더 깊이 빠져 들어간다는 것이다. 희망도 힘도 사라졌기에 그 빠져있는 환난의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가는 것이다.

II. 공동체 안에서의 말과 행동(9-15)

9절은 악인과 의인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한 것이다. 악인은 그 입으로 이웃을 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악인의 입과 의인의 지식이 비교된다. 악인은 입으로 이웃을 해쳐서 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인은 지혜가 조언해 준 지식을 따라 살기에 말이 아니라 그 지식이 먼저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10절은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한다고 했다. 이렇게 자신을 구원한 의인의 지식으로 인해 그 도시 전체가 함께 기뻐한다는 것이다. 의인의 지식과 그 지식을 따라 사는 삶을 보고 그가 사는 공동체 전체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친다 했다. 악인이 망하게 되면 공동체 전체가 기뻐서 소리치면서 환호한다는 것이다.

11절은 성읍이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한다고 했다. 의인이 자신을 구원한 지식으로 공동체를 축복하면 도시 전체가 진흥한다는 것이다. 진흥한다는 말은 건물을 높이 세운다는 뜻이다. 반대로 악한 사람이 입을 열면 그 도시가 망한다 했는데 이는 건물이나 성벽이 무너져 내린다는 뜻이다.

의인은 자신이 경험하고 깨달은 하나님의 지혜로 사람들을 가르쳐서 신앙 공동체가 튼튼하게 세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도시 전체가 흥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악인은 그 말로 사람들을 해쳐서 신앙 공동체가 무너져 내리게 만드는 것이다. 악인은 말로 이간질하고 남에게 악한 말로 욕하고 남을 비방해서 교회를 떠나게 만들어 공동체가 서서히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믿음으로 굳게 세우는 의인과 공동체를 허물어뜨리는 악인의 삶을 건축물의 그림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12절은 그러한 악인을 지혜가 없는 사람 즉 심장이 없는 사람이라 부른다. 심장이 없는 사람은 그 이웃들을 멸시한다는 것이다. 심장은 있지만 쪼그라 붙어서 지혜가 들어갈 공간이 없는 것이다. 그 마음에 지혜가 없기에 남을 깔보고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1절에서 말한 속이는 저울이고 2절에서 말한 교만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웃을 비웃고 조롱하여 공동체를 떠나게 만들어 무너지게 한다는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나 이웃 친구들을 흉보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그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자신의 가족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신앙공동체를 허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러나 명철한 사람은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다. 명철한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말로 들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입을 다물고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공동체를 튼튼히 세워가는 비결이다.

13절에서 비교되는 것은 비밀을 드러내서 남을 해치는 사람과 비밀을 지켜주는 믿음직한 사람이 비교된다. 12절에서 이웃을 비웃는 심장 없는 사람을 13절에서는 험담하며 돌아 다니는 사람이라 했다. 이런 사람은 남의 비밀을 새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비밀이 있다. 친한 척하고 자기 비밀을 말하는 척해서 남의 비밀을 알아 낸 다음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까발리고 다니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 즉 뇌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이는 마치 남의 치마나 바지를 벗겨 대중 앞에서 하체를 드러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전쟁시 국가의 비밀을 누설하면 나라가 전쟁에서 패하고 망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감추고 싶은 개인의 비밀을 드러내면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남의 비밀을 노출시켜서 믿음에서 떠나게 한다면 연자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했다. 반대로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긴다 했다. 신실한 자란 11절에서 도시를 세우는 사람이다. 영적으로 이웃과 공동체를 든든히 세워주는 사람이다.

이제 14절은 행동으로 공동체를 망하게 하는 사람과 행동으로 공동체를 세워주는 사람이 비교된다. 먼저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한다 했다. 지략이란 지도자란 말로만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말은 그럴듯하게 앞세우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지도자가 없으면 그 공동체는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린다 했다.

