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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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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erbs

잠언 10:17-32

앞부분에서는 지혜의 가르침을 받아 손으로 때를 따라 지혜롭게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2017. 9. 27. · 안정섭 목사 · 페이스북 원문 · 잠언 10장 강해 설교

앞부분에서는 지혜의 가르침을 받아 손으로 때를 따라 지혜롭게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일할 때 만나는 사람들과 지혜로운 말과 지혜로운 표정으로 의사소통해야 한다 했다. 그 지혜는 지혜가 가르쳐 준 지식을 차곡차곡 저장해 둔 것에서 나오는 것으로 해야 한다 했다. 그렇게 지혜롭게 일하며 지혜롭게 의사소통하며 얻은 재물은 견고한 성이 되어 생명에 이르게 한다 했다.

I. 생명을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 비교(17-21)

17절은 훈계를 듣고 마음에 간직하는 사람과 책망을 거절하는 사람을 비교한다. 17절에서는 훈계를 듣고 간직하는 사람을 먼저 말하고 거절하는 사람을 나중에 말했다. 하지만 19절은 거절하는 사람 먼저 말하고 듣고 간직하는 사람은 나중에 말하며 다시 비교한다. 17절과 19절에서 바깥을 감싸고 있는 껍질은 훈계를 지켜 입술을 제어하는 자이다. 17절과 19절의 안쪽에 있는 껍질은 훈계를 거절하는 자이다. 17-19절의 중심에 있는 알맹이는 18절이다. 잠언 기록자가 특별히 강조하며 잘못된 길을 가지 말라는 것이다. 이어서 20-21절에서는 의인과 악인을 두 번 비교한다.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지혜가 반복해서 가르치는 훈계를 잘 듣고 간직하느냐 아니면 듣지도 않고 거절하느냐에서 시작된다.

훈계란 잘못할 때 잘 하도록 책망하는 것이어서 결국 훈계나 책망은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귀가 따갑도록 반복해서 잔소리할 때 듣고 지키면 생명의 길로 들어선 것이지만 잔소리를 듣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은 음녀가 유혹한 절망의 길로 들어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릇 가느니라” 라는 말은 음녀가 유혹하는 길로 들어섰다는 뜻이다. 생명의 길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가의 구별법은 하나님으로 지겹도록 책망할 때 듣고 순종하는가 아니면 거부하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는가에 있다.

생명의 길은 지혜의 말씀을 듣고 따라 행하는 길이다. 이는 11절의 생명의 샘과 연결이 된다. 의인은 듣고 따라 행할 뿐 아니라 자신이 들은 생명의 말씀들이 그 입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다. 그 생명의 샘물은 또 다른 사람들이 생명의 길을 따라 걷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악인의 입에서는 독이 흘러 나온다. 자신도 멸망의 길을 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탐욕을 따라 멸망의 길을 가도록 말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누가 잔소리를 듣지 않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가? 18절에 보면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나온다. 먼저 “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이요” 라고 했다. 마음 속으로는 미워하면서 그걸 감추고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다. 감춘다는 말은 11절에서 “머금었느니라” 와 같은 말이다. 11절에서 악인의 입은 독을 감추고 있는 것이고 18절에서는 미움을 감추는 입술이 악인의 입술인 것이다. 증오하는 마음을 감추고 언제 해칠까 기회만 노리며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이다. 이는 미운 마음 억누르며 친절을 베푸는 사랑과는 다른 것이다.

또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니라” 라고 했다. 중상이라는 말은 말로 남을 모략해서 큰 상처를 입힌다는 뜻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속닥여서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사람은 바보라는 것이다. 미운 마음을 감추고 친절하게 말하면 거짓말쟁이고 또 그 마음을 말로 속닥이면서 드러내서 말로 남을 해치면 바보라는 것이다.

19절은 18절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라는 말은 단순히 말 많은 수다쟁이는 흉잡히기 쉽다는 뜻이 아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말을 많이 하면 허물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허물이란 범법자가 된다는 뜻이다. 국가의 법을 어기는 범법자가 된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된다는 뜻일 가능성이 더 높다.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사람들과 말을 많이 하다 보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는 하나님의 대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는 말이다. 이 사람도 미운 마음은 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미움을 품고 말을 할 때 어떤 말이 좋은 말인지 확신할 수 없기에 입을 조심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미움을 품고 하는 말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을 조심하는 사람은 말을 안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의 말씀만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미운 마음에서 나오는 자신의 말은 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의 말씀만 하는 사람이다.

20절은 의인의 혀와 악인의 속마음을 비교한다. 의인의 혀와 악인의 속마음은 서로 비교할 대상이 아닌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의인의 혀와 악인의 혀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의인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지혜에서 오는 말을 하기에 입에서 나오는 말과 그 말의 뿌리인 혀는 같다. 하지만 악인은 밖으로 나오는 말은 하나님의 지혜의 말을 하는 척하지만 그 말의 뿌리인 혀는 거짓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인의 말의 뿌리인 혀와 악인의 말의 진짜 뿌리인 마음을 비교한 것이다.

