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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섭 목사Dr Ahn's NT 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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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d Passages

로마서 12:1-2

거룩한 산 제사와 알맹이 경건

안정섭 목사 · 로마서 12장 강해 설교 · 로마서 12장 새벽말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바울은 로마서 1-11장까지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논쟁을 벌였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내린 유대인 추방령으로 쫓겨났던 로마교회 창립 멤버들인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클라우디우스가 죽자 로마교회에 돌아와 율법으로 자신들의 권위를 되찾으려 했던 것이다. 바울은 이들에게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아무런 차별이 없이 모두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앞에서는 율법을 믿고 지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을 비교했다면 이번에는 예배를 드리는 방법을 비교하고 있다. 율법시대에는 흠없는 양을 잡아 죽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흠없는 어린 양이 되셔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기에 더 이상 동물이 죽은 제사는 필요없다는 것이다. 이제 대신 거룩한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적 예배인데 이는 원어에서 λογικην λατρειαν 이다. 이는 이성적인 예배 또는 합당한 예배 라고 번역해야 옳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합당한 예배는 우리의 옛사람을 죽여서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이 2절이다. 하지 말라는 명령과 하라는 명령으로 되어있다. 하지 말라는 명령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고 하라는 명령은 변화를 받으라는 것이다. 두가지 명령인 것 같지만 하나는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하나는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결국 예수님 닮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흔히 잘못 해석하는 것은 “이 시대의 풍조” 라는 말이다. 원어는 “τω αιωνι τουτω” 이기에 “이 시대” 라고 하는 것이 옳다. 레위기 18:3-4절에서 이집트 사람이나 가나안 사람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시대”는 전에 함께 살았던 이집트 사람들이나 앞으로 함께 살게 될 가나안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많은 설교자들이 “이 시대” 는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이 시대” 를 본받지 않는 것은 참 쉽다. 불신자들이 즐기는 음주 흡연 도박 등 안하고 마약도 안하고 주일에 잘 차려 입고 예배 드리고 십일조 드리면 되는 것이다.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눈에 보이는 경건한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던 “이 시대”는 우리는 죽은 제사를 드리던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의 이웃들이 아니다. 바울이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라고 말한 것은 바울이 만들어 낸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말만 바꾸어서 전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본받지 말라고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봐야 한다.

마태복음 5-7장은 구약의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키며 율법의 빈틈을 찾아 몰래 악을 행하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의 형식적인 경건을 본받지 말고 진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산상수훈의 핵심이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유대교 지도자들을 정말 신랄하게 비판하시는 모습을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무리와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저들은 외형적으로 거룩한 척 하지만 맹인인 인도자들이고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자들이라고 하셨다. 겉모습만 아름답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셨다. 복음서를 통해서 보면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본받지 말라고 하신 “이 시대” 는 당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당시 하나님을 최고로 섬긴다던 유대교 지도자들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이 시대” 도 절대로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로마서 12:2절의 “이 시대” 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시대” 는 단순히 우리와 함께 사는 불신자들이 아닌 것이다. “이 시대” 는 예수님과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오늘날 타락한 기독교 지도자들인 것이다. 복음서와 바울서신 전체를 다 뒤져봐도 “이 시대”를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라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데도 없다. “이 시대” 는 오직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같은 기독교 지도자들이다.

그렇다고 난 평신도이니까 라고 말하지 말라.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도 역시 평신도였다. 교회에서만 거룩하고 밖에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산다면 그러한 기독교인들이 바로 본받지 말아야 할 “이 시대”이다. 교회사를 보면 오랫동안 거룩한 삶과 일상의 삶을 구분해왔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회에 모여 예배 드리고 성경공부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것은 껍데기 뿐인 거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알맹이까지 거룩한 삶을 사는가? 로마서 12:3-13:7절에서 먼저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사랑의 대상이 먼저 바뀌지 않으면 알맹이까지 거룩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12:3-19절은 함께 신앙 생활하는 형제들과 한 몸을 이루고 사랑하라는 말이 나온다. 12:19-21절은 당시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을 핍박하는 유대인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말이 나온다. 13:1-7절은 이방인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말이 나온다.

로마서는 본래 로마교회에 돌아온 로마교회 창립 멤버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준 편지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들에게 믿음의 형제에서 믿지 않는 형제로 믿지 않는 원수들에게로 사랑의 동심원을 넓혀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13:8-11절은 이러한 이웃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껍데기만 거룩한 “이 시대” 가 되지 않는 비결인 것이다.

13:11-15:6절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15:7-13절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5:14-33절은 바울이 그 사랑을 완성하게 하려고 모든 지역을 다 다녔다는 것이고 로마에도 갈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로마교회의 도움을 받아 땅끝인 스페인까지 그 사랑을 완성하게 하려는 것이다. 16장도 역시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고 알맹이까지 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그러한 사람들과 협력하여 알맹이까지 완전히 변화된 사람들이 모두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자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를 받는 목적이 로마서 12:2절 끝부분에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다. ‘선하시고’ 는 과거에 자신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돌아보는 것이다. ‘기뻐하시고’ 는 과거에 경험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근거로 현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온전하신 뜻” 이란 그리스도를 닮은 완전한 성숙함이다. 이것은 앞으로 계속해서 닮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도 역시 과거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선하심 뿐 아니라 신구약 성경과 교회사에 나온 하나님의 선하심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 기뻐하실지 분별할 수 있다. 그러면 건물 크게 세우고 멋진 사람들끼리 모여 폼나게 예배 드리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다. 권력있고 돈있고 지식있는 사람들의 편을 들어 그들과 야합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껍데기 경건이 아니라 알맹이까지 다 경건해 지는 것이다. 알맹이 경건은 교회 안에 있는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되면 그 동심원을 넓혀가며 온 세상에 있는 원수까지 용서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가까이에 있는 원수 같은 사람을 용서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이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이나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돕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먼저 교회 안에 있는 원수 같은 형제 자매를 용서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알맹이까지 거룩해지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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