개역개정은 둘 다 지략이라고 번역했지만 앞에 것은 지도력이란 뜻이고 뒤의 것은 조언자들이란 뜻이다. 새번역처럼 지도자와 참모들이라고 구별해서 번역해야 맞다. 조언자들이란 다윗을 도와서 조언을 해주던 나단 선지자와 같은 사람들의 그룹이다. 이들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백성들을 이끌고 가던 지도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백성들이 평안을 누린다는 것이다. 이는 적들이 쳐들어 오지 못하도록 안전하게 지켜 준다는 뜻이다.

15절은 물질을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하는 사람과 지혜롭게 사용하는 사람의 비교이다.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사람과 세우는 사람을 13절에서는 말로 비교했고 14절에서는 행동으로 비교했다. 이번에는 재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 이라는 말에서 타인이란 이방인을 가리킨다. 이방인들이란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다. 율법에 따르면 유대인 동포들에게는 돈을 꾸어주고 이자를 받지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굶주림으로 식량을 사기 위해 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려서 무역을 해서 큰 이익을 남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그들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한 것이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란 이자에 눈이 어두워 낮선 이방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싶지만 불확실해서 꺼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보증을 설 테니 꿔주라고 부추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탐욕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고통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평안하다고 했다. 공동체에 속한 형제가 이자에 욕심이 나서 돈을 꾸어 주려고 할 때 자신은 보증 안 선다며 꾸어주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형제가 돈을 잃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런 사람은 일확천금이나 불의한 재물을 얻으려 하는 사람을 권면해서 막는 사람이다. 따라서 15절은 물질을 사용하는데 있어 개인의 탐욕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도록 부추기는 사람과 물질을 헛되이 사용하지 말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이끌어 주는 사람이 비교되고 있다.

III. 덕 있는 여자와 돼지 같은 여자의 비교(16-22)

16절은 덕이 있는 여자가 존경을 얻는다 했고 22절은 그 반대의 여인이 멸시를 받는 모습이 나온다. 16-17절은 자비심과 이기심이 비교가 되고 18-21절은 정의에 서 있는 사람과 악인이 비교가 된다. 따라서 자비를 베풀며 정의에 굳게 서서 사는 사람은 생명에 이르지만 반대로 자기 이기심에 빠져 악을 행하는 사람은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16절은 유덕한 여자 한 사람이 명예를 얻는 것과 무자비한 남자들이 재물을 얻는 것이 비교된다. 개역개정에서 “근면한 남자”는 잘못 번역된 것이다. 히브리어의 “עריצימ” 이란 말은 두려움을 주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무자비하고 잔혹한 남자들이 이웃 부족들을 약탈하고 재물을 얻는 것을 말한다.

유덕한 여자란 내면이 아름다운 여인이다. 가족을 바로 세워서 공동체의 칭송을 받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여자라는 사실만 해도 연약한데 한 사람의 여자는 더 약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잘 양육하여 가정을 튼튼히 세우는 여인 한 사람이 공동체를 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근면한 남자란 유덕한 여자의 반대말이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온갖 부정을 다 저지르는 잔혹한 많은 남자들은 재물을 얻는다는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재물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은 명예를 얻는 것이다. 많은 돈을 나누어줘서라도 명예를 얻고자 했다. 잔혹한 폭력으로 돈을 얻은 자들은 돈이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 준다고 생각하지만 공동체로부터 멸시 당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헛된 안전이다.

17절은 인자한 남자는 자기의 생명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 인자한 남자는 16절의 유덕한 여자와 짝이 될 수 있는 남자이다. 이러한 남자는 공동체에게 한결 같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랑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한결 같은 사랑을 베풀어 자기를 살리는 셈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잔인한 사람은 자기의 몸을 해친다 했다. 인자함이 없이 남에게 잔혹하게 대하는 사람은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몸을 해치는 꼴이라는 것이다.

18절은 악인에게 돌아오는 삯은 헛된 것이지만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다고 했다. 악인은 자기 자신의 탐욕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 씨를 열심히 뿌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물질을 거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죽음과 멸망을 거둘 뿐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정의를 심는 사람은 참된 보상을 거둔다는 것이다.

