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1절에서는 갑자기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12장 끝부분과 13:1-7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8절에 가면 다시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한 말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인 13:1-7만 뺀다면 훨씬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13:1-7절은 바울의 기록이 아니라 기독교 공인 이후인 AD 313년 이후의 교회가 로마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13:1-7절이 바울의 기록이 아니라 후대의 교회가 로마 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삽입한 것이라면 이 부분이 삽입된 사본들과 이 부분이 없는 사본들이 존재해야 한다. 특별히 4세기 이전의 사본들에는 이 부분이 없는 사본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2세기 성경 사본으로 인정되는 P46에도 이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사본의 외적 증거만이 아니라 본문의 내적 증거에도 바울의 기록이라는 일관성이 분명히 보인다. 12:17에 선과 악이 비교되어 나오는데 13:3절에도 똑같은 말인 선과 악이 나온다. 개역은 악한 일과 선이라는 말로 번역했고 새번역은 좋은 일과 나쁜 일고 번역했다. 모든 증거를 다 찾아보면 볼수록 오늘 본문을 나중에 끼워 넣었다는 증거는 전혀 찾을 수 없다.
이 구절을 후대의 삽입이라고 보는 학자들은 로마서 전체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1-11:12절에서 바울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사망한 후 유대인 추방령이 해제되어 로마교회로 되돌아온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한 말이다. 11:13-24절은 로마 교회의 이방인 신자들에게 교만한 태도를 보이지 말라고 한 뒤 11:25절부터는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 모두에게 참된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에 대해 말한 것이다.
12:1-8절은 그렇게 유대인과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 각자가 그리스도를 표준으로 삼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겸손히 서로 섬기라는 내용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의 표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표준 삼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기 위해서 실천해야 할 사랑의 대상이 12:9-13:7절까지의 내용이다.
먼저 그러한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신 사랑을 실천해야할 대상은 먼저 12:9-13절에 나오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믿음의 형제들 중에도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은 서로 대적하며 원수 삼고 지도권 다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사랑을 실천해야 할 대상은 12:14-21절에 나오는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유대인 원수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원수 갚지 말라는 것이다. 로마교회로 돌아온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 편지를 듣고 “맞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거다. 우리를 핍박하고 죽이려는 원수인 유대인 동포들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최고봉이지” 라고 화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갑자기 이게 다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게 다가 아니라고 한 것이 바로 13:1-7이다. 핍박하던 유대인들은 유대인 신자들에겐 원수였지만 전도해야 할 동족들이었다. 그들을 사랑하라는 말은 100 퍼센트 수긍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바울이 한 말에는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었을 것이다. 동족이 아니라 이방인인 원수들까지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13:1-7은 또 다른 원수들로 여겼던 로마제국 지도자들에게 원수 갚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에 그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들의 법을 잘 지키고 세금을 잘 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역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이다. 13:8절에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고 한 것은 바로 앞에서 말한 성도 간의 사랑, 유대인 원수 사랑, 이방인 원수 사랑을 결론적으로 말한 것이다. 동족인 원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방인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방인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최고봉인 것이다. 이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준이 바로 율법의 완성이라고 한 것이 13:10절이다. 많은 이들은 로마서의 핵심은 1:17절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라는 말이라고 하지만 본인은 13:10절이 로마서의 핵심이고 결론이라고 본다.
그 다음엔 더 심한 말이 나온다. 로마제국의 권력자들에게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로마제국의 반역자는 하나님의 반역자란 뜻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내 자식을 사랑하듯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죽도록 싫어도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을 행하라는 것이다. 원수인 로마제국 권력자들 까지도 그렇게 의지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고 했다.
여기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이 로마제국의 통치자들에게 벌을 받는 것을 뜻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심판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Sanday & Headlam은 여기서 심판이 사람들을 통해서 오는 것이고 그 근원은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도 영원한 심판이라고 말할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Sanday & Headlam, ICC, 367). 다수는 사람의 심판과 하나님의 심판 둘 다라고 말하며 권세자들의 명령 그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의 방식이라고 해석한다(Boa & Kruidnier, HNTC, 393-95; Mohrlang & Borchert, CBC, 198-99; Morris, PNTC, 462)
그러나 또 다른 다수는 여기서 심판이 로마제국 통치자들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Brown, Fausset & Jamieson, CCEPONT, 268); Cranfield, ICC, 664; Kruse, NIGNT, 495 Longenecker, NIGNT, 960-61). 특별히 James Dunn 은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심판을 받는다는 말이 욥기 9:19절과 외경인 지혜서 12:12의 영향을 받았다며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바울 서신 전체와 칠십인역 구약성서와 제 2 성전기 문헌에서 거의 일관되게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고 말한다(Dunn, WBC, 762-63).
성경을 해석할 때 원칙은 먼저 본문의 문맥이다. 2절 자체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반역하는 것이고 그런 반역자들은 심판을 받는다고 했기에 문맥 자체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신구약 성경 전체와 제 2성전기 문서들에 비추어서 언어적으로 개념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다수의 학자들처럼 현대인의 사고에 근거해서 해석하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