먼저 “의인의 혀는 순은과 같거니와” 이라 했다. 자신의 생각에서 나오는 말은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가 가르쳐 준 말만 하기에 정제된 순은과도 같은 말만 그 혀에서 입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악인도 겉으로 드러내는 말은 의인처럼 지혜의 말을 거짓으로 말한다. 하지만 그 마음 속은 아무 가치가 없는 시기와 탐욕들로만 가득 차 있다. 최고의 가치를 지닌 정제된 순은과도 같은 의인의 혀와 아무 가치 없는 쓰레기 같은 악인의 마음을 비교한 것이다. 이는 둘 다 말의 뿌리를 비교한 것이다.

21절은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의인의 입술과 생각 없이 죽는 악인이 비교된다. 의인의 진실된 말을 담고 있는 껍질이 입술이라면 악인의 생각을 담고 있는 껍데기는 심장이다.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라고 했는데 교육한다는 말은 원어에서 양떼를 풀밭으로 인도해서 풀을 뜯게 한다는 뜻이다. 물론 생명의 꼴을 먹이는 것이기에 교육한다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개역개정은 의미를 살려 번역하다가 귀중한 그림을 지워버렸다. 이러한 의역의 또다른 문제점은 반대말로 대조되는 구절을 놓친 것이다. 잠언은 시의 형식으로 기록되었기에 이러한 시어에 담긴 그림을 삭제하여 의역을 하면 안된다. 그 반대말은 아무런 생각 없이 육신의 탐욕을 따라 사는 미련한 자는 남에게 생명의 풀을 먹여 살리기는커녕 자신도 먹지 못해 굶어 죽는다는 것이다.

II. 의인과 악인의 말과 말에 대한 기대(22-32)

22-32절은 계속 의인과 악인이 비교된다. 하지만 그 강조하는 초점은 서로 다르다. 23-25절은 의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27-32절은 악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22절에서 여호와의 복은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이라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근심을 곁들여 주지는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는 10:4절에 나온 거두는 시기에부지런히 일을 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복이다. 제 때에 성실하게 일한 사람의 수고를 보호하신다는 뜻이지 떼돈 벌게 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근심을 곁들여 주지 않으신다는 말은 육체적 감정적 고통을 보너스로 더해 주시지 않는다는 뜻이다. 10:3절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신다는 말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악인이 탐욕으로 모으는 재산은 헛되게 하셔서 고통만 남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지런히 일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의인에게는 그러한 고통을 주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23-25절은 미련한 사람이나 악인이 먼저 나오고 명철한 사람과 의인은 뒤에 나온다. 23절은 미련한 사람은 행악으로 낙을 삼는다 했다. 사악한 일을 행하는 것을 농담을 즐기듯 한다는 것이다. 행악이란 말로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뜻한다. 이웃과 공동체를 해치는 일을 재미 삼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명철한 사람은 지혜로 낙을 삼는다 했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 지혜를 이해하는 사람에게 기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깨닫고 이해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사람이다.

24절은 23절의 결과로 오는 것이다. 악인은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기에 두려워하는 것이 임한다고 했다. 이 두려움은 강한 자 앞에서 벌을 받을까 두려워 떠는 마음이다. 악을 행해 놓고는 그 마음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라고 했다. 악인은 이기적인 탐욕을 바라지만 의인은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렇기에 그런 의인에게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둘 다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서 있지만 악인은 받을 벌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고 의인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무죄선포를 해 주실 것이기에 그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의인은 무조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25절은 24절의 심판의 결과로 악인의 운명과 의인의 운명이 비교된다. 먼저 회오리 바람이란 갑자기 나타나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을 말한다. 갑자기 닥치는 재앙으로 악인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의인에게도 똑 같은 재앙이 닥친다. 하지만 같은 재앙이 의인에게 갑자기 닥쳐도 의인은 그 기초가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 6:24-29절에 나온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비교와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기초를 둔 의인은 갑작스런 재난에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22절은 의인에 대해 주시는 복을 말한 뒤 23-25절은 악인과 의인을 비교했다. 이는 의인이 받을 복을 강조하기 위해 비교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26절은 악인에 대해 말하고 27-30절은 의인과 악인을 비교하고 있다. 이는 악인이 받을 벌을 강조하기 위해 의인과 악인을 비교한 것이다.

26절은 이빨에 식초와 같이 눈에 연기와 같이 라는 비유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말한다. 식초란 포도주 원액이 변해서 식초가 된 것이다. 이 원액을 직접 마시게 하는 것은 잇몸이 좋지 않았던 고대인들에게 고문이었다. 이것을 묽게 타서 마시는 것은 목말라 하던 일꾼들에게 청량음료 같은 것이었다. 또 눈에 연기는 눈에 고통을 주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게으른 사람은 그 부리는 사람 즉 일하라고 보낸 사람에게 그러한 고통을 주는 존재라는 뜻이다.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낸 자의 뜻에 따라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만약 보낸 사람의 뜻을 어기며 보낸 사람이 원하는 일을 오히려 망친다면 큰 벌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27-28절은 의인과 악인의 운명을 비교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장수한다 했다. 장수한다는 말은 원어에서 날들을 더해준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하루하루가 더해져서 영원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의 반대말은 악인이다. 악인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악인의 연수는 짧아진다는 것이다. 짧아진다는 말은 원래 추수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그 남은 연수를 몽땅 거두어가신다는 것이다.