잠언 22:8절에도 “악을 뿌리는 사람은 재앙을 거두고” 라고 했다. 마태복음 19:29절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소유를 버린 사람은 백배나 받고 영생을 받을 것이라 했다. 그러한 참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보상이 무엇인지 19절에서 밝힌다.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른다” 라고 했다. 지혜를 따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며 공동체를 살리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만 자기 탐욕을 채우는 사람은 완전히 멸망한다는 뜻이다.

20절은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라고 했다. 마음이 굽은 사람이란 비뚤어진 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심장은 있지만 비틀리고 쭈그러들어서 그 안에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갈 공간이 없는 사람이다. 미움을 받는다는 말은 11:1절의 미워하신다는 말과 같은 말로 가증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말 더럽고 가증해서 토할 것 같이 싫어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나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입느니라” 라고 했다. “행위가 온전한 자” 는 흠 없는 길이란 뜻이다. 그 심장에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있어 지혜가 인도하는 길을 똑바로 따라 걷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흠 없는 제물처럼 기뻐 받으신다는 것이다. 21절은 이상하게도 악인과 의인을 비교하지 않고 악인과 의인의 자손을 비교한다. 왜냐하면 악인은 멸망할 것이기에 그 후손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인들은 후손들까지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바른 길을 걸어가면 우리 후손들도 반드시 구해 주신다는 것이다.

22절은 이 부분을 마무리하는 부분이다.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않는 것은 돼지 코에 금고리와 같으니라” 라고 했다. 원어는 돼지 코에 금고리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고대 중동의 여자들은 코에 금고리를 걸었다. 창세기 24:22절에서 엘리에셀이 리브가에게 금 코걸이를 주었다고 했다. 금 코걸이는 부의 상징이다.

그런데 돼지는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부정한 짐승이다. 이방인들이 제물로 쓰는 부정한 것이다. 돼지코에 금고리를 달고 아무리 장식을 해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부정한 제물이라는 것이다. 삼가지 아니한다는 것은 맛이 정해진 코스를 벗어난다는 뜻이다.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도 똥 묻은 돼지 같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자녀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잘 키워서 가정을 세우고 공동체를 세우는 여자와 자신의 탐욕을 따라 코에 금고리를 걸고 살아가는 돼지 같은 여자를 비교한 것이다. 외모로 보면 아름답고 귀부인 같은 여인이지만 그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과 그 행동이 돼지 같다는 것이다. 자신의 탐욕만 채우며 자기 자녀들도 그렇게 탐욕으로 키우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에서 자신의 탐욕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바로 코에 금고리를 걸은 돼지 같은 여인인 것이다.

IV. 의인이 바라는 것과 악인이 기대하는 것(23-31)

23절은 “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라고 했다. 이는 자신을 통해서 공동체에게 좋은 일만 생기도록 바라는 것이다. 악이 전혀 섞이지 않은 온전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것이 좋다는 말의 뜻이다. 반대로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라고 했다. 저들은 남을 내던져서 자신의 번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들의 기대는 오직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올 뿐이라는 것이다.

24절도 씨뿌리는 비유로 되어 있다. “흩어 구제하여도” 라는 말은 씨앗을 흩어 뿌리듯 재물을 흩어서 나누어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더욱 부유해 진다는 것은 뿌린 것이 점점 자라서 큰 수확을 거두기 때문이다. 불쌍한 이웃을 사랑해서 나누어 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지 돈 놓고 돈 먹기 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웃을 위해 마땅히 쓸 것까지 과도히 아끼는 사람은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25절은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라고 했다. 원어에서 구제한다는 말은 축복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곡식을 나누어 주면 부유해 진다는 뜻인 것이다. 또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 지리라” 라고 했다. 원어는 아주 쉬운 말인데 개역개정은 왜 이렇게 말도 안되게 번역했는지 알 수가 없다. 원어는 목마른 사람들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은 더 많은 물로 흠뻑 젖는다는 뜻이다. 개역개정은 원어를 뭉개어 추상적인 말로 의역을 했는데 원어에 담긴 그림언어를 지워버리는 정말 어리석은 실수를 했다. 고대인들의 중요한 전달 방식인 그림언어를 삭제하면 그 의미도 역시 삭제된다.