28절은 의인의 소망과 악인의 소망이 비교된다. 의인의 소망에서 소망이란 말은 더 나은 것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의인의 소망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동체가 잘되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한 의인의 소망은 기쁨을 거둔다는 것이다. 기쁨이란 기뻐 뛰며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춤을 추고 소리치는 모습이다. 결혼식 때나 추수 때와 같은 분위기이다. 의인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은 이러한 기쁨을 거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악인의 소망은 끊어진다 했다. 끊어진다는 말은 가버린다는 뜻이다. 악인이 자신의 탐욕을 따라 음녀의 길로 들어서서 가다 보면 자신이 바라던 탐욕이 멀리 가버리고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한방에 큰 돈을 벌려는 사람의 모습과도 같다. 처음엔 손에 곧 잡힐 듯해서 자신의 탐욕을 따라 가지만 그 탐욕은 점점 더 멀어지다가 마침내 사라지고 만다. 그러면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악인이 따라가던 소망이 무엇이든 간에 그 소망은 결국 사기이다. 곧 잡힐 듯 잡힐 듯 유혹하지만 절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29절은 의인의 안전과 악인의 안전이 비교된다.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이라 했다.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가는 길에 흠이 없는 사람에게는 강한 성벽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 힘 다해 지키려는 사람에게는 그 말씀을 따라가는 길이 높은 성벽 위를 걷는 것과도 같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고 했다. 여호와의 말씀이 인도하는 길은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성벽 위의 길이 아니라 멸망의 길이라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말씀은 성벽이 되어 보호해 주지만 불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도구가 되여 멸망한다는 것이다.

30절은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의인은 마치 높은 바위 위에 있는 튼튼한 요새 같아서 아무리 흔들려 해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된다 했다. 악인은 하나님의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이리저리 떠다니고 흔들린다는 것이다. 마지막 심판 때에 악인은 하나님의 나라에 발 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III. 의인과 악인의 입의 열매들(31-32)

31-32절은 의인과 악인의 운명이 비교된다. 31절에서 의인의 입과 악인의 혀가 비교된다. 의인의 입에서는 지혜가 나온다 했다. 이는 지혜가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의인은 지혜로부터 듣고 순종하며 자신의 생각이 아닌 지혜의 말씀을 따라 입을 여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 입에서는 자신이 배우고 실제 경험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나오는 것이다. 그 말에 의해 수많은 의인들이 영생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지난 주 요한복음 설교에서 예수님께 연결된 수도관처럼 생명의 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모습이다.

하지만 거짓말하는 혀는 잘릴 것이라 했다. 입은 옳은 말을 하는 척 하지만 그 말의 뿌리는 거짓이기에 혀를 자른다고 한 것이다. 영생의 열매들이 쏟아져 나오는 진실된 입과 거짓말이 쏟아져 나오는 입의 근원인 악인의 혀가 비교된다. 의인에게는 영생의 열매를 주신 여호와는 말로만 거룩한 척하고 거짓말하는 그 뿌리를 자르러 오신다는 것이다. 미움을 감추고 거짓말을 하며 중상하는 그 뿌리를 가위로 싹둑 잘라 던지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이웃과 공동체를 해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32절은 의인의 입술과 악인의 입이 비교된다. 의인의 입술은 남을 기쁘게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다. 남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고 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말인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지 알고 이웃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악인의 입은 거짓을 말할 뿐이다.

결론 및 적용

의인과 악인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간직해서 따라가느냐 아니면 듣지 않거나 듣는 척 하다가 잊어 버리느냐에 있다. 악인의 구별법은 미움이다. 미움을 감추고 거짓말을 하든지 아니면 드러내서 말로 해치든지 둘 다 악인들이다. 의인의 마음에도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올 수 있다. 그 때에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입은 닫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만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혜의 말만 가려서 할 때 순은 같이 귀한 말이 되고 양떼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잘 먹이는 목자같이 되는 것이다.

의인은 부지런히 일해서 이웃을 섬김으로 살리는 자이다. 그러나 악인은 일은 안하고 말로만 해서 남을 해치는 자들이다. 의인들은 인생의 토네이도가 지나가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과 공동체를 기쁘게 하는 삶을 목표로 살아간다. 하지만 악인들은 자신의 탐욕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다가 인생의 토네이도를 만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 세상에서 악인이 때로는 잘되는 것 같고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것 같이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의인은 영생의 열매를 맺지만 악인은 열매없이 망하고 마는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의인은 말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이웃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지만 악인은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웃을 멸망의 길로 인도한다.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A woman is having her tongue cut out by a large pair of scis Wellcome V004060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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