26절은 “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라고 했다. 이는 곡식 값이 오르길 기다리며 저장해 두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사람들 곡식이 떨어져 어디에도 살 곳이 없을 때 높은 값으로 팔려는 투기꾼들을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백성들에게 저주를 받는다 했다. 반대로 그것을 내어 파는 사람은 복이 돌아온다 했는데 요셉이 이집트에서 기근 때에 곡식을 팔았던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굶주리는 사람에게 값을 올리지 않고 내어 파는 바보 같은 사람은 복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27절은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라고 했다. 좋은 일을 애써 찾으면 은총을 받는다 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들이 없는지 부지런히 찾고 발견하면 돕는 사람은 은총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 된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라고 했다. 나쁜 일만 애써 찾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28-30절은 이익과 손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28절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라고 했다. 이는 자기 재산만 믿는 사람은 가을 바람에 쏟아지는 낙엽처럼 떨어진다는 뜻이다. 공동체에서 이웃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데 실패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낙엽처럼 떨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라고 했다. 의인은 나뭇가지에 새 순이 돋아 왕성하게 자라듯 축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29절은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했다. 자기 집이란 건물이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가족과 친척들을 돕지 않는 사람은 결국 바람만 남고 아무것도 없게 된다는 뜻이다. 바람은 모든 것을 다 말라죽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의 종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역시 사막에서 잎이 계속 떨어지다가 완전히 말라 죽고 아무것도 안 남는 그림이다.

30절은 의인이 받는 열매는 생명나무라 했다. 악인들과는 달리 의인들은 잎사귀만 푸르고 싱싱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열매를 공급하는 나무가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지혜로운 자는 사람들을 얻는다 했다.

31절은 의인이 이 땅에서도 이렇게 한대로 보상을 받는데 악인과 죄인이 그 값을 치르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들에게 분명하게 보상해 주신다는 것이다.

결론 및 적용

속이는 저울 추와 공평한 저울 추의 그림으로 시작한 11장은 말라죽어 바람에 흩어져 먼지가 된 나무와 푸른 잎사귀에 열매를 많이 맺은 나무의 그림으로 끝이 났다. 속이는 저울 추를 사용하는 악인들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제물들이다. 이들은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것 같지만 결국 사막에서 바람에 날아 흩어지는 먼지와 같이 된다는 것이다. 금고리를 코에 걸은 돼지들과 같아서 하나님 앞에 가증한 제물들이다. 반대로 의인들은 푸른 나무처럼 자신이 번성할 뿐 아니라 그 열매를 나누어 주어 공동체를 살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말과 재물의 사용을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 말과 재물을 이웃을 살리는 일에 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이 열매 맺는 의인들이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말로 이웃을 해치며 물질로 자기 배만 채워 이웃들을 죽도록 방치하는 자들은 사막의 먼지가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가증하고 더러운 제물이 되는 것이다.

더럽고 가증한 제물들의 문제는 자신 뿐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모두 사막의 먼지로 만들고 이웃들도 사막의 먼지로 바람에 날아 다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명품으로 휘감고 명품을 타고 다니며 명품 안에서 살더라도 다 돼지들이다. 명품을 두르고 타고 그 안에서 사는 돼지들일 뿐이다. 모두 부정하여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더러운 돼지들이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사막의 먼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생명의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될 것인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가족과 공동체를 세우는 덕있는 여인이 될 것인가 코에 금고리를 걸은 암퇘지가 될 것인가.

그림은 10/17/2017 안정섭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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